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인 정치 이력을 잠깐 언급하자면, 저는 2002년도에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으로 입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개혁국민정당은 유시민 전 의원과 김원웅 전 의원이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우리나라 정치에서 구현해보고자 한 정당으로, 상향식 의사결정이 가장 큰 특징이었고 당비를 내는 당원들로 운영되는 '책임정당'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적어도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정당에 입당원서를 쓰는 일은 없었고, 적어도 간단하게나마 정강정책 정도는 숙지할 수 있을 정도의 책임감은 있었으니 '책임정당'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 듯 하네요.

그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과 합당하고, 열린우리당은 몇몇 기억하기 힘든 정당의 이름을 전전하다가 지금의 민주당이 되어버렸고, 유시민 전 의원은 지금 당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속칭 '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 자신은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을 하나 파서 가지고 다니시나 봅니다. :D

 
유시민 氏 - 전 의원? 전 장관? 딱히 붙일 호칭이 마뜩찮아서 그냥 氏라고 쓰겠지만, 저는 유시민 氏에 대해서, 삼촌뻘 되시는 분이시기도 하거니와 정확하면서도 넉넉한 성품 덕택에 분명히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호칭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님, 이라는 호칭은 너무 높인다는 느낌이 들고, 氏라는 호칭은 너무 객관적이고, 때로는 버르장머리 없어 보여서 난감하지만... 뭐 그렇습니다. ^^a - 의 책은 여러 편 읽은 바 있습니다. 근작이었던 '대한민국 개조론'의 경우에는 짧게나마 감상글을 쓴 바도 있습니다.

프롤로그를 넘어선다면, 읽기 쉬운, 그러나 단지 편하게 읽히지는 않는 에세이 글이 단편의 형식으로 수십개가 있습니다. 솔직히 불만입니다. 적잖이 비싼 책값에, 단편적인 소회가 절반 정도를 이루는 글을 쓰시고는, 뻔뻔스럽게(!) 지식소매상이라뇨. 이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을 집어든 독자의 김을 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글은 짧고 간단하게 읽힙니다. 1부에서는 헌법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현재의 제현상에 대한 해석을 담아내었고, 2부는 전 정부에서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여러 일들과 그에 얽힌 소회들을 담아내었습니다.

네. 그렇기에 유시민 氏는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고 한 것이겠죠. 말 그대로 도매로 여기저기에서 떼어온 재료들을 잘 가공해서 판매하는. 딱 그 정도입니다. 소라는 동물이 가진 본질적인 구조와 성향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육회 맛은 느낄 수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조금 안타까웠다고 할까요?

일전에 '개념어사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두고 읽었었죠. 틈틈이, 짧게 끊어지는 글들을 읽으면서 가졌던 느낌 같은 것을 이번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특히, 책의 목차 중에 '최장집'과 '장하준'이 있는데, 저자는 앞의 두 분에 대한 저작 중 근작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기반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제가 두 책을 다 읽었고, 두 분의 책을 조금 더 읽었다는데에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장하준 교수의 일련의 저작물에 대해서, 유시민 氏의 평가는, 그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기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는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이지 그 이상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정도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념어사전'이라는 책도 그랬고, '후불제 민주주의'도 그렇고... 얼치기 법학도로서 헌법에 대해서 들었던 수업들을 생각하면서, '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정도로 끝나버린다면... 독서 이후의 안타까움은 참 크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겠습니다. 자꾸 지식도매상과 지식소매상의 음식 맛을 비교할 수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은, 어찌보면 저자가 전작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라던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같은 책 - 에서 여러 재료를 잘 섞어서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로운 사유를 이끌어내었던 모습과 자꾸 비교되는 안타까움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책은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 2MB 정부의 뻔뻔한 역주행 - 책은 편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그건 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범주의 책을 누가 썼더라도 아마 편하게 읽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그러니까요. 그런 탓에 평균값은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만, 프롤로그는 정말 읽을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민주화가, 서구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 사고들 없이 다만 단순하게 이식된 민주화이기에, 민주적 절차를 수행함에 있어서 서구 사회가 그들의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해 나가면서 다양한 계급의 동의를 얻었던 것과 같은 절차 없이 다만 민주화라는 이름만 빌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져내린 독일의 제 2제국의 뒤를 이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충분한 민주적 절차 없이 사회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운 것이, 1931년 나찌당의 총선 승리로 귀결되면서 혹독한 후불의 댓가를 치루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투쟁의 댓가로 얻어낸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 시민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민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며 지금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거나, 이런 민주주의의 댓가를 후불로 치루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댓가를 치루는 방법이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임을 저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가슴 깊이 새기더라도 책은 그 값어치를 오롯이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누구와 연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부분이 글의 1, 2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글의 핵심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며, 본문은... 다만 그에 대한 실례이자 증명일 뿐인가요...? @.@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커리큘럼 현대사 3
정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조봉암은 사형당하기 직전 옥중 성명을 통해 "우리 동지들은 현실의 포로가 되지 말고 우리의 이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진보 세력은 인간의 이성적 노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현실의 포로가 된다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현실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서문, p14)  
   

