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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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토니 주트는 얼마전에 타계한 역사학자입니다. 저는 [포스트워 1945-2005]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저자는 [포스트워]에서 약간은 냉소적으로, 유럽의 좌와 우에 대하여 공정하게 기술했더랬는데, 느낌에는 우를 조금 더 냉정하게 봤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타계한 토니 주트의 유작 격인 [재평가]는, 부제처럼 20세기의 역사 위에 놓여졌던 여러 인물들에 대하여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으로 바라보는 책이며, 20세기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한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을 묶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서평'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바,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 무언가에 대해 다루어진 책에 대해서, 토니 주트는 그 책의 서평을 통해 20세기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관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태인인 저자가 이스라엘의 자기기만적 행사 -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행동 - 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릴적 유태인으로써의 경험을 바탕삼아,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가 어떻게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차갑게 이야기하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책의 주 내용이 인물에 대한 서평이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에는 저자의 견해 속에서 헤아려 다른 견해까지 살펴야한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쨌든, 20세기 서유럽과 미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한 번에 살펴내려가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으며, 제게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마지막 스무 페이지 조금 넘는 결어 부분은, 그 역할을 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 자신들이 독점하던 이슈가 이제는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므로 - 국가의 기능 전환과 함께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할지를 코치하는 부분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한 번 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20세기에 대한 단편적 이해가 자리잡으면, 다시 한 번 숙독할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역자가 여러 좋은 책들 - [포스트워 1945-2005] 도 - 을 번역하신바 있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역자에게 물어야할지 원저자에게 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어려워도 잘 읽히는 책도 간혹 있는데, 이 책은 어렵기도 하지만, 그 어려움 만큼이나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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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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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은, 이번 5월 연휴, 부산 2박 3일을 계획하면서 읽어보려고 샀던 책입니다. 

5월 연휴 기간에 부산에는 가지 못했었고, 이 책은 부산 여행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 책입니다. 


1.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 사학, 철학을 통칭하는 단어가 인문학일까? (중략) 인문학을 강조하는 정치가, 기업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은 '시장과 경제의 논리'에 서 있다. 즉 경제 효용의 시각에서 인문학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인문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문학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이것이 곧 새로운 상품 개발과 이윤 획득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과 이윤을 뒤따르는 인문학이 그 자체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이야말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자라면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략)
인문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8~9쪽)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정의대로, 사람을, 특히 범인(凡人)을 그 중심에 놓고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쓴 책입니다.

부산은 참 묘한 곳입니다. 일본과 가까운 탓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6.25 때에는 임시수도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 심지어는 북한의 -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던 곳이 부산이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부산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텀시티와 감천동 같은 공간이 한 도시 안에 펼쳐지는 곳.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인하면서 공존하여 가는 곳. 부산이라는 도시야말로 인문학적으로 한 번 쯤은 살펴볼만한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4년 전에 부산의 2박 3일이 그래서 기억에 새롭습니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해운대 한 쪽에 자리잡은 단촐한 해운대역의 느낌이라든지, 동해남부선을 타고 다니던 부산 도심의 다양한 풍경들. 보수동 헌책방 거리의 고즈넉함을 건너면 자갈치 시장이 주는 활기참과 맞닥뜨리는 그런 느낌들. 부산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 밀면, 노래방과 찜질방은 여러 모양들이 섞여들어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향유하는 부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부산의, 혹은 부산 범인(凡人)들의 삶의 모습들을 예찬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2.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실은 부산이 아닌 곳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주욱 읽어내려가다보면,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어디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사람사는 모양을 그만큼 잘 아울렀다고 할 수도 있고, 차라리 부산에만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뒤에 두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 가령 부산 문화의 장에서 소개한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나, 온천 이야기, 혹은 해수욕장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두지 않아도 무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로, 산동네 - 달동네가 아닌 - 이야기나 동해안 별신굿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 뜻에서 '바운스 조용필, 바운스 부산'의 제목이 달려 있는 절은... 부산의 리바운딩을 바라는 저자의 따뜻하다못해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의 부산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저자가 부산에서 나서 자란 부산 토박이도 아닌데...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드는 아쉬움은, 차라리 부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예컨대 위에서 언급하였던 부산 밀면 이야기나, (절)영도 및 영도 다리 이야기, 혹은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시배지로 추정되는 영도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왕에 [부산은 넓다]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넓은 부산에서'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 든달까요?

