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상실감이 빚은 예민함
조지 엘리엇의 숨겨진 비전

조지 엘리엇의 100페이지도 안되는 중편 <벗겨진 베일>에 무려 한 장을 할애한다. 예지력을 가진 ‘여성적인’ 남성 주인공과 남편인 그를 독살하려는 부인(무려 이름이 버사!! 이 책 읽을 때는 인지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버사라는 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지 엘리엇의 분열적인 모습, 자기혐오. 조지 엘리엇의 인생이 궁금하다.

에덴의 여자들은 어두운 무덤 속에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손수 짠 부드러운 비단 베일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의 죽음을 통해 부활해 영원한 삶을 산다.
- 윌리엄 블레이크!

…분별력과 훌륭한 감식력은 순수과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여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관찰자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항상 베일을 쓰게 만들었다. 그런 성취는 여자의 성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두걸드 스튜어트

천천히, 머뭇거리며, 기어서,
여자는 여기까지 왔다! -
그녀는 베일을 쓴 채 졸면서 걷는다,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하므로.
- 샬럿 퍼킨스 길먼 - P767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 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서 보았듯이, 이 둘은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상보적인 기호다. 불편한 공간과 불편한 자아에 갇혀 있는 브론테의 여자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이 두려워하는 충동을 대체하거나 가장하는 대행자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녀들은 존 어윈이 남성 소설에서 최근에 탐색했던 ‘운명의 손아귀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에 직면해서, 모든 힘 있는 아버지의 손 안에서 무력감을 경험할 때조차‘ 프로이트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 견뎌야 한다. 여자들의 이런 무력감은 여성 정체성의 수수께끼에 대한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적절한 해결책으로 처방되는데, 이 사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들면 루시 스노는 스스로 수동적 상태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 P768

여성들이 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과 활동을 확대해가던 19세기 중반까지, 역설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반항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 내면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오스틴,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브론테의 열렬한 독자였기 때문에 여성의 하위문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이름을 들자면 영국의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탈리아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해리엇 비처 스토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 감지되는 끈끈한 유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여성의 하위문화다. - P769

또한 래티머 이야기의 초기 무대를 제네바의 알프스로 설정하고,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낸 영국 과학자 친구를 등장시키고, 늙어가는 래티머가 ‘악마를 숭배하는 것 외에는 어떤 숭배도 신앙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래티머를 외로운망명자로 묘사함으로써, 엘리엇은 자신이 메리 셸리에게 신세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 P787

이런 판단은 엘리엇이 자신을 한 여자인 동시에 암암리에 여성 혐오자로도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엘리엇이 낭만주의에 양가적 반응을 보인 것은 빅토리아적이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전통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798

낭만주의 전통의 비평가이자 계승자로서 엘리엇은 특히 여성선구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벗겨진 베일이 반향하는 또다른 그물망이 이 점을 논증한다. 이 이상한 단편이 메리 셸리의 소설을 상기시킨다면, 엘리엇이 반복해서 영국의 조르주 상드라고 옷차림만 덜 도발적일 뿐이다‘ [편지 2]) 칭송했던 한 여성 작가의 걸작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벗겨진 베일」의 집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브론테 - P798

의 소설은 엘리엇에게 여성으로 확인된 여성과 여성 혐오자 사이에서 엘리엇이 경험했던 자기 분열을 극화하도록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는 미친 여자를 통해 그녀의 분노는 자신과 자신의 유순한 분신에게서 사랑을 빼앗아간 남성적 권력의 상징을 찢고 불태우고 파괴한다)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자기 분열과 살인적인 물질성, 섹슈얼리티로의 추락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엘리엇은 분노에 찬미친 여자를 ‘버사‘로 명명함으로써 「벗겨진 베일」이 여성의 복수 시도에 관한 이야기임을 제시한다. - P799

버사의 관점을 고려하기 위해 래티머의 시각을 벗어나면, 래티머가 버사를 통해 어떻게 욕망의 거세와 활력의 포기를 나타내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래티머가 지옥 같은 버사와의 결합을 점차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버사는 자신의 생명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으로 래티머의 죽음을 열렬히 욕망하는 것이다. 버사는 래티머에게 남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며, 래티머에 대한 ‘공포에 끊임없 - P800

