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면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들 뭔가를 하고 산다는 게 경이로워요. 살아가는 것도 대견하고,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해요. 자기 스스로 책임을 다 떠안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이 결국 화를 부르더라고요. 사람이 언제나 표준에 맞춰 살 수는 없으니까. 가끔씩은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인데 내가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 여유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 P197

유지영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가 시 「케테 콜비츠에 쓴 대로,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세계는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들 중 아주 일부가 그저 말하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견딜수 없어하는 남성들이 많다. - P199

박선영
우리는 이제 봄날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손을 무작정 잡아끌고 나올 수도 없고, 뿌리깊은 거악을 일시에 다 소거해버릴 수도 없는데 말이다. 봄날이 말하는 해답은 이런 것이다. 여성에게 던지던 질문을 구매자와 알선자들에게 던지는 것. 그리고 여성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바라보는이 세상과 우리의 처지를 성매매 업소에 빗대어 보는 것.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듯 닮아 있다. - P225

봄날
탈성매매 이후에도 저는 ‘업소에서 잘나갔던 여성‘ 또는 ‘업주에게 사랑받았던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았어요. 내세울 게 없잖아요. 업소에서 20년 일하는 동안 어떤 구매자까지 만나봤다. 이런 진상까지 처리해봤다. 이런 것들이 제 이력인 건데, 여성인권센터에서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자조自助 모임도 나가면서 제 경험을 서서히 말하기 시작하다가 이 생각의 틀을 깨는 사건이 하나 생겼죠. 성매매 종사 여성이 구매자에게 목 졸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추모식에 다녀오면서 문득 깨닫게 된 거죠. 나는 피해자였구나. 20년 동안 쌓여 있던 온갖 분노, 억울함,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업주를 만나면 내가 귀싸대기라도 때려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때 어떤 틀이 깨진 것 같아요. 자학했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되돌리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나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고 전사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죠. - P227

그런 흔들림이 늘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되돌아가고 싶은그 마음을 끊어내는 게 반성매매운동이구나. 숱하게 흔들리는 나를볼 때마다 ‘정신 차려야지‘라고만 할 게 아니라 ‘오늘은 마음이 힘들구나‘ 하면서 나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 거죠. 돌아가면 어떻다는걸 뻔히 알잖아요. 잠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면 다시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곁에 있던 친구들 중에 누가 업소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섭섭하고 아파요. 하지만 저는 알아요. 몇 번씩 탈성매매를 시도하고 왔다갔다하는 것도 그의 시간이잖아요. 그러다가 결국 "언니, 이제 쉼터 들어왔어요" 라고말하는 걸 들으면 울컥하고 안도감이 느껴져요. - P230

정인숙
상처가 회복되면 침대에 걸터앉는 것부터 시작을 해요. 걸터앉은 다음에는 일어서고, 그다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걸 시켜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아, 나는 다시 태어난 거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능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다치기 전 모습 그대로, 그런데 화상을 입으면 ‘구축현상‘ 이라는 게 와요. 피부도 오므라들고, 손도 굳어버리고, 겨드랑이나 발가락도 붙어버리거든요. 땀구멍이 없어져서 땀 배출을 못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많이 힘들어요. 이렇게 사고가 나기 전에는 당연했던 걷기, 보기,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못 하게 됐을 때 충격이 엄청 컸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 P245

하리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많이 사라졌어요. 스무 살 넘어서 엄마에게 사촌오빠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그랬거든요.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자기는 남자들이 바글거리는 시골집에서 나고 자랐고, 그 집에 머슴들도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런 일이 없었겠냐고. 그런 일 숱하게 있었다며 자기한테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며 신경질을 냈어요. 엄마의 반응에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10년이 지나 겨우 말을 꺼냈는데 조금도 공감해주지 않아서요. 배신감과 서운함이 컸어요.
IN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그 말이 너무나 마음에 걸려요. ‘숱하게 있 - P297

었지‘라는 말. 엄마가 겪은 일들은 뭐였을까. 엄마는 아직도 몸과 마음이 마비되어 있구나. 그래서 그냥 회피하는구나. 엄마는 자기 트라우마에 대해서 저한테 영영 얘기해주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게 슬퍼요. 서로 털어놓고 안아주며 같이 울고 싶어요. 그럼 후련해질 텐데.. - P298

저는 말하는 몸에 영감을 준 책 『헝거』에서 이런 게 좋아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 아니, 용기가 아니라 바닥까지 내려가는 고통. 세상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겪고도 다음날 아침 일어나 또 세상으로 나와 말하고 글쓰며 살아가는 것. 그걸 설명하는 단어는 ‘강인함‘ 인 것 같아요. 저는 제 안에도, 여러분에게도 그런 강인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P298


