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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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나 역사(역사는 결코 깔끔하지 않다)는 항상 질문으로 끝나야 한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다. (740쪽)

[스페인 내전(이하, 내전)]을 구입한 계기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지식의 파편은 많은데 비해서, 내전의 원인이라든지 양상, 혹은 그의 의미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매는 했으나... 읽는데 걸린 시간은 하세월이었네요.

책 구입 이후에, 책을 실제로 읽은 원동력은, 하나의 보드게임을 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민전선 Popular Front]라는 보드게임이 우리나라에 공수되었고, 그것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면서 그러잖아도 지지부진하던 읽기에 가속력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오늘에서야 장장 700여 쪽에 걸친 책을 다 읽어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의 원인은 단순한 편입니다. 뭐, 1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공통적인 분위기였던 사회주의 세력의 확대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복고주의 세력과 종교세력, 그리고 구질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세력 - 통칭하여 우파 - 이 파시즘 같은 극단적 세력과 부딪치는 양상이 스페인에서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다만 스페인에서의 좌-우 세력이 오랜시간, 그리고 크나큰 상흔을 남기면서 4년여간의 내전으로 이어진 것은, 그 대립이 가장 큰 갈등의 지점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스페인 내전을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즉, 이미 이러한 좌-우의 대립이 종식된 국가들인 독일/이탈리아/소련이 스페인 내전에서 좌-우의 세력을 옹호하면서 내전을 끌고 나간 것과, 스페인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어느정도 결론을 '본' 좌-우 간의 대립이 그 때까지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적 요인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크나큰 파열음을 오랫동안 낼 수 밖에 없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영국/프랑스/미국이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내전에 불간섭한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당시 전 세계의 경찰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바, 내전을 내전으로 끝내야한다는 외적 이유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파시스트들보다 막시스트를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합법정부인 공화파의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의 위치를 견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의 세력에 끼어있던 프랑스 역시, 사회주의 정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파를 돕지 않았고, 미국은 특유의 고립주의를 내세워 내전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기에, 스페인의 합법적 정부였던 '인민전선' - 좌파 세력의 대연정을 의미하는 용어로 여겨지네요 - 내에는 사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의 양대 이데올로기 세력 뿐만 아니라 자치를 주장하는 공화주의자들과 생디칼리스트-아나키스트, 그리고 노동자 세력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세력과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사건을 바라보는 층위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에 대처하는 자세들도 제각각이다보니까 혼란이 제곱으로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파 세력은 조금 덜 복잡한 편이라 - 왕정 복고 세력과 카톨릭 세력, 그리고 그냥 좌파가 싫은 세력 - 이 세력을 기반으로 한 국민파가 공화파를 제거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승부는 프랑코 장군의 국민파가, 합법적인 정부 세력인 공화파를 압살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저자는 [내전] 내내 공화파 정부의 '무능'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정당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공화파 정부의 잘못을 하나하나 복기해나가는 것으로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 격인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별로 한 역할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공화군에게 크게 불리한 쪽으로 벌어진 차이를 더 심화하고, 공화군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낭비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간 것은 공화군 지도부였다. (735쪽)

그러면서,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대로, 저자는 결론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즉, 저자는 사료를 분석하고 분류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코멘트는 남겨두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했어야만 했을까'라는 가장 큰 물음은 던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무미건조하게 의문없이 사실만 나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사건과 그의 진행방향 및 당사자들의 선택에 대한 여러 의문과 그에 대한 여러 대답들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미시적이며 또한 간접적입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질문은 묻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을 책의 마지막 문장인,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저자의 말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고 있는 저의 몫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저야말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내내 다음의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 합법적 민주정부라는 명분과, 노동자/농민의 편이라는 지위도 가지고 있었으면서, 공화파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물론, 저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흘리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덮는 순간, 그것은 저자의 몫이고 저자의 깜냥일 뿐,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래된 - 그러나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 한 가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공화파의 패인에 대한 저의 결론은 - 아니, 저자의 결론일 수도 있지만 - 끊임없는 내부 충돌이 가장 큰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1년, 퍽퍽함이 너무 만연해서 무디어질대로 무디어진 한국 사회에서 희망의 빛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다름을 대조하기보다는 같음에서 시작해야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변화를 목적하고, 진보를 바란다면, 무식하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자는 계속, 공화파의 정치적 분열과 함께 실제 전투 및 전략전술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목소리는 딱 그렇습니다. '나같이 전략전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너희 같이 전쟁하지는 않겠다' 정도?