이 시달리고, 이 공포는 한 번씩 그에 대한 반항으로 표출되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 삶에서 이 악몽을 떨쳐낼 수 있을지, 자신이 한때 바보라고 경멸했고 이제는 심문자처럼 두려워진 존재의 이 가증스러운 속박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버사는 계속 생각했다.‘ 버사의 공포는 자신이 래티머의 플롯에 따라 움직여왔다는 깨달음, 심지어 래티머에 대한 자신의 원한조차 자신을 섬뜩한 눈을 가진 괴물로 보는 그의 통찰에 따라 예견되고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의 산물이다. - P801

엘리엇은 자신 안의 분열을 여성 혐오주의자 남성과 남성을 증오하는 여성 사이의분열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혐오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상속받은 전통에서 벗어난다. 상호적이면서 상반되는 두 인물인 여성적인 래티머와 거세하는 버사는 삶에서 자유를 강탈해간 그들 자신의 한 측면으로서 서로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래티머의 초월적 신통력과 버사의 정열적 욕망 사이의 투쟁은 일레인 쇼월터가 말한 매기의 ‘여성적인‘ 정열과 톰 털리버의 ‘남성적인‘ 억압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런 투쟁과 갈등은 또한 『미들마치』의 결혼관계에서도 (엘리엇이 이런 결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성을 약화시키고 폄하하는 태도를 내면화했다는 죄책감을 극화할 때조차 나타난다. - P803

젠더의 한계를 비상할 정도로 초월한 작가로서 엘리엇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중요한 소설에서 여성적 체념의 신조와 복종의 서약에 자주 의지한다. 그런 신조와 서약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던 엘리엇 자신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따라서 엘리엇은 ‘나의 책들이나를 괴롭힌다‘고 소리쳤던 것이다. [편지 5] 버지니아 울프도 엘리엇에 대해 ‘오랫동안 그녀는 차라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엘리엇이 ‘영원히 여성적인‘ 고귀함을 찬미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은 거부함으로써 두통에 시달렸으며, 두통 때문에 괴테의 마카리에 같은 유형, 즉 작가에게는 결코 기분 좋지않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은 타락의 신화와 여성적 악의 신화에 양가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로써 그런 신화를 영속시켜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엘리엇 자신이 내면화하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은 전 생애 동안 이런 내면화의 - P804

징후들(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계속된 죄책감,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공언, 여성의 반페미니즘, 여성의 예속보다 다른 형태의 불의 전체가 더 중요한 자기 예술의 주제라는 자기 변명 같은 주장, 격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루이스에게 극도로 의존했던 모습,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호의적인 비평조차 읽을 수 없었던 무능력)을 보여준다. - P805

소설에서 엘리엇은 베일에 담긴 이 모든 의미를 불러낸 것이 분명하다. 래티머는 허영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셸리의 성직자처럼 ‘사랑할 대상‘을 찾지만, 그 결과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발견할 따름이다. 태양이 ‘아침 안개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것을 볼 때, ‘미래의 커튼‘을 꿰뚫어볼 때,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망이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또 다른 어두운 베일‘인 죽음을 꿰뚫어볼 때, 래티머는 어떠한 차이도 발견하지 못하고 ‘숨겨진 것을 보고 싶은 영혼의 욕구가 너무 절대적이어서‘ 장막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베일은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다시 말해 「벗겨진 베일」은 사람들이 기대할 법한 무시무시한 비밀을 전달하거나 악의 관념을 견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 디킨스, 호손의 이야기와 다르다. - P810

결국 베일 뒤의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분명 여성적인 작업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베일 뒤에 존재하며, 공적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 거주하는 자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엘리엇은 워즈워스 시에서 알아본 소리 없는 괴로움과 기록되지 않은 고통을 탐색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엇은 포프 류의 시인이 택한 올림포스 신 같은 육중한 시각을 왜 인간은 현미경과 같은 미세한 눈이 없는가? / 이것이 바로 인간이 파리가 아닌 이유다’) 거부했다. 왜냐하면 엘리엇은 일반 렌즈로는 보이지 않는 세밀한 것을 보기 위해 ‘배율이 큰 렌즈’를 사용해 래 - P816

