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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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인 E.H.카는 이 책을 통해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들에게 주목할만한 관점을 하나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더 정확하게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증주의 역사학의 아이디어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랑케가 실증주의 역사학을 주창한 이래로, 사실을 주욱 쌓아올려가다보면 사실들이 이야기 할 것이라는 믿음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왔지만, 실제로 그것이 역사 연구의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가,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현재와 공명할 수 있는 사실을 뽑아내어 현재로 가지고 올 때, 비로소 과거의 사건은 현재에 유의미함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관을 가지고 있는 법. E.H.카는 역사가의 주관성이 현재와 공명함으로써 객관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즉, 역사가의 관점이 현재를 오롯이 설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역사가 개인의 관점이 아닌, 시대의 관점이 될 수 있으며, 객관성 획득의 담보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 현재에의 시의성을 획득했을 때, 역사가의 역사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단초가 됩니다. 즉, 역사가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결정론적인 역사 인식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것이 헤겔과 마르크스입니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공동체의 귀결은, 마치 역사가 걸어야 할 하나의 법칙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작금의 자연과학도 절대적인 하나의 법칙 대신에, 현상을 규명하는 이론에 대한 제시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19세기만 하더라도 세상 전체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법칙이 있어서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여 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로 과학에서도, 역사에서도 그런 법칙은 없다는 것이 E.H.카의 견해입니다. 다만...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류의 노정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하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류의 노정을 저자는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한편, 저자는 우연한 사건과 개인의 역할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관련하여,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은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암살 사건이 1차 세계대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은 중요한 원인들이 반드시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우연한 사건이나 한 사람의 인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위대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E.H.카의 견해로는 침소봉대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다양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있습니다. 꽤 긴 경제학 책이지만, 실은 역사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읽고 있습니다. 아니, 실은 여러 역사책을 두루두루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책을 읽어가다보면, 여러 사건들을 통한 견해를 갖기 보다는 사실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를 통찰이 아닌 지식의 편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디테일한 팩트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그 사건이 현재와 공명하는 양상에는 애써 눈을 돌리는 경우들이 많은 것이죠.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부터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은,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을 지금 조선 시대 초입을 읽고 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많은데 역사가의 견해는 세세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현재와의 연관성을 갖는 역사가의 견해는 없는.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은 저자의 의견들이 강력하게 표명되어 있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저자 개인이 현재의 사회외 공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이 있는... 역사적 사실과 현재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탓이겠지요.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터부가 있다보니, 과거사를 현재에 비추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흐름이 넓게 퍼져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현재에 비추어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만길 교수의 [고쳐쓴 한국근대사], [고쳐쓴 한국현대사]가 그런 시도라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보다 더 이른 시대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시도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아니, 이미 그런 다양한 관점에의 책들이 많은데, 그것을 아직도 몰랐던 것이라면... 그것은 독자인 제가 반성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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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 일상생활의구조 -상 까치글방 97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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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은 총 여섯 권으로 구성된 책 중 첫 권입니다. 아마 원저작물이 여섯 권은 아니겠지요. 아마 번역하면서 여섯 권으로 나누어서 출간된 듯 합니다. 그런 책 중 첫 권인 이 책은 '일상생활의 구조 상'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미루어보건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은 우리나라에서는 두 권으로 분책되어 출간되었고, '일상생활의 구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 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이하, 물질문명)]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 책 [물질문명]이 방대한 1차 저작물을 가지고 중세 이후의 일상사를 일상생활의 범주에 따라 재조명해두었고, 그런 저자의 노고가 신대륙의 (재)발견 이후의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다양한 몰이해와 편견, 그리고 무지에 대한 경종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질문명 1-1]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 수의 무게, 일상의 양식: 빵, 사치품과 일상용품: 음식과 음료, 사치와 일상용품: 주택, 의복, 그리고 유행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각 장의 표제를 보건대, 이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근세 이후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구조'를 밝히려는 시도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정말 광범위한 당시 사료를 분석하고 언급하면서 중세 시대 이후 근대 시대의 초입까지의 일상생활을 차근차근히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현대 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중요한 사건들의 전개와 원인에 대한 해제를 기록해놓는데 그치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니, 머리로는 프랑스 대혁명을 생각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삶의 양상은 현대 프랑스 사회와 맞추어보는. 그렇다보니 특정한 사건과 일상의 사건이 유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을 당연하다고 알고 지내게 되는 것이죠. 