공화파 정부군과, 그를 고문(顧問)하는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적어도 병력이나 무기의 질에서 부족하였다면 전략전술이라도 성공적으로 구성하였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하나 없이 고루한 선전전에만 집착하여 효과적인 전투 수행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게다가 무능하고 부패하기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얼마나 길고 지루할 정도로 나열하고 있는지는 저자와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무능함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귀 기울이고, 더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긴 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읽어도 일주일을 넘게 읽을 수 밖에 없었으며, 얼마나 많은 인명과 지명과 단체와 정당과 세력이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의미를 말해본다면,

2011년, 대한민국의 정체(停滯)와 무기력을 안타까와한다면, 그 해결책을 직접 던져주지는 않지만, 그 해결점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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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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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바쁜지라, 잡기는 예전부터 잡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 [승자독식사회(이하, 독식)]를 다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 책이 참 마음에 드는 어떤 요소가 있습니다. 제 독서가 짧아서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에는 어렵지만, [독식]의 경우에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현대 사회의 부익부빈익빈을 설명하는 주된 아이디어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설명하는 부익부빈익빈의 원인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통신의 발달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백 년 전에,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이동하는데 하루라는 시간 이상이 걸리던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 마을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면 그 이는 먹고 살만한 여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 마을에서 잔치가 열려서 흥을 돋구어줄 가수가 필요하다면, 굳이 옆 마을까지 하루 걸려 사람을 융통할 필요 없이 우리 마을의 가수를 부르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옆의 옆 마을에 더 훌륭한 가수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물질적 비용을 감당할만한 사람은 건넛집 최대감 말고는 없을테니, 우리 마을의 가수는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교통 수단도 발달하였고, 통신 수단도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로 우리 마을에서만 잘한다고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뭐... 요즘은 마을 회갑잔치에도, 돈만 있으면 서울의 가수를 불러다가 잔치의 흥겨움을 더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독식]에서는 테니스 선수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테니스 랭킹 세계 1위 선수는 몇십만 달러의 우승상금보다도, 수백만 달러의 광고출연료 등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되지만, 당장 세계 20위 정도 되는 선수는 어떤 광고 출연도 요구받지 않고 그가 받는 상금 만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면 부는 승자에게 독식된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조금 더 분명하게 저자들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과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위성통신 같은 것들 때문에 적당히 재능 있는 사람이 소용없어졌기 때문이다. 1,000년 전만 해도 마을의 보배로 여겨졌을, 적당하게 재능있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통신기술 덕분에 그는 날마다 세계 일인자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제 각 분야에서 10명 남짓의 챔피언들만 있어도 전 세계는 잘 굴러가게 되었다. (16쪽)

그 때문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승자독식시장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라의 차이를 더욱 벌려놓았다. 승자독식시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재능있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파귀적이기까지 한 일들에 몰두시켰다. 승자독식시장은 미래는 팽개쳐둔 채 낭비적인 투자와 소비에만 몰두하는 경제체제를 조장했다. (중략) 이런 시장에서는 '뒤늦게 경주에 나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어렵다. (20쪽)

그래서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승자독식시장이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경쟁 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24쪽)'하는 것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로 저자들은 현재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승자독식시장의 면모를 다양한 관점에서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드는 예는 가수와 도공의 예입니다. 이 예시에서의 아이디어는, 도공은 전통적인 노동시장을 상징하면서 고정적인 임금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가수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획득할 수 있지만 그에서 밀려나면 부와는 관련없게 되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도공은 절대적인 능력에 따라 보수를 얻지만, 가수는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능력에 따라 부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런 두 가지 직업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저자들은 모두가 가수가 되겠다고 죽자사자 달려드는 꼴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봐야 사회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생각해보면 - 저자들이 들고 있는 예가 아닙니다. 제 생각에... - 100명의 학부모가 학생의 성적을 위해서 모두가 수학 사교육을 시킨다면, (사교육을 수행한다고 성적이 반드시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모두의 성적이 상승할테니, 결국은 모두가 시키지 않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차이없다는 말을 저자들은 하고 있습니다.