티머의 ‘현미경적인 시각‘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유리하게 이용해 공적인 태도 뒤에 가려져 있는 사적인 연약성을 폭로하며 남성적 신화를 반박하는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면 엘리엇의 이런 방식을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베일로 가린 여성의 얼굴을 통해 가부장이 성공적으로 다루었던 악은 과연 어떤 종류의 악인가? 만약 민첩하고 확실한 본능과 정직하고 순수한 눈을 가진 가모장이 그 가부장을 흘깃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 그들을 손쉽게 추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 P817

엘리엇은 꽤 최근까지 거의 전적으로 남성 문학사의 차원에서만 주목받았지만, 「벗겨진 베일」은 그녀가 강력한 여성 전통의 일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여성 작가들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자의식, 남성적 문학 관습에 대한 비판, 예지력과 영적 교감 능력에 대한 관심, 감금 이미지, 파편화에 대한 정신분열적인 인식, 자기혐오, 에밀리 디킨슨이 그녀의 ‘가려진 비전‘이라 불렀던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에 엘리엇을 자리매김해준다. - P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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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12-1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빌레뜨>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벗겨진 베일>도 읽어야 하네요.
갈 길이 머네요.... @_@

햇살과함께님 화이팅입니다 ^^

햇살과함께 2022-12-13 11:15   좋아요 1 | URL
수하님도 빌레뜨 화이팅입니다!! 저 빌레뜨 안읽고 12장 읽어서 망했어요 ㅎㅎ
벗겨진 베일은 그나마 100페이지도 안되요~ 다행히 5월에 민음북클럽 버전으로 읽었네요.
이제 다음 장 미들마치와 플로스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네요:;;
 
권리랑 포옹해 - 우리 모두가 알고 지켜야 할 유엔아동권리협약 평화 발자국 28
김규정 지음 / 보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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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아동권리협약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만화로 만나보는 책이다. 아동의 권리를 알고 지키는 것이 인권의 출발이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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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The Early Days of Britain
서로마 멸망 이후 여러 Celts 부족들이 지배하던 Britain.
부족간 전쟁 지원를 위해 North Sea를 건너온 Angles와 Saxons.
정착하여 Britain의 동남쪽을 차지. 7개 국가 형성. England. Anglo-Saxons족.
많은 Celts들이 Scotland, Ireland, Wales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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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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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작가님의 마음 탐구생활. 어긋나는 마음, 감춰진 마음, 들켜버린 마음, 사라지는 마음, 다가오는 마음들. 여러 마음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를 즐길 수 있는 8편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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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루시 스노의 파묻힌 삶

<빌레뜨> 궁금하다. <제인 에어>와는 다른 느낌.

평등한 삶을 요구했던 프랜시스 앙리와 제인 에어를 비롯해 저항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캐럴라인 헬스턴에 이르기까지, 용기와 활력이 점차 쇠퇴해가는 과정은 루시에 이르러 비로소 복종과 침묵으로완성된다. 이것은 마치 샬럿 브론테가 여성들에게 질식할 것 같은 절망감만 안겨주는 늙어가는 과정을 성숙의 과정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사실 소설들이 진전됨에 따라 여성들은 파괴적인가부장 사회의 구속을 내면화하고 이로써 점차 도피가 어려워진다. 여성들은 자신 안에 갇힌 채 출발 시점부터 패배하는 것이다. 루시 스노는 결코 충만하게 존재할 수 없었지만 그 대가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시는 단조롭고 진지한 위장된모습 뒤로 물러남으로써 고통을 피해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고통받는다.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는 루시는 의미와 목적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힘도 박탈당해왔다. 어떻게 그녀가 현재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 P699

