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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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새로운 책인 [국가란 무엇인가(이하, 국가)]를 출간하셨습니다. 언뜻, 얼마전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와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느낌을 받는 책이었지만, 그보다는 훨씬 쉽게 막힘없이 읽어낼 수 있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독후에 듭니다. 


하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가]와 같은 이런 류의 책이 가지고 있는 함정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책은, 평소에 '지식소매상'으로 자신을 언급하신 유시민 대표'다운' 책입니다. 즉, 원산지에서 조금씩 필요한 부분을 떼내어서 재가공한 후 소매로 공급하는 형태로, 이 책은 1차적 저작물 여러 권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바를 조금씩 가져와서 자신의 생각대로 가공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이 지닌 치명적 결함은, 많은 분들이 인지하시는대로, 원저자의 생각과 묘하게 궤를 달리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책을 읽을 때에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가급적이면 인용작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번역이 문제까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수의 세계인들에 의해 씌여진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읽으면서 과연 그 책이 저자(혹은 작가)의 의도대로 쓰여진 책이라고 얼마나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번역 이전의 원서를 읽어야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원서를 읽는다고 해서 그 적확한 의미를 숙지하는 것은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그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언어가 가진 역사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원서를 읽더라도, 우리가 그 문화 속에서 이루어져왔고 이루어지고 있는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책의 적확한 의미대로 읽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마치 패러디 영화를 보면서 웃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겨진 최선의 방법은, 그렇게 모아모아 자신의 의견의 푯대로 삼는 글을 쓴, 저자를 믿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원저작물을 읽어보는 것도 그를 더 확실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저는 이 [국가]를 읽으면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몇몇의 원저작물을 갈무리 해 두었습니다. 독서가 풍요로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이 책 [국가]는, 유시민 대표가 다음 대통령선거와 그 이후에 계속될 국가지도자 선거에서 '반드시' 뽑아야 하는 사람의 프로필을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모아모아 특정한 책이라고 보시면 무방할 듯 합니다. 


우선 저자는, 국가관을 명확하게 한 후에, 그 국가관에 따라 어떤 이가 통치하여야 하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고, 진보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해야 할 국가의 이상을 설명한 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옹호를 끝으로 자신의 책을 마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진보'에 대한 저자의 견해일 것입니다. 저자는 '진보'를 어떤 고정된 하나의 견해가 아닌,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진보세력은 공고한 보수의 울타리에 비해 끊임없이 유동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세력이 자신의 진보를 표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야 공고한 보수의 울타리와 균형을 잡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한창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복지'의 부분에서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모두 추구하면서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선별적 복지를 보편적 복지로 확대해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무릇 '복지'란 진보 만의 것은 아니며, 사실은 모두의 것이며 모두가 주장하고 추구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교조화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진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유연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그런 주장을 바탕으로 자신을 '진보'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면서 자신 대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한 편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개량 사회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는 베른슈타인의 정치행위를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결국,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라크 파병을 이루어내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주의자들 - 수구세력? - 과 합종연횡을 시도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지식인에서 정치가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옮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걸어갈 수 밖에 없었던 길이었음을 베른슈타인에 빗대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식인은 선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밖에 없다지만, 정치인은, 특히 국가의 지도자로 선출된 정치인이야말로 그 선명성을 조금은 수정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오늘, 선명하게 자신의 주장대로만 이 나라를 통치함으로써, 다른 한 편의 결기어린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국가지도자를 이미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자는, 국가란 무릇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존재라고 명징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가지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명했던 주장에서 조금 비켜서더라도, 국민에게 마땅히 주어야할 것을 주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매진하고 노력한다면, 그는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지도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에 동의하기로 했습니다. 만약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지금의 대통령이 '반북'하는 것처럼 '반미'하셨다면... 지금처럼 힘들었을테니까요. 그 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거든요.