아아. 책을 요약해버린 꼴이 되었네요. 제가 책을 적확하게 요약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이 인용해버렸습니다. (ㅠㅠ) 책에 대한 감상글을 쓰면서 가급적이면 인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책에 대한 느낌 그대로의 감상이, 이 감상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감상을 쓰는 제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상을 읽는 분들에게는, 혹여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책을 읽어볼만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책에 대한 전체적 감상이 부분의 인용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전체적인 감상이 자신의 독후감상과 비교/대조해보아 사유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감상을 쓰는 제게는 인용하다보면 인용이 마치 전부인 것인양 독서를 정리해버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인용은 그닥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문제는 이 책을 시작한지 근 넉 달 만에 마친 독서라서... (쿨럭) 전체적인 느낌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역시 독서는 앉은 자리에서 해야하는데 말이죠. (쿨럭)


아무튼 이 [독식]을 다 읽으면서, 저자들의 주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상황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부익부빈익빈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로부터 복지 담론이 전개되고 세금 제도의 문제 및 실행의 범위 문제도 격렬한 논쟁에 부닥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부의 편중 문제에 대하여 신선한 아이디어로 그 원인을 탐사한 방식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하는 측면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를 해결하는 대안에 대해서는 평이한 결론을 내렸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결론은 지금까지 부의 재분배의 문제점을 진보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이들의 주장하는 바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은 평이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책도 부의 재분배에 관련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답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이 책 [독식]이 부의 편중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시도했으며, 그것이 설득력있는 시도이고, 또한 그러한 부의 편중 현상의 해소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문제로 향하는 길을 하나 튼 셈이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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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워 1945-2005 1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플래닛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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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네요.  

   
  그러므로 정부나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또 대학생들에게도 유익한 교양서가 되리라 본다.  
   


과연...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극소수의 독자를 제외한 사람들, 특히 - 저도 대학생이지만 - 과연 이 책을 대학생들이 볼 수 있을까요?
 
(반드시 사서 보았어야 하는) 이 책을 저는 저희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이 책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이 책을 빌리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상 한 번에 읽지 못하고 1년 여라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빌려 읽었는데, 다시 빌릴 때마다 별 어려움 없이 독서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북마크 용도의 빨간줄은 늘 제가 읽던 그 곳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간단한 일천 삼백여 페이지의 현대 유럽사 교양서가, 사실은 교양서 이상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현대 유럽의 역사를 비교적 '공정한' 시각으로 담으려고 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재작년에 저는 [모던 타임즈]라고 하는 책을 읽은 바가 있습니다. 예스24의 메인 페이지에 '낚여' 읽었던 그 책은, 사실 보수적인 시각으로 20세기 세계사를 평설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는 저자의 사건 인식에 동의할 수 없고 불편한 부분이 조금 있어 다 읽은 후에도 별다른 감상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 [포스트 워]는 저자가 최대한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서술하려고 한 노력을 계속 인식하면서 독서할 수 있었습니다. 객관적이지는 않은 바, 사실 저자는 약간 냉소적인 시선으로 전후 서유럽의 이기주의와 책임 회피를 꼬집고 있으며, 동유럽의 자기기만과 체념에 대해 약간의 동정어린 시각을 배제하지 않은 비웃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 유럽의 역사는 어찌보면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권력의 주변부가 되어버린 옛 왕실의 처지와 처신을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유렵에서 났지만 유럽은 아닌 미국과, 유럽이었지만 유럽과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유럽이 아니게 되어버린 소련의 거대한 대립 가운데에서, 유럽 또한 두 패로 나뉘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모습이 바로 현대 유럽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관통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의 유럽 열강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가를 열정적으로 서술한 책이 바로 이 책 [포스트 워 1945-2005]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가 현대 유럽사에서 가장 놀랍게 평가하고 있는 부분은, 영국과 독일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삼국이 보여준 사회주의 복지국가의 모형이며, 또한 유럽연합을 위한 줄기찬 발걸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현대 유럽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런 평가를 담아 에필로그로써, 홀로코스트에 임하는 제유럽의 자세 - '죽음의 집에서 - 현대 유럽의 기억에 관한 소론' - 를 차근차근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적극적 조력자였던 제유럽 국가들이, 모든 책임을 나찌에게 양보한 채 어떤 방식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여왔고, 어떻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유럽연합이라는 범유럽적인 국가연합기구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능동적으로 역할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책의 말미를 인용합니다.

