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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제인에어 납치사건(이하, 납치사건)]이라는 책에 매력을 느낄만한 사람은 역시, [제인 에어]를 읽고 눈에 이슬 한 방울 고여본 적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중 2 때 문고판으로 읽고 고 2 때 독서실에서 한 차례 더 읽을 때, 저는 살짝 맺힌 눈가의 이슬을 스윽- 닦아내면서 제인에어와 로체스터가 맺어진 것이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결말이이 너무나 좋고 또 좋아서 소리없는 웃음을 웃으며 - 독서실에서 소리 내면 안됩니다! - 책장을 살며시 덮었던 여운을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같은 이에게는 이런 점이 크게 어필하는 부분이겠고, 저같지 않은 - [제인 에어]나 고전 영소설을 많이 읽지 못한 - 이들에게는 이런 점이 꽤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만큼 이 책의 작가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 혹은 영어권의 다양한 사건 사고를 왜곡 혹은 변형의 방법으로 계속적으로 꾸준하게 끌어내고 있습니다.
<혹시, 스트래트퍼드의 세익스피어와 런던의 세익스피어가 동명이인으로 존재하면서 2인 1역을 했다는 이야기라든지, 세익스피어의 서른 네 편의 희곡이 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로 다른 네 사람, 혹은 당대의 가장 훌륭한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세익스피어>라는 필명을 사용해서 쓴 글이라는 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납치사건]류의 책을 읽을 때, 독서가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배경지식이 어떤 의미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접근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작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결국은 글쓰는이 자신의 개인적인 것을 기본삼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시대를 배경으로 서술된 사실적인 글의 경우에는, 글쓰는이와 독자의 배경지식과 시대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는 주어진 상태이므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쉬운 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개념에 근거하거나 혹은 동시대의 것이 아닌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힘겨운 글읽기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쓰는 이가 던지는 배경을 흡수하고 나서 본격적인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납치사건]이 가지고 있는 접근의 어려움은, <사실적인><소설>이 아니라면 어느 글이나 가지고 있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또는, 바꾸어 생각해보면, <사실적인><소설>은 <사실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소설 혹은 소설이 아닌 글> 보다는 독자의 폭이 축소되는 부분도 있으니, 그런 경우에는 어떤 의미에서 되려 사실적인 소설이 더 어려운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즉, [납치사건]에서 느껴지는 그런 생경한 부분은 어떤 글이나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며, 중요한 것은 [납치사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매력?
그렇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글자체의 매력보다는 소위 <장르>의 매력을 가지고 책을 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요즈음의 독자들은 편식을 하는 듯 합니다. 물론, 내가 좋은 것을 내가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한다면 별로 드릴 말씀은 없지만, 혹시 처음부터 한가지만 먹다보니 다른 것의 맛을 모르는 경우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할겝니다.
그렇다고, 마냥 잡식이 좋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이 건강에 훨씬 좋지 않습니까? (웃음)
그렇게 건너뛰다가 만난 [납치사건]의 매력은...
1. 소재의 매력입니다.
내가 만약 후치라면, [드래곤 라자]라는 책을 재미나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저는 후치 대신에 칼에 제 자신을 접목시켜봤지만, 그런 작중인물과의 동일화는 소설을 읽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며, 매력적인 상상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소재로 끌어온 것이죠. [납치사건]에는 무수히 많은 영문학사의 기린아들의 작품이 나옵니다. 때로는 영미문학 전공자도 생경한 인물도, 작품도 나옵니다. 그리고 유명한 작품들이 줄을 서서 책 속에서 아우성칩니다. 그 중의 몇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제로 이(異)세계에서 이[this]세계로 뛰쳐나오기도 하며, 제인 에어도 이 곳 황량하고 삭막한 세상으로 뛰어나옵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어느날 밤 자다가 꾼 꿈에서 만난 미래소년 코난과 그의 친구 포비, 그리고 저의 와이프만큼 매력적인 라나와 함께 즐기는 한밤의 유희. 꿈에서 얻을 수 있는 대리만족 만큼이나, 우리는 글이 주는 개연성을 통하여 또다른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소설 장르는 모름지기 개연성에 바탕을 둔 대리만족을 향한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실주의적인 소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험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있음직한 일>일테고 그것을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일상이 아닌 <환상>에 기반한 환상 소설의 경우에는, 특히 인간 내면이 무의식중에 지향하는 이데아를 현대적인 말과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납치사건]이 가지는 매력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인물의 매력입니다.
서즈데이 넥스트, 고서를 지키는 SO(특수작전망)-27의 비밀 요원, 크림반도에서 진행중인 영-러 전쟁의 참전 용사, 그리고 그 곳에서 오빠를 잃은 여동생.
주인공은 서즈데이 넥스트이고, 환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치고는 제일 현대적 의미의 다양성을 한 몸에(?!) 안고 있는 등장인물입니다.