결국 저자는 자신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 인문학적 사유 - 를 책에 담기 위해 부산을 배경으로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산이 중심인 책은 아니다는 의심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번뜩 번뜩 듭니다. 


3.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저 같은 이에게는 너무나 먼 도시인 부산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여행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고, 맛집을 알려주고, 교통편과 숙소를 소개해주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도시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런 책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꽤나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산에 방문하게 된다면 - 네 번째의 여정이 되겠네요 -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방문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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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1927, 미국 - 꿈과 황금시대
빌 브라이슨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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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작가인 빌 브라이슨 때문입니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지은 작가입니다. 이 책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은 까닭에, 저자의 최신작을 믿고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인상깊었던 까닭은, 저자가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읽을만한 - 물론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가진 이에게 말이죠 - 과학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적 이론과 과학자에 대한 책입니다. 유명한 발견과 이론을 소개하고, 그를 둘러싼 과학자들을 이야기하는.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과학자는 아닙니다. 유시민 씨가 자신을 지칭하며 썼던 단어인 '지식소매상'에 어울리는. 그럼에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너무 깊지 않게 과학사와 과학적 발견, 과학자를 소개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책을 썼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흥미를 북돋게하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쓰는 그런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신작인 [여름, 1927, 미국]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2.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찰스 린드버그 이야기를 하다가, 대서양 횡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대서양 횡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 중에 특이할만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가, 그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또 나가고... 그러다가 다시 찰스 린드버그에게로 돌아오는. 천상 이야깃꾼에게 어울리는 그런 글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나게 책이 읽히는 편이고,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금새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을 통해 이어집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은 당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였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합니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린드버그의 비행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숭고하고 자연스럽고 화합을 유도하는 기쁨의 순간을 이 세상에 실현했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516쪽)
그러한 거대한 흐름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이전에는 가질 기회가 없었던 일체감이라는 감정을 준 하나의 계기라고 저자는 받아들인 듯 싶습니다. 이 책은 5월의 미국에서 9월의 미국까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의 성공과 거대한 퍼레이드의 열풍을 큰 줄기로 하여 세세한 미국의 일상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복원해두고 있습니다. 


3. 

이런 책이 즐거운 이유는, 지식의 조각을 꿰어낼 수 있는 틀을 준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니 베이브 루스를 알고 있고,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으며, 알 카포네와 금주령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영화에서 본 적이 있고, 1929년의 대공황에 대해서도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1927년 위에서 줄줄 엮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저자의 생각들이 드러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지적 유희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역사 관련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시대사에 대한 것도 아니요, 국가를 조명하는 것도 아닌,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꿰어맞추는 것. 저자의 역사적 시선이 그만큼 탁월해야 하겠고, 저자의 역사적 지식도 그만큼 풍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책은 어쨌든 독자를 만족시키겠지요. 읽을 거리가 넘쳐나니까요. 


4.

다만... 이 책은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모르거나, 대서양을 건너가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혹은 1920년대의 미국 사회와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피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치고는 분량은 좀 많은 - 500쪽이 조금 넘는 - 편이기도 하구요. 

다만, 미국과 미국의 역사에 관심은 조금 있는 편이라, 1920년대, 대공황 직전의 미국 사회의 가장 흥청거렸던 시기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인상깊게 보았던 뮤지컬 '시카고'도 이 시기 직전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27년의 미국의 여름은, 미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있는 시기였다고 생각했기에, 저자는 이 당시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이 책을 출간한 까치는, 아마도 예전 까치글방 출판사이겠지요? 얼마 전에 문발리 헌책방 골목에서 까치글방 책 중 절판본에 8만원, 10만원 택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는데... 까치글방은 좋은 책들을 많이 내는 출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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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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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출간한 역사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느낌은 '민음사가?'였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책들을 내고 있다고는 해도... 민음사까지 역사책을 낼 필요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죠. 민음사라면, 우리나라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만큼 꽤나 넓은 출판활동을 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처음에의 느낌은, 마치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든 듯 싶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죠. 


