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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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으로 되어있는, 분량이 꽤나 만만찮은 전체의 절반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50~100쪽씩은 꾸준히 본 듯 싶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참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제게는 14개월에 접어든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위로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이 둘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딸들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같은 부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제게 너무나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저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은, 어떠한 상황과 현상에서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본질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은 저같은 사람에게 그러한 관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예외적인 자녀(11쪽)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권에서는 청각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정신분열증과 중도장애(重度障碍)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례의 중간중간에 예외적인 자녀들이 되도록 만든 청각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정신분열증과 중도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과 그러한 것들에 대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추이, 그리고 다양한 의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적 이야기들이 언급됩니다. 아니, 이러한 이야기들 사이에 사례들이 중간중간에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사례들 하나하나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자꾸 제 14개월 된 딸아이가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제게 묻게 됩니다. 내 아이가 저 아이들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면 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짜리와 초등학교 2학년 짜리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과, 예외적인 자녀를 키우는 저 부모들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이미 그 길을 걸어온 그 부모들에게, 그 길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어느 부모가 힘들고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로써 나는 과연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행복함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때, 아직 부모로써 더 치열하고 더 경건하게, 자녀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한결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부모들은 아이가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성취를 거두며 좋은 대학에 가기를,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서 행복하게 결혼하여 독립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지만, 자신들은 그저 자녀들이 자기 힘으로 밥을 먹고, 자기 스스로 대소변을 치루고, 자기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그 모습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이지요. 부모가 자녀에게 가질 수 있는 기대가 1부터 100까지 있다면, 혹여 나는 아이들에게 100을 초과하는 기대를 가지고 아이들을 덜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과연 지금 아이들과의 관계 그 자체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조건과 바램으로 점철된 관계의 껍데기에 몰입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장애가 가진 비극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현상 속에서 자녀와의 관계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부모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장애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부모-자녀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던 그런 독서가 되었습니다. 



하나 더, 저자는 그러한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들과 부모들이 가진 정체성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치료라고 일컫지만, 과연 예외적인 모습 속에서 살아가는 자녀를 둔 가족에게는 치료라는 이름의 파괴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수화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청각장애 공동체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질병을 가진 부모들의 애끓는 모임이 아닌,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와 부모가 자신들이 가진 다름을 공유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내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울컥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너무 자주, 가슴 먹먹하고 어떻게 할바를 몰라 한숨이 나올 뿐인 이야기들도 나오지만, 이 책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하기 위하여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육아와 교육에 관련된 서적은 아니지만, 부모와 자녀의 본질적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결국 자녀를 어떻게 돌보고 교육하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반성을 하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와 그 부모에 대하여, 피상적인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서 (감히 이렇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깊이있는 공감에 이르도록 만들어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2권을 바로 주문할 예정입니다. 읽고 싶은, 예외적인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2권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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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 수학과 예술을 잇는 마법의 고리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노태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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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에 연수를 갔었는데, 마침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뫼비우스의 띠. 두 면이 하나의 면이 되는 놀라운 기적의 띠. 처음과 끝이 없는, 마치 무한대의 기호와 같은 모양으로 생겨서 처음도 끝도 없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 이 띠가 뫼비우스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뫼비우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러한 띠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뫼비우스는 19세기 때의 인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두 면을 가진 띠를 한 번 비틀어 연결할 생각을 왜 못했던가. 혹여, 뫼비우스 이전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띠가 별로 신기할 것 없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이전의 기록물에서는 뫼비우스가 발견한 그 띠에 대한 언급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한 번 비틀어 연결하여 만든 띠는 뫼비우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 근래의 트렌드인 듯 싶습니다. 하나의 개념/관념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식을 담은 책. 예전에는 백과사전이 있었지요. 여러가지 개념과 관념을 간단하게 추려서/요약해서 제시하는 책. 그런데 이제는 백과사전의 효용이 떨어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이제 정보는 언제라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가진게 힘이었다면, 요즈음에는 누구나 다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이상 정보를 가진 것만으로는 힘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지요. 이러한 시절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힘이 됩니다.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연결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아마 이 책, 뫼비우스의 띠, 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결해 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이런 책은 저자가 중요하겠지요. 이 책을 쓴 저자는, 얼마 전에 [수학의 파노라마]라는 책을 출간한 클리퍼드 픽오버입니다. 당연히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구요. 마침 [수학의 파노라마]를 다 읽었으니... [수학의 파노라마]는 제 생각에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의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간추려 모은 책. 픽오버의 책은, 마치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런저런 과학적 지식 입문 서적을 쓴. 생각해보니, 이 책도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들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넓은, 조금 덜 깊은. 


