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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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은, 이번 5월 연휴, 부산 2박 3일을 계획하면서 읽어보려고 샀던 책입니다. 

5월 연휴 기간에 부산에는 가지 못했었고, 이 책은 부산 여행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 책입니다. 


1.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 사학, 철학을 통칭하는 단어가 인문학일까? (중략) 인문학을 강조하는 정치가, 기업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은 '시장과 경제의 논리'에 서 있다. 즉 경제 효용의 시각에서 인문학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인문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문학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이것이 곧 새로운 상품 개발과 이윤 획득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과 이윤을 뒤따르는 인문학이 그 자체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이야말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자라면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략)
인문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8~9쪽)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정의대로, 사람을, 특히 범인(凡人)을 그 중심에 놓고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쓴 책입니다.

부산은 참 묘한 곳입니다. 일본과 가까운 탓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6.25 때에는 임시수도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 심지어는 북한의 -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던 곳이 부산이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부산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텀시티와 감천동 같은 공간이 한 도시 안에 펼쳐지는 곳.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인하면서 공존하여 가는 곳. 부산이라는 도시야말로 인문학적으로 한 번 쯤은 살펴볼만한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4년 전에 부산의 2박 3일이 그래서 기억에 새롭습니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해운대 한 쪽에 자리잡은 단촐한 해운대역의 느낌이라든지, 동해남부선을 타고 다니던 부산 도심의 다양한 풍경들. 보수동 헌책방 거리의 고즈넉함을 건너면 자갈치 시장이 주는 활기참과 맞닥뜨리는 그런 느낌들. 부산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 밀면, 노래방과 찜질방은 여러 모양들이 섞여들어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향유하는 부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부산의, 혹은 부산 범인(凡人)들의 삶의 모습들을 예찬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2.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실은 부산이 아닌 곳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주욱 읽어내려가다보면,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어디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사람사는 모양을 그만큼 잘 아울렀다고 할 수도 있고, 차라리 부산에만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뒤에 두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 가령 부산 문화의 장에서 소개한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나, 온천 이야기, 혹은 해수욕장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두지 않아도 무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로, 산동네 - 달동네가 아닌 - 이야기나 동해안 별신굿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 뜻에서 '바운스 조용필, 바운스 부산'의 제목이 달려 있는 절은... 부산의 리바운딩을 바라는 저자의 따뜻하다못해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의 부산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저자가 부산에서 나서 자란 부산 토박이도 아닌데...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드는 아쉬움은, 차라리 부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예컨대 위에서 언급하였던 부산 밀면 이야기나, (절)영도 및 영도 다리 이야기, 혹은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시배지로 추정되는 영도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왕에 [부산은 넓다]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넓은 부산에서'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 든달까요?

결국 저자는 자신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 인문학적 사유 - 를 책에 담기 위해 부산을 배경으로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산이 중심인 책은 아니다는 의심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번뜩 번뜩 듭니다. 


3.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저 같은 이에게는 너무나 먼 도시인 부산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여행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고, 맛집을 알려주고, 교통편과 숙소를 소개해주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도시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런 책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꽤나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산에 방문하게 된다면 - 네 번째의 여정이 되겠네요 -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방문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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