   
  소련 시대에 널리 쓰였던 농담 얘기를 해보자. 어느 청취자가 '아르메니아 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질문 :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가능한가?" 답변 : "그렇다. 일도 아니다. 우리는 미래가 어떠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과거에 있다.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중략)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아우슈비츠의 화장장으로부터 일종의 유럽을 건설해 내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기억할 수 있으려면, 오직 역사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끔찍했던 과거의 자취와 상징으로 결합된 새로운 유럽은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유럽은 그 과거에 영원히 저당 잡혔다. 유럽인들이 이 생명선을 유지하려면 - 유럽의 과거가 유럽의 현재에 계속해서 조언하고 도덕적 목적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역사에 대한 응답일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통해 유럽연합이 존재해야할 목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유럽식의 사회주의 복지국가 모델과 결합하여, 저자가 끊임없이 책에서 유고슬라비아 난민과 터키의 이주노동자들과,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노동을 위해 건너온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환기해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재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관용적 자세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도 단지 과거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책은 시종일관 재미나게 읽힙니다. 다른 현대 유럽사에서 접할 수 없었던 동유럽 국가들의 모습과 사건을 잘 서술하고 있으며, 서유럽사 중에서도 무심코 흘러가버리기 쉬운 프랑코의 스페인이라든지, 좌파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세력들의 부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읽기 위한 책을 이것저것 고르다보면, 첫눈에 사버리는 책이 있는 반면에, 망설이다가 그냥 빌려보는 책이 있습니다. 산 후에 읽으면서 산 것을 후회하고 안타까와 하는 책이 많은 반면에, 빌려 읽다가 너무 재미나서 차라리 사서 읽을 것을 잘못했다고 자책하면서 다음에 읽을 마음이 들면 꼭 사리라는 생각을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제게 [포스트 워 1945-2005]는, 일전의 가라타니 고진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 이래로 근 2년만에, 다음 독서 때는 사서 읽으리라 결심한 책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책을 읽으면서 군데군데 메모해 두었던 메모장이, 저희 둘째 따놈의 만행과 함께 사라져버린데다가 오랜시간을 두고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실입니다. 전체적인 인상 이상을 독후감상글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져버려 안타깝기 그지같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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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 2013-05-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에서 본 리뷰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리뷰네요. '모던 타임즈'와 이 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이 리뷰를 보고 포스트워로 정했습니다. ThanksTo도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한국어판 가격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영어판으로 구매할 생각이라 조금 아쉽습니다.

하리야헌처크 2013-05-12 16: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던 타임즈]는 집에 있는데 [포스트 워 1945-2005]는 아직 구매 전이네요. 조만간 책을 구매해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꾸벅.
 
[수입] Beatles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Beatles 2009 리마스터] [한정 수입반, 디지팩] -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선정한 100대 음반 시리즈 8] 비틀즈 리마스터 시리즈 7
비틀즈 (The Beatles) 노래 / Apple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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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가요, 특히 팝 앨범 쪽에 아무런 상식도, 지식도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쌓은 지식이 없기 때문에, 앨범 후기 같은 것을 쓴다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듣다가 좋아지면 관심도 더 생기겠고, 관심이 더 생기면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겠고... 그러다보면 전문가적인 입장에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런 의미에서, 문외한의 시각으로 부담없이 편안하게 쓴 글이니까, 그렇게 읽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꾸벅.


