오래 전에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보고 봐야지 해놓고 미뤄두다가 지금에야 보게 됐다. 미뤄둔 것이 잘한 일 인 듯하다. 그것도 황지우 시인 강의 듣기 전에 영화 한번 보고 오라는 공지 문자에 부랴부랴 숙제하듯 보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왜 보고 오라고 한 건지 알겠다. 영화 속 음악이 느리게, 느리게 안으로 들어와 잘 알지도 못 하는 음악을 흥얼거리게 된다. 눈을 감으면 등장인물이 춤추는 장면이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바다.

명사를 남녀로 구분해 읽는 라틴어권 나라(어느 나라인지 오래 돼 기억이 나질 않는다)가 바다를 'La mar' 라고도 하고 'El mar' 라고도 한다던 소설 구절이 기억난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를 보고 떠올린 것인지. 이 영화에서 바다가 중요한 매개(?)가 된다. 바닷가에서 시인과 우편배달부가 시를 이야기 한다. 황지우 시인 강의 중에 빠블로 네루다가 읊은 짧막한 시를 연결해 놓으니 아, 영화 전체를 뚫는 사랑을 말하는 것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시를 쓰려는 이여, 이 영화를 보기를.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 시집에도 이 영화 제목을 딴 시가 나온다. 영화제목을 원제 그대로가 아닌 우리말로 '우편배달부'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던 시인의 말에 김기덕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이 떠올랐다. 상영관도 거의 없어서 대학로까지 가서 본 남편과 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까만 화면만 남아있는 그 자리에 남아 가만히 있었다.

 

 

 

 

작년부터 늘 그네(시인은 '그녀'라고 했지만 일본식 한자조어이기도 하고 '그네'가 내게 더 편해서)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말이면 광화문에 나가고 티비 앞에 너무 오래 앉아있게 된다며 오늘도 광주로 오기 전까지 그네가 조사받으러 가는 걸 지켜보았다고 한다.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해 '공감'할 줄 모르는 그네의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시는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이라며.

 

모국어로 된 음성(내적)질서를 가지고 시는 먼저 소리로 다가온다고 한다. 시가 시이게 하기 위해서는 '은유'의 부력에 기대야 한다고. 「일 포스티노」영화에서도 시를 쓰려면 '은유'를 알아야 한다던 빠블로 네루다와 그 맛을 알게 된 마리오의 일취월장은 시에서 '은유'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은유'가 무엇인지, 은유 없이 시가 될 수 없다 말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태도가 진정 시를 되게 한다'는 황지우 시인의 태도가 시인이 살아온 모습과 겹쳐져 마음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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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시인의 친필 싸인은 가보로 등극!!입니다..
네 물론입니다..시에서 은유가 빠지면..
메타포가 없다면~~~이미 시가 아니었을테니까요..^^..

저는 책에서 작가나 저자의 싸인이 들어간 책은
별도로 분리해서 보관하거든요~~~..
아무나 받는 사인이 아니었기에, 책의 저자와의 일종의 인연처럼
받들어지더라구요~~멋집니다~

samadhi(眞我) 2017-03-22 17:59   좋아요 0 | URL
에헤헤(^-^)v
아 그렇게까지 관리하시는 군요.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 배우네요.

레삭매냐 2017-03-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이 영화를 선물해 주었었는데, 비디오 테이프가 고장나서 미처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봤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원작 소설은 아주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비로소 만났던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7-03-22 18:00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보고 나서 원작소설 있는 걸 알았어요. 소설과 영화가 내용이 조금 다른 듯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2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지우, 독보적 한국 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포스티노 좋죠. 소설도 영화도.... 다 좋습니다.. ㅋㅋ

samadhi(眞我) 2017-03-22 22:50   좋아요 0 | URL
이런 시인이 있다는게 고맙고 자랑스럽죠.
소설 빨리 읽고 싶어요.

jeje 2017-03-2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해 놓은 영화인데, 페이퍼 보고나니 빨리 가서 봐야겠어요. 그리고 황지우 시인의 시도 봐야겠습니다.ㅎㅎ

samadhi(眞我) 2017-03-22 22:52   좋아요 0 | URL
제 뽐뿌질이 성공한 건가요?^^
방금 마친 독서모임에도 이 영화 다음달에 얘기하자 제안했습니다.

목나무 2017-03-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번이나 본 영화인데 이번 3월에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구요.
이런 영화는 몇 번을 재개봉해도 좋겠어요. ^^

samadhi(眞我) 2017-03-23 10: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영화 보고난 뒤 검색하다 재개봉 소식 보고 반갑더라구요. 아직 영화 안 본 남편 끌고(?) 갈까 해요. 독서모임 회원들에게도 공지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