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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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출간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읽으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밝혀야겠습니다. 오랜 세월 이 땅에서(혹은 일본 땅에서) 사람들과 맞부딪치며 견디어 온 유물/유적/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다른 편에, 조금은 권태로운 독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묘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여덟 번째 권이 나왔고, 습관처럼 사 들었고, 읽는 와중에, 이번 편은 특히 무언가 와닿지 않은 것들이 더더욱 많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선 고민했던 것은 저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첫 권의 단호하고 강력한 저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날이 무디어지지 않았나 싶은 느낌에서 오는 고민이었습니다. 이 책의 첫 권이 출간된지가 벌써 20여 년. 그 사이에 저는 갓 스물의 대학생에서 이제 불혹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고, 유홍준 교수는 '전 문화재청장'이라는 이름표를 하나 더 얻게 되셨습니다. 어쨌든 문화재와 관련된 직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계셨던 덕분인지 저자의 날카로움은 조금은 유해진 듯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저기 다녀보면 그렇게 큰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덕분인지 저자의 그러한 부드러움이 시원스러운 맛을 덜 준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 편으로는 혹시 저자나 독자나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라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습관처럼 책을 짓고, 습관처럼 책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저자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생각입니다. 독자의 매너리즘을 저자에게까지 전가시키고 있는 셈이니까요. 네. 실은 오롯이 독자의 나태한 탓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가능하다면 답사기에서 소개한 여러 장소를 가보려고 노력하고 애썼던 모습에서, 이제는 그런 열심이 조금 사라진 채 마음 편하게 편한 곳을 다니려는 생각도 많으니까요. 이번 여름 휴가 때가 그랬네요. 이전의 여행처럼 이런저런 장소를 찾아보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없이 다녀온 그런 여행. 어찌보면 독자가 게을러지는 탓에, 애꿎은 저자만 도맷금으로 팔려가는 셈이겠지요. 



그렇게 맥없는 독서를 하다가, 불현듯 책에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부로 나뉘어진 책의 마지막 세 번째 편에서, 폐사지 답사기를 건네어주는 작가에게 불현듯 공감하였습니다. 


지난 5월에, 당일치기로 전북 익산과 군산을 다녀오던 길에, 군산에서의 일정이 여의치 않아 조금 일찍 귀경하던 길에, 행로를 돌려 충남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장면이었는데, 해질녘의 서산마애삼존불상은 그동안 보아왔던 많은 유물/유적지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광경이었습니다. 네 여자와의 동행만 아니었다면, 그냥 주저앉아 한동안 있었을 정도로... 


그런데 실은 서산마애삼존불상만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겪었던 곳이 그 옆에 위치한 보원사지였습니다. 원래는 마애삼존불상만 목적지였는데, 그 안쪽도 가볼만하다는 다른 분의 말을 듣고 해지기 전에 잠시 들러봐야지 생각하고는 갔다가... 폐사지가 주는 그 경이로움에 한껏 취한채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첩첩산중,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는 뒤편에 널따란 건물터 한가운데 서있는 오층석탑. 해가 서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그 순간의 폐사지는, 대기로 꽉 찬 공허로움이 주는 그 애잔한 느낌이 큰 울림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답사기 3권에도 소개되어있는 보원사지는, 막 다녀왔던 익산의 미륵사지 같은 꾸며진 장식품들이 없어 더 좋았던 장소였습니다. 


저자의 남한강변 폐사지 답사기를 읽으면서, 문득 보원사지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함께 어우러져, 글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익숙함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답사기가 계속될 수록, 저자가 우리에게 안내해주는 장소는 조금 덜 익숙한 공간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답사기 8권의 장소는 영월과 단양, 충주이고, 신라나 백제, 혹은 조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렇게 크게 와닿는 장소는 아닌 셈입니다.


아마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조금 더 익숙해진다면,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겠지요. 답사기를 덮으면서, 조금 더 신을 내어 돌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나도 많은데, 조금 더 분발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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