제가 아는 분 중에 자신의 닉네임을 브라이언 엡슈타인으로 사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5thBeatles 라고 표기하시는데, 저의 비틀즈라는 그룹에 대한 관심은 아마 거기서부터 유래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 생활의 영향으로 가스펠을 많이 들어 왔지만, 가스펠 이외의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가요, 특히 외국 가요에는 전혀 관심을 둔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소소한 지식욕 덕택에 비틀즈라는 그룹이 정말 유명하다라는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위에 언급한, 자신을 비틀즈의 다섯번째 멤버라고 표시하시는, 비틀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시는 분을 보니까, 도대체 비틀즈라는 그룹이 어떻길래 저리도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하다보니 당연히 관심이 생기게 되더군요. 

그리고, 작년에 비틀즈 리마스터링 앨범이 나왔을 때, 그 관심이 구매욕구로 바뀌었구요. 제 구매욕구를 억누를 수 있었던 유일한 제어장치는 바로, 제가 비틀즈 노래라고는 예스터데이와 렛잇비 밖에는 모르는 문외한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앨범을 사기에 삼십 몇 만원이나 하는 금액의 지출은 아주 큰 모험이라는 것이 제 지름신을 막아주었던 이성적 판단의 근거가 되었더랬습니다.

장바구니에 담기에도 몇 번, 그러다가 결국 이번에, 리마스터링 패키지는 포기하더라도, 차근차근 비틀즈의 앨범을 사서 들어보자는 새로운 (스스로의) 타협책을 제시하였고, 그것에 타협하여 난생 처음으로 비틀즈의 앨범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앨범을, 원래는 무난하게 White 나, Abbey Road 정도로 하고 싶었는데... 둘 다 그래24에서 품절인 관계로... 쿨럭. 그래서 주문한 앨범이 1967년에 발매된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라는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세계 최초의 프로젝트 앨범이라고 합니다. 비틀즈가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특히 미국 쪽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 1964년 4월에는 빌보드 차트 1~5위까지를 비틀즈의 곡이 차지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 그렇다보니까 공연 요청도 많았고 해서 늘 자신들의 창작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네요. 그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와중에, 그렇다면 '아예 앨범 전체를 공연 형식으로 꾸미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고, 그런 발상 속에 만들어진 앨범이 바로 이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기도 하면서 첫 곡이기도 한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의 경우에는 마치 공연의 인트로 격으로, 자신들의 공연을 보러 와주신 관객들에게 멋진 공연을 선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가사로 구성되어있고 같은 제목의 12번째 곡은 지금까지 공연에 함께해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3번째 마지막 트랙은 앵콜곡 형식으로, 따라서 앨범 전체는 공연 전체의 form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비틀즈가 이 프로젝트 앨범 내에서 자신들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자신들은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의 밴드라는 의미죠. Sgt Peppers 와 관련된 이야기는 앨범 책자의 첫머리에 나옵니다. 미국에 다녀온 비틀즈 관계자(?!)가 salts and papper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뭐 음식을 먹다가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블라블라. 그걸 비틀즈 멤버들은 Sergent Pepper 라고 알아듣고는 저게 무슨 뜻인가 싶었다는군요. 그러다가 자신들이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가가대소. 결국 그 오해를 자신들의 또다른 이름으로 사용하여 앨범을 하나 만든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정식으로 앨범이 수입되면서 그 표지 때문에 이슈가 되었다고 하네요. 인터넷에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로 검색하면 앨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찾아보실 수 있는데, 실제로 앨범의 표지에는 비틀즈 멤버들이 고른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 중에 막스가 있는데, 그 막스 때문에 1987년 우리나라에 앨범이 수입될 때, 앨범 자켓이 편집되었다네요. 물론 막스를 살짜쿵 오려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20여년 전만 해도 우린 그런 시대를 살아왔더랬습니다. 허긴 오늘 뉴스를 보다보니까, 이번 내각 내정자들에 대한 국세청 납세내역 검색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지금도 우리는 20여년 전처럼 국가가 개인의 앎과 인식을 가로막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기도 합니다. 마치 지금이 20년 전의 회귀인 듯 싶기도 하고... 쩝쩝.