그 당시엔 제가 개신교를 믿었는데 하루에 정말 수십 번씩 기도했어요. 살 빠지게 해달라고, 먹기 전에도 무릎 꿇고 몇 분간 기도했던것 같아요. 내가 이걸 먹고도 살이 찌지 않게 해달라. 몇 달 동안 하루에 300킬로칼로리씩 먹으면서 지내다보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온갖 이명 현상이 나타나거나환영이 보이기도 하고, 어지러워서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고,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또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찔 테니까, 살이 찌느니 이런 상태로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병적인 상태인 거예요. 그런 거식증 시기가 한 1년 정도 지속됐죠. - P304

우리는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는 데 익숙해져 있잖아요. 마치 몸은 내 소유물이고 정신이 곧 나인 것처럼.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근거이자 양식은 이 몸밖에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네몸을 날씬하게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부피를 줄여라‘ 라고사회가 요구할 때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너의 존재를 줄여라‘ 라는 말로 들리는 것 같아요. 물론 건강을 위해서 근육을 만든다거나 자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뚱뚱한 여성에게 인정과 환대를 전혀 베풀지 않는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이 하는 다이어트는 결국 이 세상에서 나의 자리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 경험도 그러했고요. - P306

노지양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을 ‘우리 cage‘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이 굉장히 많은 여성들에게 와닿을 거라 생각했어요. ‘감옥이었다‘, 내가 여기 갇혀 있다는 말이요. - P320

페미니즘은 굉장히 생활밀착형 지식이에요. 내 인생을 자꾸 바꾸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해요.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일하는 여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에 페미니즘 책을 한 권씩 번역하면서 제 생각과 삶의 태도도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 꼭 많이 읽으세요. 아무리많이 읽어도 넘치지 않아요.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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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진
저에게는 읽고 쓰는 저녁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요. 다른 회사들은 변수가 많잖아요. 야근하는 일도 생기고요. 이런저런 노동을경험하면서 깨달았어요. 콜센터는 업무 시간 외에 야근하는 경우가없거든요. 전화가 꺼지면 퇴근을 하는 거고요. 집까지 일을 가져가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볼 만하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노동하면서도 글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제게 중요한 구직 조건이었어요. - P95

처음 콜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 여기 와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오래 버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다시 이 일을 하게되면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제 노동을 생각하게 되니 자괴감이 덜하고 이 노동을 좀 덜 미워하게 되더라고요. - P97

강성 민원을 응대할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해요. 2년을 했는데도 수화기 너머에서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욕설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말 놀라요. 저는 아직 그렇더라고요. 감정만 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상하기도 하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왜 감정노동으로 부르게 됐을까요. 많은 서비스직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르잖아요. 주로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렇게부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콜센터의 육체노동적인 측면은 어쩌면 그보다 덜 말해지는 게 아닐까요. - P99

송해나
이 사회는 임신한 여성의 몸에는 관심이 없어요. 임신부들도 자조이 들도하면서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임신부들은 열외라고, 현대의학에 버림받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여성의 몸을 재생산 도구로만 보는 학계의 인식에 의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 피해는 임신한 여성이 오롯이 겪고요. 사회는 모성으로 극복하라고 이야기해요. 이게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니에요. 임신부가 조금만 고통스러운 티를 내면 모성이 없다고 말해요. 여성의 몸은 아기를 낳기 위한 모체로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저에게는 이날 아팠던 기억이 현대의학에 버림받은 아픔으로 각인된 것 같아요. 사회는 재생산에만 관심을 가지고, 아기를 살리는 게 먼저더라고요. - P108

그렇게 열 달 동안 제 몸을 희생하면서 고생한 산모가 출산의 순간에 "나보다는 아기를 살려주세요" 라고 말한다는 건 아기를 낳아보지않은 이들의 환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기랑 저는 초면이거든요. 저는 아기를 낳고서 아기를 낳았다는 느낌보다는 아기를 배출했다는 표현이 더 와닿았어요. 아, 나 살았다. 죽지 않았다. 아기가 내 배 위에,
올라온다고 해서 감격스럽지 않았어요. 내 배 위에 올라온 아기는 너무 낯설었어요. 출산하고 울었는데 살았다는 안도감에 운 거거든요. - P109

