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인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학파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경제학에는 문외한인지라,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대략 이해한 바로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이로써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경구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를 꼽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큰 틀을 제공하게 된 시대적 배경으로는 산업혁명을 꼽아야 합니다. 산업혁명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생산혁명입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하나의 물품을 생산하던 시대가, 도시 사회의 발달과 함께 여러 사람의 힘을 합하여 하나의 물품을 생산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이제 여러 사람의 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인 증기 기관의 힘을 생산에 도입하는 시대로 변모함으로써 비로소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생산 댓가로 발생하는 이윤의 분배에 대한 이론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범주가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경제학에 대한 논의는 주로, 생산과 소비에 대한 자연스런 균형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장에 대한 신뢰로 귀결되는 듯 합니다. 초과생산은 가격을 낮추고, 초과소비는 가격을 높이다가, 비로소 그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생산과 소비의 장인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다는 것이 초기 경제학 이론의 근간이라고 이해했고, 그것이 고전파의 논리이기도 하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 즉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조절은 큰 시련을 맞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929년의 대공황입니다. 이 대공황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기인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요/공급과는 상관 없이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비약적으로 늘어난 농/공산품의 생산량이 전쟁이 끝난 후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과소비 풍조를 조장하다가 거품이 빵! 터져버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져버린 균형에 대해서, 존 메이나드 케인즈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자들의 대안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국가 재정의 본격적인 투입과 그를 위한 증세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금기는 1970년대 말쯤에 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함께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국가가 재정을 운용하게 될 때, 과연 공무원들이 경제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어서 재정 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비판과 함께, 눈먼 돈이다(!)라는 인식 때문에 국가가 효율적으로 공공 재정을 집행할 리가 없으므로, 민영화시켜 시장의 효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 득세하게 됩니다. 이것이 흔히 신자유주의 이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해가 하찮아 정리가 조악하지만 대략의 경제학의 흐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 혹여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저렇게 흘러가는 경제학의 흐름에 큰 반향을 주었지만, 제가 잘 몰라서 일단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몸담고 있는 제도주의학파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단지 그것 만으로는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러한 개입은 '제도'로써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학파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케인즈 주의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케인즈 주의도 아니기에, 재벌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2008년의 금융위기 심화 이후에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돌아선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의 경제 발전에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큰 공헌을 하였기에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의 개입을 용인해야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으며, 선진국들이 무역협정을 통하여 개발도상국들의 국가 보조를 통제하는 행위는 [사다리 걷어차기]라 하여 맹비난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장하준 교수의 학문적 경향 때문에, 1990년대 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초빙 때,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일색인 서울대학교 교수들 사이에서 비토되어 서울대 교수로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다른 이야기들도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대략의 흐름을 잡는데는 유용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는 실제로, 저자의 전작인 [나쁜 사마리아인들]보다는 그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다른 사레를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파훼를 시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맺는말에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책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전작들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해서 기시감이 꽤나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같은 경우, 장하준 교수의 책 중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 정승일 공저)] 을 읽었고, 저자의 책 중 가장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되는 [국가의 역할]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위의 책들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는 것이 쉬우면서도 집중하는데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같은 파트는, 실제로 다양한 주장과 논지가 얽힐 수 있고, 조금은 다양한 시각에서 소개될 수 있는데, 책의 구조상 대립적인 논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현상에 대한 시야가 제약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의 이러한 대립적 구조는, 저자의 의도라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명제들에 대해 선명한 반대항을 구축하여 그에 대한 파훼를 시도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우선 저자가 제시한 반대항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Thing 이외에도, 몇몇 대립되는 명제들은 제 3, 제 4의 명제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열린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에서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미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된다, 같은 경우, 주주가치 극대화라고 하는 유한주식회사의 절대선 격인 명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 논리를 제시하여, 주주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재 기업 질서를 되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측면 등의 여러 생각해 볼만한 좋은 논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주가치 극대화 원칙이란, 유한 책임 원칙의 주식회사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경영에 참여하는 이들의 리스크를 고려하는 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점점 자본의 비중이 노동의 비중보다 커지는 현 상황에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러한 주주가치 극대화 원칙이 기업의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업이 망하더라도 자본은 결코 손해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럴 헤저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는 듯 하며, 따라서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측면의 문제를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Thing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같은 경우, 기업의 파산법과 시민 개인에 대한 복지 제도를 병렬항으로 취급함으로써, 큰 정부에 대한 필요성을 신자유주의적 논지를 차용하여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장하준 교수의 책은 출간된 순서를 역으로 읽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선 책들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상당하고, 책 자체도 에세이처럼 가볍게 쓰여져서 몰입도도 떨어진데다가, 무엇보다 저자는 심혈을 기울였을 반대항에 대한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처렴 느껴지고, 각각의 명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의무감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의 책은, 한 권 정도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약에, 저처럼 경제학에 대해 초보자이면서, 아직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23가지]는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에세이 식이라면, 깊이는 옅은 대신, 접근성에서는 좋은 점이 있을 테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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