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숙(1933~)
소정 강인숙은 1933년 함경남도 갑산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배우자는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며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났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고 수필가, 번역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2001년에는 이어령과 강인숙의 이름한 자씩 넣어서 만든 영인문학관을 개관하고 현재 관장으로 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세대로 일본어 독해가 가능했으며 불문학을부전공으로 하는 등 외국어에 농통했다. 「자연주의를 중심으로 한김동인 연구」(석사학위논문, 1964), 「자연주의 연구: 불·일한 삼국대비론」(박사학위논문, 1985)을 필두로 한국 자연주의 문학 연구에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 P205
강인숙_여류문학의 새 지표
라블레의 시대부터 이미 여인들은 심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여 대부분의 여류 작가들이 걸어간 길이다. 전기한 안방 중심의 문학은 동시에 심리 묘사의 문학이기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류 작가들도 거의 다 이 양면을 구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할 만한 작가는 강신재 씨와 한무숙(韓戊淑)씨 같은 작가다. 《바바리 코우트》 《젊은 느티나무》의 작가 강신재 씨는 단편소 - P210
설이라는 제한된 그릇 속에 선명한 심리의 투시도를 그려 넣는 명수다.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의 앰비밸런스를 묘사하는 씨의 수법은 유니크하다. 작자의 의도를 위하여 작중인물에게 무리를 시키는 일이 없다. 씨는 그저 한 폭의 그림을 그릴 뿐이다. 거기에 주석을 붙이거나 설명을 하는 일이 없다. 씨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묘한 분위기와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잊혀지지 않는것은 이런 부담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월훈(月暈)》 《떠나는 날》의 작가 한무숙 씨는 강 씨와는 또 다른 심리소설의 일면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씨에게서 특히 기억해야할 작품은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이다. 그 작품에서 씨는 여지껏평면에 그쳤던 심리 추구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다. 섹스 콤플렉스, 길트 콤플렉스를 다룬 이 작품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내적 갈등을 취급한 한말숙 씨의 《상처》와 함께 인간 심리의 심층을 파고들어 간 그 노고만으로도 치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도를 형상화시키는 일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 두 작품은 심리소설의나아갈 길의 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 P211
또 사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 여류 작가의 결정적인약점이었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면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문학이 성행하던 시기에 작품 활동을 하던 박화성(朴花城), 최정희(崔貞熙) 양 씨의 초기 작품이 이미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고, 강경애(愛)씨의 《지하촌》 같은 작품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전기한 풍속의 묘사나 심리 추구의 문학에 비기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약세에 놓여 있었으며, 자칫하면단절되기 쉬운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들어가서 박경리(朴景利) 씨가 나오면서이 분야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불신시대》 《암흑시대》 등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씨는 이미 이방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P212
금년도의 여류문학상을 탄 손장순씨의 한국인>도사회에 대한 짙은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다. 손 씨는 박 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 경제적인 분야에까지 그 관심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같은 사회소설이라도 여류 작가의 경우는 시발점이 언제나 안방과 직결되어 있다. 전쟁을 시장과 결부시킨 그 착상법부터 특이하다. 이념의 싸움터(戰場전장)를 생활의 싸움터(市場시장)와연결시킨 것은 씨의 공적이다. 비록 그것이 홍사중 씨의 말대로 『비좁은 시각으로 하여 전쟁을 개인의 생활 속에 충분히 용해시키지 못한 채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할지라도손씨의 경우도 역시 《한국인>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안방과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는 것뿐 아니라 그쪽의 비중이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폭에 비해 안방적인 요소가승했다는 것은 양씨(兩氏)가 여류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케 하는 자료가 된다. - P213
전혜린_목마른 계절 -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중간 지점에서
이런 공동의 인식에의 정열과 탐욕스러운 지식욕이 그때의 나와 주혜를 무섭게 굳게 맺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기억을 주혜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지상의 양식」을 읽고 나서 우리는 그 속에 있는 한 귀절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비를 받아들이자」에 감동해서 폭우 속을 우산 없이 걸어 다녔다. 이 버릇은 많이 완화된 채 아직도 나에게 남겨져 있다. 또 마르땡·듀·가아르"의 「회색·노오트」를 읽고는 주혜와 나는 당장에 회색 노오트를 교환하기로 하여 매일 한 사람이 집에 가 - P224
져가서 일기를 쓰고 다음 날 그 노오트를 상대방의 책상 속에 넣고있었다. 이 노오트를 우리는 몇 년이나 교환했었다. 그 당시 그 노오트와 주혜는 나의 전 생활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주헤도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다. 재능에 대한 정당한 회의를, 어린 연령과 또 열렬한 지식욕이 가려 덮고 있었다. 하늘은 넓었고 우리는 얼마든지 날을 수 있다고 믿었다. 문학, 철학, 어학(영·독·불·한문·한글)에 대한 광적일 정도로열렬한 지식욕과 열성, 그리고 주혜와의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순수한 가장 관념적인 사랑으로 완전히 일관되어 있었던 나의 여학교시절은 확실히 아직도 미래에 대해서 꿈을 그릴 여백이 얼마든지남아 있었던 동화의 나라와 현실 사이의 완충지대이기도 했었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장 이외의 方向방향으로 어느새 자기가 형성된 것을 발견했다. - P225
정연희_정점
지영은 견딜 수 없어지자 영은의 머리를 떠다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집 안을 향하여 걷다 말고 영아의 목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는 밤낮 기다리는 여자 같죠? 어머니는 뭔가 밤낮 기다려요. 이제까지의 생애가 기다림 하나뿐인 것같이 생각될 때가 있어요. 행복이 아니면 차라리 커다란 불행을 기다리는 여자 같아요. 또 어머니에게 행복의 뜻이란 평범한 거에요」 「허! 그 녀석 또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한수의 말에 영아는 「궤변이 아니래두요. 두고 보세요」 그렇게 조용하게 말하면서 지영을 돌아본다. 영아의 얼굴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아까는 노을 속에서 생겨난 생명 같았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달빛 속에서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P268
박시정_날개 소리
가령 <멋있는 여자>라고 말해야 할 것을 <맛있는 여자>라고 발음했다느니, <살이 많다>고 말할 것을 <고기가 많다>고 말했다느니, 그런 한국말 수업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또한 누이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귀꼬리에 구멍을 뚫었다느니, 어젯밤에 고양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먀암, 먀암 했다느니, 우리네에겐 하나도 중요한 얘깃거리가 아니었다. 얼핏 생각해 보면 그러한 대화는 시간낭비 같다. 나는 이런 따위 대화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나는다시 불안해졌다. 그러나 생 전체를 하나의 도너스라고 가정한 후, 구멍이 안 뚫린 부분이 밝은 생이고 뚫린 부분을 슬프고 쓰고 아픈부분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슬프고 쓰고 아픈 부분만 응시하고 괴로와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아무런 해결도 있을 수 없고 자기 발전에 저해마저 주는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도너스의 안 뚫린 부분만바라보고 아이들처럼 곱고 순진한 얘기들,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들만 하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자기 밖의 생활일지는 모르지만 아픈응시는 아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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