김명선
몸이 힘들고 아파서 긴장해야 할 것 같아 병원을 나선 후에 터미널에 가서 어디든 제일 빨리 가는 버스를 탔어. 전주로 갔는데 아는 게 있어야지. 한옥 숙박이 하루 7만 원이라는 거야. 나는 한 번도 그런 돈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 혼자면 5만 원에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나가서 돌아보고 사진으로 다 찍었어. 잠을 자진 않았는데 이부자리가 너무 예뻤고 창에 달이 비치는 거야. 생전 처음으로 6천 원짜리 국화차를 마셨고 최고 비싼 비빔밥을 먹었어. 살아가면서 나를 위해 10만원은 써야겠구나, 싶더라고. 지금까지 날 위해 10만 원을 안 써봤네?? - P134

유지영
이 사건을 들려주자, 평소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던 지인은 "자기도 몰랐겠지만 아마 몸에 그 말을 내내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정돈된 말을 나도 모르게 해낸 사건 이후 오드리의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이렇듯 몸이 품은 말을 찾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몸이 품고 있는 말. 그 말을 내가 느낀 그대로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40

오드리
제가 당사자지만 저조차 정말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는 게, 하나의 감정으로 결론지어질 수 없는 부분이 훨씬 크더라고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하면, 행복했던 기억들까지 날아가버려요. 그런데 또 행복했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 안고 있다보면 저 자신이 너무 다쳐요. 그런 모순이 있어요. - P146

봄이
저처럼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모든 한국 여성, 아시아 여성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불쾌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요. 또 그때의 경험이 불쾌했겠지만 나를 단단하게 해준 일이라고 생각하셨으면 해요.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다보면 사회문화적 맥락이 달라서 취약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를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만 마음에 갖고 있으면 조금 더 안전할 수있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혐오가 사라져야 마땅하고, 왜 우리가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지만요. 저도 어떤 게 나를 상처받지 않게 할지를 생각하거든요. 나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P156

박나비
그렇지만 그때 사귀었던 사람이 피임을 정말 안 하는 사람이었고, 저랑 사귀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도 세 번의 낙태 경험이 있었으면서 피임을 계속 안 했어요. 한국 사회에서 피임에 대한 남녀의 인식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죠. 낙태 경험이 세 번있는 여자는 피임을 정말 철저하게 하겠죠.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하지 않았던 거죠. 남자니까. 자기 몸으로 임신할 일이 없으니까요. - P161

유지영
그러므로 만일 "너는 언제 너 자신을 여성이라고 느끼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엄청나게 당황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왜 여성인가.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알지도 못한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알아야 할 일도 아니었다. 역사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도 하루를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비장애인처럼. 무언가를 알지 못해도 그게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보통 우리는 그걸 ‘특권’이라고 부른다. - P166

챠코
만일 외국처럼 제3의 성이 한국에 도입된다면 성을 바꾸려는 논바이너리가 있을까요. 주민등록번호가 남아 있는 한 번호 때문에 언제든지 차별받으리라는 걸 알잖아요. 저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성별을 나타내는 번호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은 여자, 저런 사람은 남자‘ 라는 법적인 규정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P171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단호하게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는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분 주변에도 분명 논바이너리가 있을 거거든요. 저는 분명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도 논바이너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랑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이랑 비슷한 사람이 여기 있으니 같이 살아남자는 이야기를 하고싶어요. 살아남아서 성별 이분법이 타파된 세상을 같이 보고 나서 죽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P172

정김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잘하는 걸 해야 할까하고 싶은 걸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이 많아요. 그런데 부모님하고 이야기해보면 50대가 되어도 이 질문에 대답을 못 찾고 있더라고요. 열여덟 살인 지금 당장 결정할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요. 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열여덟 살이 잘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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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희
용기를 내서 찾아갔는데도 말 한마디 못 하고돌아가는 분들도 있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침묵도 치료의 일환이고 과정이라고요. 용기가 날 때까지 기다려주식는 거죠.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 P18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그걸 듣는 저도 제 이야기를 좀 편하게 털어놓는 거 같아요. 작가가 너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제 안에 묻어뒀던,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던 상처들이 떠올랐어요. ‘드러내기‘의 힘을 크게 느꼈고, 저도 그 상처를 드러내려고 글을 적어봤거든요. 생각보다 심플하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자주 선물했어요. - P21

유지영
나는 간혹 고기를 먹지만, 스스로 나의 메뉴를 정할 수 있을 때는 고기를 주문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 P24

