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어떤 실감 나는 VR 매체도 책만큼 우리를 개입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책은 보여 주면서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보여 주기 때문이다. 독자는 글이라는 뼈대에 자신의 상상으로 살을 붙이는데 그 상상은 독자만의 것이고 어찌 보면 그것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돌연변이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가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고유하기만 한 경험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독자의 정신 속에는 또한 같은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와 두뇌의 공조가 신비한 추진력을 발생시키고, 이 추진력이 어느 정도 강해지면 우리의 정신은 작품을 둘러싼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작품이 그 인력과 척력을 조화롭게 운용하면서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가면 우리는 그만큼 궤도를 많이 돌게 되는 셈인데 거기서 긴 글만이주는 독특한 힘이 생겨난다. 『회상록』을 다 읽으면 다른 시간, 다른 나라에서 여러 해 머무르다 온 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40페이지를 읽어 냈다면, 여러 날을들여 계속 읽을 것. 장담하건대 이 책을 다 읽어 내면 당신의 독서력은 비약적으로 증진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경험과도 비슷할 것이다. - P161
우리는 앞서 하드리아누스가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이자 나라는 극장의 연출가처럼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을 보았다. 셰익스피어에게도 이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좋으실 대로』의 우울한 환경주의자라 할 제이퀴즈(자크)는 이렇게 말한다.
온 세상이 무대이지, 모든 남자 여자는 배우일 뿐이고. 그들에겐 각자의 등장과 퇴장이 있으며 한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역을 하는데 나이 따라 칠 막을 연기하네.
온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이란 등장인물이 분장을 하고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극에는 유독 변장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희곡과 소네트이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 모두 희곡이다. 그는 배우이자 작가이자 극장주였으니 쉰네 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연극과 무대는 그의 삶에서 가장 거대한 은유가 될 법하다. - P220
『회상록』에서 인생을 연극에 빗대었던 문장들이 『맥베스』를 읽을 때 생각나듯, 『회상록』의 잠과 죽음의 유사성에 대한 문장들이 『맥베스』를 읽으며 되살아난다. 연이어책을 읽을 때 생겨나는 이런 감각은 독서만의 미묘하고 독특한 즐거움의 한 요소이므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앞서 읽은 텍스트는 후에 읽는 텍스트에 겹쳐지고, 마치지금 눈이 따라 흐르는 문장의 물결 아래로 시간이 지나 조금은 더 흐릿하게 일렁이는 심층의 문장들이 함께 흐르는것과도 같다. 또는 예전에 읽었던 문장들이 잘게 조각나 마치 모자이크처럼 어떤 단어는 더 또렷하게, 어떤 표현은 더 - P246
아스라하게 기억 속에 뿌려져 있는 듯하다. 새로운 문장을읽으며 비슷한 모티브가 환기되면 이전의 문장들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물속은 한번 헤집어진다. 독서가 쌓이면 이런 현상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수많은 문장들이 팔림세스트처럼 겹쳐 쓰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끝이 안 나는 이유다. 책을 두고 나누는 대화는 마치 서로의 안에 든 스노우글로브를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처럼, 가라앉았던 단어와 문장을 헤집어 다시 천천히 반짝이며 허공으로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다시 끄집어낸 말들이 이번에는 상대의 또 다른 기억의 바닥을 긁어서 일렁이게 한다. 책 수다가 아니라 혼자책을 읽을 때에도 독자는 자신의 내면에 새롭게 흘러든 언어와 이미 들어와 있던 언어가 뒤섞이는 작용을 겪는다. ‘샘물이 합류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리 없이 흐르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고, 그렇게 내면의 언어적 샘물은 다시 흐른다. 독서가 다른 독서를 불러오고, 그 흐름이 풍부하고 빈번할때면 독자의 내면은 스노우글로브의 반짝이는 눈이 내내 일렁이는 듯이 움직이며 고이지 않고 흐를 것이다. 독서가가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찾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움직임과 반짝임이 아름답고 기분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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