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영화/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를 본 이야기부터 해야할 듯 하네요. 

 

[호빗 : 뜻밖의 여정 (이하, 호빗)]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랜 시절동안 환상 소설과 벗하여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여러 권의 환상 소설을 읽고, 환상 소설 작가 몇 분을 만나고, 환상 소설 독자 몇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환상 소설에 관한 글을 써 왔던 시간이, 그 동안 영화를 꽤나 오래 보지 않고 지내왔던 저를 영화관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표는 요즘 대세(!)인 IMAX 3D HFR로 보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한 번 예매했었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바뀌어버린 밤낮 탓에 예매를 취소했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스크린이 내려갈 듯 하다는 위기감(!)에 부랴부랴 예매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IMAX를 많이 추천하시는 이유가 스케일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영화의 스케일은... 원작 자체가 박력있는 장면을 많이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다툼과 알력이 주된 장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대규모 전투 신 같은 박력이 등장하는 장면은 한 두 장면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IMAX가 나쁘지 않은 이유, 아니, 좋다고 해야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촬영장소인 뉴질랜드의 풍광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토리 상 부수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눈 덮인 설산이 스크린 저편에 쫙, 하고 나타날 때에는 정말... 가슴까지 시리는 느낌을, 스토리와는 별개로 받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3D는... 제가 그닥 시력이 좋은 탓이 아니라 - 안경을 벗으면 자막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수도 없죠 - 그리고 서든 어택같은 FPS 게임을 30분 이상하면 심한 두통과 함께 구토할만큼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한 편이라,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간혹가다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듯한 인물들 - 고블린 왕... 어우... 불쾌... - 과 사물들 - 날아다니는 것들이 제 앞으로 날아올 때 - 을 통해, 지금 내가 3D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만... 굳이 3D가 아니라도 괜찮을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흐름에 3D의 기술적 요소는 영화를 색다르게 만드는 첨가물 정도이지, 요리의 중요한 재료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FR은, 기본적인 영화가 1초에 24~30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장시켜, 1초에 48프레임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촬영기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기술적인 부분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보신 분들의 평으로는 화면의 선명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 기술적인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정말 또렷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꼭 집에서 1080D 블루레이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제 영화보는 자세가 워낙 삐딱한 탓에, 약간만 자세를 흐리멍텅하게 하면 바로 초점이 흐려지는 3D 영화인 탓에 영화의 4분의 1 정도는 흐리멍텅한 화면을 본 듯 합니다. 

 

결론은... 다음에 영화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기면 3D는 빼고, IMAX HFR로!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 상의 이야기이니까, 이 영화는 모닝스타가 난무하고 스포일러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없지만, 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를 직접 받아들이시는 부분에 익숙하신 분들께서는, 이 밑의 부분을 넘어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꾸벅.)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 [호빗]은 책 [호빗]의 약 3분의 1 정도의 이야기까지를 다룹니다. 

 

빌보 배긴스가 골룸의 반지를 얻고, 고블린들의 소굴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는 늑대들을 만나 위험에 빠졌다가 독수리들의 도움을 받는 부분까지를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들은, 원작의 부분들과 영화의 부분들이 꽤나 많이 차이가 났다는 부분입니다. 가장 크게 차이를 보였던 부분은, 책은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모험담을 유쾌하게, 까다롭고 벅찬 부분에서도 그 상쾌함이 활자 사이사이로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영화는 드워프들의 숙명 - 왕국을 되찾겠다! - 이 원작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 강조되기도 하여 보는 내내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가장 큰 것은, 책 [호빗]은 실은 간단한 소품처럼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영화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의 연계고리를 슬쩍슬쩍 흘리면서 스토리에 스케일을 부여하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는 심지어 백색의 사루만과 갈라드리엘까지 나옵니다! 리벤델에 방문했던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이야기는 책에서는 편안한 안식과 휴식을 얻었던 단 여섯 페이지의 서술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복선을 암시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장면으로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참나무방패 소린과 큰 갈등관계를 가지는 오크왕 아조그는, 책에서는 한 번 언급되는데 불과한 '고블린' 아조그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참나무방패 소린과 빌보 배긴스는 영화에서 큰 갈등관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 종족간의 기본 품성이 달라 살짝살짝 가볍게 툴툴거리는 정도인 사이인 두 사람이, 영화에서는 특히 참나무방패 소린이 빌보 배긴스를 하찮게 여기기까지 하다니요. 

