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1927, 미국 - 꿈과 황금시대
빌 브라이슨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작가인 빌 브라이슨 때문입니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지은 작가입니다. 이 책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은 까닭에, 저자의 최신작을 믿고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인상깊었던 까닭은, 저자가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읽을만한 - 물론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가진 이에게 말이죠 - 과학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적 이론과 과학자에 대한 책입니다. 유명한 발견과 이론을 소개하고, 그를 둘러싼 과학자들을 이야기하는.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과학자는 아닙니다. 유시민 씨가 자신을 지칭하며 썼던 단어인 '지식소매상'에 어울리는. 그럼에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너무 깊지 않게 과학사와 과학적 발견, 과학자를 소개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책을 썼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흥미를 북돋게하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쓰는 그런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신작인 [여름, 1927, 미국]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2.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찰스 린드버그 이야기를 하다가, 대서양 횡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대서양 횡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 중에 특이할만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가, 그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또 나가고... 그러다가 다시 찰스 린드버그에게로 돌아오는. 천상 이야깃꾼에게 어울리는 그런 글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나게 책이 읽히는 편이고,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금새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을 통해 이어집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은 당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였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합니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린드버그의 비행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숭고하고 자연스럽고 화합을 유도하는 기쁨의 순간을 이 세상에 실현했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516쪽)
그러한 거대한 흐름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이전에는 가질 기회가 없었던 일체감이라는 감정을 준 하나의 계기라고 저자는 받아들인 듯 싶습니다. 이 책은 5월의 미국에서 9월의 미국까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의 성공과 거대한 퍼레이드의 열풍을 큰 줄기로 하여 세세한 미국의 일상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복원해두고 있습니다. 


3. 

이런 책이 즐거운 이유는, 지식의 조각을 꿰어낼 수 있는 틀을 준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니 베이브 루스를 알고 있고,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으며, 알 카포네와 금주령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영화에서 본 적이 있고, 1929년의 대공황에 대해서도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1927년 위에서 줄줄 엮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저자의 생각들이 드러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지적 유희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역사 관련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시대사에 대한 것도 아니요, 국가를 조명하는 것도 아닌,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꿰어맞추는 것. 저자의 역사적 시선이 그만큼 탁월해야 하겠고, 저자의 역사적 지식도 그만큼 풍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책은 어쨌든 독자를 만족시키겠지요. 읽을 거리가 넘쳐나니까요. 


4.

다만... 이 책은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모르거나, 대서양을 건너가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혹은 1920년대의 미국 사회와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피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치고는 분량은 좀 많은 - 500쪽이 조금 넘는 - 편이기도 하구요. 

다만, 미국과 미국의 역사에 관심은 조금 있는 편이라, 1920년대, 대공황 직전의 미국 사회의 가장 흥청거렸던 시기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인상깊게 보았던 뮤지컬 '시카고'도 이 시기 직전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27년의 미국의 여름은, 미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있는 시기였다고 생각했기에, 저자는 이 당시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이 책을 출간한 까치는, 아마도 예전 까치글방 출판사이겠지요? 얼마 전에 문발리 헌책방 골목에서 까치글방 책 중 절판본에 8만원, 10만원 택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는데... 까치글방은 좋은 책들을 많이 내는 출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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