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 : 권영욱 좀비소설집 - 문장장르소설선 5 문장장르소설선 5
권영욱 / 내친구 / 2013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이라는 책은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입니다. '좀비소설집'이라고 하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좀비라고 하는 존재가 의미하는 바가 아무래도 소통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라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첫 편인 '고려장'은, 좀비가 된 할아버지를 산채로 파묻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짧은 소품 격의 책이며, 옛부터 흘러내려오는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것이지만, 그 결말은 살짝 뜬금없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싣고 갔던 리어카를 다시 가지고 내려와 잘 단도리 하는 아들. 아버지는 리어카를 불태워버리라고 일갈하지만, 아들은 덤덤하게, 아버지가 좀비가 되시면 이 리어카를 다시 사용해야 할테니 잘 보관해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섬뜩함 반, 감동 반, 아버지는 아들을 그러 안고 펑펑 울게 되는데. 여기까지야 익히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무원과 국가의 행동. 미담을 괴담으로 만들어 박멸하고야 마는 정부의 이야기는, 2차 피해 예방이라는 명목하에 국민의 기본권 알기를 우습게 아는 현대 사회의 모든 정부의 행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이해 당사자 간의 중재일 것입니다. 정부는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며, 국가 내부의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에서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것일진대... 뜬금없는 정부의 갑 오브 갑 행태는 씁쓸함을 주는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편인 '좀비가 너무 많아'는 남 박사가 좀비의 불사성 연구를 진행하면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야기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담겨 있는데, 간혹 천안함 사건 같은 이야기가 변주되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7편의 단편 중에 가장 읽기 힘든 편이었습니다. 과유불급... 간혹 현실과 이야기를 연결짓고 싶어하는 작가의 욕망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직접적이면서 넘치면 글읽기가 불편함이 있습니다. 

 

세 번째 편인 '헬로, 소돔'은 성경에 등장하는 롯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잘 각색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결말 부분은 이야기 전체와 맞지 않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메리카 대륙에, 핵탄두를 투하하여 땅을 정화하기로 하지만, 버림받은 롯과 아내, 그리고 두 딸이 택하는 마지막은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라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불타오를 땅에서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는 세 모녀의 환희는... 마지막 멸망의 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희망이라 불편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 편인 '인육'은 잡아먹는 사람이 잡아먹히는 아이러니를 잘 포착한 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의 후계자가 처하게 된 비극적 상황이, 1인칭으로 더도 덜도 없이 유쾌한 목소리로 표현되면서, 마지막의 반전까지 잘 이어진 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섯째 편인 '사랑한다는 일'은 참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편은 스포일러를 담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가지만,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편이었던 듯 싶습니다. 

 