브론테는 이 마지막 소설에서 자아 속으로 물러남으로써 도피할 수도 없고(그런 은둔은 유아론적인 것으로 거부당하기 때문에) 타자를 영적인 대상으로 비인간화함으로써 해결할 수도 없는 여성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삶의 구원이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어떤 반가운 축하도 없고 풍성한 보상도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브론테는 『빌레트』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살아갈 의지를 빼앗긴 모든 여성을 위한 정직한 비가를 제공했다. 동시에 『빌레트』는 작가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P703

따라서 해리엇 마르티뉴가 『빌레트』의 등장인물들은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빌레트』를 비판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브론테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비비드호‘를 타고 가면서 루시는 여성의 핵심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여성들 몇 명과 마주친다. 루시는(기름통처럼 생긴 남편과 함께한) 어느 신부를 보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절망의 광기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빌레트로 떠나는 들떠 있는 여학생인 지네브라 팬쇼는 돈 많은 늙은 신사와결혼해야 하는 다섯 자매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객실승무원의 편지에 등장하는 샬럿이라는 여성은 경솔한 결혼을저지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은 외로운 고립의 삶만큼이나고통스러운 복종으로 보이지만 루시는 ‘감옥을 만드는 것은 돌벽이 아니며 / 새장을 만드는 것도 쇠창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갑판에서 기뻐한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승리의 순간은 즉시 사라진다. 루시도 뱃멀미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루시의 시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감옥에 갇힌 죄수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면,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벽과 창살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이기 때문이다. - P710

루시의 존재는 살아 있는 죽음이었다. 루시는 의식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방인이고, 의심하지 않는 손님을 살해하는 가정부이기 때문이다. 폴리이자 루시이고 지네브라이자 마담 베크인 루시는 이런 내적 갈등으로마비된 수녀다. 루시가 자신을 마담 베크의 거미집에 걸린 파리, 달팽이, 혹은 위태로운 거미줄에서 튕겨 나오는 거미로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아라는 집 내부의 갈등 속에서 루시안의 서로 대립하는 존재들은 루시의 내면이 파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파편화는 루시를 완전한 신경쇠약으로 내몰고 말 것이다. - P179

루시가 자신의 불만을 늘어놓는 불가해한 방식은 놀라울 정도다. 사실상 이 소설을 좌절 장면부터 거꾸로 해석하지 않는이상, 루시의 고충은 거의 이해할 수 없다. 루시의 갈등은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루시는 자신의 갈등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화자인 동시에 소설 속 인물인 루시는 자신의 이야기만 아니라면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듯 보인다. 폴리 홈, 미스 마치몬트, 마담 베크, 지네브라는 각각 루시 자신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더 분석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독자들은 이 작품이 반쯤 끝날 때까지 브론테가 이 소설의 주제를 자각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또한 작품의 신화적 요소들을 비록 인식했다 해도, 일반적으로 오해받아왔거나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으로 거부당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루시의 정신분열은 모든 여자가 직면하는 일반적인 문제로 간주되는가? 브론테가 『빌레트』의 막간에서 직면한 문제가 (그것이 암시하는 모든 것과 함께) 바로 이 질문이다. - P725

분명 루시의 설명에는 현저하게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공포, 부모의 상실, 존 박사에 대한 짝사랑, 긴 방학 동안 이어진 악몽의 공포는 이상할 정도로 암시적으로만 제시된다. 예를 들면 실제 사건을 묘사하는 대신 루시는 이런 고통의 순간에 자신이 느낀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물의 이미지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 P726

다가올 구원에 대해 논할 때 루시는 결코 가정이나령, 의문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구원에 대한 루시의 욕망은 항상 희망과 기원으로 표현될 뿐 결코 신념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의 삶은 불평등에 기초하고 있으며, 자신보다더 큰 힘이 불평등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루시는 냉소적이고 거의 풍자적으로 ‘우리가 자신을 낮추어 순종을 하든안 하든‘ 신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인정한다. [38장] - P728