톨킨의 환상 소설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전형적인 인물 성격을 통한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한 인물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을 미묘하게 드러내기보다는, 각 등장인물 한 사람마다 일개 인간이 지니고 살아가는 속성을 제각기 부여함으로써 등장인물 전체를 합쳤을 때 비로소 인간 한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양상을 보여주는, 선굵은 혹은 전형적인 인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넥스트는 그와는 달리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 군인이고, 위험한 아버지를 두었으며, 상이용사에, 오빠와 약혼자를 전쟁터에서 잃고(?!), 그리고 하데스에게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 다사다난한 갈등의 양상 속에서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서즈데이 넥스트를 가운데 두고서, 허구와 허구 속의 허구에서 인물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면서 서즈데이 넥스트를 반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는가. 인물 자체의 매력보다는, 인물이 시대와 주변의 인물들과 어울리는 양태를 통해서 매력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서즈데이 넥스트는, 현대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 이제 흔들리는 자아를 지닌 개인은 현대소설의 전형적인 인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놀라울 것도 없이... - 인물상입니다. 그녀를 봐서는 여타의 인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에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전형적입니다. 독특하게 보이는 바, 그들의 성향은 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 사이에서 범상하게 행동하고 범상하게 사고하는 서즈데이 넥스트를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글 속에서 등장하는 제인 에어라든지 로체스터 이하 고전 소설 속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왜곡된 듯, 그러면서도 설득력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서즈데이의 눈으로 비춰줌으로써, 우리가 흔히 범하는 소설의 선명성(?)에 대한 오해를 비꼬는 효과 또한 가지고 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 편안함의 매력
많은 서평들에서도 언급하는 듯 한데, 이 글은 고전적인 서술기법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잘 못느꼈지만, 영화적 서술 - 마치 영화의 장면 전환이나 화자의 시선 등 - 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뭐, 그런 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정보를 드리겠다는 차원에서이지요.
제가 느낀 편안함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이 글의 주제가 뭐냐, 고 물으시면서 글을 혹평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글이 주제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큰 오산이지요. 이야깃거리는... 이미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단순히 주제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 글쓴이가 자신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글 속에 담궈두는 일인 것이지요. 그 의도가 주제 뿐이라면, 이 세상에 읽을 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납치사건]은 작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환상 - 정말로, 독자라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인 - 의 세계를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잘 <풀어낸> 작가의 역량 덕택에 빨려들듯이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요즘 소설 쪽에서는 그다지 생산적이지는 않은 논쟁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학적인가, 아닌가. 과연 문학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학자들의 군자연한 사설을 늘어놓는 것 이전에,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문학은 무엇입니까? 저는, 요즘 독서 인구의 감소가, 글을 긍정적으로 읽기 보다는 일단 부정적인 시선부터 가지게 되는 풍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단점을 찾아보려는 독서의 태도,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독자-작가 간의 소통과 관계를 통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수단 중 조금 더 의뭉스럽고 여백이 많은 수단인 소설 문학에서는 당연히 독자-작가 간에 암묵적인 긍정과 연합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작가를 일단 삐딱하게 보고, 작가는 독자에게 무례한...
말이 조금 엇나갔지만, 요는, [납치사건]은 다른 책보다도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글의 배경이 되는 영국 문학에 대한 약간 - 아주 약간 - 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글은 사전 지식으로 읽는 것이 아니니, 그런 면을 차치고라도 글은 재미있고 경쾌하며, 환상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도해 및 기존의 소설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법들에서 상당부분 자유롭습니다. (그것을 몇 분은 영화적인 서술, 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재미있는 소설.
재미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협의의 것만은 아닐겝니다. 제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선배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짜릿하게 울리며 아릿하게 파고드는 그러면서 흐릿하게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그 이야기를 많은 이들은 감동, 전율, 공감 등의 표현으로 드러내겠지만, 광의의 의미로 그것은 결국 작가와 독자가 소통한 흔적이며, 그것이 바로 재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협의의 재미는... 광의의 재미의 의미 속에 당연히 포함되겠지요. 전율은... 시대를 관통하고 묘하게 반추하는 은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름대로 주제를 가지고 한 번 써봤습니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이 읽을만한 글이라는 것을 이 잡글을 읽는 이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하니, 주관적인 여러 생각들이 개입하고 파고드는군요.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감상/비평을 쓴다고 끄적대지만 결국 쓸데없는 잡글만 생산하는 제게... 이런 작업은 분명히 <창작> 활동의 하나이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 잡글을 읽는 <독자>분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소통>은 우리가 글을 쓰고 읽는 근원적인 의미이며, 비로소 우리의 행위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되겠지요.
좋은 책, 꼭 사서 읽으시기를 권하며.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