여섯째 편인 '호상'은, 제 습작품인 '호상'과 오버랩되었지만... 내용은 (당연히) 전혀 다르며, 제목도 중의적인 의미로,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떠올린 주인공의 마음을 잘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좀비 바이러스의 치료약이 개발된 다행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덕택에 편안한 마음으로 - 좀비가 창궐하는 이야기는 역시 불편함이 있습니다 -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볼 수 있는 편이었습니다. 일곱 편 중에서 가장 현실과 잇대어 있으면서, 현실에 오버랩시킬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편인 '안녕하세요, 언젠가 좀비가 될 여러분'은, 작가가 단편집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시킬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주인공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부모님의 죽음. 자신이 처한 부조리함을 온갖 곳에 토로하고 싶지만... 좀비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 앞에서 안타까움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주인공의 심사가 이야기에서 점차 고조되다가 탁, 하고 꺾이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한 터부를 가지고 있다보니, 이야기 밑에 자리잡고 있을 흐름에 대한 이해가 없어, 약간은 짧고 서투른 독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비가 객체로 다루어지는 이야기보다, 좀비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작가가 좀비를 덧입고, 사회와 개인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써 주시길 기대하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뭉글뭉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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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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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E.H.카는 이 책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들에게 주목할만한 관점을 하나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더 정확하게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증주의 역사학의 아이디어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랑케가 실증주의 역사학을 주창한 이래로, 사실을 주욱 쌓아올려가다보면 사실들이 이야기 할 것이라는 믿음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왔지만, 실제로 그것이 역사 연구의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가,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현재와 공명할 수 있는 사실을 뽑아내어 현재로 가지고 올 때, 비로소 과거의 사건은 현재에 유의미함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관을 가지고 있는 법. E.H.카는 역사가의 주관성이 현재와 공명함으로써 객관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즉, 역사가의 관점이 현재를 오롯이 설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역사가 개인의 관점이 아닌, 시대의 관점이 될 수 있으며, 객관성 획득의 담보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 현재에의 시의성을 획득했을 때, 역사가의 역사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즉, 역사가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결정론적인 역사 인식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것이 헤겔과 마르크스입니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의 귀결은, 마치 역사가 걸어야 할 하나의 법칙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작금의 자연과학도 절대적인 하나의 법칙 대신에, 현상을 규명하는 이론에 대한 제시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19세기만 하더라도 세상 전체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서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여 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로 과학에서도, 역사에서도 그런 법칙은 없다는 것이 E.H.카의 견해입니다. 다만...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류의 노정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류의 노정을 저자는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편, 저자는 우연한 사건과 개인의 역할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관련하여,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은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암살 사건이 1차 세계대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은 중요한 원인들이 반드시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우연한 사건이나 한 사람의 인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위대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E.H.카의 견해로는 침소봉대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다양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있습니다. 꽤 긴 경제학 책이지만, 실은 역사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읽고 있습니다. 아니, 실은 여러 역사책을 두루두루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책을 읽어가다보면, 여러 사건들을 통한 견해를 갖기 보다는 사실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를 통찰이 아닌 지식의 편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디테일한 팩트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그 사건이 현재와 공명하는 양상에는 애써 눈을 돌리는 경우들이 많은 것이죠.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부터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은,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지금 조선 시대 초입을 읽고 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많은데 역사가의 견해는 세세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현재와의 연관성을 갖는 역사가의 견해는 없는.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은 저자의 의견들이 강력하게 표명되어 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저자 개인이 현재의 사회외 공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이 있는... 역사적 사실과 현재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탓이겠지요.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터부가 있다보니, 과거사를 현재에 비추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흐름이 넓게 퍼져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현재에 비추어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만길 교수의 [고쳐쓴 한국근대사], [고쳐쓴 한국현대사]가 그런 시도라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보다 더 이른 시대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시도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아니, 이미 그런 다양한 관점에의 책들이 많은데, 그것을 아직도 몰랐던 것이라면... 그것은 독자인 제가 반성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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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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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책인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실은, 책이 나오던 시기에 구매해서 그 당시에 시간을 좀 두고 다 읽었었는데... (20101225-20110302) 그 당시에는 시간을 두고 읽다보니 제대로 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커서, 지난 주에 책을 다시 부여잡고 (20130109) 금새 읽어내었습니다(20130111). 

 

책을 읽다보면, 몰입해서 집중해서 읽는 경우가 있고, 어느 정도 읽다가 보면 책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져서 듬성듬성 읽거나 혹은 읽기를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가다가 책을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혹은 책의 문체나 번역체가 도무지 읽기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자본을 넘어선 자본], [사회학에의 초대]).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책읽기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서 듬성듬성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합니다. 

 

한참 책에 몰입하려고 하다보면 불현듯 인터넷 웹서핑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어 책을 덮고 노트북/아이패드를 열어보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열린 인터넷 웹공간은 잠시잠깐 집중했던 책읽기에 들어간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용하도록 만듭니다. 실은, 어린이 인터넷 중독을 이야기하지만, 저를 포함한 어른들이 인터넷 중독에 더 심하게 빠진 것은 아닐지 크게 우려해보기도 합니다. 

 

여하튼, 지난 번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는 몰입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짧은 시간 동안에 책에 푹 빠져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왜 이 책이 우리나라 독서인들을 열광시켰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어마어마한 부수가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주제인 '정의론'에 대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초유의 판매 사례를 나타낸 책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정(의)한 사회의 흐름에 대한 고찰 및 반성에 대한 의미가 책의 판매 양상으로 드러난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있었고,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촛불집회나 정부의 여러 돌출행동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와 그 궤를 같이하여 해석해내기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의'하면 흔히 생각하는 '올바른 행동(미덕)'에 대한 책만은 아닙니다. 물론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미덕'이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주장하며 칸트나 롤스의 정의론 및 공리주의자들의 정의론에 이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칸트나 롤스의 정의론은 '미덕'으로써의 '정의'와는 그 궤가 미묘하게 뒤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정의론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설명하고 주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리주의 철학과 칸트 및 롤스를 가지고 와서 정의론에 대한 전반적인 양상을 이해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이야기하는 '미덕'으로써의 정의와 비교해보게 함으로써 '정의'라는 덕목에 대한 내면적 울림을 풍성하게 해주는 책이지, '부정(의)한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 정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옳은 행동에 대한 주요한 세 가지 견해인 '행복'과 '자유', 그리고 '미덕'에 대하여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철학적 사유 속에 빠져보도록 합니다. 이 때, '행복'과 '미덕'이 목적론적인 정의론이라고 한다면, '자유'는 수단적이며 내면적인 정의론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공리주의자들에게 정의로운 행동이란 사회의 행복량을 증가시키는 행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해야 마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한다면, 칸트의 경우에는 자신이 자율적으로, 다른 것의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롤스는 칸트의 정의론과 그 흐름을 같이 하지만, 정의로운 사유나 행동을 위해서 '무지의 장막'이라는 조건 아래에서의 가언합의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칩니다. 책의 이야기와는 조금 엇나갔지만, 도덕 시간에 '공정'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 6학년 8단원 -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더랬습니다. 

