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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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잡은 까닭은, 학급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이 읽은 책을 몇 권 학급문고로 가져다 두기 위해, 먼저 읽을 목적에서였습니다. 


특히, 제가 맡은 6학년 아이들은 이미 5학년 때 역사 부분 수업을 다 마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역사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연하게 적습니다. 저는 학급에서 역사 논술 테마를 가지고 창의적 체험활동도 운영하고 있고, 여러 계기 교육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현충일, 혹은 6.25사변일 등의 - 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역사 관련 지식이나 이해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마침 오늘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인권 관련 계기교육을 하다가 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 - 혹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 또는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실은 모든 사람들 - 가 공명하여 진보의 미래를 계획하고 전망하는 것이라고, E.A. 카는 말한 바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직 제가 알고 있는 역사 관점이 일천한지라 시야가 좁기는 하지만, E.A.카의 이러한 견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의미한 역사 관점이라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진보의 노정을 걷기 위해서, 역사를 더 깊이 알아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의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 [역사 e]는 아마도 [지식채널 e]처럼 EBS에서 방영한 것을 모아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책입니다. 구성은 [지식채널 e]와 비슷하여, 화면과 함께 간단하게 정제된 메시지가 소개되고, 그에 대한 배경이 자세하게 풀이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이 있어, 몇 권의 역사책을 읽어 온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들입니다. 딱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있다거나, 혹은 무언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밝혀진다거나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익히 알고 있었을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이시영 부통령 가계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었고, 북관대첩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고 알게 되었으며, 4.19와 5.18 때 역사적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하였던 두 소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다들 어디에선가 읽어서, 혹은 들어서 알고 있던 것들이 일반적이므로, 딱히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편으로는, 조금 감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제된 메시지보다, 그의 해제가 더 감정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사실 이상을 전하려는 제작진의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의지 자체에 대한 부담 혹은 제 성격 상 그런 강렬한 의지에 대한 이유없는 거부감 탓이니, 다른 분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없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읽기에는... 실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재 윤두서 선생의 이야기나, 또는 일본 제국주의의 비인륜적 행위를 규탄하는 수요집회 이야기 같은 것은 아이들이 어려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면서도 역사적 개인의 삶에 독자 자신을 투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때문에 과연 이런 부분을 6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급문고로 사용하기로 생각한 이유는, 어쨌든 알아야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알찬 책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개인으로 살기 위하여, 과거의 사실과 공명하는 일은, 어찌보면 열 세 살, 지금부터 해나갈 수 있도록 저희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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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 일상생활의구조 -하 까치글방 98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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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날 학파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페르낭 브로델의 역작입니다. 두 권으로 분책된 900여쪽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이제 3분의 1이 끝난 이 책. 그러나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위인 중심의 임팩트 있는 역사 서술의 방향에서 벗어나, 역사를 살아내었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활을 규정하는 사회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역사 사건(과 그 위에 존재하는 인간 개개인)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의 양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일상생활의 구조>인 것도 바로 그런 의미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읽고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도 개인에 초점을 맞춘 역사의 유의미성 이상으로 집단에 초점을 맞춘 역사의 유의미성을 강변하고 있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2장, 사회와 개인) 많은 역사책들이 사건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실은 인물과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극히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가 이 책과 이 전의 책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자꾸 놓치게 됩니다. 정말 재미가 없거든요.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 자본주의가 태동한 서구 및 그의 영향을 받은 전세계의 일상생활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자본주의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저자의 시도. 그 시도가 어떻게 열매맺는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정말...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15세기의 대도시 규모라고 해봐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시의 한 구 안에 속한 한 동의 부분 정도가 모여사는 정도였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생산을 위해 이용했던 에너지라는 것이 17세기까지는 물레방아와 말의 힘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어음의 역사는 12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머지 책을 마저 읽은 후에, 이 책과 앞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실감나게 일상생활 속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찰할 수 있게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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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 : 권영욱 좀비소설집 - 문장장르소설선 5 문장장르소설선 5
권영욱 / 내친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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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이라는 책은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입니다. '좀비소설집'이라고 하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좀비라고 하는 존재가 의미하는 바가 아무래도 소통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라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첫 편인 '고려장'은, 좀비가 된 할아버지를 산채로 파묻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짧은 소품 격의 책이며, 옛부터 흘러내려오는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것이지만, 그 결말은 살짝 뜬금없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싣고 갔던 리어카를 다시 가지고 내려와 잘 단도리 하는 아들. 아버지는 리어카를 불태워버리라고 일갈하지만, 아들은 덤덤하게, 아버지가 좀비가 되시면 이 리어카를 다시 사용해야 할테니 잘 보관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섬뜩함 반, 감동 반, 아버지는 아들을 그러 안고 펑펑 울게 되는데. 여기까지야 익히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무원과 국가의 행동. 미담을 괴담으로 만들어 박멸하고야 마는 정부의 이야기는, 2차 피해 예방이라는 명목하에 국민의 기본권 알기를 우습게 아는 현대 사회의 모든 정부의 행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이해 당사자 간의 중재일 것입니다. 정부는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며, 국가 내부의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에서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것일진대... 뜬금없는 정부의 갑 오브 갑 행태는 씁쓸함을 주는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편인 '좀비가 너무 많아'는 남 박사가 좀비의 불사성 연구를 진행하면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야기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담겨 있는데, 간혹 천안함 사건 같은 이야기가 변주되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7편의 단편 중에 가장 읽기 힘든 편이었습니다. 과유불급... 간혹 현실과 이야기를 연결짓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망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직접적이면서 넘치면 글읽기가 불편함이 있습니다. 

