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감 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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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하는 몇몇 사건들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장르' 소설에 대하여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독서를 하다보면 인상적인 장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겠고, 등장인물간의 대화 도중에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겠고,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통찰이 불현듯 찾아오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런데, 모든 소설이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소설, [가짜 경감 듀]도 인생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전달하여 주는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이야기의 흐름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그런 책입니다. 추리소설, 혹은 미스테리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악한 비유이겠지만, 꼭 스포츠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죠. 본방을 보지 못하고 승패를 알아버리면, 굳이 재방을 볼 필요가 없는 스포츠. 하지만, 본방을 보는 순간에는 손에 땀을 쥐는 그런 이야기. 장르 소설이라는 것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통칭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이 소설을 다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입니다. 


어젯 밤 늦은 시간, 잠을 청하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해서, 결국 잠들지 못한 채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열어본 후,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는데, 다음에는 못 보겠다는 그런 생각. 이미 승패를 알아버렸는데, 과연 다음을 볼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승패를 알아버려도 다시 찾게되는 그런 글들이 있기는 합니다. 엘러리 퀸의 '라이츠빌 시리즈'가 그런 것이기도 하구요. 혹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모닝스타로 마구 두드리기로 유명한 이영도 님의 여러 소설들도 그렇구요. 소설 속의 장치를 알아버리고 난 후에도, 다만 그것 뿐만은 아니기에, 다음에 또 곱씹어보게 만드는, 그런 소설들이 있습니다. 이 책 [가짜 경감 듀]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많은 분들의 평대로 깔깔거리면서 볼 정도의 유쾌함을 주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꺾임을 기대하면서 보게 만드는, 그리고 그러한 반전의 지점이 기대만큼 재미나긴 하지만, 뒤통수를 쎄게 맞았다는 정도의 느낌은 오지 않는, 그래서 약간은 놀랄만한 반전을 책의 마지막에서 만나지만, 그것을 여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래서 이 책을 다음에 또 읽게 될까 싶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가짜 경감 듀]에게서 받은 좋은 느낌은,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감이었던 듀는, 치과의사이면서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후 내연녀와 함께 도주하던 크리펜 박사를 체포하였던 유명한 경감입니다. 그런데, 사건 11년 후, 월터 바라노프라는 치과 의사가 자신의 부인을 죽이고 (정을 통하지는 않은) 내연녀(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와 미국으로 도주하기 위하여 듀라는 가명을 쓰고 배에 올라타게 되고, 그 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얼떨결에 해결자의 역할을 맡게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책의 중반까지는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기 위하여 날렵하게 주변 인물들을 배치한 후에, 작가는 본격적으로 월터가 처하는 아이러니의 상황 - 부인을 죽인 치과의사를 잡은 가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부인의 죽음에 대한 수사에 참여하게 된 치과의사의 안타까운(?) 상황 - 을 하나하나 풀어냅니다. 반전에 반전이 등장하고 또다른 반전에 다시 기막힌 반전이 등장하는 동안, 허술한 경감이 된 월터 바라노프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에 엮여드는 과정을 잘 풀어내는 맛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책을 쉽게 덮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독자를 이야기 속에 묶어두는 방법을 아는 듯 합니다. 책의 앞쪽에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를 만들어 책의 뒤쪽에서 그 스토리와 만나도록 하는 재미를 크게 만들면서 아이러니에 양념을 더하는 맛이 쏠쏠합니다. 