 

불현듯, 우리나라의 다양한 동시대 사료를 읽은 연후에, 우리나라 판 [물질문명]을 써본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실은 우리나라 역사책들도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특정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 탓에, 실제로 일상생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박약하다는 데에 인식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인데, 저자가 일상생활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은 분명,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일상생활과 일상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다양한 사물의 오고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고, 1권을 읽으면서 그러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지라, 우리나라의 경제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도 임란 이후의 일상생활의 양상을 복원한다면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저의 생각의 주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2권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만, 지금 [30년 전쟁]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해서 2권을 마치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야기의 주된 흐름과는 약간 벗어나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역사의 연구]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토인비는 험한 도전에 응전하는 것이 문명을 꽃피운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편안한 빈자리를 찾아간 문명이 활짝 꽃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침 [역사의 연구]도 지금 읽고 있는터라, 두 저자의 약간 다른 서술을 볼 수 있었습니다. 

 

2권의 독서도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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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 오늘의 유럽을 낳은 최초의 영토 전쟁 1618~1648
C. V. 웨지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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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찌보면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결정지었다고도 볼 수 있는, 30년 전쟁에 대한 책입니다. 책의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는 바처럼, 중세의 질서였던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면서, 이제 종교 아닌 '국가'가 새로운 질서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든 계기가 바로 30년 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아니,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국가'보다는 '민족'이라고 보아야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생활에 큰 헤게모니를 휘두르는 '민족'이라는 키워드는 바로 이 때부터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전까지 민족이라는 개념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30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신성로마제국의 경우, 오스트리아부터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을 다 아우르고 있는 방대한 영토였지만, 그들을 묶은 것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전통이라고 보아야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30년 전쟁이 벌어지고,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에스파냐 등등의 주변 국가들이 다 독일 땅으로 덤벼들면서 독일은 전통을 대신할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즉, 30년 전쟁 이전의 독일 땅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제후국들이 존재하였고, 그들 사이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전통의 끈으로 묶여 있었지만, 30년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제 독일땅에 사는 이들은 '우리'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프로이센의 통일로 결실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과정 가운데, 어떻게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조)와 독일 제후국 사이에 심정적인 장벽이들어서는지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스물 여덟 살에 이 책을 썼습니다. 다양한 참고 자료들을 사용하여 전쟁 이전과 전쟁 과정, 그리고 전쟁 이후를 자세하고 지루하지 않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량의 책은, 원래 읽다보면 지치고 루즈해지는데,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매력을 가진 책입니다. 그것이 저자의 역량인지, 혹은 마치 중국의 고대사를 보는 듯한, 다양한 인물과 제후국, 주변 국가 및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길지 않은 시간에 - 1주일 - 짧지 않은 분량의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자의 인물평이 엇갈리거나 모순되는 경우들이 간혹 느껴지기도 하였고 - 가령 한 인물에 대한 사건마다의 촌평이 엇갈리거나 일관되지 못하고 약간 핀트가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 저자의 견해가 지엽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30년 동안 등장인물도 어찌나 많은지... 독서에 텀을 두었다면 아마 주요 인물들이 기억나지 않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역명은 정말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책의 표제부에 관련 지도가 있었지만, 지도를 참조하면서 독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도도 당시 지도인지라 현재 지명과 매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꽤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울러, 정치사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어, 일상사 혹은 경제·문화사 관련한 정보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시대에 대한 저자의 뚜렷한 통찰이 보이지는 않으며, 이벤트 중심의 서술이 이루어진데 대한 아쉬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중세와 근대를 가로지르는 가장 주요한 사건 중 하나인 '종교개혁'이 직접적으로 서유럽의 역사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는 - 또한 '신대륙의 발견'이 기반이 되어 발발하게 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는 - 이 30년 전쟁에 대해서 이만큼 잘 정돈하여 쓴 책을 쉽게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므로, 30년 전쟁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드게임 취미를 가지고 있고, 보드게임 중에서 30년 전쟁을 테마로 한 다양한 게임이 있는 터라 - Here I Stand, Revolution: the Dutch Revolt 1618-1648, Wallenstein 등 -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역자인 남경태 씨는, [개념어사전]의 저자이며, [생각의 역사]의 역자로서, 두 권 다 좋은 인상을 가졌던 책에 관여하였던 분인지라, 역자의 안목을 믿고 책을 고른 부분도 있음을 언급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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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 -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피터 왓슨 지음, 남경태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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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마 번역/출간되었을 때 구매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그리고 엊그제 드디어 다 읽어내었습니다. 