정혜윤
채식하는 사람들은 "너 그러면 채소도 먹지 말지. 채소는 안 아픈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요. 그것도 중요한 질문이에요. 식물은 뭘느낄까. 알면 너무 좋겠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바꾸지 않기 위한 근거로 어떤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말을 할때 그것이 변화를 막는 도구로 이용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너 고기안 먹어? 나도 안 먹어볼까" "사실 우리 고기 좀 많이 먹지?" 이렇게 말한다는 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에요. - P27

쿤데라의 같은 책에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미를 찾으려고 살아간다‘는 내용의 글이 있어요. - P31

유지영
"(삼성 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인)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씨, 그분은 아무도 이 문제를 모를 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설명해야 해요. 그러다보니 토씨까지 똑같아졌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말해요. 그걸 다 견딘 거예요. 만일 누군가가 뭔가를 이루었다면 그 숱한 다시, 다시, 다시를 이룬 거예요. 굉장히 지치죠. 그런데 그렇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 P33

김시녀
‘금수저‘ 가정 말고는 다 노동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아갈 텐데, 어느 현장에서 일하는 병들고 다치면 누구나 치료받아야 하는 게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 P39

배복주
저는 많은 사람과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특히 비장애 남성과 연애하면서 그 사람의 가족을 만날 때는 여성이 아닌 장애인으로 무성화되는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은 아픔이죠. 누구에게나 연애의 각본이 있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 연애의 각본 안에서 움직이지만 장애 여성의 각본은 조금 더 복잡하게 꼬여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P47

유지영
대개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지능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모든 글쓰기 행위는 몸에 귀결된다. - P50

유지영
그는 역으로 자신의 몸을 그리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그림이 모두 그린 사람 자신을 닮아 있었다’는 걸 발견했노라 말한다. 관찰당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다시 자기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일. 훗날 이슬아의 작가론을 쓴다면 나는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하게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 P51

곽민지
폴댄스는 대상화되기 쉬운 운동이에요. 그런데 폴댄스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상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많이 해요. 전에는 보들보들하고 가느다란 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피부도 하는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피부 표면으로 폴에서 버티고 내 몸의모든 부위가 폴 위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대상화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져요. - P69

내가 내 외모를 비하하는 일도 상대방에게 외모스트레스를 부추기는 것이 되는데, 이를 몰랐던 시절도 있었어요. 여성으로서 내 몸이 얼마나 대상화되었는지 인식할수록, 폴댄스를 할수록 과거의 나를 수치스러워하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나는 왜 그런생각을 했지‘라면서요. - P72

강혜민
사무실에 들어올 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같이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랑 같이 들어오려면 지하철을 타거나 저상버스를 기다려야 해요. 무진장 오래 걸리죠. 이 사회가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달리 쓰게 만들었으니까요. 어떤 분이 교통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방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좀 덜 방해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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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뉴욕매거진>의 조너선 체이트는 ‘페미니스트의 가사 노동 문제에 대한 진짜 쉬운 해결책‘이라는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안일을 줄여라." - P205

"집안일은 조금 덜 하고 신경을 끊는 게 답인 유일한 정치 현안일 것이다. 집안일을 대하는 가장 혁신적이고 분별 있는 태도가 바로 무관심이라는 얘기다. 50년 전에는 이불보를 다리고 커튼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일이 100퍼센트 정상적인 일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청소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청소 일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먼지를 아예 털지 않으면 된다." - P207

그렇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궁극적인 책임이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와 격리된 채 자신들의 독립적인 세계에서만 사는 커플이라면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지만, 아무튼 여성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양한 형태로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아무 탈 없이 잘 살았을 것이다. 혹시 여성에 대한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의심이 든다면, 텔레비전 광고를 한번 보라. 바닥 세제, 화장실용 세제, 유리창용 세제, 지퍼백, 기저귀, 아기용 물티슈, 분유, 식빵 광고에 거시기가 달린 사람이 나오던가?!
그런데 여자들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부분 여자 잘못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거나 집이 더러우면, 부주의하다면서 여성을 맹비난한다. 여성과 남성이 청결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P212

1981년 요약본 『한낱 수컷일 뿐』에는 출판사 서문이 추가되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관습과도 같다. 식민지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이래로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던 사연 속 남성들의 위업은 그들의 아내, 어머니, 친구, 연인들을 통해 31년간 <뉴아이디어>에 매주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 P229

