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음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거짓말 같나요? 부모가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순간갑자기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가 ‘돌봐주기 모드‘에서 ‘설교 모드‘로 바뀌는 순간을확실히 알아차리고 곧바로 귀를 닫습니다. 그게 선생님이거나 다른 어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 P7

왜일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구조주의적‘ 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상식이 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편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자각 자체가 구조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라는 사상의관습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려고 할 때, 이를 위한 학술적인 근거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구조주의밖에 없습니다. 구조주의적 견해를 이용하지 않고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이 ‘고리 속에 갇히는 것‘이 바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P21

세계에 대한 견해는 시점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따라서 하나의관점만을 고집하며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바르게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현재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유효성을 알려준 것이 바로 구조주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식‘으로 등록된 것은 약 50년쯤 전인 1960년대의 일입니다. - P27

마르크스는 이러한 입장을 헤겔로부터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있는그대로에 만족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도약해서 이루고 싶은 것을이루는 것이다. 이는 헤겔의 인간학을 거칠게 표현한 것입니다(이런 헤겔의 인간 이해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실존주의를 경유해서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유럽 사상에서 일관되게 흘러왔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의 사회관계에서 ‘현재 상태의 긍정‘, 즉 ‘존재하는 것,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 창조물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생산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매개로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기본적 인간관입니다. - P31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목적을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가운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드물게 보고받고 있을 뿐 임을 증명하는 데에 있다고 적었습니다(『정신분석입문』).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계급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프로이트는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 사고의 주체를 모른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히 드러내어 보여준 것이 프로이트가 분석한 ‘억압‘의 메커니즘입니다. - P37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인간의 사고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외적 규범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외친사상가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어떤 시대나 지역의고유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니체만큼 격렬하게 비판한 사람은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다음과같이 집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이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우리를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각자에게 가장 먼 사람이다‘ 라는 격언이 영원히 적용될뿐이다. 우리에 대해 우리는 결코 ‘인식자 일 수 없다.
-도덕의 계보에서 - P44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이 세 사람은 구조주의의 ‘땅고르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사람은 딱히 구조주의만을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20세기에 제창된학술 방법 가운데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의 영향을 전혀 받지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은 20세기 지식의 틀자체를 준비했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구조주의가 태어난 풍토의형성에도 깊이 관여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구조주의의 직접 연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구조주의의 연원이 되는 사람은 이들과 다른 별개의 인물입니다. - P65

소쉬르는 언어활동이 별자리를 보는 것처럼 원래 선이 그어져있지 않은 세계에 인위적으로 선을 긋고 별자리를 정하듯 정리를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리적으로 보아 우리의 사상은 낱말을 통한 그 표현을 빼면 형태 없고 불분명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기호의 도움 없이는 두 개념을 분명하고 한결같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은 항상 의견을 같이했다. 사상은 그 자체로 보면 하나의 성운雲과 같아서 그 속에 필연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활동이란 ‘모두 분절되어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 그 자체입니다.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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