앨범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노래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입니다. 제 블로그에서 한 번 소개한 바 있는 영화 'I am Sam'의 삽입곡이기도 한데, 주인공인 Sam(숀 펜)이 자신의 딸 이름을 Lucy(다코타 패닝)로 지은 까닭은 바로 이 노래 때문이기도 하죠.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의 경우 그 노래의 이니셜은 따면 LSD (마약의 일종) 이므로 이 노래는 마약 사용을 조장하는 의미가 담긴 노래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저는 그 느낌보다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다코타 패닝의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떠올라서 행복함을 느낄 뿐입니다. 하하. 

앨범 전체적으로는, 문외한의 처지이기는 하지만, 마치 산울림의 사운드를 듣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울림의 개성 넘치는, 그러면서도 약간 구식의 느낌이랄까. 구식이 유행이 흘러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옛날식이라는 느낌을 좀 받았더랬습니다. 허긴... 옛날 노래이긴 하죠. 하하. 벌써 40년이 훨씬 지난 노래들인데... 그리고 저는 그런 노래들이 좋습니다. 곡들도 전체적으로 짧아서 기분좋게 한 소절 듣고 나면 다음 노래가 바로 나오고 해서 한 바퀴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금새 지나갑니다. 물론 흥겹구요. 

다만 8번 트랙의 인도풍 노래와, 13번 보너스 트랙은 좀 어렵습니다. 13번 트랙의 경우, 특히 노래가 마지막에 가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다가 끝나는데, 끝난 후에 휴지기가 지속되다가 알 수 없는 여성 목소리가 2초 정도의 간격으로 여러 회 반복되어 나옵니다. 꼭 앨범이 미스프린트 된 듯 싶은 느낌인데 그 부분은 듣기 어려워서... 그래서 8번하고 13번은 스킵하고 지나갑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콘서트의 form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곡들 간의 스토리가 있지는 않습니다. 곡들은 제각각 분절된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첫 곡과 마지막 곡에서 '공연을 시작합니다/마쳤습니다'가 없으면 그냥 곡들 간에는 특별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조차도 처음이었던 앨범. 

문외한인 제게는 운전 중에 매일 다섯 번은 듣는 요즘의 핫 앨범입니다.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여담으로, 브라이언 엡슈타인은 비틀즈의 매니져였다고 하네요. 그러니 다섯번째 비틀즈가 맞는 셈인가요? 하하.

또한 검색을 통해 여러 귀한 읽을거리를 주신 블로거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D 손가는 중에 편한 마음으로 읽은 검색글들이라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분들의 블로깅이 없었으면 아마 비틀즈의 이 앨범에 대한 감상이 깊지 못했을 것입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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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좀 울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쓴 글은 지웠고, 조금 마음을 가다듬고. 그래도 서평이니까.  

책을 한 달음에 읽고 난 후에, 많이 속상한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왜 이리 일찍 떠나셨을까. 다시는 돌아오실 수 없는 길을. 게다가 그토록 다정한 사진들은 잔뜩 남겨두시고. 표지마저. 왜 손을 흔들고 계실까요. 저를 향해서 말이죠.  

책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쓰신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검찰의 수사를 받으시면서 받으셨을 고통과 회한, 그리고 우리에게 미안해하시는 마음까지 그대로 느껴져서 더 속상했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데. 아니, 물론, 당신께서 하신 실수도 있으시지만, 그렇다고 우리 곁을 떠나실 것 까지는 없는데.   

다정하게 웃으시는 사진만 잔뜩 남겨두시고.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간절한 소망만 남겨두시고는. 내게  미안 해하시면서 떠나신 당신에게. 내내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당신께서 미안해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합니다. 이 세상에는 염치없이 뻔뻔하게 살아가는 너무나 많은 권력자들이 있는데, 위정자들이 있는데. 하물며, 소시민인 저도 부끄러움에 몸달아 하면서도 어영부영 이 세상을 이고지고 살아가는데.  

당신께서는 그런 제게 미안해하시면서 손 흔들며 떠나시니, 제가 더 몸둘바 모르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염치있게 살아보려구요.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 상식과 원칙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람 사는 세상을, 저도 죽을 때까지 꿈꿔보려구요.  

제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저도 힘 닿는데까지 애써보려구요. 다시는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저도 눈 똑바로 뜨고 살아보려구요.  

책을 두 번은 못 읽을 듯 합니다. 이젠 앞을 봐야할테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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