또 하나, 이 책이 주는 좋은 느낌은, 옛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시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리타니아 호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흡사, 고전 추리소설이 주는 밀실의 느낌도 날 뿐만 아니라, 타이타닉 호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비극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겪었던 그런 분위기가, 카드 사기꾼인 잭과 케이트, 소매치기인 포피, 혹은 20세기 초의 극장 배우였던 리디아 바라노프 같은 인물들의 옛 느낌과 함께, 수학자이자 자산가인 청년 폴 웨스터필드 및 프랑스 유학생인 바버라 발린스키, 그리고 치과의사인 월터 바라노프 같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때로는 고풍(혹은 고루)한 듯 싶다가도, 때로는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그 묘한 느낌이 소설의 주된 정서를 만들어내는 듯 싶습니다. 그러한 정서가 잇따른 반전 덕택에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아이러니를 더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답답한 것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풀어가는 방식이, 독자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야기의 앞편에서의 수동적이며 헌신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월터 바라노프의 캐릭터가, 경감 듀를 입으면서 드러나는 어설픈 느낌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책의 주요한 흐름을 잡아주는 여러 인물들의 캐릭터가, 조금 삐걱거린다는 느낌 때문에, 반전의 묘미가 조금은 덜 살지 않나 싶습니다. 꽤나 매력적인 인물상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인물들을 용두사미로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아무래도 아이러니를 위하여 인물의 성격에 대한 개연성을 포기한 느낌이 들어서 꽤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지속될 수록, 책의 줄거리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커진다는 느낌이, 독서를 마친 후에 느끼는 약간의 찝찝함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재미나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으며,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디테일하게 빠져들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으며, 인물들은 전반적으로 매력적이었지만, 아이러니가 지속될 수록 그러한 매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으며, 누구에겐가 책을 한 번 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마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읽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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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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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출간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으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밝혀야겠습니다. 오랜 세월 이 땅에서(혹은 일본 땅에서) 사람들과 맞부딪치며 견디어 온 유물/유적/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다른 편에, 조금은 권태로운 독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묘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여덟 번째 권이 나왔고, 습관처럼 사 들었고, 읽는 와중에, 이번 편은 특히 무언가 와닿지 않은 것들이 더더욱 많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선 고민했던 것은 저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첫 권의 단호하고 강력한 저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날이 무디어지지 않았나 싶은 느낌에서 오는 고민이었습니다. 이 책의 첫 권이 출간된지가 벌써 20여 년. 그 사이에 저는 갓 스물의 대학생에서 이제 불혹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고, 유홍준 교수는 '전 문화재청장'이라는 이름표를 하나 더 얻게 되셨습니다. 어쨌든 문화재와 관련된 직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계셨던 덕분인지 저자의 날카로움은 조금은 유해진 듯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저기 다녀보면 그렇게 큰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덕분인지 저자의 그러한 부드러움이 시원스러운 맛을 덜 준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 편으로는 혹시 저자나 독자나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라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습관처럼 책을 짓고, 습관처럼 책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저자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생각입니다. 독자의 매너리즘을 저자에게까지 전가시키고 있는 셈이니까요. 네. 실은 오롯이 독자의 나태한 탓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가능하다면 답사기에서 소개한 여러 장소를 가보려고 노력하고 애썼던 모습에서, 이제는 그런 열심이 조금 사라진 채 마음 편하게 편한 곳을 다니려는 생각도 많으니까요. 이번 여름 휴가 때가 그랬네요. 이전의 여행처럼 이런저런 장소를 찾아보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없이 다녀온 그런 여행. 어찌보면 독자가 게을러지는 탓에, 애꿎은 저자만 도맷금으로 팔려가는 셈이겠지요. 



그렇게 맥없는 독서를 하다가, 불현듯 책에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부로 나뉘어진 책의 마지막 세 번째 편에서, 폐사지 답사기를 건네어주는 작가에게 불현듯 공감하였습니다. 


지난 5월에, 당일치기로 전북 익산과 군산을 다녀오던 길에, 군산에서의 일정이 여의치 않아 조금 일찍 귀경하던 길에, 행로를 돌려 충남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장면이었는데, 해질녘의 서산마애삼존불상은 그동안 보아왔던 많은 유물/유적지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광경이었습니다. 네 여자와의 동행만 아니었다면, 그냥 주저앉아 한동안 있었을 정도로... 


그런데 실은 서산마애삼존불상만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겪었던 곳이 그 옆에 위치한 보원사지였습니다. 원래는 마애삼존불상만 목적지였는데, 그 안쪽도 가볼만하다는 다른 분의 말을 듣고 해지기 전에 잠시 들러봐야지 생각하고는 갔다가... 폐사지가 주는 그 경이로움에 한껏 취한채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첩첩산중,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는 뒤편에 널따란 건물터 한가운데 서있는 오층석탑. 해가 서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그 순간의 폐사지는, 대기로 꽉 찬 공허로움이 주는 그 애잔한 느낌이 큰 울림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답사기 3권에도 소개되어있는 보원사지는, 막 다녀왔던 익산의 미륵사지 같은 꾸며진 장식품들이 없어 더 좋았던 장소였습니다. 


저자의 남한강변 폐사지 답사기를 읽으면서, 문득 보원사지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함께 어우러져, 글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익숙함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답사기가 계속될 수록, 저자가 우리에게 안내해주는 장소는 조금 덜 익숙한 공간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답사기 8권의 장소는 영월과 단양, 충주이고, 신라나 백제, 혹은 조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렇게 크게 와닿는 장소는 아닌 셈입니다.


