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은 나를 부자연스럽다고 여기고, 정상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며, 내가 치유에 대한 열망과 욕구를 가졌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가 잘못됐죠what‘s your defect?" 그들이 보기에 내 몸-마음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망가진, 결함이 있는 존재defect being다. 하지만 결함이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켜지지 않는 MP3 플레이어나 믿고탈 수 없는 차를 생각해 보자. 그것들은 결국 맨 아래 서랍에 처박히거나 쓰레기통 혹은 고철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결함은 버려질 만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이며, 박멸eradicate해야 하는 몸-마음 또는 대상이다. - P25

이 모든 아이들, 어른들, 낯선 이들은 장애인을 인간이 아닌존재로 호명하는 유산legacy에 기여했다. 그들은 기도와 가르침과 조롱,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다가왔다. 그들은 내가 망가진, 특별한,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치유를 필요로 하는 비극적인 존재, 언제든 버려질 만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않았다. 수 세기에 걸쳐 점점 더 가속도가 붙은 믿음이었다. 그들은 우울과 수치, 자기혐오self-loathing 속에 나를 남겨두고 떠나갔다. - P27

수년간 나는 장애인의 의료화와 치유에 대해 줄곧 불만을 표해왔다. 수십 년 동안 장애 활동가들은 외쳤다. "우리의 몸-마음을 내버려 두어라. 우리를 수치화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이론화하는 당신네들의 숨막히는 허튼 소리로 우리를 정당화하고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어라." 장애를 사회적 정의의 문제로 선언하는 것은 중요한 저항의 행위였다. 장애는 마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 없는 계단에, 시각 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자와 오디오북의 부재에, 난독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육 방식에 있었다. 이러한 공표를 통해 장애 정치는,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몸-마음이 아닌 이 세계에 두는 다른 사회변화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 P38

질병을 제거하든, 미래의 존재를 제거하든, 현재의 모습을제거하든, 삶 그 자체를 제거하든, 이 세 가지 배열에서 치유의핵심은 언제나 제거다. 이러한 박멸은 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개인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특정 집단 전체의 감소diminish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삭제erasures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폭력은 그저 부작용으로, 혹은 생명을 구하고 몸-마음을 정상화하는 데에 따르는 불가피한 대가로 여겨진다.
나는 다른 프레임을 제안하고 싶다. 이러한 폭력을 더욱 본질적인 무엇, 이를테면 결과와 영향, 심지어는 의도로 보는 프레임이다. 치유의 사례 하나하나가 모두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의 회복이 간파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에 이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널리 퍼져 있는 이데올로기인치유가 박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폭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작동한다는 이야기다. - P61

우리가 숨 쉬고, 선천적 결함이라 여겨지는 상태로 살아가고, 암과 함께 살고, 다양한 방식으로 불의의 증거들을 배우는 경험을 평가 절하한다.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장애를 개인의 몸-마음 안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손상으로, 비장애중심주의에 의한 피해와는 무관한 일인 양 바라본다. 눈부시게 불완전한 우리의 삶을 못 본 체한다. 우리를 석탄화력발전소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공표한다. 이런 식의 주장이 이것 하나뿐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에라클럽의 수사는 장애와 만성질환을 교훈적인 이야기로 사용하는 공중보건 캠페인의 수많은 예시(음주 운전, 약물 사용, 페인트 속 납, 석면, 안전하지 않은 섹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 - P104

불구crip*
* 성소수자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멸칭이었던 ‘퀴어queer‘가 성소수자 운동의 진영에서 정치적·전복적 의미로 전용된 것처럼, ‘cripple‘의 축약어인 ‘crip‘ 또한 본래는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속어였으나 장애당사자들에 적극적으로 변용되고 전유되었다(이 책의 8장 230쪽과, 5장 미주 14번을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장애운동계로도 이어져 ‘불구‘나 ‘병신‘ 등의 비하적 용어가 자긍심의 언어로 다시 쓰이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18년 한국의 장애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이 2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라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망명과 자긍심]을 번역한 전혜은과 제이,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를 번역한 이명훈은 ‘crip‘의 역어로 ‘불구‘를 택하고 있다. 이 책 또한 위와 같은 맥락에서 ‘crip‘을 ‘불구‘로 옮겼다. - P147

미국 정부와 비영리기구, 사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미래를 위해 시간과 자금을 바치고자 한다면, 그들은 현재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접근성 높은 버스, 학교, 교실, 영화관, 화장실, 주택, 업무 현장을 만드는 데에 투자해야 한다. 치유 연구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열의로 괴롭힘, 고용차별, 사회적 고립, 장애인 - P154

의 시설화를 멈추기 위한 캠페인을 지원해야 한다. 나는 휠체어를 탄 아이들이 달릴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한편, 지금 이 순간아이들이 엄지손가락만 빙빙 돌리며 홀로 남겨지지 않을 수 있도록 접근성이 높은 놀이터, 트리하우스, 모래놀이터를 만들 자금을 원한다.
언제나 손에 잡힐 듯하기만 한 치유를 기다리며 자원과 에너지와 언론의 관심을 낭비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삶을 유예하며 살아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치유에 대한 믿음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몸에 대한 기억에,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몸에대한 바람에 우리를 묶어놓는다. 특히 그러한 바람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치료 기술에 기반하고 있을 때, 우리의 몸-마음은 쉬이 환상이자 투영 projection이 되어버린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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