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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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는 한국사 시리즈로 [민음 한국사]를 출간하기 시작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시대인 조선 시대의 역사부터, '100년'을 하나의 시대로 한 독특한 방식의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5, 16, 17, 18세기, 총 네 시대의 시리즈를 출간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일견 이해가 되는 것이, 조선 건국이 1392년,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종료가 1598년, 정조의 승하가 1800년 등 조선 시대는 주요한 시대에 대한 맺고 끊음이 세기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예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하튼, 첫 시리즈인 [민음 한국사: 조선 01-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은 세종대왕 시기를 중심으로 왕조 초기에 활짝 피어버린 조선 시대의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는 역사상 최고의 암군 - 연산군 - 을 시작으로 하여 네 번의 사화를 거쳐 왜의 침략으로 세기말을 맞이하는 16세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민음 한국사]를 읽으면서, 특히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사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술 자체가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별 방식이라든지, 인물/사건별 방식이 아니라, 주제별 방식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보아오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이기 때문에,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어느정도 머릿 속에 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16세기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처음이라면 당시 시대를 머릿 속에 하나의 선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사건별/인물별 줄기 위에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첨언하는 형태의 역사 서술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국가 경영에 적용하면서 왕이라고 하는 절대 권력 조차도 성리학 속에 묶어두려는 성리학자들의 분투와 좌절, 4전 5기의 과정을 다루면서, 중국 같으면 왕조가 교체될 수도 있었을 사건이 '반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서 조선왕조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조와 중종, 두 명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위한 장치로써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척신 세력이, 다른 방식으로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던 - 그러면서 왕 또한 이상 속에 포섭하려고 했던 - 사림 세력과 부딪치면서 사림 세력을 배척하게 되었는지 - 네 번의 사화 -, 그러면서 다섯 번째로 재기에 성공한 사림 세력이 결국 선조 연간에 완전한 성리학 중심의 정권을 확립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붕당을 구성하게 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이 삼사가 그 가운데 역할한 것을 자세하게 부연하고 있으며, 정암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그 좌절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종 연간에 벌어진 조선왕조의 쇠퇴와 척신 정치의 마지막 불꽃, 그리고 그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닥친 일본의 급변하는 정세와 그로 인한 임진왜란의 추이 또한 자세하게 살피면서 16세기에 대한 서술을 종료하고 있습니다. 


책은 관련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건과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확연하게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역사의 해석에는 견해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겠지요. 그러나 이 정도의 논거를 가지고 펼치는 견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는, 저자들의 견해를 맞게 이해하였다면, 때이른 르네상스 뒤에 찾아온 쇠퇴를, 성리학이라는 이상을 통하여 어떻게든 늦추어가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 사이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더 나았을 것을, 조선왕조는 희대의 명군주를 왕조 초기에 너무 몰아서 가져버린 탓에, 길고 지루한 중후기를 보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생명줄을 연장시킨 것은, 아마도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되겠지요. 어떤 분들의 평가대로, 조선 왕조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앞과 뒤가 전혀 다른 왕조인 듯 보이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책의 미덕은, 16세기 당시 세계사적 흐름을 책의 첫머리에 밝힘으로써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일반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사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서술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그러한 요소가 정치적으로, 경제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시대 전체를 분절이 아닌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을 볼 때보다 더 밀도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올 시리즈를 기대하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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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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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저자는 전우용 씨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저자는 이전부터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역사학자답게 역사적 사실 속에서 반추하는 트윗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자의 트윗을 다른 경로로 -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습니다 - 접할 기회를 가지면서, 저자의 탁월한 통찰에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담긴 책을 여러가지로 검색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안 후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1'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여행에 관심을 가지면서였습니다. 