진보세력을 정당으로 결집시키는 일은 어찌보면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숙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이 정당정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이렇다할 정당정치의 이상을 구현해본 기회가 지난했던 일이 첫번째이며, 그 와중에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담당할 진보적 축이 없었던 것이 두번째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을 쓴 저자가 언급하다시피,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보수적인 정당이 보수적 프레임 안에서 대화와 타협을 해나가는 정당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에 여러가지 진보적 정책이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근년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진보적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그들이 진보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 책 [조봉암과 진보당]을 읽으면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울산에서 이루어지는 '현실포로적' 행태를 보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50년대 활동하던 구세대 진보 세력은) 대다수가 정치 경험이 비교적 적은 '지사형'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또한 작품에 있어 남과의 타협이나 조화에 익숙하지 못한 완고한 편집증 활동가들이었다. 동일한 조직에서 활동해본 일이 없던 이들은 (4.19 직후 1960년의) 7.29선거에 참패한 뒤 쉽게 분해되어 자멸했다. 오늘의 민주노동당은 이들의 실패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p261)
 
   

오랜 망명생활을 거쳐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썼던 홍세화 氏가 자신의 책에서 이야기했던 '관용'의 정신이 지금의 진보정치판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진보성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활동가들이 한세대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지 못한 채 지금처럼 끊임없이 백가쟁명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진보의 정치는 요원할 것입니다.  
 