조금 세세히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저자를 '고용'하였다기보다는, '섭외'하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그런 형태의 역사서적 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출간은 하지만 개입은 없는. 아마 처음에 가졌던 막연한 거부감은, 저자 주도의 역사서적이 아닌 출판사 주도의 역사서적이 아닌가라는 의심, 그리고 과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역사적 안목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조금 더 관심있게 들여다보니, 집필 집단이 있어서 그 곳에서 집필이 이루어지고, 민음사는 출간 쪽에만 신경을 쓰는 듯해서, 거부감이나 의심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마침 역사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책의 느낌은, 논문집을 모아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각 전문 분야를 가진 집필진이 모여서, 자신들의 전문(관심) 분야에 대해서 세세하게 모아놓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 관련 서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국사 교과서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우선 시대별로 - 조선 전기, 조선 후기 등 - 정치적 사건을 나열한 후에, 경제/사회/문화적인 변화를 뭉뚱그려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5세기]는 우선 시대를 세기별로 나누고 있습니다. 대표 저자의 말대로, 21세기에 걸맞는 평등을 기치로 한 새로운 사관의 정립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존에 없었던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른 역사관의 서술은, 분절적인 느낌이 강하게 온다는 데에서 조금 생경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지만, 시대 안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밀도있는 서술에는 꽤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단은 더 두고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로 다루는 사건/현상은, 


태종의 왕권 강화

세종의 업적 중, 예악, 과학 기구, 훈민정음에 관련된 것

계유정난

경국대전


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현상을 중심으로하여, 조선 시대가 점차로 왕권을 강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어 언급하여 봅니다. 


민주주의 사태의 국민들이 왕정 시대의 지도자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기묘하다. 민주적 원리에 따라 수천만 명 중에서 뽑힌 지도자들보다 몇 명의 아들 중에서 선택된 세습 군주의 업적이 두드러진다면 민주주의 시대의 주권자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왕정 시대의 유일한 주권자였던 군주가 최대한으로 발휘한 역량을 존경해야 하는가, 질투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세종이 현대 한국인의 멘토로 군림하는 현상은 정작 세종의 시대를 역사적으로 보낸 데 어려움을 준다. (100~101쪽) 

아마도 시리즈를 시대순으로 출간하지 않고, 15세기를 처음을 엮은 것에는, 세종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비교불가능한 군주를 제시하는 것에 대한 유혹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종대왕 시절의 왕권 강화는 애민 정신과 함께였다고 할 수 있고, 그러한 애민 정신에 대한 서술이 세종대왕의 업적 속에 내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필이면 1400년에 태종이 즉위한다는 부분도, 왕권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선 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15세기라는 시대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국사 교과서나, 여러 통사류의 역사 관련 서적보다는, 초점을 분명하게 하여 세세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동시대의 세계 다른 나라 - 특히 중국 - 의 현상과 사건과 비교하여 세계사적인 흐름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부분에도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그래프, 사진, 도표 등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많이 주고 있다는 점에도 특징을 둘 수 있습니다. 종이질도 훌륭합니다. 반면에 텍스트의 양은 적다고 할 수 있죠. 책을 사면 부록으로 따라오는 작은 핸드북은, 책의 텍스트 부분만 따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읽을 양은 그만큼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통사류의 역사책을 많이 접해본 분들에게는 유용한 부분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보는데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게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16세기]도 사 두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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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리처드 오버리 지음, 조행복 옮김 / 교양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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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것은 아마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였을 것입니다. 도서관에서도 여러 차례 빌렸었고,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읽지 못하다가, 작년에 책을 구매하고 올해 초에 책을 읽기 시작해서, 비로소 다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는 독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독일의 제 3제국 체제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이래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 같은 구실도 합니다.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술술 넘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책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연대기 순이 아니라 주제 순입니다. 실은, 독소전쟁의 이야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습니다. 전쟁사에는 문외한인 편이어서 이 책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공방을 결정지은 독소전쟁의 대략이 나와있을까 생각했지만, 책은 양 독재 체제를 주제에 따라 비교하는 그런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독재 체제를 가장 잘 대조한 것은, 독일의 제 3제국은 독일의 민족적 정체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둔 일사불란한 독재 체제였고, 소련의 공산 국가는 인류의 진보를 위한 이상을 가졌지만 그것을 구현할 만한 역량이 발현될 기회도 실천 의지도 박약했던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독재 체제가 처했던 배경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독일은 어쨌든, 1871년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급격한 공업 발전과 함께 군국주의적인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한 국가입니다. 소련은, 그 공업 생산력이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들긴 했지만, 기본적인 체제는 농노 제도가 운영되는 지역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었던 봉건 전제 국가이면서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던 국가입니다. 두 독재 체제가 왜 하필이면 독일과 소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참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독재 체제 모두 당 우선의 정치 질서를 구축하였고, 국민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하나의 행동으로 움직여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이란 말은 두 정당이 '절대적인' 정당이라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거나 완전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 아니다. 그 용어는 두 정당이 자신들이 활동하는 사회의 '전체성(totality)'에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협의의 의미에서 볼 때 두 운동은 진정 전체주의적 열망을 품었으며, 결코 단순한 의회 정당이 아니었다. (268쪽) 