이제 리사는 사생활이 직업 세계로 번질까 봐 전전긍긍하지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제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요. 아이와 병원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병원에 있다고 말할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그만두면 사람들도 더는 사과를 기대하지 않죠."
여성들은 일터와 집 양쪽 모두에서 흠잡을 데 없이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하는 역할이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구분 짓는 전략을 쓴다. 리사는 자신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료 임원에게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갈 때면 늘 서류 가방을 가지고 간다니까요. 회의에 가는 것처럼 보이려고요."
하지만 이런 전략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자신 외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사생활 영역에서 혼자 미쳐가는 특권만 누릴 뿐이다. - P243

"엄청 바쁘신가 봐요! 그래도 저희 학교에 와서 강연할 시간은있으셨네요!"
청년이 지저귀듯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살짝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피가 되고 살이되는 말이었다. 초인적인 능력에 대한 나의 집착, 즉 약속은 깨지 않고 스트레스는 무한정 받겠다는 의지는 남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 말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준답시고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동안 이러고 돌아다니는 게 누구 때문이겠는가? 여기 오느라 힘들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그 청년이 왜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나는 무엇을 기대한 걸까? 왕관이라도 씌워주기를 바란 건가? 안 힘든 척 안간힘을 써놓고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억울해하는 것은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 P245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휴. 여기로 가져와봐. 빨리빨리 좀 해."
아이가 생겼을 때의 그 느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냘프게 우는 이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나중에 커서 골칫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이 작고 연약한 존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인식을 얼마나 하찮게 바꿔버리는지……. 오직 자신만이, 진심으로 자신만이 이런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아이가 생기면 보이는 가장 흔한 반응이다.
그래서 이때가 평생 동안 거칠 여러 단계 중에서 남자와 여자가 전통적인 접근법으로 회귀하기 가장 쉬운 단계이다. 두 배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묘미다. 개인의 독창성에 대한 믿음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한편 광범위하고 믿을 만한 사회적 패턴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능력 말이다. 아빠는 직장에 복귀할 것이고, 그동안 엄마는 새로운 전문 분야를계속해낼 것이다. 이런 말을 듣게 될 수도 있다. - P255

그런 패턴들이 굳어지는 데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일조했는지를 깨달을때쯤이면 이미 너무 늦었다. - P256

노르웨이의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선택권이 보장되고 장려책과 초보 부모일 때부터 육아에 참여할 기회만 주어지면, 남녀 모두 육아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노르웨이가 갖추고 있는 완벽한 보육 시설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의 발전이 스칸디나비아 모델보다 훨씬 더딘오스트레일리아에도 아버지가 부모기 초기 단계에 휴직을 하면장기적으로 볼 때 더욱 적극적인 부모가 된다는 증거가 있다. - P258

우리 사회는 아버지들에게 육아에 젬병이 되도록 허용할 뿐만 아니라 젬병일 거라고 기대한다. 젬병이 되라고 권장한다. 그래서 막상 젬병이 아닌 아버지를 보면 매번 놀란다. - P259

코완 부인은 이렇게 제안했다.
"노동자의 의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하려 합니다. 이 법이 직업적인 가사 노동 종사자에게 확대된다면, 남편을 고용주로 간주해야 하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아내는 남편에게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해야 합니다. 아내가 가정을 위해 하는 일은 대개 직업적인 가사 노동 종사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사상 최초의 여성 의원인 코완 부인은 의회 연설을 계속 이어나갔다. - P266

이처럼 경제학적으로 까다로운 영역을 평가할 때 대부분 그렇듯이, 1967년 체이스맨해튼은행이나 2013년 샐러리닷컴은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완전무결한 결과를 내기 위해 대체주부가 제공해야 할 편의 서비스를 모조리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다. 톡 까놓고 얘기해서 ‘성매매‘가 목록에 없다. - P278

타냐 플리버섹의 결론은 이렇다.
"이길 수 없는 게임입니다. 줄리아 길라드를 향한 비난의 대부분이 그녀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거니까요. 하지만 길라드가 결혼도 했고 일하는 엄마였다고해도 비난은 똑같았을 겁니다. 아이들한테 소홀하다고 하면서요. 아마 그 비난도 비혼에 자식도 없다며 비난한 사람들이 하겠죠. 개인사로 국민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선 안 됩니다. 자신이 만족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해야죠. 자신과 가족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거면 되는 거예요." - P330

재닌 헤인스는 1987년 〈캔버라타임스>에 급기야 이런 말까지 했다.
"사람들이 제게 남편과 애들을 떼어놓고 일하러 가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저는 그 질문을 남자한테 먼저 하면 그때 대답해주겠다고 말합니다." - P338