 

세 번째 편인 '헬로, 소돔'은 성경에 등장하는 롯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잘 각색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결말 부분은 이야기 전체와 맞지 않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메리카 대륙에, 핵탄두를 투하하여 땅을 정화하기로 하지만, 버림받은 롯과 아내, 그리고 두 딸이 택하는 마지막은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라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불타오를 땅에서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는 세 모녀의 환희는... 마지막 멸망의 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희망이라 불편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 편인 '인육'은 잡아먹는 사람이 잡아먹히는 아이러니를 잘 포착한 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의 후계자가 처하게 된 비극적 상황이, 1인칭으로 더도 덜도 없이 유쾌한 목소리로 표현되면서, 마지막의 반전까지 잘 이어진 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섯째 편인 '사랑한다는 일'은 참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편은 스포일러를 담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가지만,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편이었던 듯 싶습니다. 

 

여섯째 편인 '호상'은, 제 습작품인 '호상'과 오버랩되었지만... 내용은 (당연히) 전혀 다르며, 제목도 중의적인 의미로,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떠올린 주인공의 마음을 잘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좀비 바이러스의 치료약이 개발된 다행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덕택에 편안한 마음으로 - 좀비가 창궐하는 이야기는 역시 불편함이 있습니다 -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볼 수 있는 편이었습니다. 일곱 편 중에서 가장 현실과 잇대어 있으면서, 현실에 오버랩시킬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편인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은, 작가가 단편집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시킬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주인공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부모님의 죽음. 자신이 처한 부조리함을 온갖 곳에 토로하고 싶지만... 좀비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 앞에서 안타까움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주인공의 심사가 이야기에서 점차 고조되다가 탁, 하고 꺾이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한 터부를 가지고 있다보니, 이야기 밑에 자리잡고 있을 흐름에 대한 이해가 없어, 약간은 짧고 서투른 독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비가 객체로 다루어지는 이야기보다, 좀비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작가가 좀비를 덧입고, 사회와 개인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써 주시길 기대하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뭉글뭉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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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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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E.H.카는 이 책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들에게 주목할만한 관점을 하나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더 정확하게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증주의 역사학의 아이디어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랑케가 실증주의 역사학을 주창한 이래로, 사실을 주욱 쌓아올려가다보면 사실들이 이야기 할 것이라는 믿음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왔지만, 실제로 그것이 역사 연구의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가,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현재와 공명할 수 있는 사실을 뽑아내어 현재로 가지고 올 때, 비로소 과거의 사건은 현재에 유의미함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관을 가지고 있는 법. E.H.카는 역사가의 주관성이 현재와 공명함으로써 객관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즉, 역사가의 관점이 현재를 오롯이 설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역사가 개인의 관점이 아닌, 시대의 관점이 될 수 있으며, 객관성 획득의 담보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 현재에의 시의성을 획득했을 때, 역사가의 역사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즉, 역사가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결정론적인 역사 인식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것이 헤겔과 마르크스입니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의 귀결은, 마치 역사가 걸어야 할 하나의 법칙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작금의 자연과학도 절대적인 하나의 법칙 대신에, 현상을 규명하는 이론에 대한 제시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19세기만 하더라도 세상 전체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서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여 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로 과학에서도, 역사에서도 그런 법칙은 없다는 것이 E.H.