어릴적 부모님따라 다녀왔던 동해안 해수욕장이나, 교회 수련회 등의 특수 목적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해 봤던 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2박 3일의 부산행이 유일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학비를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했던 고학생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스물 다섯 살의 초여름 어느날, 동기 녀석이 살고 있던 부산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딱히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면허가 없었고, 따라서 차도 없었습니다. 면허를 따고 나니, 학원 강사 신세라 어디로 갈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고, 둘째 낳고 세 번째 대학 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하다보니, 역시나 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불현듯 부산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의 석가탄신일 날, 당일치기로 부산행을 감행했었지요. 아침 여덟시에 출발해서, 첫 기착지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이 오후 네 시. 자정 무렵까지 단지 여덟 시간 동안 부산 공기를 맡기 위해서 왕복 열 여섯 시간의 운전을 결행했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쁜,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은, 아마도 재작년 전주 행이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고, 더 나아가서는 서울의 인사동, 삼청동 등지에서 느꼈던 의아함이 그 단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어번의 인사동 행은, 왜 여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삼청동 행은, 이 곳이 왜 이런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당일로 다녀온 전주 행은, 그런 제 의문을 확실한 무언가로 만드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오리엔탈리즘 학습은 토속적인 역사, 죽은 역사는 즐거이 상품화하면서도 아직껏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는 아프고 창피하다는 이유로 감추고 숨기는 태도를 깊이 심어주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대장간은 후딱 복원하면서, 난지도 역사를 살아서 증언해온 구조물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버리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21세기형 '역사의 시대'요 '문화의 시대'였다. (중략)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10~11쪽)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한 여행일 뿐, 그 소비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는 그런 여행, 그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한동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작년 여름을 통째로 건너 뛰는 - 세째의 출산도 있었지만 - 까닭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은, 소비하는 여행 이상을 누릴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만 명소가 어디이고 맛집이 어디인지, 어떤 숙소에서 어떻게 소비하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지내온 삶을, 그 곳이 가지고 있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는 곳은 누군가 살던 곳이고, 무언가를 하던 곳이며, 그러면서 생각과 생각이 맞닥뜨리던 그런 곳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감동은 소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여정을 보낼 수 있다면, 아마 다음에도 같은 장소를 한 번 더 찾을 수 있겠지요. 그 곳의 삶과 관계 속에, 그 곳을 지내온 나의 삶과 관계도 녹아들었기에, 조금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그 곳은, 나를 한 번 더 당겨들게 되겠지요. 조금 벅차더라도, 이런 책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2.


이 책은, 도시로써의 서울, 농촌과 대비되는 장소의 의미를 가진 서울이 지내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가 '도시사'라는 학문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도시의 역사에 대한 책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마침 저자가 책 중간에 '도시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내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그런 서울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이 책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일제에 의해 좌절되어가던 시기인 '대한제국'기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이행되지 못한 근대의 신기루를 뒤로 한 채, 탈근대 - 가져본 적 없는 시기라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 의 몸부림이 가시화되던 시기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바라보는 서울은 '결핍의 공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시(또는 서울)는 없는 게 없이 풍족한 공간이고 농촌(또는 시골)은 여러 가지가 부족한 빈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물질의 총량에 대해서만 통용될 수 있을 뿐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에 관한 한, 도시는 오히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결핍의 공간'이다. (중략) 앞에서 중세 도시의 크기를 규정한 여러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 경제적으로 가치 없는 요소들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력적, 기술적 토대를 만들지 못했던 것도 도시 확장을 제약한 중요 배경이었다. (272~273쪽) 


도시는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소비 지향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따라서 도시는 '생산 자체보다는 그 생산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128쪽)'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도시는 그러한 인류의 모습을 '지표 위에 도로와 필지, 그 위에 우뚝 솟은 건조물'이라는 '관계망이 그려낸 그림(128쪽)'입니다. 풍부하나 빈약한, 넘치는 듯 하나 메마른, 그런 공간 중에서도, 특히 서울이라는 곳은 극장 하나, 공연장 하나 없는, 유교적 사상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영된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시 서울, '그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24쪽)'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는, 그러나 실은 '농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루이스 멈퍼드, 24~25쪽에서 재인용)'하는 외로운 공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57쪽)'을 살면서 '공간과 장소를 공유해 본 경험을 갖지 못한 채(56쪽)', 2~3m앞의 간판들에 시야를 뺏겨버려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그런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경박성(188~189쪽)'을 한껏 드러내며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 채, 혹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면서 '서울과 시골 사이에 시간적 장벽을 쌓아가는(101쪽)' 그런 삶을 자랑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자리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서울 사람이 아주 낙향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중략) 이제 부의 원천은 더 이상 농토에 국한되지 않았다. (중략) 노론이니 소론이니 남인이니 하여 학연으로 혼맥으로 끼리끼리 뭉친 서울의 대관 나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못 하는 일이 벗었고 안 하는 짓이 없었다. 특히 시골의 인재를 빨아올리는 빨판 구실을 해왔던 과거제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중략)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중략)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후략). (100~101쪽) 


요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획일적인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된 서울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온 시골의 문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거기와 같은. 풍부한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마도 서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문화(7쪽)'가 서울을 외피로 하여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으니, 21세기의 문화가 분명할 것입니다. 



3. 


