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정신의 발걸음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 P33
장기 도보 여행의 초기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여행의 진지한동행 후보자를 루소는 결국 찾지 못했다. (동행에게 여비를 물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동행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루소가 걸을기회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그덕분에 나는 그 존재들을 아무 불편함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결합하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루소가 그려 보이는 보행은 물론 이상적인 보행, 즉 건강한 사람이 쾌적하고 안전한 길에서 자발적으로선택한 보행이다. 나중에 루소의 무수한 상속자들이 행복, 자연과의 조화, 자유, 미덕의 표현이라고 여기게 되는 보행도 바로 이런 보행이다. - P41
홀로 걷는 사람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홀로 걷는 사람의 존재 방식은 노동자나 거주자나 한 집단 구성원의 유대 - P45
감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에 가깝다. 걷는 동안 루소는 사유와 몽상 속에 살며 자족할 수 있었고, 자기를 배반한 것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걷는 것을 아예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선택했다. 루소는 걸음으로써 그야말로 발화의 형식을 얻었다. 논문 같은 엄격한 형식, 또는 전기문이나 역사서 같은 연대기적 형식과는 달리, 여행기는 탈선과 연상을 장려한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 반 후, 마음의작동 방식을 그려내고자 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보행이라는 비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바로 사유와 보행의 이러한 관계를 그려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 P44
혼자 걷는 사람은 주변 세계와 함께 있으면서도 주변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다.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에서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걷는 일 자체가 이 가벼운 소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혼자 걷는 사람이 혼자인 것은 걷고 있기 때문이지 친구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 - P48
기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는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가벼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사유를 펼칠 수 있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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