한편 아쉬운 것은, 이 책 [국가]를 읽으면서, 이성적으로는 이 책이 유시민 대표의 대선 출정을 선언하는 출사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감성적으로는 아직 유시민 대표는 대권 '야욕'이 크지 않다는 생각도 같이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 국가지도자 선거에서는 뻔한 구도로 가야할텐데, 유시민 대표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저들이 아닐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해서 그래도 이전처럼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이 분열하는 일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 정도의 책을 통해, 자신의 국가통치이상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가, 이젠 국가지도자의 역할을 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국가지도자들을 겪어오면서 그들 중 대부분이 국가통치이상을 담기보다는 자기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 허섭쓰레기같은 책을 보면서 안타까와하지 않았습니까? 조금은 차분하게, 조금은 냉정하게, 조금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다음에 올 지도자가 유념해야 할 통치이상을 이렇게 쓸 정도의 지도자를, 굳이 유시민 대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런 이가 우리의 국가를 대표할 이로 선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잠시 덮어두었다가, 내년 총선과 대선 연간에 꼭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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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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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생 신분으로 지낸지 올해로 물경 13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삼분의 일이 꼬박 학부생 - 대학원에는 발도 못 디뎌보았군요... (쿨럭) - 신분이었으니 짧지만은 않은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지난한 대학생활 중, 제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첫번째 독서를 꼽자면 단연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하, 답사기)]입니다. 


저자인 유홍준 씨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학자입니다. 물론, 저자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던 임기 말에 숭례문 전소 사건이라는 센세이션한 사건이 있었기에 그 임기를 호평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야말로 저같은 이에게 우리 땅과 우리 문화가 소중하다는 것을 깊게 새겨볼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 준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학자가 꿈이었습니다. 비록 대입원서를 쓰는 와중에 부모님과의 마찰로 원하는 역사학과로의 지원은 좌절되었지만, 누구보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역사를 사랑하는 이라고 감히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러나, [답사기]를 읽으면서 제 자부심이 그다지 내세울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더랬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역사는 사건으로의 역사, 연대기로서의 역사일 뿐이었지, 삶의 한 조각으로서의 역사, 나를 감싸고 있는 역사는 아니었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무수한 연대와 사건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 곳에서 그 시간에 살았을 이들의 삶과 사랑과 아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왔다는 것을 [답사기]를 통해 알게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땅을 조금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해 준 책, 그 책을 쓴 저자가 작년 말에 새로운 한국미술사 통사를 출간했다는 것을 전해듣고는 한달음에 사서 두달음에 읽다가, 마지막 부록을 남겨둔 채 신학기를 보내던 중, 비로소 오늘 부록 몇 페이지를 읽어버리고는 짧은 감상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유홍준 씨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이하, 강의)]의 감상평입니다. 



지난 4월 초,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대전에를 방문하게 될 일이 생겼습니다. 결혼식이 점심 언저리인지라, 조금 일찍 출발해서 공주를 들렀다가 결혼식을 보고 부여를 들러 집에 올 일정을 계획하였는데, 시간이 여의찮을 듯 싶어 오전은 대전을 둘러보고 결혼식 후에 공주만 다녀오고 부여는 다음을 기약하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무녕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 그리고 공산성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저는 와이프에게 무녕왕릉과 웅진 백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책, [강의]의 덕분입니다. 


[강의]는 선사시대 유적부터 통일신라, 발해 시대까지의 미술 작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스러졌을 많은 회화 작품보다는, 아무래도 조각들을 주로 다루고 있고, 그 조각들이 자리잡고 있던 사찰과 고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의]는 선사시대와 청동기시대(고조선),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 그리고 남북국시대를 아우르는 중에 우리 조상들의 생과 사를 보여주는 사찰과 고분들, 그리고 그 곳에서 산 자와 죽은 이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주는 벽화와 불상과 상징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유물과 유적으로서의 미술 작품이 아닌, 살아온 나날의 흔적을 담뿍 담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십 수년 전에 읽었던 [답사기]의 일정부분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답사기]를 읽으셨을터라, 그 책 속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흔적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다들 공유하고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땅 곳곳에 흩어져있는 무수한 조상들의 흔적 속에 잠시 몸두고 오는 것만으로도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을 벅차게 느낄 수 있음을 많은 분들이 동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답사기]보다는 훨씬 딱딱하고, [답사기]에 나왔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는 많이 배제된 편입니다. 아무래도 책이 쓰여진 목적이 미술사 통사의 목적이라 그렇겠지요. 그러나, 나오는 도판이 계속 [답사기]와 오버랩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상기시켜준다는데에서, 특히 [답사기]를 뜻깊게, 재미나게 읽으셨다면 읽어보셔도 무방하리라 생각하며,