카의 견해입니다. 다만...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류의 노정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류의 노정을 저자는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편, 저자는 우연한 사건과 개인의 역할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관련하여,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은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암살 사건이 1차 세계대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은 중요한 원인들이 반드시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우연한 사건이나 한 사람의 인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위대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E.H.카의 견해로는 침소봉대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다양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있습니다. 꽤 긴 경제학 책이지만, 실은 역사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읽고 있습니다. 아니, 실은 여러 역사책을 두루두루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책을 읽어가다보면, 여러 사건들을 통한 견해를 갖기 보다는 사실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를 통찰이 아닌 지식의 편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디테일한 팩트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그 사건이 현재와 공명하는 양상에는 애써 눈을 돌리는 경우들이 많은 것이죠.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부터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은,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지금 조선 시대 초입을 읽고 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많은데 역사가의 견해는 세세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현재와의 연관성을 갖는 역사가의 견해는 없는.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은 저자의 의견들이 강력하게 표명되어 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저자 개인이 현재의 사회외 공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이 있는... 역사적 사실과 현재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탓이겠지요.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터부가 있다보니, 과거사를 현재에 비추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흐름이 넓게 퍼져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현재에 비추어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만길 교수의 [고쳐쓴 한국근대사], [고쳐쓴 한국현대사]가 그런 시도라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보다 더 이른 시대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시도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아니, 이미 그런 다양한 관점에의 책들이 많은데, 그것을 아직도 몰랐던 것이라면... 그것은 독자인 제가 반성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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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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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책인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실은, 책이 나오던 시기에 구매해서 그 당시에 시간을 좀 두고 다 읽었었는데... (20101225-20110302) 그 당시에는 시간을 두고 읽다보니 제대로 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커서, 지난 주에 책을 다시 부여잡고 (20130109) 금새 읽어내었습니다(20130111). 

 

책을 읽다보면, 몰입해서 집중해서 읽는 경우가 있고, 어느 정도 읽다가 보면 책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져서 듬성듬성 읽거나 혹은 읽기를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가다가 책을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혹은 책의 문체나 번역체가 도무지 읽기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자본을 넘어선 자본], [사회학에의 초대]).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책읽기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서 듬성듬성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합니다. 

 

한참 책에 몰입하려고 하다보면 불현듯 인터넷 웹서핑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어 책을 덮고 노트북/아이패드를 열어보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열린 인터넷 웹공간은 잠시잠깐 집중했던 책읽기에 들어간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용하도록 만듭니다. 실은, 어린이 인터넷 중독을 이야기하지만, 저를 포함한 어른들이 인터넷 중독에 더 심하게 빠진 것은 아닐지 크게 우려해보기도 합니다. 