모든 혁명은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져간 이들에게 기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보당보다는, 1956년의 제 3대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표를 득표하여 23%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죽산 조봉암 선생 - 23%라는 득표율 이상을 기록했던 대통령 후보자는 지금까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이외에,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 이외에는 없습니다 - 에게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상태에서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봉암 선생에게는 따뜻한 애정이 담긴 - 그래서 냉정하거나 객관적이지는 못한 - 서술이 이루어져있고, 진보당에 대해서는 진보당의 역사를 (문서적으로) 복원하며 분석하려는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간언에서 조봉암 선생의 여러 약점들을 읽을 수- 인간적이랄까... 혹은 행정적인 면보다는 지사적인 면이 강하달까... 혹은 (자칫 잘못하면) 기회적이라고도 읽을 수도 있겠고, 외톨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면에 유연한 정치적 움직임과 중도를 추구하는 자세는, 양보를 죽음으로 아는 지금의 세태에 한 번 쯤은 되새겨 볼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1공화국 당시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적이며 정권 지향적인 정치 프레임 속에서, 짧지만 큰 자취를 남겼음에 분명한 진보당과 조봉암 선생에 대하여, 저자의 바램대로 정당한 평가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저도 바라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보수적 프레임이 (거의) 전부인 이 시대에서 사회적 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이 어떻게 인지될지 궁금합니다. 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프레임 자체도 이미 보수로 굳어진 것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집중해서 - 그러나 자그마치 한 달 여의 시간을... -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해서 많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있지만, 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이 책을 취임 전에 읽었다는 외신기사를 보고, '링컨'이라는 인물에 조금 더 다가서보자는 생각에서 책을 읽어볼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지난 한 달 여간, 책의 나머지 절반 정도는 이번 주 화요일 저녁과, 어제 저녁에 읽었네요. 아무래도 링컨이라는 인물이 드러내는 진정한 가치는 '남북전쟁'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남북전쟁 시대를 그린 중간 이후 부분이 조금 더 집중력있게 읽힌 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은 링컨의 평전은 아닙니다. 물론 링컨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지만, 책의 원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1860년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에 참가하였던 라이벌들에게서 책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독특한 구성이지만, 책의 서두에는 링컨과 슈어드, 헤이스와 베이츠의 입장에서 1860의 공화당 후보 경선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네 명의 인물의 과거사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배경과 성장과정 및 정치적 성향과 민감한 이슈에 대한 견해를 차근차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굳이 책의 저자가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 책을 통해 남북전쟁 당시의 정치적 상황 및 남부와 북부의 대립점을 명확하게 하면서, 특히 노예해방 편에 섰던 네 명의 공화당 인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약간씩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네 사람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조율하면서 남북전쟁에 북부의 승리를 가지고 왔는지를 잘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해방의 견해를 가졌지만, 가장 급진적이었던 헤이스부터 가장 보수적이었던 베이츠까지 조금씩 다른 스펙트럼을 어떻게 조율하고 양보해나가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들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결국 책이 페이지를 더해갈수록, 저자는 팀의 리더인 링컨의 진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링컨의 진가는 제임스 러셀 로웰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엔 국민을 억압하게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가장 큰 정치적 능력이다. (중략) 링컨은 여론과 완벽하게 교감했으며, 적절한 시기를 찾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p635)  
   

링컨은 전쟁의 어려운 국면에서, 신중하게 시기를 조율하고 자신의 내각을 조율하다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렸음을 이 책의 모든 부분을 통해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링컨의 탁월한 결정력은 링컨이 여론의 흐름과 시대의 흐름이 가장 적절하게 교차하는 점에서 늘 정확한 결정을 했다는 것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링컨의 능력은, 그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헌법의 이상에 대한 신뢰와 끊임없는 신중함, 그리고 그의 정직하고 온화하며 유쾌한 성품 때문임을 책에서는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만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론이 잘못된 방향을 택하고 있다면 신중하게 여론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정직하게 헌법의 이상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면서 온화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리는 것이 바로 링컨이 재임기간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링컨의 죽음에 대한 언급, 그리고 링컨과 함께 팀을 이루었던 내각 및 주변인물들에 대한 에필로그는 짧지만 강렬합니다. 특히 전쟁장관 스탠턴이, 앤드류 존슨 - 링컨의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 과 대립했다는 짧은 언급 뒤에서, 헌법의 정신 아래에서 남부를 포용하려던 링컨의 정신을 제대로 수호하지 못한 존슨 대통령에 대한 격렬한 안타까움이 보이는 듯하여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웠던 스탠턴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급사한 부분까지. 또한 링컨의 저격이 이루어지던 그 시간에 암살 기도 속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슈어드가, 대통령의 죽음을 -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가운데 - 눈치채고 그의 부재를 담담하게 슬퍼하던 장면도.

아, 그리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대의 국무장관이었던 존 헤이가, 링컨의 1기 재임기간 동안의 그의 비서였다는 것도 몰랐었네요. (흐음)


이 책을 읽으면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단지 단호한 결정력이 아니라, 단호한 결정력 이전에 신중하게 여론의 흐름을 찾고, 헌법의 대의와 이상에 따라, 정직하고 신실하게 자신과 자신의 팀을 다루는 것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해보았습니다. :D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김상복 지음, 장차현실 그림 / 21세기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어제(3/10)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내일(3/12)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고서는 집 옆 구립도서관에 가서 오늘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책의 주문을 취소했습니다. 

