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희
단 1표만 더 받으면 되는현행 단순다수대표제는 잘하기 경쟁보다는 ‘저쪽이 싫어서 이쪽을 찍는 투표‘를 고착화하고, 낙선한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기 때문에 연합정치의 실현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학계의 오랜 지적에도 공감했다. - P93
뉴질랜드처럼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호주는 6개 주마다 12석, 준주 2곳은 2석씩 동등하게 의석을 갖는 상원과, 151개 지역마다 1명씩대표가 있는 하원 두 개의 의회로 구성된다. 상원과 하원의 투표방식에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유권자는 모든 후보자에게 선호도 순위를 매겨 표기하고, 일정 기준에 도래할 때까지 선호도를배분하는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한다. 예를 들어 하원선거 1차 개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다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되 그를 1순위로 택한 유권자의 표 중 2순위에 해당하는 표는 다른 후보들에게 배분된다. 이렇게 개표와 탈락을 반복함으로써 당선자가 정해진다. 단 한 표만으로도 승부가 갈리는 단순다수대표제하에선 거대 양당 간 대립이 극심할수록 양당정치의 원심력이 소수 정당을 링 밖으로 밀어낸다. 사표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의 선호투표제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탈락해도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 모든 투표의 효력이 유지된다. 자신의표가 사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덜 싫어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필요가 없는 셈이다. - P97
박태현
나는 이것들이 부분적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사안 전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환경법은 우리 경제체계 자체의 지향과 같은 근본원인은 다루지 않은 채 일상 행위의 외부효과만을 관리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설령 환경법이 적정하게 집행되더라도 근본적으로 환경위기를 막을 수 없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현대 환경법은 "지구공동체의 건강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경제성장, 산업개발 그리고 개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근대주의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본적으로 자연을 인간 복리를 위한 산업적가치를 가진 것으로 다루며 그 자체 고유한 가치를 가진 실체로 고려하 - P113
지 않아 지금과 같은 환경위기가 초래됐다고 보는, 본원적인 문제 지점을 가리키는 견해에 주목해야 한다. - P114
’인간중심주의‘는 오로지 인간의 가치와 경험에 비춰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인간은 주체 그 밖의 비인간 실체는 객체라는 전제를 강화한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목표와 욕구 실현, 독립성과 자립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국가 내지 사회단체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는 ‘개인주의‘ 철학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개인의 가치를 원칙적으로 불가침적인것으로 규범화한다. 이러한 서구의 ‘개체인간중심주의‘는 현대 인간문화와 의식적 행위에 깊이 박혀 있는데, 이러한 토대 위에서 현대 법질서는 구축, 운영된다. 근래 개체 - 인간중심주의는 그 발원지인 서구에서도자기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성 부분의 속성과 구분되는 전체로서의 창발적 속성에 대한 인정(전일론)과 세계 내 실체 간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항하여 지구의 생명 또는 생태를 가치 중심에 두는 생명·생태중심주의가 주창된다. 또한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하며, 우리는 공통되게 서로에게 의존해 있고 공통된 삶을 위해 사회구조에 의존한다며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적 이론"도 학계에서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 P115
고(故) 홍세화 선생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자연이 인간의 지배, 정복, 소유, 추출의 대상일 때, 인간도 다른 인간의 지배, 정복, 수탈, 착취의 대상이었다"며, "소유주의가 끝없이 밀어붙인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선생은 개인을 독립된 원자로 보지않고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 보았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며, 성장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힘주어 주문하셨다. - P116
오윤주
이제까지의 학습이란 개념은 ‘이해의 축적 혹은 확장‘이라는 의미로통용되어왔다. 학생들이 이미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축적하는 것이 학습이며, 교사의 주된 과업은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왔다. 교육학자인 거트 비에스타는 학습의 개념을 "학생들이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주침"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학습의 과정 - P124
에서 학생들은 낯선 것, 새로운 것과 만나 기존의 자신을 깨뜨려야 하는 실존적 어려움에 처한다. 학생들은 ‘현재 존재하는 것‘과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을 느끼며 저항하고자 하기도 하는데, 이때교사는 학습을 위한 ‘지연‘의 공간을 열어 학생들이 자신과 함께 있기만한 상태로부터 벗어나 함께 이 세계에 존재하도록 학생들을 초대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축적적 이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주체로서 세계에 존재할 해방적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것은 교사와 학생들의 실존적 만남이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실존 역시변화하게 된다. 교사와 학생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세계에 잘 존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이 실존적 배움의 공간에서 만나 세계 속에 성숙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과정을 학습이라고 할 때, 학습을 시작과 끝이 있는 고정되고 단단한 닫힌 체계로 보고 있는 디지털교과서의 체계는 이러한 해방적이고 실존적인 학습의 면모를 적절하게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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