 

여하튼, 지난 번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는 몰입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짧은 시간 동안에 책에 푹 빠져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왜 이 책이 우리나라 독서인들을 열광시켰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어마어마한 부수가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주제인 '정의론'에 대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초유의 판매 사례를 나타낸 책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정(의)한 사회의 흐름에 대한 고찰 및 반성에 대한 의미가 책의 판매 양상으로 드러난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있었고,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촛불집회나 정부의 여러 돌출행동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와 그 궤를 같이하여 해석해내기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의'하면 흔히 생각하는 '올바른 행동(미덕)'에 대한 책만은 아닙니다. 물론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미덕'이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주장하며 칸트나 롤스의 정의론 및 공리주의자들의 정의론에 이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칸트나 롤스의 정의론은 '미덕'으로써의 '정의'와는 그 궤가 미묘하게 뒤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정의론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설명하고 주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리주의 철학과 칸트 및 롤스를 가지고 와서 정의론에 대한 전반적인 양상을 이해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이야기하는 '미덕'으로써의 정의와 비교해보게 함으로써 '정의'라는 덕목에 대한 내면적 울림을 풍성하게 해주는 책이지, '부정(의)한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 정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옳은 행동에 대한 주요한 세 가지 견해인 '행복'과 '자유', 그리고 '미덕'에 대하여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철학적 사유 속에 빠져보도록 합니다. 이 때, '행복'과 '미덕'이 목적론적인 정의론이라고 한다면, '자유'는 수단적이며 내면적인 정의론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공리주의자들에게 정의로운 행동이란 사회의 행복량을 증가시키는 행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해야 마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한다면, 칸트의 경우에는 자신이 자율적으로, 다른 것의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롤스는 칸트의 정의론과 그 흐름을 같이 하지만, 정의로운 사유나 행동을 위해서 '무지의 장막'이라는 조건 아래에서의 가언합의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칩니다. 책의 이야기와는 조금 엇나갔지만, 도덕 시간에 '공정'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 6학년 8단원 -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더랬습니다. 

 

서양철학사를 보면, '미덕'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순서를 따라 연대표에 등장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목적론적 철학 사유를 뒤흔드는 계몽주의 하에서의 인간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흐름들은, 유물론적 관점에 따른 행복의 계량으로 전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철학사를 주욱 훑다보면 인간 내면에 본질적인 자유를 선사하는 칸트가 우뚝 솟아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아직 저는 현대 철학의 여러 흐름에 대해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철학사에 대해 밝은 것도 아니지만, 칸트가 꽤나 주목받는 위치라는 것 정도는 주워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칸트의 이야기를 문외한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압축 요약시켜두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칸트의 편이 아닌, 가장 구닥다리 옛날 것으로 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에 자신의 동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집단 - 공동체 - 을 덧입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정의가 단지 공정함에 대한 문제는 아니라 가치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덕목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저자는 케네디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예를 통해, 개인의 종교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기보다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위하여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개인의 생각이 정치의 영역에 깊숙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킨타이어의 주장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는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충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충돌을 해결하는데 중립적인 견해는 문제를 회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며, 다양한 이해관계의 이면에 자리잡은 개인의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배경을 배척하기 때문에 논의의 외부환경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합니다. 즉, 공리주의자들의 계량화된 행복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개인에게서 모든 영향력을 걷어낸 후에 본연의 모습으로 선택하여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자유가 가진 개인 지향적 정의론은, 공동체가 가진 다양한 문제를 제대로 감내할 수 없도록 만는다는 논지로 저자는 '공동체'가 '미덕'을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로운 생각과 행동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칸트와 롤스를 조금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이나 [정의론] 같은 책을 읽을 깜냥은 안되니... 마이클 센델 교수의 이 책을 발판삼아, 주요한 철학적 논제인 정의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아마도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예시들은 학생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정의롭게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개인과 사회를 만들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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