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인 정치 이력을 잠깐 언급하자면, 저는 2002년도에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으로 입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개혁국민정당은 유시민 전 의원과 김원웅 전 의원이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우리나라 정치에서 구현해보고자 한 정당으로, 상향식 의사결정이 가장 큰 특징이었고 당비를 내는 당원들로 운영되는 '책임정당'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적어도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정당에 입당원서를 쓰는 일은 없었고, 적어도 간단하게나마 정강정책 정도는 숙지할 수 있을 정도의 책임감은 있었으니 '책임정당'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 듯 하네요.

그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과 합당하고, 열린우리당은 몇몇 기억하기 힘든 정당의 이름을 전전하다가 지금의 민주당이 되어버렸고, 유시민 전 의원은 지금 당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속칭 '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 자신은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을 하나 파서 가지고 다니시나 봅니다. :D

 
유시민 氏 - 전 의원? 전 장관? 딱히 붙일 호칭이 마뜩찮아서 그냥 氏라고 쓰겠지만, 저는 유시민 氏에 대해서, 삼촌뻘 되시는 분이시기도 하거니와 정확하면서도 넉넉한 성품 덕택에 분명히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호칭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님, 이라는 호칭은 너무 높인다는 느낌이 들고, 氏라는 호칭은 너무 객관적이고, 때로는 버르장머리 없어 보여서 난감하지만... 뭐 그렇습니다. ^^a - 의 책은 여러 편 읽은 바 있습니다. 근작이었던 '대한민국 개조론'의 경우에는 짧게나마 감상글을 쓴 바도 있습니다.

프롤로그를 넘어선다면, 읽기 쉬운, 그러나 단지 편하게 읽히지는 않는 에세이 글이 단편의 형식으로 수십개가 있습니다. 솔직히 불만입니다. 적잖이 비싼 책값에, 단편적인 소회가 절반 정도를 이루는 글을 쓰시고는, 뻔뻔스럽게(!) 지식소매상이라뇨. 이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을 집어든 독자의 김을 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글은 짧고 간단하게 읽힙니다. 1부에서는 헌법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현재의 제현상에 대한 해석을 담아내었고, 2부는 전 정부에서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여러 일들과 그에 얽힌 소회들을 담아내었습니다.

네. 그렇기에 유시민 氏는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고 한 것이겠죠. 말 그대로 도매로 여기저기에서 떼어온 재료들을 잘 가공해서 판매하는. 딱 그 정도입니다. 소라는 동물이 가진 본질적인 구조와 성향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육회 맛은 느낄 수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조금 안타까웠다고 할까요?

일전에 '개념어사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두고 읽었었죠. 틈틈이, 짧게 끊어지는 글들을 읽으면서 가졌던 느낌 같은 것을 이번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특히, 책의 목차 중에 '최장집'과 '장하준'이 있는데, 저자는 앞의 두 분에 대한 저작 중 근작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기반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제가 두 책을 다 읽었고, 두 분의 책을 조금 더 읽었다는데에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장하준 교수의 일련의 저작물에 대해서, 유시민 氏의 평가는, 그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기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는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이지 그 이상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정도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념어사전'이라는 책도 그랬고, '후불제 민주주의'도 그렇고... 얼치기 법학도로서 헌법에 대해서 들었던 수업들을 생각하면서, '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정도로 끝나버린다면... 독서 이후의 안타까움은 참 크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겠습니다. 자꾸 지식도매상과 지식소매상의 음식 맛을 비교할 수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은, 어찌보면 저자가 전작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라던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같은 책 - 에서 여러 재료를 잘 섞어서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로운 사유를 이끌어내었던 모습과 자꾸 비교되는 안타까움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책은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 2MB 정부의 뻔뻔한 역주행 - 책은 편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그건 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범주의 책을 누가 썼더라도 아마 편하게 읽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그러니까요. 그런 탓에 평균값은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만, 프롤로그는 정말 읽을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민주화가, 서구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 사고들 없이 다만 단순하게 이식된 민주화이기에, 민주적 절차를 수행함에 있어서 서구 사회가 그들의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해 나가면서 다양한 계급의 동의를 얻었던 것과 같은 절차 없이 다만 민주화라는 이름만 빌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져내린 독일의 제 2제국의 뒤를 이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충분한 민주적 절차 없이 사회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운 것이, 1931년 나찌당의 총선 승리로 귀결되면서 혹독한 후불의 댓가를 치루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투쟁의 댓가로 얻어낸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 시민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민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며 지금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거나, 이런 민주주의의 댓가를 후불로 치루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댓가를 치루는 방법이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임을 저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가슴 깊이 새기더라도 책은 그 값어치를 오롯이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누구와 연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부분이 글의 1, 2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글의 핵심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며, 본문은... 다만 그에 대한 실례이자 증명일 뿐인가요...? @.@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