공주 무녕왕릉 앞에서 와이프에게 세세한 설명으로 멋진 남편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저처럼, 조금은 도움이 되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유홍준 씨의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한 번 다녀온 장소는 한 번 더 다녀오도록 하자.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에 끝낼 생각을 하고 가서는, 설명을 주룩주룩 읽고 머릿속에 기억하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고 오려고 했었지만,


지금은 마음 편하게 몸두고 둘러보다가 와서는, 다음을 다시 기약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아직 아이들이 어린터라 유물과 유적지를 몸으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몸두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자연스레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그리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유물과 유적지에 대한 조금 더 나은 앎을 얻고 몸둬볼 수 있어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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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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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짧은 생을 돌아보면, 제가 처음으로 정치적 판단을 했던 것은 90년 1월 어느 겨울 눈오던 날이었습니다. 

한양대학병원을 갈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타는 중, 가는 도중의 무료함을 이길 수가 없어서 구입한 스포츠신문의 1면 머릿기사는 '3당합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중학생 철없던 시절에 들었던 생각은, 배신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나이에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띄고 있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닐테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라는 입장에서 나온 판단이 아니라, 당연히 한 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의 변절, 그리고 남은 한 편에 대한 측은한 마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배신감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 어린 시절에 제가 그렇게 큰 편없던 배신감을 느낀 이유를, 요즈음에 와서는 '원칙'없고 '상식'없는 행동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불의한 이와 한 길을 걷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십년간 몸으로 보여왔다고 하는 이가 보인 비상식적인 행위가 제 편모를 배신감의 원인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 버림받은 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 후로도 그 전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가시게 되고, 이 자서전은 그런 굴곡진 삶을 김대중 전 대통령 특유의 그 열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 리드미컬하게 기록해놓은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궤적에 약간의 얼룩진 부분도 있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되짚어보자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신 여든 여섯 평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김대중 자서전(이하, 자서전)]에서 특히 대통령께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변방에 서계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특히 잘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현대 야당사의 큰 줄기는 1948년의 신민당을 시작으로 민주당 - 신민당 - 평민당과 민주당으로의 분당을 거쳐서 면면이 이어져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 2공화국때 잠시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의 비주류세력이었던 민주당 구파는 그 후 김영삼, 이철승 씨를 보스로 하여 그 세력을 유지하다가 1990년의 3당합당 이후로 현재 한나라당 세력으로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찌보면 해방 이후 친일지주세력을 근간으로 등장했던 신민당 - 민주당 속에서 줄곧 비주류로 생활해오던 김대중 대통령께서 1971년 대통령 선거의 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전에 대통령께서 겪으셨던 여러 고난의 시절의 단 열매였으며, 이후 새로운 고난의 시절이 시작되는 단초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 까닭을 저는 대통령께서 줄곧 견지하셨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삶의 태도에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자서전]에는 대통령 자신의 자화자찬격 서술도 줄곧 등장하며,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실에 대한 설명(혹은 변명)도 있습니다. 그런 주관적 서술을 이렇게 저렇게 객관화시키더라도, 대통령께서 자신의 파란만장하며 치열했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줄곧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자세로 자신을 절차탁마하셨다는 사실을 폄훼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적 지도자(및 그를 자처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연 대통령처럼 객관적인 결과물 - 여러 저술 및 저작물 - 로써 자신의 성가를 보여준 이가 과연 누구인지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자신의 오랜 기간에 걸친 정치적 비전을 직접 통치행위를 통해 펼쳐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께서 얻은 행운이자, 자신의 오랜 고난어린 정치생활에 대한 국민들의 인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서전]이 특히 유의미한 것은, 국민의 정부 5년간 정부에서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과 통치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비망록으로서, 그 기록이 비록 언급한 바와 같이 주관적인 색깔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세월 우리가 경험했던 민주적 공동체와 지금의 답답한 현실의 대비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우리가 정치적인 선택 - 선거 - 을 할 때 어떤 기준과 잣대를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권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에 긴 고초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라서, 약간의 정치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쉽게 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2권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의 기록이라서 글이 끊어짐이 좀 느껴진다는 -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대통령 개인의 입장을 피력하시는 방식으로 서술되다보니 - 느낌도 있으며, 특히 현 정부에 대한 팍팍함을 표현하시는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 더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기본적으로 유머러스하신 분이시다보니, 글 속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적 흐름은 '말'의 위력을 저평가하는 입장이다보니, 유머러스한 부분이 '가벼움'으로 폄하되고, 진정성이 담뿍 담긴 연설같은 것은 '말만 잘하는' 행위로 깔아뭉게지지만, 대통령께서 순간순간 보이셨던 위트와 유머는 우리가 참으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가졌었구나, 라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고난스러웠던 정치 입문기,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자행된 납치와 살인 미수 사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1차 남북 정상회담 등 다양한 사건의 뜨거운 서술을 통해, 한국 현대 정치사의 파란만장함과, 그 한 가운데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셨던 대통령의 삶의 모습을 읽어갈 수 있어서 의미있는 독서였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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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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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역사는 결코 깔끔하지 않다)는 항상 질문으로 끝나야 한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다. (740쪽)