만약 마담 발라펜스가 루시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면, 루시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환영인 다락방의 수녀는 그녀와 어떤관계인가? 기독교에서 계속 나타나 노파-까마귀 여신의 모습은 로스가 주장하듯 자애로운 성자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노파‘를 의미하는 켈트어인 카일리아크cailleach는 ‘수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려한 색깔의 옷과 반지로 장식한 채, 이 곱사등이가 집 꼭대기에서 내려와 죽은 수녀, 폴의 매장된 사랑인 잃어버린 저스틴 마리의 초상화를 통과해 나타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루시는 그 그림이 슬픔, 나쁜 건강, 순종적인 습관의 우울함을 나타내는 창백한 어린 얼굴에 수녀 복장을 한 성모 마리아같은 모습을 그렸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제인 에어의 순종의 결과로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의 공격성이 나타나는 방식을 보았고, 캐럴라인 헬스턴의 여성적인 수동성 때문에 셜리 킬다의 남성적인 힘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빌레트』에서 마담 발라펜스의 악의도 저스틴 마리의 자멸적인수동성의 다른 면이다. 디킨슨의 시(「우리 뒤에 숨겨져 있는 우리가 - / 가장 놀라게 한다-」)의 핵심적 진실을 극화하는 양, 브론테는 그 마녀가 바로 수녀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미스 마치몬트의 초기 판단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 - P750

서 마녀나 수녀가 되지 않은 여자들은 루시처럼 마녀와 수녀 모두에게 시달린다. 사랑과 남자에 대한 루시의 양가적 감정은 이제 충분히 설명되었다. 루시는 자신의 세계에서 자아실현이 가능한 유일한 형식으로 감성적 성애적 관계를 추구하지만, 그녀는 그런 관계가 자신을 순종이나 파멸, 자살, 또는 살인으로 이끌고 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 P752

다른 사람의 관찰대상으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는 대신, 루시는 스스로 자신을 바라본다. 루시는 점점 더 자신을 그녀 자신의 몸과 동일시할 수 있음으로써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사람이 자신을 모순적이며 무능력하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정의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리하여 루시는 존 박사, 홈 씨, 지네브라, 폴리조차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보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브론테는 드디어 루시가 ‘진리‘에 대한 상상적인 ‘투사‘와이성적인 ‘이해‘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거울은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거울은 실재를 해석함으로써 실재를 창조한다. 그러나 해석의 행위는 지각의 행위로 남아 있을 때만 포학성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작은 방어들이 축적되는 곳에서만 […]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27장] - P760

동시에 브론테는 사랑의 끝은 삶의 끝이 아니라는 점도 말한다. 『빌레트』의 마지막 장은 ‘공포는 가끔 헛된 상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지시키며 시작한다.[42장] 소설의 끝에서 루시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기를 거부한다. ‘찬란한 상상력이 희망하게 놔두라.‘ [42장] 브론테는 삶을 떠받치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이외의 어떤 명확한 메시지도 삼가는 애매하게 열린 결말을 남겼다. - P762

가부장적 예술을 전복하기 위해 브론테가 사용한 것은 수용의 행위다. 최근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브론테가 여자 주인공들 - P763

을 수동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이유로 불편해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 브론테의 작품들은 남성성을 권력과 동일시하고 여성성을 굴종과 동일시하는 폐해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브론테는 순종의 습관이 여성에게 중요한 통찰(여성들이 저항할 때 그들의 주인처럼 되지 않도록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공감의 상상력)로 이끌었음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신을 대상으로서 경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죽음에서 깨어날 필요성과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둘 다 이해한다. 여성들은 그 능력과 필요성이 마술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마력이며, 박해하는고백적인 참회가 아니라 부활하는 고백적인 예술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탈출했던 장소에 또 다른 타자를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예술이다. 시학의 정치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브론테는 어떤 의미에서(이성과 상상 사이의 간극을 공격하고, 객관적인 예술 작품의 주관성을 주장하며, 그녀 소설의 주제로 대상화된 희생자들을 선택하고, 그녀와 함께 타자화된 사람의 내면성을 경험하도록 독자를 초대하는) 현상학자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브론테는 끊임없이 고통받았고, 그녀의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예술의 정직성 덕분에 힘을 얻었던 모든 여성들의 강력한 선구자로 남아 있다. - P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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