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도 순조롭게 줄고, 얼굴 모습도 약간 말끔해졌다. 자기 몸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젊었을 때보다는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 젊었을 때 한 달 반이면 가능했던 일이 3개월이 걸리게 된다. 운동량과 달성된 일의 효율도 눈에 띄게 나빠진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체념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인생의 원칙이며, 그 효율의 좋고 나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니고 있는 도쿄의 체육관에는 "근육은 붙기 어렵고 빠지기는 쉽다. 군살은 붙기 쉽고 빠지기는 어렵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짜증 나는 사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 P83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 P88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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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4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저의 체중은 순조롭게 줄지 않을까요? 하아-

햇살과함께 2024-10-24 11:18   좋아요 1 | URL
ㅎㅎ 저 4주차 끝났는데 1키로 줄었어요! 근데 이건 달리기 효과라기보다 최근에 건강검진 받은 자각효과와 추운 날씨로 맥주 먹는 횟수가 줄어서인 듯요 ㅎㅎㅎ
하루키 소설 안좋아하는데 이 책은 너무 좋네요! 달리기와 늙어감에 대한 사유가 특히.
 

여기에는 ‘철학‘ 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해도, 어떤 종류의 경험칙관찰과 경험에서 얻은 법칙과 같은 것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어도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 P10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9

그리고 나는 - 그런 여러 가지 흔해빠진 일들이 쌓여서 지금 여기에 있다. 카우아이의 북녘 해안에.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때때로 나 자신이 해변에 밀려온 한낱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등대 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이 유칼리나무를 머리 위에서 산들산들 부드럽게 흔들어댄다. - P21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 것일까, 하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도 썼듯이,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두서없이 떠올릴 때도 있다. 때때로(그런 것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 P36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 P40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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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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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랑할 마음이 충만한 상태의 독서이니, 진정한 평점과 리뷰가 가능하지 않다. 그저 감탄과 존경만 남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이라면 오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이니. 프루스트의 단편을 읽고 필사를 하고자 했 듯(아직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건 필사해야 해를 마음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어제 밤 30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이 책을 졸음에 겨운 상태로 끝마치고 싶지 않았고 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끝내고 싶었다.

한때 귀가 들리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던, 눈이 점점 멀어가는 언젠간 보지 못할 남자와 목소리를 잃은 여자의 만남. 그들의 희랍어 시간. 나에게 문학 리뷰를 너무 어려운데, 이 책은 더욱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이미지만 떠돈다.

, , 바람, , 어둠, 칠판이 있는 교실, 어둑한 거실, 스케이트 날이 스치듯한 자동차 소리와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과 술 취한 사람들, 피곤과 술에 찌든 사람들의 버스 풍경. 풍경들.

어둠이 내려야 밖으로 나가는 여자와 어둠이 내리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남자.

위태롭게 계속 걷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내리는 비와 함께 차분히 가라앉는 오늘.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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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밤색 코르덴 재킷은 팔꿈치 부분에 밝은갈색 가죽이 덧대어져 있다. 약간 짧은 소매 밖으로 손목이 드러나보인다. 그의 왼쪽 눈시울께에서 입술 가장자리까지 가늘고 희끗한 곡선으로 그어진 흉터를 여자는 묵묵히 올려다본다. 첫 시간에 그것을 보았을 때, 오래전 눈물이 흘렀던 곳을 표시한 고지도 같다고 생각했었다.
엷은 녹색을 넣은 두꺼운 안경알 뒤로, 남자의 눈이 여자의 꾹 다문 입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가신다. 그는 굳은얼굴을 돌린다. 짧은 희랍어 문장을 빠르게 흑판에 쓴다. 악센트들을 채 찍기 전에 백묵이 두동강나며 떨어진다. - P11

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ㅡ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 P14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자신의 뺨에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따금 두 손으로 얼굴을 닦아낸다. - P21

그렇게 상상하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천천히뒷산의 산책로를 오르기도 합니다. 연푸른 나무들은 한 덩어리로일렁이고, 꽃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번져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작은 절의 대중방 마루에 앉아 나는 쉽니다. 무거운 안경을 벗어들고,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흐릿한 세계를 둘러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 P39

이곳은 지금 깊은 밤이야.
창문을 열어놓고 볼륨을 줄여 네 시디를 들으면서, 이따금 따라 흥얼거리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이곳의 여름밤을 기억하니.
한낮의 무더위를 보상하는 듯 서늘하게 젖은 공기.
흥건히 엎질러진 어둠.
풀냄새, 활엽수들의 수액 냄새가 진하게 번져 있는 골목.
새벽까지 들리는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
뒷산과 이어지는 캄캄한 잡풀숲에서 밤새 우는 풀벌레들.
그 속으로 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어.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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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달리기
강주원 지음 / 비로소(도서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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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초보가 명심해야 할 문장. “빨리 달리고 싶으면, 천천히 달려라.”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페이스 대로 달리기. 몸이 신호를 보낼 땐 달리기를 멈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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