아마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조금 더 익숙해진다면,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겠지요. 답사기를 덮으면서, 조금 더 신을 내어 돌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나도 많은데, 조금 더 분발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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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 창덕궁 후원 창경궁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지음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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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을 드나든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이니... 자주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두 번은 넘게 다녔으니... 그런데 의외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다녔습니다. 


아마도 궁궐의 건물과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잿빛 도시와의 묘한 어울림이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합니다. 잿빛 도시 한가운데, 푸르름이 꽉 찬 여백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 고 하죠. 좋아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앎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제 궁궐 여정에 도움을 주었던 책이 바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이었습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좋아함을 조금은 구체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앎보다는 감상에 조금 더 초점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알 수 있도록 자료를 보여주고 지식을 전달해주지만, 결국 저자가 소화해낸 것에 독서의 초점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책인 셈이죠. 그래서 이를 바이블 삼아서 돌아다니기에는 조금은 생소함이 있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은, 마치 궁궐을 직접 걸으면서 해설사를 옆에 두고 하나하나 배워나간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지난 7월에 창덕궁을 다녀오면서, 후원을 지나오면서 잘 봐 둔 것이 도움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편으로는, 저자들이 <동궐도>를 길잡이 삼아서 실제의 관람 동선을 고려하여 궁궐의 내부를 설명하기 때문에 조금 더 실감나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동궐도>는 도화서 화원들이 1830년 즈음에 동궐 - 창덕궁, 후원, 창경궁 - 을 그린, 현재 국보 제 249호로 지정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관에 가면 대형 액자 속에 전시되고 있지만, 이것은 복제본으로 진본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저자들은 <동궐도>에 그려진 전각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각들, 있었던 전각들, 없어진 전각들, 고쳐진 전각들, 새로 지어진 전각들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사료 및 <동궐도형> 등의 다른 자료를 교차적으로 분석하여 과거의 궁궐과 현재의 궁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저자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최대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궁과 궁의 전각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건축 양식이라든지, 건축 형태, 건물 구성물 - 예컨대, 현판이라든지, 어좌 등 - 에 대한 궁궐의 건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풍부하지만, 그 건물을 살아낸 사람들 - 왕과 그 가족들, 신하들 - 에 대한 이야기도 풍부합니다. 궁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궁궐과 궁궐을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궁궐에 대한 사전으로써도, 궁궐을 거닐면서 옆에 두고 볼만한 참고서로써도, 오랜 세월 궁궐 옆에 묻어있는 많은 사람 사는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책으로써도, 굉장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맞게 포함된 사진도 훌륭하며, 책 뒤 부록으로 주어진 전통 건축 양식에 대한 간단한 안내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축 형태에 대하여 잊을만 할 때마다 한 번씩 상기시켜주는 서술도 마음에 듭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예정된 것 중 첫 번째 권이며, 동궐 - 창덕궁, 후원, 창경궁 - 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출간 전인 두 번째 권에서는 경복궁과 덕수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이 또한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창덕궁과 후원 편을 조금 더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창경궁을 띄엄띄엄 다녔던데다가, 갈 때마다 전체적으로 둘러본 적이 없어서인지, 창경궁 편은 조금 덜 몰입하였습니다. 창덕궁 편은... 정말 돈화문을 들어서서, 후원 입구에 도달할 때까지, 실제로 다녔던 것과 책에서 다니는 것이 계속 오버랩되어 입체적인 책읽기가 된 듯 하여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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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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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으로 되어있는, 분량이 꽤나 만만찮은 전체의 절반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50~100쪽씩은 꾸준히 본 듯 싶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참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제게는 14개월에 접어든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위로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이 둘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딸들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같은 부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제게 너무나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책은 저와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이지만, 저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은, 어떠한 상황과 현상에서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본질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은 저같은 사람에게 그러한 관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드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예외적인 자녀(11쪽)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권에서는 청각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정신분열증과 중도장애(重度障碍)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례의 중간중간에 예외적인 자녀들이 되도록 만든 청각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정신분열증과 중도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과 그러한 것들에 대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추이, 그리고 다양한 의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적 이야기들이 언급됩니다. 아니, 이러한 이야기들 사이에 사례들이 중간중간에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사례들 하나하나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자꾸 제 14개월 된 딸아이가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제게 묻게 됩니다. 내 아이가 저 아이들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면 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짜리와 초등학교 2학년 짜리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과, 예외적인 자녀를 키우는 저 부모들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이미 그 길을 걸어온 그 부모들에게, 그 길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어느 부모가 힘들고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로써 나는 과연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행복함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때, 아직 부모로써 더 치열하고 더 경건하게, 자녀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한결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부모들은 아이가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성취를 거두며 좋은 대학에 가기를,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서 행복하게 결혼하여 독립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지만, 자신들은 그저 자녀들이 자기 힘으로 밥을 먹고, 자기 스스로 대소변을 치루고, 자기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그 모습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이지요. 부모가 자녀에게 가질 수 있는 기대가 1부터 100까지 있다면, 혹여 나는 아이들에게 100을 초과하는 기대를 가지고 아이들을 덜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과연 지금 아이들과의 관계 그 자체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조건과 바램으로 점철된 관계의 껍데기에 몰입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장애가 가진 비극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현상 속에서 자녀와의 관계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부모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장애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부모-자녀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던 그런 독서가 되었습니다. 



