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배명훈 씨는 환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홈페이지 http://readingfantasy.pe.kr 의 초청연재공간에 단편을 게재해주시기도 하셨던 작가입니다. 이름이 낯이 익은터라, [타워]가 나왔을 때 눈여겨 봐두었다가, 재작년에 기회가 있어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된 책입니다.


아. [타워]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은 '빈스토크' 만으로도 100점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빈스토크'는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명입니다. 647층짜리 빌딩국가, 4층에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국경이 있는 나라. 국가의 개념을 실체적인 3차원적 개념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빈스토크'. 국경분쟁은 빌딩 출입구에서 시작되고, 아래로부터 드나들수는 있지만 앞뒤좌우나 위로는 드나들 수 없는 빈스토크라는 국가.


이 길지 않은 한 권의 책 속에는, 빈스토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다루어지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과 사고들 속에서 작중인물들이 겪는 여러가지 일과 고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고 있는 여러가지 사건과 사고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2차원적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3차원적 공간의 문제의 발생을 기화로 그 흘러가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더 풍성한 사고의 확장을 돕는다는 생각을 글을 읽으면서 하게 됩니다. 



이 책은 옴니버스 식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터라,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여섯 편의 글과 권말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들의 대립 속에서 한 공무원이 자신의 이해를 넓혀가면서도 공직에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 [타워] 같은 책들이 가진 목적 - 효용? - 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에게, 곁가지들이 없는 가공된 현실을 통해, 실제로 발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곁가지들을 다 쳐낸 채 몸통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소통의 끈을 만든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상 - 상상, 비현실, 설정 - 에 근거한 세계가 의도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맞부닥치는 사건에 대한 본질적 문제점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곁가지들을 다 도려낸 채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령, [반지의 제왕(군주?)] 같은 책에서는, 인간의 선을 향한 마음과 악을 열망하는 마음이 순수하게 부닥치고 갈등하는 장면을 다루기 위해, 현실에서 빌보와 프로도를 빼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빌보와 프로도가 우리와 같은 세계에 발디디고 있다면, 그들이 겪는 선과 악의 본질적 투쟁은 아마도 여러가지 비본질적인 사건과 사고들에 의해 비틀려지고 가려져 버려서 작가의 발제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선과 악의 다양한 투쟁의 양상은 현실 세계를 발딛고 살아가는 작중 인물로써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가령 남여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과 전쟁' 같은 프로그램도 충분히 그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것을 배제한, 선과 악의 격렬하고 미묘한 투쟁의 양상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가 그 주변의 모든 것을 배제하고 통제하기를 원한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다른 곳이어야 합니다.


[타워]가 그 힘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준 단편은 바로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이라고 생각한 바, 현실과 잇대어 있는 환상 속에서, 현실과 묘하게 겹쳐보이는 상황을 통해, 현실 이상의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컨대,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의 묘한 작명부터 그 단체들이 추구하는 이상(!)까지,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잇대어 있으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상황을 통해서, 현실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넓은 것까지 아우르며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작중화자의 오묘한 공무원 식 어투(응?) 및 사고방식(응??)과 잘 어울려 단번에 읽어낼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의 경우에 이성적으로는, 지나친 낭만이며, 현대 사회와 이성에 대한 작가의 낙관이 조금 오버한 경향이 있다, 라고 생각하였지만, 감성적으로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인 제 마음 속의 어떤 부분과 공명하여 내는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고로 실종된 민소를 찾기 위해, 차가울 것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함으로써, 따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가가 기대하는 미래 시대의 유토피아를 위한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여, 그 무모함에 이성적으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도, 그 호기로움에 감성적으로 공명하게 되는 단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단편들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딱히 제가 이해하고 공명할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해야할지 발견할 수 없고, 무엇을 느껴야할지 받을 수 없는, 그런 나머지 네 편의 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은, 다른 '빈스토크' 이야기들을 기대해보게 됩니다. '빈스토크'는,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100점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하였습니다. 비록 '빈스토크'를 통한 이야기들에 크게 공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를 통해 '우수함'의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다만 이 작품 [타워]가 '빈스토크' 이야기의 첫 권이라면, 이후에 작가가 제 2, 제 3의 빈스토크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비추어내고, 조금 더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 책 [타워]는 조금 더 의미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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