[스페인 내전(이하, 내전)]을 구입한 계기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지식의 파편은 많은데 비해서, 내전의 원인이라든지 양상, 혹은 그의 의미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매는 했으나... 읽는데 걸린 시간은 하세월이었네요.

책 구입 이후에, 책을 실제로 읽은 원동력은, 하나의 보드게임을 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민전선 Popular Front]라는 보드게임이 우리나라에 공수되었고, 그것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면서 그러잖아도 지지부진하던 읽기에 가속력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오늘에서야 장장 700여 쪽에 걸친 책을 다 읽어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의 원인은 단순한 편입니다. 뭐, 1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공통적인 분위기였던 사회주의 세력의 확대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복고주의 세력과 종교세력, 그리고 구질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세력 - 통칭하여 우파 - 이 파시즘 같은 극단적 세력과 부딪치는 양상이 스페인에서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다만 스페인에서의 좌-우 세력이 오랜시간, 그리고 크나큰 상흔을 남기면서 4년여간의 내전으로 이어진 것은, 그 대립이 가장 큰 갈등의 지점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스페인 내전을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즉, 이미 이러한 좌-우의 대립이 종식된 국가들인 독일/이탈리아/소련이 스페인 내전에서 좌-우의 세력을 옹호하면서 내전을 끌고 나간 것과, 스페인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어느정도 결론을 '본' 좌-우 간의 대립이 그 때까지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적 요인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크나큰 파열음을 오랫동안 낼 수 밖에 없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영국/프랑스/미국이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내전에 불간섭한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당시 전 세계의 경찰국가의 역할을 수행한 바, 내전을 내전으로 끝내야한다는 외적 이유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파시스트들보다 막시스트를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합법정부인 공화파의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의 위치를 견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의 세력에 끼어있던 프랑스 역시, 사회주의 정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파를 돕지 않았고, 미국은 특유의 고립주의를 내세워 내전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기에, 스페인의 합법적 정부였던 '인민전선' - 좌파 세력의 대연정을 의미하는 용어로 여겨지네요 - 내에는 사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의 양대 이데올로기 세력 뿐만 아니라 자치를 주장하는 공화주의자들과 생디칼리스트-아나키스트, 그리고 노동자 세력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세력과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사건을 바라보는 층위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에 대처하는 자세들도 제각각이다보니까 혼란이 제곱으로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파 세력은 조금 덜 복잡한 편이라 - 왕정 복고 세력과 카톨릭 세력, 그리고 그냥 좌파가 싫은 세력 - 이 세력을 기반으로 한 국민파가 공화파를 제거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승부는 프랑코 장군의 국민파가, 합법적인 정부 세력인 공화파를 압살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저자는 [내전] 내내 공화파 정부의 '무능'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정당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공화파 정부의 잘못을 하나하나 복기해나가는 것으로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 격인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별로 한 역할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공화군에게 크게 불리한 쪽으로 벌어진 차이를 더 심화하고, 공화군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낭비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간 것은 공화군 지도부였다. (735쪽)