아니, 이 책은 깊은데 제가 못 알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상기하학의 이야기가 나오고 사영기하학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와 걸친 부분이 아니라면, 뫼비우스 띠와 함께 예술에 대해서 말하고,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상념을 끌어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 뫼비우스의 띠가 목적이 되기도 하고, 뫼비우스의 띠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만 잘 알아도, 이제 책 한 권을 뚝딱 써 내어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기도 한 것니다. 


물론, 뫼비우스의 띠 자체가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언급하였다시피,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대의 행로, 그 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퍼즐의 의미로도, 신비로운 여러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아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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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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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자본주의는 '슈퍼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이 저자의 입장입니다. 이전의 자본주의는 무엇이었는가.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라는 명칭을 저자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과정 이상인, 시민들이 힘을 합쳐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시스템(p10)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즉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운영이 시민들의 협동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셈입니다. 정부는 시민이 정당한 댓가를 얻도록 기업을 독려하고, 기업은 자신들의 수익이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분배 체계를 정비하며, 노동자는 자신들의 수익을 사용하여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정부에 세금을 내는, 그런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운영되는 것이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가 되면 이러한 흐름이 바뀝니다. 이 책에서는 가장 중요한 변화로 '신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엔 이 부분이 납득이 잘 되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있는 진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1970년대는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신기술의 개발과 함께 자본주의는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미 국방부의 인트라넷이었던 인터넷이 범용화되면서, 우리 사회에 불러온 변화는 가히 혁명적입니다. 그 혁명이 이루어놓은 가장 위대한 일은 바로 금융 산업의 발달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보가 삽시간에 공유/전파되고, 그것은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 생겨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노동자보다 투자자가 훨씬 중시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 하나, '세계화'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제 노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굳이 공장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노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이제 소비자는 더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값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동의 댓가는 더욱더 낮아지고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면서 투자자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이며 투자자이기도 한 노동자는, 지금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댓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값싼 물품을 소비하길 바라며 자신의 투자가 이익을 남기기를 원합니다.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차로 그 무게의 양상은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편으로, 효율적인 소비와 투자 대비 이익의 극대화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업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오염 물질을 여과없이 방류한다든지, 저개발국가의 노동에 대하여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든지 등. 이런 모든 현상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에서의 시민이 그들입니다. 시민들은 기업의 몰지각하고 몰상식적인 행동에 대해서 분개하고 분노합니다. 그래서 기업의 행동 변화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들도, 결국 소비자이면서 투자자입니다. 분개하고 분노하지만, 가격의 매력 앞에서, 이익 추구 앞에서 자신들의 시민됨을 잠시 미루어두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으로 대변되는 현재를, 저자는 '슈퍼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입니다. 



자그마치 5년 전에 책을 구매했습니다. 그래서 읽은 줄 알았던 책인데... 얼마 전에 [완벽한 가격]이라는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잡은 이 책이 글쎄, 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얼마나 웃기던지... 


짧은 지식에, 작금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보여주는 문제에 대해서 잘 통찰해 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대안은 마땅치 않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됩니다. 


