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헬스장에 가는 시시포스, 신도시에 사는 프시케
보행의 황금기를 만든 추동력은 차량으로 무장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겁내지 않고서 탁 트인 공간을 여행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도시와 시골이 전보다 안전해진 시대의 욕망이자 그 안전해진 세계를 간절하게 경험하고 싶어 하는 시대의 욕망이었다. 교외화는도시는 버리고 시골은 방치했다. 오늘날의 이른바 제2차 교외화(집에 지하벙커가 있는 고급주택 동네)는 그 격리 상태를 더욱 심화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보행자 공간이 사라짐으로써 육체와 공간의 관계에 - P409
일상 공간(출퇴근 길, 상점에 가는 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등)에서 육체를 동원하는 대신, 여가 공간(쇼핑몰, 공원, 헬스장 등)을 새로 마련한다.(목적지까지는 대개 자동차로 이동한다.) 유원지에서 자연 보호 구역까지온갖 공원들은 오랫동안 육체의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고, 20년 전부터는 헬스장이 마구잡이로 급증했다. 그런데 이런 헬스장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점이 있다. 걷는 일이 지표종이라면, 헬스장은 몸을 쓰는 일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연 보호 구역이다. 자연 보호구역이 서식지를 잃은 종을 보호하는 곳이라면, 헬스장(또는 가정용 운동기구)은 몸을 쓰는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없어진 이후에 몸이 멸종하지 않게 도와주는 육체 보호 구역이다. - P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