그러면서,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대로, 저자는 결론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즉, 저자는 사료를 분석하고 분류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코멘트는 남겨두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했어야만 했을까'라는 가장 큰 물음은 던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무미건조하게 의문없이 사실만 나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사건과 그의 진행방향 및 당사자들의 선택에 대한 여러 의문과 그에 대한 여러 대답들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미시적이며 또한 간접적입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질문은 묻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을 책의 마지막 문장인,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저자의 말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고 있는 저의 몫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저야말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내내 다음의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 합법적 민주정부라는 명분과, 노동자/농민의 편이라는 지위도 가지고 있었으면서, 공화파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물론, 저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흘리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덮는 순간, 그것은 저자의 몫이고 저자의 깜냥일 뿐,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래된 - 그러나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 한 가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공화파의 패인에 대한 저의 결론은 - 아니, 저자의 결론일 수도 있지만 - 끊임없는 내부 충돌이 가장 큰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1년, 퍽퍽함이 너무 만연해서 무디어질대로 무디어진 한국 사회에서 희망의 빛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다름을 대조하기보다는 같음에서 시작해야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변화를 목적하고, 진보를 바란다면, 무식하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자는 계속, 공화파의 정치적 분열과 함께 실제 전투 및 전략전술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목소리는 딱 그렇습니다. '나같이 전략전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너희 같이 전쟁하지는 않겠다' 정도?

공화파 정부군과, 그를 고문(顧問)하는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적어도 병력이나 무기의 질에서 부족하였다면 전략전술이라도 성공적으로 구성하였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하나 없이 고루한 선전전에만 집착하여 효과적인 전투 수행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게다가 무능하고 부패하기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얼마나 길고 지루할 정도로 나열하고 있는지는 저자와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무능함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귀 기울이고, 더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긴 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읽어도 일주일을 넘게 읽을 수 밖에 없었으며, 얼마나 많은 인명과 지명과 단체와 정당과 세력이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의미를 말해본다면,

2011년, 대한민국의 정체(停滯)와 무기력을 안타까와한다면, 그 해결책을 직접 던져주지는 않지만, 그 해결점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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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삶에 바쁜지라, 잡기는 예전부터 잡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 [승자독식사회(이하, 독식)]를 다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 책이 참 마음에 드는 어떤 요소가 있습니다. 제 독서가 짧아서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에는 어렵지만, [독식]의 경우에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현대 사회의 부익부빈익빈을 설명하는 주된 아이디어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설명하는 부익부빈익빈의 원인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통신의 발달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백 년 전에,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이동하는데 하루라는 시간 이상이 걸리던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 마을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면 그 이는 먹고 살만한 여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 마을에서 잔치가 열려서 흥을 돋구어줄 가수가 필요하다면, 굳이 옆 마을까지 하루 걸려 사람을 융통할 필요 없이 우리 마을의 가수를 부르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옆의 옆 마을에 더 훌륭한 가수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물질적 비용을 감당할만한 사람은 건넛집 최대감 말고는 없을테니, 우리 마을의 가수는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교통 수단도 발달하였고, 통신 수단도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로 우리 마을에서만 잘한다고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뭐... 요즘은 마을 회갑잔치에도, 돈만 있으면 서울의 가수를 불러다가 잔치의 흥겨움을 더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독식]에서는 테니스 선수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테니스 랭킹 세계 1위 선수는 몇십만 달러의 우승상금보다도, 수백만 달러의 광고출연료 등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되지만, 당장 세계 20위 정도 되는 선수는 어떤 광고 출연도 요구받지 않고 그가 받는 상금 만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면 부는 승자에게 독식된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조금 더 분명하게 저자들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과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위성통신 같은 것들 때문에 적당히 재능 있는 사람이 소용없어졌기 때문이다. 1,000년 전만 해도 마을의 보배로 여겨졌을, 적당하게 재능있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통신기술 덕분에 그는 날마다 세계 일인자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제 각 분야에서 10명 남짓의 챔피언들만 있어도 전 세계는 잘 굴러가게 되었다. (16쪽)