이 책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견해를 곁들여,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서울에 대해, 압구정과 석파정의 서울에 대해, 양란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서울에 대해,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 5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장소로써 주목하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서울을 주목하여 보는 편입니다. 특히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고종 황제입니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대원군의 것보다 더 많을 듯 싶습니다. 보통 고종이라면, 대원군 혹은 민비 - 명성황후라고도 하는 - 와의 연계 속에서 고찰하는 시선도 많지만, 몇 년 전에 읽었던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같은 책에서 드러나는 조금은 긍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고종에 대해서, 나약하고 의존적인 군주였다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확고한 통치 철학을 가진 군주로써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181쪽)' 탓에 고종의 의도는 그 방향을 곧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긴 하지만 말이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마도 천지가 개벽하는 것같은 급변의 시대에, 고종이 군주로서 자신의 의지를 오롯이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 속에서, 농촌 - 시골 - 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고 있는 그런 책입니다. 장소적으로는, 경운궁(덕수궁), 종로,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을 언급하지만, 어디를 가기 위해서 읽어야하는 답사기 격의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을 사는 이로써, 서울에 대해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에 대해서, 거대한 위력을 휘두르는 메가시티로써의 서울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있게 바라보고 싶은 분들이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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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여행 - 역사기행으로 읽는 일본사
하종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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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갖기가 쉽지 않았던 개인적인 까닭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차례의 침략과 그를 대하는 무례함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1592년의 임진왜란, 1876년의 운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한 국권의 침탈, 그리고 왜구의 긴 기간에 걸친 약탈 등이, 명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유가 일본과 일본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함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일본은 있다(서현섭)], [일본은 없다(전여옥 씨의 표절작품으로 드러난)] 정도의 일본 개설서 - 게다가 [일본은 없다]의 경우에는 저자의 표절이라는 윤리적 흠결까지 - 를 가지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 수도, 알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요 근래에 해보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벌써 2년째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일본 교토 여행 준비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읽으면서, 일본 역사에 대한 대체적인 흐름을 알 필요를 느꼈고, 이런저런 인터넷 상의 추천글을 보고 이 책, [일본사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책의 서술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은, 일본의 43개 현을 훗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주욱 훑으면서, 각 현의 주요한 장소와 그에 따른 사건을 간략하게 안내하는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입니다. 예컨대, 어느 현의 어느 도시에는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식인 것이죠.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렵고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일본 역사에 대한 좁고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분절적으로 제시되는 역사적 사실을 받기가 버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집중력 없이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 역사를 기술한 두 번째 부분인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과 첫 부분인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바뀌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더랬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배치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앞부분에 오고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뒤에 자리잡았다면, 아마 뒷부분에 자리잡은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은 사족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부분을 모아 전체를 조망하는데 사용하는 책의 서술방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초보 독자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량에 비해 독서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도는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역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삶의 총합일텐데, 막상 역사를 배우면서도 어디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이해의 폭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 부분의 '답사로 찾는 일본'이, 뒤이은 '역사로 찾는 일본'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면서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사를 다룬 두 번째 부분이 굉장히 알찼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룬 여러 책을 읽어본 편이지만, 이 책은 정치사와 주요 사건을 주요한 맥으로 하면서도,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당시 기층민의 삶의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당시 시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모여서 역사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여 책이 이벤트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 약력대로라면 저자의 전공 분야는 현대사 쪽인데도 불구하고, 고대사와 중세사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글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00여쪽에 이르는 많지 않은 두 번째 부분이지만, 알차게 실어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먼저 읽은 입장에서, 유홍준 교수의 책과 일본의 지명/인명에 대한 표기법이 달라서 - 예컨대, 유홍준 교수는 '어소', 이 책의 저자는 '고쇼' -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는 표기 옆에 한자를 병기하여서 혼란이 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진 자료가 - 비록 흑백이지만 - 포함되어 있어서 이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딱 적절한 크기와 분량의 사진과 그림, 도표 자료는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적절하게 도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분량은 적당하지만, 내용의 밀도는 읽기에 조금 버거운, 그럼에도 좋은 책을 통해서 일본사의 큰 흐름을 놓치는 부분 없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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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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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토니 주트는 얼마전에 타계한 역사학자입니다. 저는 [포스트워 1945-2005]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저자는 [포스트워]에서 약간은 냉소적으로, 유럽의 좌와 우에 대하여 공정하게 기술했더랬는데, 느낌에는 우를 조금 더 냉정하게 봤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타계한 토니 주트의 유작 격인 [재평가]는, 부제처럼 20세기의 역사 위에 놓여졌던 여러 인물들에 대하여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으로 바라보는 책이며, 20세기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한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을 묶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서평'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바,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 무언가에 대해 다루어진 책에 대해서, 토니 주트는 그 책의 서평을 통해 20세기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관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태인인 저자가 이스라엘의 자기기만적 행사 -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행동 - 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릴적 유태인으로써의 경험을 바탕삼아,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가 어떻게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차갑게 이야기하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책의 주 내용이 인물에 대한 서평이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에는 저자의 견해 속에서 헤아려 다른 견해까지 살펴야한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쨌든, 20세기 서유럽과 미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한 번에 살펴내려가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으며, 제게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마지막 스무 페이지 조금 넘는 결어 부분은, 그 역할을 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 자신들이 독점하던 이슈가 이제는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므로 - 국가의 기능 전환과 함께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할지를 코치하는 부분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한 번 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20세기에 대한 단편적 이해가 자리잡으면, 다시 한 번 숙독할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역자가 여러 좋은 책들 - [포스트워 1945-2005] 도 - 을 번역하신바 있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역자에게 물어야할지 원저자에게 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어려워도 잘 읽히는 책도 간혹 있는데, 이 책은 어렵기도 하지만, 그 어려움 만큼이나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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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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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은, 이번 5월 연휴, 부산 2박 3일을 계획하면서 읽어보려고 샀던 책입니다. 