이 책, [생각의 역사 Ⅰ]은 요즘 여러모로 유행하는 역사 서술 방식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나 [1차세계대전사] 같은 책이라면 어떤 특정한 사건의 추이를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포스트워 1945-2005] 같은 책이라면 어느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의 조건] 같은 책이라면 어느 특정한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하되 전기라기 보다는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생각의 역사 Ⅰ]  같은 책이라면 특정된 사건과 특정한 장소, 혹은 특정한 인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특정한 키워드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방식으로 쓰여지는 역사 관련 서적이 점차로 많아지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 집에만 해도 제 손길을 기다리는 [총, 균, 쇠]나 [지식의 역사] 혹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책들이 있네요. 아, 이 책의 후속작일 것으로 생각하는 [생각의 역사 Ⅱ]도 저의 손길을 기다리면 다소곳이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폭넓다는 것을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 수록된 각주목록만 120여쪽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주는 저자가 참고한, 혹은 저자가 읽으면서 영감을 떠올렸을 꽤 많은 책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도 저자는 다양한 인물의 견해나 주장 혹은 발견을 인용하거나 축약하거나 평가함으로써,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견해들을 모아두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인물과 사건, 혹은 발견과 주장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며, 그보다 훨씬 많은, 대부분은 처음 듣는 내용들이 계속 밀려들면서 독자로 하여금 글의 흐름을 곱씹으면서 읽어내려가도록 하는 재미를 책이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폭넓음은,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 서유럽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서 인도와 동아시아, 아랍권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안배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탄생하면서 지금까지 해오고 발전시켜온 다양한 '생각'들이 저자가 제시하는 키워드를 향해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을 독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인류가 '생각'을 시작한 이래로 드러난 여러 사건과 경험과 주장과 발견을 크게 세 가지 키워드인 '영혼', '유럽', '실험'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정치와 경제, 종교와 사상, 발견과 주장들을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관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장점으로는, 저자가 단순히 여러 '생각'들을 모아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도 피력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책의 말미에 나오는 프로이트에 대한 경우, 저자는 다양한 '생각'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생각'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잘 모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누천년동안 이어져온 이래로,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와 관계와 인간본연에 대해서 생각을 피력해왔고 그것을 다양하게 펼쳐두었습니다. 그러한 다양다종의 사유들을 잘 간추려만 놓아도 유의미할 것인데, 이 책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다양함에 대한 명확한 견해도 표현함으로써, 독자가 흐름을 잃지 않도록 고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천여쪽이 넘어가는 두꺼운 책임에도, 그래서 한걸음에 내어달리지 못하고 여러 걸음으로 나누어 달려도, 큰 줄기를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 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나온 것인지, 혹은 '하나'의 생각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을 가지고 온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처음 그 생각을 가졌던 이의 것에 그나마 가까운 것인지, 혹은 저자에 의해 사용하기 쉽게 가공된 것인지를, 실은 독자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저만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것들입니다. 저자가 그것을 가지고 인류의 생각을 '영혼'과 '유럽' 그리고 '실험' 이라는 키워드로 꿰어 낸 것인지, 혹은 미리 생각해 둔 키워드를 위해 인류의 다종다양한 생각을 맞추었는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책들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1차 저작물로 가야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바로 그 책들과 생각들로 가야, 더 실감나는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종류의 책은 얕을 수 밖에 없다는 난점도 있습니다. 백과사전류의 책들이 그러하겠지만, 이런 책은,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새로운 탐험로를 발견하기 위한 자극물로써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런 옅은 책을 통해 다른 지향점에 대한 도전을 받는 것이 더 의미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저같은 옅은 독자들은, 이런 옅은 책을 통해, 이것이 전부인 양 받아들이고 만족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만에 하나) 왜곡되었을 경우에는 자칫 생각의 방향성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반드시 원전을 접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저같은 옅은 독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난점은, 저자의 글이 쉽고, 키워드가 명확하게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그 방대한 양 때문에 갈래길에 대한 고민이 힘들다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하나의 생각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과 발견들을 제시하고는 자신의 키워드를 통해 가야할 길로 안내하지만, 워낙에 양이 많은 탓에, 여러 갈래길에 대한 고민보다는, 저자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기에 벅찬 부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책은 생각의 역사인데, 독자인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서 읽고 있더라는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쓰여졌습니다. 읽고 나서 명확한 방향이 잡히지는 않지만, 종횡무진 지식과 생각 사이를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 덕택에 읽은 후에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언급한대로, 저자의 키워드가 설득력있게 와닿지는 못하고, 그냥 여러 지식과 생각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은 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남경태 씨는 [개념어 사전]이라는 책애서 만난 바가 있습니다. 사고 나서 처음 읽을 때는 후회하였지만, 다 읽고 나서는 '잘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개념어 사전] 저자의 안목을 믿고, 이 책 [생각의 역사 Ⅰ]을 골랐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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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사 (양장)
존 키건 지음, 조행복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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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주제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러한 까닭에 열심히 읽기도 하는 편이지만, 전쟁사에 관련된 책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을 거시적인 것으로 바라본, 혹은 전쟁이 하나의 과정으로 기술된 책은 조금 접해보았지만, 전쟁 자체를 목적으로 둔 책을 읽은 기억은 거의 나질 않습니다.