 

서양철학사를 보면, '미덕'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순서를 따라 연대표에 등장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목적론적 철학 사유를 뒤흔드는 계몽주의 하에서의 인간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흐름들은, 유물론적 관점에 따른 행복의 계량으로 전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철학사를 주욱 훑다보면 인간 내면에 본질적인 자유를 선사하는 칸트가 우뚝 솟아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아직 저는 현대 철학의 여러 흐름에 대해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철학사에 대해 밝은 것도 아니지만, 칸트가 꽤나 주목받는 위치라는 것 정도는 주워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칸트의 이야기를 문외한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압축 요약시켜두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칸트의 편이 아닌, 가장 구닥다리 옛날 것으로 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에 자신의 동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집단 - 공동체 - 을 덧입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정의가 단지 공정함에 대한 문제는 아니라 가치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덕목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저자는 케네디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예를 통해, 개인의 종교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기보다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인 문제를 위하여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개인의 생각이 정치의 영역에 깊숙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킨타이어의 주장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는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충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충돌을 해결하는데 중립적인 견해는 문제를 회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며, 다양한 이해관계의 이면에 자리잡은 개인의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배경을 배척하기 때문에 논의의 외부환경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합니다. 즉, 공리주의자들의 계량화된 행복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개인에게서 모든 영향력을 걷어낸 후에 본연의 모습으로 선택하여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자유가 가진 개인 지향적 정의론은, 공동체가 가진 다양한 문제를 제대로 감내할 수 없도록 만는다는 논지로 저자는 '공동체'가 '미덕'을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로운 생각과 행동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칸트와 롤스를 조금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이나 [정의론] 같은 책을 읽을 깜냥은 안되니... 마이클 센델 교수의 이 책을 발판삼아, 주요한 철학적 논제인 정의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아마도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예시들은 학생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정의롭게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개인과 사회를 만들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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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영화/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를 본 이야기부터 해야할 듯 하네요. 

 

[호빗 : 뜻밖의 여정 (이하, 호빗)]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랜 시절동안 환상 소설과 벗하여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여러 권의 환상 소설을 읽고, 환상 소설 작가 몇 분을 만나고, 환상 소설 독자 몇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환상 소설에 관한 글을 써 왔던 시간이, 그 동안 영화를 꽤나 오래 보지 않고 지내왔던 저를 영화관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표는 요즘 대세(!)인 IMAX 3D HFR로 보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한 번 예매했었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바뀌어버린 밤낮 탓에 예매를 취소했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스크린이 내려갈 듯 하다는 위기감(!)에 부랴부랴 예매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IMAX를 많이 추천하시는 이유가 스케일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영화의 스케일은... 원작 자체가 박력있는 장면을 많이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다툼과 알력이 주된 장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대규모 전투 신 같은 박력이 등장하는 장면은 한 두 장면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IMAX가 나쁘지 않은 이유, 아니, 좋다고 해야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촬영장소인 뉴질랜드의 풍광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토리 상 부수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눈 덮인 설산이 스크린 저편에 쫙, 하고 나타날 때에는 정말... 가슴까지 시리는 느낌을, 스토리와는 별개로 받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3D는... 제가 그닥 시력이 좋은 탓이 아니라 - 안경을 벗으면 자막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수도 없죠 - 그리고 서든 어택같은 FPS 게임을 30분 이상하면 심한 두통과 함께 구토할만큼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한 편이라,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간혹가다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듯한 인물들 - 고블린 왕... 어우... 불쾌... - 과 사물들 - 날아다니는 것들이 제 앞으로 날아올 때 - 을 통해, 지금 내가 3D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만... 굳이 3D가 아니라도 괜찮을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흐름에 3D의 기술적 요소는 영화를 색다르게 만드는 첨가물 정도이지, 요리의 중요한 재료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FR은, 기본적인 영화가 1초에 24~30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장시켜, 1초에 48프레임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촬영기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기술적인 부분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보신 분들의 평으로는 화면의 선명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 기술적인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정말 또렷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꼭 집에서 1080D 블루레이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제 영화보는 자세가 워낙 삐딱한 탓에, 약간만 자세를 흐리멍텅하게 하면 바로 초점이 흐려지는 3D 영화인 탓에 영화의 4분의 1 정도는 흐리멍텅한 화면을 본 듯 합니다. 