이 책은 [도덕과수업Ⅰ]의 첫 과제로 제시받은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해 선생님께 대략의 코멘트를 받은 후에 했던 생각이, 이 책을 사 두었다가 우리 아기들이 큰 다음에 읽히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던터라 책을 구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두 딸들이 커서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오히려, 딸들에게는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저는 올해 환갑을 맞이하시는 부모님이 계시긴 합니다. 독자(讀者)를 책의 화자 격인 귀여운 중1, 중3 학생들과 같은 위치에 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제 부모님과는 시쳇말로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그리고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장남의 처지에 부모님께 살가운 말로 위로하는 역할보다는 든든한 바위 같은 위치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라, 독자는 귀엽고 깜찍한 중1과 중3 학생들의 상대역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두 딸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으로 커 나가게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중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수업을 듣는 앳된 동기들도, 자신들을 향한 칭찬과 격려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저는 시대의 경향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처와 아픔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인간상을 원하고 있는 이 시대는, 따라서 개인을 더욱더 이질화시키고 파편화시키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쉽사리 털어놓을 곳 없이, 내상(內傷)을 스스로 어루만져야 하는, 공동체성은 점차로 희미해져가고 개인의 존재감은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여지도 없이 내팽겨쳐져있는 이 시대이기에, 우리는 따뜻한 말, 진심이 담긴 한 마디를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입에 발린 격려나 칭찬이 아닌, 따뜻함이 담긴 - 무뚝뚝하게 던져질지라도 - 말 한 마디 던지기 버거워하는 현재의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엊그제 정기보험에 가입하는데, 보험설계사가 '가족에게 남기는 말'을 적으라고 하길래, '소영아, 사랑해!' - 제 와이프 이름이 '소영'입니다 - 를 적고는 와이프 보지 못하게 재빨리 접어서 보험설계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제 감정을 표현해보아야겠습니다. 와이프에게도, 아직은 말이 통하지 않는 다섯 살, 두 살짜리 제 두 딸아기들에게도. 그래서 제 두 딸이, 혹여 중학교에 진학해서 도덕 선생님에게 '칭찬일기'의 숙제를 받았을 때, '선생님, 아빠 엄마에게 따뜻한 감정을 건네는 것은 당연한거 아닌가요?'라고 의아해 할 수 있도록 저도 따뜻한 진심을 담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저는 미네르바라는 분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파일은 가지고 있지만... 하도 여러 글들에서 그 분의 글에 대한 분석들을 보다보니까,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막상 읽어보려고 마음을 먹게 되지는 않네요.

그래도 미네르바 님이 추천하셨다는 책들은 메모해두었습니다. 그 중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한 번 다 읽었습니다.

일단, 요즘 제가 (정치)경제학 쪽의 책을 이런 저런 것들 읽어가다보니까, 책 자체가 아주 새롭게 읽혀지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흑사병 같은 경제 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과,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인클로저 운동 등의 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바입니다. 거기에 뜨거운 불길을 끼얹은 것이 산업혁명이며, 그 전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상업혁명이기도 합니다.


뭐 그럭저럭 요약하는 것은 별다른 독후감상문이 되지 못할 터이니.