더 값싼 노동을 구할 수 있는 한, 노동자가 처한 현재 상황은 개선되기 난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생각하자면, 물건값은 계속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월마트 같은 저가형 할인매장은 기술의 혁신과 노동 비용의 혁신 아래에서 계속 저렴한 물건을 공급할테고, 그것은 저소득 노동자가 계속 생산되는 원인이자 결과가 될 것입니다. 주주 자본주의라고 불리우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금융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자본을 늘려나가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묘안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묘안은 결국 노동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귀결되겠지요.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 책들처럼 대안이 마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가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비록 실현 불가능한 해결책이긴 하겠지만, 내 안의 시민을 계속 깨워내서, 더 저렴한 것을 찾는 나, 더 많은 이익을 찾는 나, 그것을 위해서 약간의 불법과 탈법, 위법과 편법에 눈감는 나와 맞서 싸우도록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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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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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제의 단위는 이제 더이상 가정이나 지역사회 공동체로만 제한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세계화/국제화는 이제 더 이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특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혹자는 지구 경제 시스템이라고도 부르는 듯한 이 세계화/국제화 경제 시스템은, 일견 새로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듯 보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으며,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부를 탐욕스럽게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의 시작은 아마 이 지점에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노동하는 사람 - 우리 모두 - 에게 어떤 문제를 주게 되었는가를 책의 마지막에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동은 더 싼 비용을 치루는 곳으로 지속적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일은 예전과 다르지 않게, 예전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의 노동에 대한 댓가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의 노동은 더 낮은 댓가를 요구받고 있으며, 지구 경제 시스템 아래 있는 한은 더 낮은 댓가를 치룰 수 있는 곳으로 노동은 계속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과 베트남이며 앞으로 더 낮은 댓가에도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계속 이동하겠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소비자로, 혹은 다른 무언가로 신분세탁당한 사람들은, 빡빡한 가계 경제를 더 낮은 가격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할인점 혹은 아울렛이 이렇게 득세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가계 경제가 점차로 힘겨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싼 값에 이런저런 것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기억은, 열 몇 개씩 묶어서 파는 건전지였습니다. 건전지를 두 개씩, 네 개씩 사는 가격보다, 열 몇 개씩 묶어서 사는 가격이 단위 개수당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는 높은 가격을 주고 건전지를 열 몇 개 구매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두 개, 네 개 쓰고 나머지를 어딘가 잘 넣어놓는다고 했던 것이 도무지 어디에 간지 몰라서, 다음에 또 사게 되는 그런 일들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이제 저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구매 습관을 들였습니다. 이 책은 왜 회사들이 그렇게 판매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저는 보드게임 수집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드게임을 파는 대부분의 쇼핑샵들은 정가와 할인가를 따로 표시합니다. 십수년 보드게임을 사다보니,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보드게임 쇼핑샵의 정가는 가상의 숫자이며, 할인가가 실제 판매가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면서 때때로 보드게임 쇼핑몰에서 자신들의 재고 보드게임을 털어내기 위해서 하는 할인 행사에 저도 한때는 열정적으로 참여하곤 했지만, 그렇게 사는 보드게임들을 실제로는 잘 즐기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그런 할인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왜 정가와 할인가를 따로 책정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드러나는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내 노동의 댓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격이 우리에게 어떤 착시 효과를 주는지에 대해서 실증적으로 접근한 책이며, 설득력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더더욱, '제 값'을 지불하고 '필요한' 물건을 그 때 그 때 구매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얼마 전부터, 대형 마트에서는 공산품 - 세제, 분유, 기저귀 등 - 이 필요할 때 구매하고, 그 때 그 때의 먹거리는 그 때 그 때 사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생활협동조합 - 저희는 한살림이라는 생활협동조합의 회원입니다 - 에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먹거리를 사거나, 집 옆에 있는 동네 마트 혹은 목요 장터에서 필요한 먹거리를 사고 있습니다. 그 때 그 때 사므로, 규모의 측면에서는 비싼 듯 싶지만, 절대적인 비용 지불은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한 번에 사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사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습관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매한지는 벌써 5년이 지났는데 - 출간되던 당시에 샀네요 -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이리저리 널뛰면서 진행되는 탓에 연속성있게 읽히지는 않지만,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될테니, 앞으로도 계속 사 두어야겠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말이죠.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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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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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사실 어느 정도는 낚여서(!) 산 책입니다. 요즘 지역에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보니, 또 제가 사는 동네인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도 점점 늘다보니, 이런 제목의 책에는 그냥 낚여서 구매하게 되네요. 이 책은, 서울 지리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라기보다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고찰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서 다룬 서울의 장소들은 반드시 특정 공간일 필요도, 심지어는 서울에 있는 장소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서울의 장소들은 '구체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장소들의 이름'입니다. (273쪽) 저자가 서울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서울이 저자의 추억이 담긴 장소인 까닭도 있겠고, 저자의 표현대로 서울의 특정 장소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클리셰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서울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서울은, 우리 삶은 점차로 배제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주거환경만 하더라도, 중정을 가지던 미음자 모양의 공동체 지향 형식의 주택으로부터, 복도식, 계단식을 거쳐, 이제는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주택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배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서울의 삶에서도, 고단함을 가지고 배제의 빈 곳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은 그런 이들에게 어떤 공간입니까. 


책은 읽기 쉽습니다.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져서 훅훅 읽힙니다. 그런데 책은 읽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는 모여들고, 사람들은 그 부를 욕망껏 쫓아드는데, 그 욕망에 대한 방정식의 답이 (거의) 모두 같은 상황에서, 풀이 조건의 차이 때문에 답에 도달하는 사람과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갈리고, 답에 도달한 사람들과 답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편차는 갈수록 심화되는 그런 상황... 을 책을 읽는 내내 보아야 하니 책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책 읽기가 버겁기도 합니다. 저자의 서술이 정리된 것이라기보다는 결대로 가는 것이다보니 이야기가 돌고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하다보니 정리된 저자의 사유를 쫓기가 버겁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자의 이야기는, 서울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혹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하라,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닌가, 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지금 발현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양상은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장소, 그렇게 누군가를 배제하고 시작하는 경쟁이 어떻게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이겠습니까. 그러한 장소인 서울을 살아내면서 자신의 삶을 소진시켜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민주적 절차와 방식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조금 더 생겼습니다. 사실 저자가 조금 더 책을 정제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탓에, 저자가 인용한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자가 가진 감정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난 이런 방식의 책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몇 번 더 읽어야 저자의 사유가 조금 더 명확히 와닿을 듯 싶지만,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느낌이 싫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드는 것은 아니지만, 결대로 흐르는 이야기 방식이 좋아서 언젠가 다시 한 번 읽겠구나 싶은 책이라고 이 책을 평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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