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감 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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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하는 몇몇 사건들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장르' 소설에 대하여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독서를 하다보면 인상적인 장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겠고, 등장인물간의 대화 도중에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겠고,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통찰이 불현듯 찾아오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런데, 모든 소설이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소설, [가짜 경감 듀]도 인생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전달하여 주는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이야기의 흐름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그런 책입니다. 추리소설, 혹은 미스테리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악한 비유이겠지만, 꼭 스포츠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죠. 본방을 보지 못하고 승패를 알아버리면, 굳이 재방을 볼 필요가 없는 스포츠. 하지만, 본방을 보는 순간에는 손에 땀을 쥐는 그런 이야기. 장르 소설이라는 것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통칭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이 소설을 다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입니다. 


어젯 밤 늦은 시간, 잠을 청하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해서, 결국 잠들지 못한 채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열어본 후,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는데, 다음에는 못 보겠다는 그런 생각. 이미 승패를 알아버렸는데, 과연 다음을 볼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승패를 알아버려도 다시 찾게되는 그런 글들이 있기는 합니다. 엘러리 퀸의 '라이츠빌 시리즈'가 그런 것이기도 하구요. 혹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모닝스타로 마구 두드리기로 유명한 이영도 님의 여러 소설들도 그렇구요. 소설 속의 장치를 알아버리고 난 후에도, 다만 그것 뿐만은 아니기에, 다음에 또 곱씹어보게 만드는, 그런 소설들이 있습니다. 이 책 [가짜 경감 듀]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많은 분들의 평대로 깔깔거리면서 볼 정도의 유쾌함을 주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꺾임을 기대하면서 보게 만드는, 그리고 그러한 반전의 지점이 기대만큼 재미나긴 하지만, 뒤통수를 쎄게 맞았다는 정도의 느낌은 오지 않는, 그래서 약간은 놀랄만한 반전을 책의 마지막에서 만나지만, 그것을 여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래서 이 책을 다음에 또 읽게 될까 싶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가짜 경감 듀]에게서 받은 좋은 느낌은,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감이었던 듀는, 치과의사이면서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후 내연녀와 함께 도주하던 크리펜 박사를 체포하였던 유명한 경감입니다. 그런데, 사건 11년 후, 월터 바라노프라는 치과 의사가 자신의 부인을 죽이고 (정을 통하지는 않은) 내연녀(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와 미국으로 도주하기 위하여 듀라는 가명을 쓰고 배에 올라타게 되고, 그 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얼떨결에 해결자의 역할을 맡게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책의 중반까지는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기 위하여 날렵하게 주변 인물들을 배치한 후에, 작가는 본격적으로 월터가 처하는 아이러니의 상황 - 부인을 죽인 치과의사를 잡은 가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부인의 죽음에 대한 수사에 참여하게 된 치과의사의 안타까운(?) 상황 - 을 하나하나 풀어냅니다. 반전에 반전이 등장하고 또다른 반전에 다시 기막힌 반전이 등장하는 동안, 허술한 경감이 된 월터 바라노프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에 엮여드는 과정을 잘 풀어내는 맛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책을 쉽게 덮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독자를 이야기 속에 묶어두는 방법을 아는 듯 합니다. 책의 앞쪽에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를 만들어 책의 뒤쪽에서 그 스토리와 만나도록 하는 재미를 크게 만들면서 아이러니에 양념을 더하는 맛이 쏠쏠합니다. 


또 하나, 이 책이 주는 좋은 느낌은, 옛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시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리타니아 호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흡사, 고전 추리소설이 주는 밀실의 느낌도 날 뿐만 아니라, 타이타닉 호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비극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겪었던 그런 분위기가, 카드 사기꾼인 잭과 케이트, 소매치기인 포피, 혹은 20세기 초의 극장 배우였던 리디아 바라노프 같은 인물들의 옛 느낌과 함께, 수학자이자 자산가인 청년 폴 웨스터필드 및 프랑스 유학생인 바버라 발린스키, 그리고 치과의사인 월터 바라노프 같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때로는 고풍(혹은 고루)한 듯 싶다가도, 때로는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그 묘한 느낌이 소설의 주된 정서를 만들어내는 듯 싶습니다. 그러한 정서가 잇따른 반전 덕택에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아이러니를 더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답답한 것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풀어가는 방식이, 독자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야기의 앞편에서의 수동적이며 헌신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월터 바라노프의 캐릭터가, 경감 듀를 입으면서 드러나는 어설픈 느낌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책의 주요한 흐름을 잡아주는 여러 인물들의 캐릭터가, 조금 삐걱거린다는 느낌 때문에, 반전의 묘미가 조금은 덜 살지 않나 싶습니다. 꽤나 매력적인 인물상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인물들을 용두사미로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아무래도 아이러니를 위하여 인물의 성격에 대한 개연성을 포기한 느낌이 들어서 꽤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지속될 수록, 책의 줄거리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커진다는 느낌이, 독서를 마친 후에 느끼는 약간의 찝찝함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재미나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으며,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디테일하게 빠져들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으며, 인물들은 전반적으로 매력적이었지만, 아이러니가 지속될 수록 그러한 매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으며, 누구에겐가 책을 한 번 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마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읽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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