이 책, [1차 세계대전사(이하, 1차)]는, 많은 현대사 책들이 1차 세계대전을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필연적 귀결로 이야기하거나, 혹은 2차 세계대전의 파국을 내재한 과정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온전히 1차 세계대전에 초점을 맞추어 건조하게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차]를 읽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건조하게 전투의 추이를 이야기하는 와중에, 그림자료가 상당히 부족하다는데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궤는 다르지만, [로마인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전투의 장면에서 간략한 도해를 첨부하여 텍스트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다양한 전투 장면들이 건조하지만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이미지를 통해 텍스트의 이해도를 높이는데에도 불친절함이 분명합니다. 혹여라도, 전쟁사에 관심이 있어, 세게부도라도 하나 옆에 놓고 지명과 병력 배치를 하나하나 표시하면서 읽어내려갈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은 상당히 좋은 책임에 분명하지만, 저와 같이 전쟁의 기술적인 측면에는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읽기임에 분명합니다. 따라서, 600여쪽의 분량 중 절반에 이를 때까지의 독서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절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전투에 대한 건조한 묘사는 조금 줄고, 전투의 전후 상황에 조금 더 치중하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읽기에 조금 편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분량의 절반 이후로는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 미묘하게 얽혀있던 국가간의 동맹/연합 관계가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과 그에 대처하는 각국의 대처가 미묘하게 엇나가면서 시작한 전쟁인 탓에, 세계대전의 초중반인 1915년도까지는 전투의 양상이 국가 단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저자의 기술이 상대적으로 전투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책 전반부의 흐름은 분절적이고 건조한 미시적 서술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던 세계대전은, 각국의 동맹/연합 관계가 개별 전투에서 결합되고, 미국의 참전과 러시아의 급작스러운 강화로 인해, 참전국 간의 이해관계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분산되어 있던 전투의 양상이 통일성과 집중성을 띄게 되고, 그 시점 이후로 어렵지 않게 독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실, [1차]를 읽다보면, 1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럽의 제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합리성에 기반한 전쟁 억제 장치를 구축하고 있었고, 그것은 19세기의 격변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국가 간의 첨예한 이해 관계의 대립 속에서도 파국을 막는 안전장치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각국의 연합과 동맹은 각 이해관계국간의 것이었고, 삼각관계를 넘어선 다자간 연합/동맹체는 아니었으므로, 다양한 세력들은 직접적인 억제 장치로 연결된 것보다는 한 다리 건너 간접적인 이해 관계를 수립하고 있었는데, 적의 적은 동지라는 이러한 합리성이, 병렬적인 국가 간 연계고리 속 어딘가에서 방아쇠를 당겨버리게 되었고, 그것이 연쇄적으로 발화함으로써, 유럽은 겁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리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국가 간의 동맹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억제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에 대하여 세르비아를 응징하려는 것은 기실 세계대전을 목적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맹과 연합이 파국을 억제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느 시점에서 어긋나 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바로잡기에는 유럽 제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있던 탓에 발화선을 끊어내지 못해버리고 폭탄은 터진 것이겠지요. 


이러한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은, 제정 러시아의 붕괴와 볼셰비키 혁명 앞에서 변곡점을 맞이하고,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극적인 귀결에 이르게 됩니다. 독일의 제2제국은 붕괴되고 동유럽의 각 민족은 민족국가를 수립하며, 이제 러시아에서 시작된 레닌의 혁명은 다시 유럽과 세계를 전쟁의 겁화로 몰고 들어갈 불씨가 됩니다. 



이 책, [1차]는 전쟁에 대한 낭만인 생각이 핓빛 죽음과 처연한 고통의 실존 앞에서 산산이 조각나는 것을 세밀하고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는 책입니다. 국가 간의 이해 관계와 그에 따른 전황의 극적인 변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대의(라고 믿었던 것)에 뛰어들었던 개인이 전쟁 앞에서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처연하게 그리고 있기도 합니다. 청장년 인구 중 10%가 넘는 이들이 너무도 쉽게 죽음의 문턱을 넘어버리는 장면을 기술하는 제 전투 장면에서는, 마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프롤로그에서의 아무렇지도 않은 죽음이 주는 섬뜩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대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지는 않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었던 필연 속에서 개인과 집단, 국가가 겪었던 겁화의 소용돌이를 제 3자적인 입장에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역사책을 읽다보면 영웅적인 개인 혹은 파국을 야기하는 개인이 마치 역사의 변곡점을 제공하는 것처럼 그리는 저자들도 좀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것 없이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골고루 저자의 이해를 분배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히 명성을 접해왔던 책을, 약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이 2010년 4월 19일이었네요. 그 동안 몇 번 멈췄다 다시 시작했다가... - 다 읽게 되어서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전작인 [2차 세계대전사]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독서였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역자는 조행복 씨 입니다. 얼마 전 작고한 토니 주트의 [포스트워 1945-2005]를 번역한 역자이기도 합니다. [포스트워 1945-2005]는 참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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