 

물론, 영화가 원작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을테지요. 모든 영화는 원작을 발판삼아 재창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고, 심지어는 원작보다 더 나은 영화가 있기도 할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작품은 이문열 씨의 원작보다 박종원 감독의 영화가 훨씬 더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빗]의 경우에 영화의 재창조가 불편했던 이유는, 원작이 가졌던 유쾌하고 상쾌한 - 마치 호빗이라는 종족들처럼, 혹은 드워프라는 종족들처럼 - 이야기의 튀어오르는 느낌이 영화의 비장미에 그냥 묻혀버렸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골룸과 빌보 배긴스가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내용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를 회색의 간달프가 베오른에게 소개하는 책의 장면 같은 것은 이야기를 꽤나 가볍게 진행시켜주는 장면들이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었는데, 영화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무거운 흐름에 책의 상쾌한 장면들이 얹어지는 바람에 계속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그 무거운 흐름은... 영화의 다음 편이 더 나와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얻었던 유쾌함을 영화 속에서 많이 빼앗겨버렸다고 할까요. 어색한 갈등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흐름은... 원작을 읽고 보았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다음 편은 보겠지만, 아마 오늘 본 [호빗]의 첫 편을 영화로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호빗]의 이야기를 [반지의 제왕]처럼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책 [호빗]은 저자인 J.R.R.톨킨이 45세때 썼던 글입니다. 기본적으로 톨킨의 세계관은 북유럽의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가지고 2차 세계, 책에서는 '중간계 the Middle Earth'라고 명명하고 있는 곳이죠. 2차 세계는 환상 소설의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가 아닌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비현실세계가 환상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까닭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현실 배경이 아니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 배경의 이야기는 반드시 현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현실을 배경으로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상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펼쳐 놓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2차 세계는 두 모양 중 하나입니다. 현실과 연결된 '옷장'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현실과 전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던지. [나니아 연대 이야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소설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은 현실 세계와 전혀 연결된 고리가 없죠. '중간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따라서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이야기 공간입니다. 

 

[호빗]은 그런 이야기이기보다는, 조금 스케일이 큰 우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야기는 어둡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편안한 자세로 가볍게 깔깔거리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로부터 15년 뒤에 쓰여지는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유혹, 그리고 강한 의지 - 혹은 신앙 - 에 대한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호빗]은 그런 생각 없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를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필요도 없고, 혹은 개인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본연의 명암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 속에서 굳이 찾아낼 필요도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세계(this world)가 아닌 이세계(異世界)를 들여다보면서 이세계(this world)가 주는 여러가지 짐으로부터 잠시 비켜설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책의 부분 중에서, 위에 잠시 언급한대로, 베오른을 찾아가는 회색의 간달프와 빌보 배긴스가, 그들의 동료인 드워프 열 세 명을 소개하는 장면을 가장 유쾌하고 재미난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회색의 간달프가 자신의 모험담을 베오른에게 이야기하면서 까탈스러운 베오른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대규모 일행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운율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영도 씨의 소설인 [퓨처 워커]에서 나오는 테페리나이스, 즉 테니스는, 이 책 [호빗]의 '골프 Golf'를 오마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소설의 흐름을 방해하는 익살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톨킨도 소설의 흐름에 별 상관 없는 골프 같은 익살을 부리는 것을 보니까, 이 책 [호빗]이 참 가볍게 쓰여지고 읽혀질 수 있는 소품 같은 글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퓨처 워커]의 중후한 주제의식을 폄하할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톨킨의 골프도 [호빗]의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변질시키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여세를 몰아 [반지의 제왕 (혹은, 반지의 군주)]도 영화로, 책으로 볼 예정입니다. 한 번 봤었지만, [호빗]을 바탕에 깔고 다시 본다면 더 재미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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