5월 연휴 기간에 부산에는 가지 못했었고, 이 책은 부산 여행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 책입니다. 


1.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 사학, 철학을 통칭하는 단어가 인문학일까? (중략) 인문학을 강조하는 정치가, 기업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은 '시장과 경제의 논리'에 서 있다. 즉 경제 효용의 시각에서 인문학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인문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문학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이것이 곧 새로운 상품 개발과 이윤 획득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과 이윤을 뒤따르는 인문학이 그 자체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이야말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자라면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략)
인문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8~9쪽)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정의대로, 사람을, 특히 범인(凡人)을 그 중심에 놓고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쓴 책입니다.

부산은 참 묘한 곳입니다. 일본과 가까운 탓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6.25 때에는 임시수도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 심지어는 북한의 -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던 곳이 부산이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부산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텀시티와 감천동 같은 공간이 한 도시 안에 펼쳐지는 곳.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인하면서 공존하여 가는 곳. 부산이라는 도시야말로 인문학적으로 한 번 쯤은 살펴볼만한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4년 전에 부산의 2박 3일이 그래서 기억에 새롭습니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해운대 한 쪽에 자리잡은 단촐한 해운대역의 느낌이라든지, 동해남부선을 타고 다니던 부산 도심의 다양한 풍경들. 보수동 헌책방 거리의 고즈넉함을 건너면 자갈치 시장이 주는 활기참과 맞닥뜨리는 그런 느낌들. 부산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 밀면, 노래방과 찜질방은 여러 모양들이 섞여들어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향유하는 부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부산의, 혹은 부산 범인(凡人)들의 삶의 모습들을 예찬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2.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실은 부산이 아닌 곳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주욱 읽어내려가다보면,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어디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사람사는 모양을 그만큼 잘 아울렀다고 할 수도 있고, 차라리 부산에만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뒤에 두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 가령 부산 문화의 장에서 소개한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나, 온천 이야기, 혹은 해수욕장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두지 않아도 무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로, 산동네 - 달동네가 아닌 - 이야기나 동해안 별신굿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 뜻에서 '바운스 조용필, 바운스 부산'의 제목이 달려 있는 절은... 부산의 리바운딩을 바라는 저자의 따뜻하다못해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의 부산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저자가 부산에서 나서 자란 부산 토박이도 아닌데...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드는 아쉬움은, 차라리 부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예컨대 위에서 언급하였던 부산 밀면 이야기나, (절)영도 및 영도 다리 이야기, 혹은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시배지로 추정되는 영도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왕에 [부산은 넓다]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넓은 부산에서'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 든달까요?

결국 저자는 자신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 인문학적 사유 - 를 책에 담기 위해 부산을 배경으로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산이 중심인 책은 아니다는 의심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번뜩 번뜩 듭니다. 


3.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저 같은 이에게는 너무나 먼 도시인 부산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여행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고, 맛집을 알려주고, 교통편과 숙소를 소개해주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도시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런 책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꽤나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산에 방문하게 된다면 - 네 번째의 여정이 되겠네요 -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방문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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