하나 더, 저자는 그러한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들과 부모들이 가진 정체성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치료라고 일컫지만, 과연 예외적인 모습 속에서 살아가는 자녀를 둔 가족에게는 치료라는 이름의 파괴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발상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수화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청각장애 공동체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질병을 가진 부모들의 애끓는 모임이 아닌,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와 부모가 자신들이 가진 다름을 공유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내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울컥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너무 자주, 가슴 먹먹하고 어떻게 할바를 몰라 한숨이 나올 뿐인 이야기들도 나오지만, 이 책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하기 위하여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육아와 교육에 관련된 서적은 아니지만, 부모와 자녀의 본질적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결국 자녀를 어떻게 돌보고 교육하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반성을 하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예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와 그 부모에 대하여, 피상적인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서 (감히 이렇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깊이있는 공감에 이르도록 만들어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2권을 바로 주문할 예정입니다. 읽고 싶은, 예외적인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2권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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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 수학과 예술을 잇는 마법의 고리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노태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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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에 연수를 갔었는데, 마침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뫼비우스의 띠. 두 면이 하나의 면이 되는 놀라운 기적의 띠. 처음과 끝이 없는, 마치 무한대의 기호와 같은 모양으로 생겨서 처음도 끝도 없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 이 띠가 뫼비우스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뫼비우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러한 띠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뫼비우스는 19세기 때의 인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두 면을 가진 띠를 한 번 비틀어 연결할 생각을 왜 못했던가. 혹여, 뫼비우스 이전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띠가 별로 신기할 것 없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이전의 기록물에서는 뫼비우스가 발견한 그 띠에 대한 언급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한 번 비틀어 연결하여 만든 띠는 뫼비우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 근래의 트렌드인 듯 싶습니다. 하나의 개념/관념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식을 담은 책. 예전에는 백과사전이 있었지요. 여러가지 개념과 관념을 간단하게 추려서/요약해서 제시하는 책. 그런데 이제는 백과사전의 효용이 떨어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이제 정보는 언제라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가진게 힘이었다면, 요즈음에는 누구나 다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이상 정보를 가진 것만으로는 힘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지요. 이러한 시절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힘이 됩니다.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연결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아마 이 책, 뫼비우스의 띠, 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결해 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이런 책은 저자가 중요하겠지요. 이 책을 쓴 저자는, 얼마 전에 [수학의 파노라마]라는 책을 출간한 클리퍼드 픽오버입니다. 당연히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구요. 마침 [수학의 파노라마]를 다 읽었으니... [수학의 파노라마]는 제 생각에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의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간추려 모은 책. 픽오버의 책은, 마치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런저런 과학적 지식 입문 서적을 쓴. 생각해보니, 이 책도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들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넓은, 조금 덜 깊은. 


아니, 이 책은 깊은데 제가 못 알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상기하학의 이야기가 나오고 사영기하학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와 걸친 부분이 아니라면, 뫼비우스 띠와 함께 예술에 대해서 말하고,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상념을 끌어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 뫼비우스의 띠가 목적이 되기도 하고, 뫼비우스의 띠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서만 잘 알아도, 이제 책 한 권을 뚝딱 써 내어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기도 한 것니다. 


물론, 뫼비우스의 띠 자체가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언급하였다시피,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대의 행로, 그 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퍼즐의 의미로도, 신비로운 여러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아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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