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결국 팬덤은 매혹과 좌절이 균형을 이룬 지점에서 생겨난다."라고 했다. 나 역시 팬덤 연구자로서 팬덤에 매료되고 그 문화적 가능성에 가슴 설레면서도, 동시에 팬덤의 한계를 느끼거나 팬덤이 오해받아 잘못 이야기될 때의 좌절 사이에서 연구한다. - P83
팬덤의 소비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광적으로 보일 수 있고, 팬덤에 대한 과도한 역능 부여가 부정적인 행동들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 팬 활동을 하면서 헌신했던 대상이 사회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순간을 직면할수도 있다. 그러나 팬덤은 그런 장면을 스스로 직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만약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다른 누구도 아닌 팬덤의 내부 구성 주체인 팬들에게서 찾고 싶다. 그게 내가 팬덤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팬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연구의 한계를 알면서도 가능성의 지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다. - P85
실제와 허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차이는 의문을 자아낸다. 어떤 지점에서 이런 감정의 차이가 유도된 것일까? 철학자 애덤 모턴은 악의 기본 특징을 분석하면서 ‘이해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든다. 악의 이해 불가능성은 잔인한 행위를 한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 인간이 빠지는 혼란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연쇄 살인범을 대할 때 곧장 살인범의 쾌감을 상상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그렇다면관객으로서 범죄 콘텐츠를 즐긴다는 것은 살인범의 쾌감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바꿔 말하면 그에게 공감하게 된다는 것일까? - P93
철학자 애덤 스미스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공감하는 인간의 도덕적 감정 체계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불행한 사건에 연루된 지인의 사정에는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불행을 일으키는 범죄자에는 분노하는 바로 그 공감 체계가 작품의 주인공과 서사를 대할 때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 P97
스미스는 더 나아가 관객이 작품 속 인물에 공감하는 정도가 클수록 미적으로 더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작품의 서사가 사람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분법적인 선과 악의 구도가 바탕인 스미스의 논의를 인물과 상황의 다면적인 관계를 취급하는 현대의 범죄 콘텐츠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도덕과 예술의 관계를 연결지은 스미스의 철학은 범죄 콘텐츠를 비평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제공한다. - P98
형사사법에서 피해자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 사건의 처리 과정은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범죄자가 저질렀는지, 범죄자가 그 행위를 책임져야 하는지, 죄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벌을 받아야하는지 등 범죄자의 죄와 벌을 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 P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