 

결론은... 다음에 영화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기면 3D는 빼고, IMAX HFR로!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 상의 이야기이니까, 이 영화는 모닝스타가 난무하고 스포일러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없지만, 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를 직접 받아들이시는 부분에 익숙하신 분들께서는, 이 밑의 부분을 넘어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꾸벅.)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 [호빗]은 책 [호빗]의 약 3분의 1 정도의 이야기까지를 다룹니다. 

 

빌보 배긴스가 골룸의 반지를 얻고, 고블린들의 소굴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는 늑대들을 만나 위험에 빠졌다가 독수리들의 도움을 받는 부분까지를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들은, 원작의 부분들과 영화의 부분들이 꽤나 많이 차이가 났다는 부분입니다. 가장 크게 차이를 보였던 부분은, 책은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모험담을 유쾌하게, 까다롭고 벅찬 부분에서도 그 상쾌함이 활자 사이사이로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영화는 드워프들의 숙명 - 왕국을 되찾겠다! - 이 원작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 강조되기도 하여 보는 내내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가장 큰 것은, 책 [호빗]은 실은 간단한 소품처럼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영화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의 연계고리를 슬쩍슬쩍 흘리면서 스토리에 스케일을 부여하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는 심지어 백색의 사루만과 갈라드리엘까지 나옵니다! 리벤델에 방문했던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이야기는 책에서는 편안한 안식과 휴식을 얻었던 단 여섯 페이지의 서술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복선을 암시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장면으로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참나무방패 소린과 큰 갈등관계를 가지는 오크왕 아조그는, 책에서는 한 번 언급되는데 불과한 '고블린' 아조그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참나무방패 소린과 빌보 배긴스는 영화에서 큰 갈등관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 종족간의 기본 품성이 달라 살짝살짝 가볍게 툴툴거리는 정도인 사이인 두 사람이, 영화에서는 특히 참나무방패 소린이 빌보 배긴스를 하찮게 여기기까지 하다니요. 

 

물론, 영화가 원작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을테지요. 모든 영화는 원작을 발판삼아 재창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고, 심지어는 원작보다 더 나은 영화가 있기도 할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작품은 이문열 씨의 원작보다 박종원 감독의 영화가 훨씬 더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빗]의 경우에 영화의 재창조가 불편했던 이유는, 원작이 가졌던 유쾌하고 상쾌한 - 마치 호빗이라는 종족들처럼, 혹은 드워프라는 종족들처럼 - 이야기의 튀어오르는 느낌이 영화의 비장미에 그냥 묻혀버렸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골룸과 빌보 배긴스가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내용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를 회색의 간달프가 베오른에게 소개하는 책의 장면 같은 것은 이야기를 꽤나 가볍게 진행시켜주는 장면들이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었는데, 영화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무거운 흐름에 책의 상쾌한 장면들이 얹어지는 바람에 계속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그 무거운 흐름은... 영화의 다음 편이 더 나와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얻었던 유쾌함을 영화 속에서 많이 빼앗겨버렸다고 할까요. 어색한 갈등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흐름은... 원작을 읽고 보았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다음 편은 보겠지만, 아마 오늘 본 [호빗]의 첫 편을 영화로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호빗]의 이야기를 [반지의 제왕]처럼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책 [호빗]은 저자인 J.R.R.톨킨이 45세때 썼던 글입니다. 기본적으로 톨킨의 세계관은 북유럽의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가지고 2차 세계, 책에서는 '중간계 the Middle Earth'라고 명명하고 있는 곳이죠. 2차 세계는 환상 소설의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가 아닌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비현실세계가 환상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까닭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현실 배경이 아니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 배경의 이야기는 반드시 현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현실을 배경으로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상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펼쳐 놓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2차 세계는 두 모양 중 하나입니다. 현실과 연결된 '옷장'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현실과 전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던지. [나니아 연대 이야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소설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은 현실 세계와 전혀 연결된 고리가 없죠. '중간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따라서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이야기 공간입니다. 