남자들은 모든것을 다 가지는 게 완벽하게 가능한데, 그 이유는 모든 일을 도맡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다‘는 말이 ‘모든 것을 도맡는다‘는 의미라면, 실현 가능성은 제로가 될 것이다. - P346

기대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가장 먼저 벌어지는 일은 질문을 많이 받는 것이다. - P350

피오나가 어린아이 셋을 내버려두고 총리와 전국을 돈다고 괴물 비슷한 취급을 받는 동안 (일하면서 보모의 도움을 받은) 그녀의 남편은 영웅 같은 존재가 되었다.
피오나가 직설적인 말들로 말문을 열었다.
"그이는 저보다 훨씬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이만 불쌍하게 여겼죠. 그이한테는 ‘도와드릴까요?‘라고 하고, 저한테는 ‘세상에. 정말 운이 좋네요‘라고 말했죠. 어린이집 선생님들조차 남편분께서 이런 일까지 해주시고 어머님은 정말운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했어요. 음……, 그이 애들이기도 하잖아요. 당연히 그이도 애들을 돌봐야죠. 그이는 무슨 여신이 아닌 남신이라도 된 것 같았다니까요. 물론 남편이 잘 도와줘서 저도 고맙기는 했지만, 아휴." - P356

그러나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은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전일제로 근무하는 것이 또 하나 올라서야 할 단계이다. 엄마들 중 전일제 근무를 하는 비율은 겨우 22퍼센트이다. 남편보다 고소득을 올리는 것 또한 또 다른 단계로, 그런 엄마들은 1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이 가정의 생계를 단독으로 책임지는 것은 모든 단계 중 최고 난이도의 단계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 있는 여성은 겨우 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제아무리 현대화되고 또 그렇다고 생각해도, ‘평균적인‘ 가정에서 누가 어떤 일을 담당할지에 대해 여전히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P368

리브스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남성 아내들이 여성 아내들과 똑같은 식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여성 생계부양자들도 남성계부양자들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 P376

연구팀은 193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모두 센 다음, 그 당시 몇명이 기혼 혹은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지 조사했다. 후보에 오를 당시 배우자나 연인이 있었던 265명의 여성 중 60퍼센트가 이후에 이혼을 했다. 꽤 높은 결혼 사망률이 아닌가!! - P384

2009년 독일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 학자들은 다양한 가족을 분석한 후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 이혼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 결혼은 전통적인 남성 생계부양자 상황일 때보다 ‘역할 전환‘ 상황일 때, 즉 여자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남편이 아이들과 집에 남아 있을 때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자가 가정의 주요 소득원인데도 집에 와서 집안일까지 모두 할수록 이혼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여성의 생계 책임과 이혼율 상승 사이의 연결고리는 그러한 일련의 연구들이 이미 밝혀놓았다. 따라서 오스카 수상자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 P386

수 없다. 우리는 수년 동안 여성을 리더의 자리로 올리려고 할당제니 차별 철폐 조처니 온갖 보조적인 수단을 두고 왈가왈부했지만, 그동안 등식의 나머지 반은 간과했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열심히 독려할 뿐, 남성에게 가끔 뒤로 빠져도 괜찮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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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기혼자 퇴직법.. 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유부녀 퇴직법.

‘모든 여성 공무원은 결혼과 동시에 연방 기관에서 퇴직한다‘라는 연방공무원법 49조 2항이 1966년에서야 폐지가 되었단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고, 일부는 결혼을 숨기거나 동거를 숨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방법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50년 전보다 일하는 여성의 수가 크게 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여자 연방 총리, 여자 총독, 몇 안 되는 오스트레일리아 200대 상장 기업의 여성 CEO들이 생겼다.
한편,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슈퍼우먼’세대 또한 낳았다. 이 여성들은 ‘수컷들’의 노동 세계로 제대로 진입하기는 했지만 (그에 상응하여) 가정 내 여성들의 노동 세계에서는 남성들의 노동 세계에 진입한 만큼 퇴각하지 못했다. 이들 슈퍼우먼은 그냥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다.
현대의 일하는 엄마들 다수에게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한 군데가 아니라 두 군데에서 자신을 혹사시키는 영광을 부여받았다는 의미다. ‘오스트레일리아 일과 생활 지수(Australian Work andLife Index)‘에 따르면, 아이가 있는 일하는 엄마들 중에 자주 혹은 늘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 P106

우리가 가정 내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려면 제대로 부여해야 한다. 즉, 여자들이 가사 노동의 대가를 못 받는다고 통탄만 할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남성들에게 가사 노동을 별로 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P109