그리고 독일이 훨씬 강력한 전체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죠. 그것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임하는 독일과 소련의 위치를 결정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참 의아한 것은, 어떻게 두 독재 체제의 전체성 지향이 국민들에게 먹혔는가라는 부분입니다. 두 독재 체제 모두 유토피아적 국가 수립의 이상향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제시하면서, 체제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 대한 배제를 함께 구사하고 있습니다. 1936년부터 1938년에 걸친 소련의 숙청과 함께, 체제 수립 후에 지속적으로 유태인들에 대한 배제를 실시하는 독일의 경우에서 그러한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독재자 개인에 대한 숭배도 강화됩니다. 배제를 통해 반대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제거해 나가면서 사회의 전체성을 강화하는 것. 두 국가는 점차 전체성을 강화하면서 독재 체제를 지속해 나갑니다. 


이 부분에서 현대의 독재 체제가 용인되는 메커니즘을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두 경우에서 독재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은 주관적 요인(예를 들면 강한 인간들의 포부)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객관적인 법칙이었다. 그 결과, 도덕적 전치가 발생하여 정권과 그 대리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해방되었다. 두 체제는 인간의 변덕이 아니라 생물학적 필연이나 역사적 필연이 새로운 도덕 질서를 낳고 인간의 행위를 지배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한 역사적 힘은 스탈린이 '진정한 지식'과 '객관적 진리'라고 부른 것이나 히틀러가 '준엄하고 엄정한 자연 법칙'이라고 기술한 것의 원천이었다. 두 독재자는 자신들의 체제가 역사적 우연이라는 생각을 거부했고, 이 점에서 그 시대에는 '옳았다'. (397쪽)

배제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도덕적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면서, 독재 체제의 모든 비인간적인 행위가 눈 감아지는 것이겠죠. 이 지점에서 '구국의 결단'이라는 키워드가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법치주의라는 키워드도,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일탈한 개인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키워드로 작동합니다. (435쪽) 그러면서 더 높은 정의 - 독일은 아리아 민족의 이상향 건설, 소련은 모든 인민을 위한 유토피아 건설 - 아래에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두 독재 체제가 드러낸 공통점을 계속 지적하는 것으로써, 결국은 두 체제의 동일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독재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역자 후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독재 체제를 가깝게 살아간 놀라운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 우리나라나 북한에서 - 우리로써는 의미있게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총 14장 9백여쪽의 분량에서 4분의 3 정도 오는 시점부터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습니다. 책이 잘 안 읽혀지더군요. 그 부분부터는 조금 힘들게 책을 읽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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