일단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은, 1930년대 한창 대공황의 파고를 건너넘던 시기의 미국 사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쓰여진 책 치고는, 지금 읽어도 심정적으로 시차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의 충격입니다. 책 p190 에 이런 문구가 있네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정말이지 출생의 특권은 폐지됐지만 사업의 특권이 그것을 대신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귀족과 교회 세력이 그 자리를 내어준 이후에, 부르주아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을 저자는 위와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신분의 특권은 없어진 대신, 그 특권은 돈을 가진 이들에게로 옮겨갔죠. 이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부(富)가 부(富)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인 근 220여년 전에도, 뉴딜 시기인 80여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몇천억씩 해먹어도 휠체어 끌고 유유히 법정에서 무죄 판결 받고 유유히 사라지는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유명한 탈옥수 모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책은 급격하게 자본주의로 대체되는 사회가, 실은 봉건주의의 어두움보다 더 큰 어두움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네. 보통 이런 부류의 책들은 선동적입니다. 왜냐하면 주류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선동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언외언을 짚어보면 선동적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느낌만이 전부가 아닌 까닭은, 저자가 진중한 자세로 담담한 어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경제현상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글이 주는 선동적인 느낌은, 어떻게 보면 저자의 의도라기 보다는, 그냥 현실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알고 있는 이야기가 꽤나 있음에도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자본주의의 주인인 자본가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저자는 자본가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제시하고 있으며,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심정적으로 무산자에 가까와서 그런지, 아니면 저자의 언외언 때문인지, 그런 설득에 설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감정적으로 흘렀는데... 이 책은 대공황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던 시기 - 독일 등은 파시즘의 방식으로, 미국 등은 대규모 토목공사 등으로 - 의 여러 움직임들을 편들지 않고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당시로서는 최신의 경제학자 이론을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속에서 저자의 언외언을 읽어내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자는 정말 담담하고 진중하게 모두의 입장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히, 케인즈나 하이예크 같은 이들의 이름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독서 중에 맛볼 수 있는 기쁜 손님 같습니다.

결국, 세계대공황이 80년 만에 다시 이 땅을 찾은 작금의 현실에서 지금 이 책을 읽어보는 분이 계시다면, 80년의 시간적 격차 따위는 무시무시한 대공황이라는 공통점 앞에서 촌음의 시각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80년의 격차는 격차일 뿐입니다. 케인즈 이론에 기반한 복지국가이론이라든지,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등의 경제 상황이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최신 현상들을 머릿속에서 지운다면 정말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가와 화폐가치 변동에 대하여는, 올해 MB정부에서 어설프게 주장했던 환율주권론이 (지금 이 상황에서) 얼마나 서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는지를, 상업혁명 당시의 화폐발행 상황에 비추어 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소위 '낙수 효과'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하루에 열 몇 시간 씩 - 저도 (소위) 대기업을 다니면서 8시 출근에 8시 퇴근을 밥먹듯이 해도 고작 받은 임금은 하루 9시간 분 뿐이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자그마치 화이트 칼라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열 몇 시간 노동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일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했던 - 저는 그래도 나름 넉넉하게 받았습니다만... - 사람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어보고 싶네요. 책의 p230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산업혁명 시대에 소위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라고 일컬어지던 영국 국교회의 부주교 페일리라는 이의 말이라고 합니다.)

"오로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선만이 바람직한 변화다. (중략) 그리고 산업이 성공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룩된다. (중략) 공공질서와 평온 속에서는 (중략) 이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중략) 부자들의 지위나 재산을 탐하는 것, 그것들을 폭력이나 공공연한 소동과 혼란을 통해 탈취하고 싶어할 정도로 탐하는 것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이것은 영국의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꿈꾸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영국의 노동자들도 받을까봐 지레 겁먹은 부주교의 언급이었다고 하죠. 그러나, 저 말 속에서 우리는 (소위) 가진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상위 2%를 옹호하는 의미의 대표격인 '낙수 효과'를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임금 상승은 대개 탄압에 부딪히는 의식적인 대중 행동으로'만 '획득'(p 132)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코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얻은 이윤 -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잉여노동시간으로 낳은 잉여 가치 - 은 결코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저자는 C(총자본)=c(불변자본)+v(가변자본) 의 공식으로 알기 쉽게 독자를 '납득'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R&D, 시설 증설 등으로 끊임없이 증가하는 불변자본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그나마 줄이기 쉬운) 또 다른 불변자본인 임금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개발하겠죠. 작금의 비정규직 문제가 독서 중에 오버랩되었습니다.


네. 이 책은 진중하고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현상을 분석하지만, 읽고 나면 '납득'되어 버립니다.

서가에 한 권 정도 가지고 있다면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책이고, 글의 말미 부분은 1930년대의 대공황 당시의 여러 이론들을 잘 요약하고 있으며, 이 공황의 끝은 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측도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 현상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기본 용어나 개념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책이기도 합니다.

짧게 쓰지 않을까 했는데 글이 두서없고 공격적이며, 길어졌습니다. :D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