일을 그만두는 것이 꽤 유용한 행보가 될 수도 있다. 일이 아무리 힘들고 짜증 나도 그 일의 싫은 점에 대해 징징거릴 뿐, 일을 계속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어쩌면 실제로 그만둬서 안정적인 직업과 소득을 잃어도 괜찮을 정도로 그 일을 싫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거라면 혼자서 징징대는 게 비용 대비 만족할 만한 대안이기도 하다. - P113

남자들이 아버지 역할을 정말로 하고 싶을 때, 그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딸아이의 수영 대회에 가면서 신경 치료를 받으러 가는 척하는 거죠.
아빠들이 왜 육아휴직은 안 쓰냐고요? 대부분의 조직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CEO부터 육아휴직을 써야 합니다. 그럼 달라질 겁니다. 정말로 일과 생활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9시 전에는 출근하지 마라. 오후 5시 이후에는 회의를 잡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 P133

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시달림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성별보다는 직장에서 구성원들이 전통적인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느냐와 관련었다. 시달림을 가장 적게 받는 부류는 아이가 있지만 아이에 대한 통상적인 책임만 지는 남성과 아이가 있으면서 통상적인 책임 이상을 지는 여성들이었다. 더 큰 어려움이 있는 부류는 아이가 없는 여성들과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남성들이었다. 아이가 없는 여성들은 냉정하고 무심한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남성들은 유약하다고 여겼다. - P148

인간은 꽤 복잡한 존재이다. 어떤 일련의 행동 때문에 시달림을 받는다는 확신이 들면 피할 수 있는 한 그 행동을 대개 피한다. 따라서 아이를 데리러 가느라 직장에서 일찍 나가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할 때, 직장 내에서 보이는 낮은 수준의 반응들은 후속결정을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49

요즘 일터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에 대해 똑 부러지게 의견을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며 아는 것도 많은 현대 여성들조차 ‘모든 여성 공무원은 결혼과 동시에 연방 기관에서 퇴직한다‘라는 예전 연방공무원법 49조 2항의 항목을 보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 P154

기혼자 퇴직법은 연방 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법의 정신은 웨스트민스터법*에서 시작되었다. 웨스트민스터법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입법 구조를 세우는 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영국 여성 공무원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항이 있었다. - P155

법무부 장관: 채프먼 하원 의원께서는 결혼한 여성도 공직에서 계속 일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상으로도 이미 입증되었고요. 채프먼 하원 의원께서 이의를 제기하신 조항은 일반적으로 공직에서 적용되고 있는 조항입니다.
채프먼: 그럼 남자도 결혼하면 해고하지 그래요?

채프먼 하원 의원이 마지막에 던진 돈키호테 같은 반격을 끝으로 해당 법안은 표결에 부쳐졌다. 채프먼이 낸 수정안은 35 대6으로 대패했고, 결국 기혼자 퇴직법은 통과되었다. 채프먼의 무덤을 알아내서 이 사랑스러운 양반 무덤에 엄청 큰 꽃다발을 하나 놓고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로 의회 회의록에 있는 이 부분 때문에 말이다. - P161

당시 이와 유사한 여러 토론회에서 여성의 동일임금 지급에 대한 사안이 자주 등장했다. 단, 동일임금을 찬성하는 쪽들은 여성이 임금을 적게 받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들은 여성의 값싼 노동력이 남성의 임금을 헐값으로 떨어뜨릴까 봐 두려워서 동일임금을 주장한 것이다. - P162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너무 자세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이유는 거의 50년 전에는 남자에게 아내라는 믿을 만한 존재를 확실하게 제공해줘야 했고, 그게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아내란 바깥일에 정신이 팔려서 음식을 태워먹는 정신 나간 직장 여성은 아니었다. - P169

남자에게 결혼은 소득 증가를 의미한다. 이런 현상을 ‘결혼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결혼한 남자들은 미혼인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약 15퍼센트 더 많이 번다. - P171

이것이 바로 전문화인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는 매우 효율적이다. 한 팀인 우리는 선물 포장과 정보 통신 기술 두 분야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헤어지게 되면 나는 영화를 영영 못 보고 제레미는 실망스러운 생일 파티 손님이 될 것이다. 이혼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심코 시작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절대적인 능력이 되어버린 전담 노동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끝나버린 사랑 때문에도 괴롭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할 때 삶은 더욱 구차해진다. - P174

결혼이 여성의 취업 전망에 영향을 미칠까? ‘별 영향이 없다‘가 가장 맞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성은 결혼이라는 행복한 사건 이후 소득 부문에서 결혼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전혀 없다. 그리고 여성에게 획기적이고 중대한 변화는 결혼이 아니라 출산 이후에 찾아온다. - P176