그 때문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승자독식시장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라의 차이를 더욱 벌려놓았다. 승자독식시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재능있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파귀적이기까지 한 일들에 몰두시켰다. 승자독식시장은 미래는 팽개쳐둔 채 낭비적인 투자와 소비에만 몰두하는 경제체제를 조장했다. (중략) 이런 시장에서는 '뒤늦게 경주에 나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어렵다. (20쪽)

그래서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승자독식시장이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경쟁 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24쪽)'하는 것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로 저자들은 현재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승자독식시장의 면모를 다양한 관점에서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드는 예는 가수와 도공의 예입니다. 이 예시에서의 아이디어는, 도공은 전통적인 노동시장을 상징하면서 고정적인 임금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가수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획득할 수 있지만 그에서 밀려나면 부와는 관련없게 되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도공은 절대적인 능력에 따라 보수를 얻지만, 가수는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능력에 따라 부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런 두 가지 직업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저자들은 모두가 가수가 되겠다고 죽자사자 달려드는 꼴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봐야 사회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을 생각해보면 - 저자들이 들고 있는 예가 아닙니다. 제 생각에... - 100명의 학부모가 학생의 성적을 위해서 모두가 수학 사교육을 시킨다면, (사교육을 수행한다고 성적이 반드시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모두의 성적이 상승할테니, 결국은 모두가 시키지 않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차이없다는 말을 저자들은 하고 있습니다.


아아. 책을 요약해버린 꼴이 되었네요. 제가 책을 적확하게 요약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이 인용해버렸습니다. (ㅠㅠ) 책에 대한 감상글을 쓰면서 가급적이면 인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책에 대한 느낌 그대로의 감상이, 이 감상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감상을 쓰는 제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상을 읽는 분들에게는, 혹여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책을 읽어볼만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책에 대한 전체적 감상이 부분의 인용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전체적인 감상이 자신의 독후감상과 비교/대조해보아 사유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감상을 쓰는 제게는 인용하다보면 인용이 마치 전부인 것인양 독서를 정리해버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인용은 그닥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문제는 이 책을 시작한지 근 넉 달 만에 마친 독서라서... (쿨럭) 전체적인 느낌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역시 독서는 앉은 자리에서 해야하는데 말이죠. (쿨럭)


아무튼 이 [독식]을 다 읽으면서, 저자들의 주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상황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부익부빈익빈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로부터 복지 담론이 전개되고 세금 제도의 문제 및 실행의 범위 문제도 격렬한 논쟁에 부닥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부의 편중 문제에 대하여 신선한 아이디어로 그 원인을 탐사한 방식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하는 측면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를 해결하는 대안에 대해서는 평이한 결론을 내렸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결론은 지금까지 부의 재분배의 문제점을 진보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이들의 주장하는 바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은 평이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책도 부의 재분배에 관련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답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이 책 [독식]이 부의 편중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시도했으며, 그것이 설득력있는 시도이고, 또한 그러한 부의 편중 현상의 해소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문제로 향하는 길을 하나 튼 셈이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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