 

[호빗]은 그런 이야기이기보다는, 조금 스케일이 큰 우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야기는 어둡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편안한 자세로 가볍게 깔깔거리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로부터 15년 뒤에 쓰여지는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유혹, 그리고 강한 의지 - 혹은 신앙 - 에 대한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호빗]은 그런 생각 없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를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필요도 없고, 혹은 개인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본연의 명암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 속에서 굳이 찾아낼 필요도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세계(this world)가 아닌 이세계(異世界)를 들여다보면서 이세계(this world)가 주는 여러가지 짐으로부터 잠시 비켜설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책의 부분 중에서, 위에 잠시 언급한대로, 베오른을 찾아가는 회색의 간달프와 빌보 배긴스가, 그들의 동료인 드워프 열 세 명을 소개하는 장면을 가장 유쾌하고 재미난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회색의 간달프가 자신의 모험담을 베오른에게 이야기하면서 까탈스러운 베오른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대규모 일행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운율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영도 씨의 소설인 [퓨처 워커]에서 나오는 테페리나이스, 즉 테니스는, 이 책 [호빗]의 '골프 Golf'를 오마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소설의 흐름을 방해하는 익살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톨킨도 소설의 흐름에 별 상관 없는 골프 같은 익살을 부리는 것을 보니까, 이 책 [호빗]이 참 가볍게 쓰여지고 읽혀질 수 있는 소품 같은 글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퓨처 워커]의 중후한 주제의식을 폄하할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톨킨의 골프도 [호빗]의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변질시키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여세를 몰아 [반지의 제왕 (혹은, 반지의 군주)]도 영화로, 책으로 볼 예정입니다. 한 번 봤었지만, [호빗]을 바탕에 깔고 다시 본다면 더 재미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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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침몰하면서 모든 문제가 표면화되었습니다. 2013년, 우리나라는 이제 정부가 두 번째 바뀌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기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남유럽을 강타한 경제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중국은 고도성장에 정체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는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929년, 블랙 먼데이 이후로 경기 침체에 대한 대응은 이자율을 낮추고 돈을 찍어내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만약 제로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소비보다는 부의 축적으로 방향이 결정된다면 적절한 인플레이션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경기는 활성화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대응 시나리오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경제 불황에 맞서서 언급한대로 이자율을 낮추고 양적완화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면 될텐데... 

 

실제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취하고 있는 경제적 대응이 바로 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계속 기준금리를 3%에 고정시키고는 인플레이션이 있더라도 소비가 진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양적 완화를 시장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은 계속 정체의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활발한 금융 자본의 움직임에 의한 주식 시장만 꾸준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이것이 경기의 회복과 긴밀하게 연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무역이론과 경제지리학을 통합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그런 연구 성과 이전에, 폴 크루그먼은 한창 모기지 버블이 화려하게 요동칠 때, 경고하고 불황을 예고한 것으로 더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이후에 폴 크루그먼의 여러 저서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저희 집에만 해도 그 당시에 샀던 저자의 저서가 세 권이나 있습니다. 

 

이제서야 그 중 한 권을 다 읽어내었습니다. 나머지 두 권은... 아마 읽다가 중간에 그만둔 듯 싶습니다. (쿨럭)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을 읽으면, 가깝게는 미국에서 시작된 2007년의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부터해서 우리나라를 위시한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 위기에 대한 자세한 코멘터리가, 이 글의 첫 부분에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여러 경제 위기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강조점은, '자기입증형 패닉'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부동산 가격은 오르지 않을 것이다'는 일반의 인식은 결국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주가가 떨어지다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라는 믿음 없이 경제 주체가 패닉 상태에 빠지면, 단적인 예로 뱅크런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폴 크루그먼의 주된 주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지금까지의 방법이 아닌, 조금 더 현재의 상황에 맞게 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고안해야하고, 저자는 이 글의 말미에서 '신용경색의 완화'와 '소비의 지원'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면서 더 많은 자본의 투입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위의 양적 완화의 해결 방안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금융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 - 투기적 자본 흐름의 추적 및 제한 - 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은 쉽게 쓰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경제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쓰여졌으니까요. 현재 세계 각국이 대응하고 있는 여러 정책이 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앞으로 이런 경제 위기가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지, 이 책을 참고로 하여 한 번 예측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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