반면 여성에게 부모라는 입장은 역효과를 가져온다. 사실 아이가 없는 여성은 아이가 없는 남성만큼 돈을 번다(재직 기간 40년동안 190만 달러를 벌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소득은 130만달러로 떨어진다. 아이가 없는 여성보다 60만 달러, 아이가 있는 남성보다는 총 120만 달러나 적게 벌게 된다. - P176

여자 둘이 서로 경쟁 상대인 경우, 즉 한 여자는 아이가 있고 다른 여자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력서로 쉽게 추론해낼 수있을 때 아이가 있는 여자가 모든 부분에서 상대에게 밀렸다. - P177

따라서 아이의 존재는 여성이 직업을 가질 확률을 떨어뜨렸고, 신뢰도나 승진 가능성에서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 P178

전반적으로 적합성이 하락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남성은 가정을 이룬 사실이 경쟁 우위로 작용했다. 묘하게도 여성에게는 조심스럽게 밝힌 아이의 존재가 헌신성 부족이나 승진 자격 미달 등의 의혹을 가져온 반면, 남성에게는 아이의 존재가 그런 의혹을 한번에 해결해주었다.
어째서 ‘아이‘라는 똑같은 요인에도 남성과 여성의 결과가 이토록 다르게 나올까? 물론 처음부터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전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여성과 남성의 행동 양상을 추측할 때 다른 전제 기준을 가지고 바라볼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일터에서 남녀를 차별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환경이라도 말이다. - P179

남자는 경기 침체 때문에 일자리에 지장을 받지만 여자는 가족 때문에 지장을 받는다. - P180

오스트레일리아의 남녀가 전 세계 남녀보다 집에서 일을 많이하는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저임금 가사 노동 서비스 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남녀 모두 오스트레일리아보다 가사 노동을 적게 하지만 사회 최하위 계층의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공산이 훨씬 크다. 어쨌거나 미국의 가사 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이 94퍼센트이므로 성 인지 통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가사 도우미 고용은 수많은 변수를 초래한다. 인종 변수가 그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전미가사노동자연맹이 2012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백인 가사 도우미가 시급 12달러의 중위임금을 번다고 하면 흑인 및 라틴계 가사 도우미들은10달러, 아시아계는 8.33달러를 번다. - P192

사실 집 밖의 변화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집 안의 변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가 않다. - P193

분석 결과, 이혼 즉시 남자의 가사 노동량은 주당 약 10시간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여성에게 이혼은 남성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남편과 이혼한 후에 집안일을 일주일에 6시간 덜 했기 때문이다. - P199

연구 결과, 평균적으로 여성은 가계 예산에 1퍼센트를 기여할 때마다 집안일을 일주일에 17분씩 덜 했다. 따라서 남편이 9만 9,000달러를 벌고 아내가 밖에 나가서 1,000달러를 받는 임시직을 얻으면, 아내는 일주일에 17분 가사 노동을 덜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여도가 1퍼센트 더 증가하면 집안일을 추가로 17분 줄일 수 있다. 여기까지는 교환 협상 이론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유급노동이 무급 노동과 교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한쪽을 더 많이 하면 나머지 한쪽을 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은 여성의 기여도가 가계 총소득의 66.6퍼센트에 도달할 때까지만 유효했다. 여자가 그 이상 벌기 시작하면 무급 노동의 양이 다시 늘어났다. 가족의 주요 생계부양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면 여성은 교환 협상 모델이 예측한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즉, 유급 노동으로 돈을 많이벌수록 여자는 다시 집안일을 점점 늘렸다. - P201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국의 경우는 달랐다. 미국은 아내들이 돈을 많이 벌수록 가사 노동 시간을 줄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달리 미국 여성들에게는 기이한 악마의 숫자, 즉 66.6퍼센트의 반전이 없었다. 대신 미국은 남편들이 집안일에서 손을 놓았다.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벌면, 미국에서는 남편들이 아내와 소득 수준이 같아질 때까지 가사 노동 비율을 계속 늘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내의 소득을 따라잡지 못하면, 남편들은 손을 놓고 다시 가사 노동을 줄여버렸다. - P203

"오스트레일리아 여성들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집안일을 더욱 많이 했다. 마치 아내가 가정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이 아내의 수입에 의존하게 된 ‘성 역할 일탈‘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남성들의 가사 노동 참여는 아내의 소득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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