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작가가 환경 전문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했다는 건 몰랐네.
시대 개관
1960년대 여성문학사의 주요한 흐름은 다음 네 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 번째는 4.19혁명이 일깨운 개인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지성을 여성중심적으로 전유하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할당한 일상성과 불화하거나 긴장하며 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과냉전 기억에 균열을 내고 영혼을 갉아먹는 감시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들이다. 세 번째는 자기 안의 낯선 욕망을 드러내며 ‘여성성‘을 수수께끼로 만드는 병리적 상상력의 출현이다. 가부장적 핵가족이 정상성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아프레 걸‘들이 물러난 자리에, 미쳐 있고 기괴한 여자들의 무질서한 욕망을 보여 주는작품들이 등장했다. 네 번째는 여성 작가들의 ‘저자‘ 투쟁을 보여주는 좌담, 선언문, 평론 등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여성 문단은 여성문학사를 계보화하고 여성문학 정전을 발행하는 등 여러 사업을추진하며 ‘여자 없는 한국문학사‘에 대항해 여성 작가와 여성문학의 권위를 획득하고자 했다. - P20
여성 작가들은 광기의 상상력을 통해 젠더에 관한 상식적인 개념을 가지고 놀면서 문학을 남성 권력의 요새가 아니라 유희로 만들었다. 오정희는 등단작인 「완구점 여인」(1968)에서 중년의 장애여성에게 끌리는 소녀의 도착적 욕망을 통해 젠더는 표피적인 것이며 원본 없는 모방이라는 것을, 즉 우리의 젠더 · 섹슈얼리티 정체성이 명료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정상/비정상,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의 배타적 이분법을 흔들고자 한 것이다. 또한 박경리의 「쌍두아」(1967)는 전후를 배경으로 남녀의 정신병리적인 삶을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각각 39세의 이혼남, 37세의 미혼녀인 종서와 영혜는 콤플렉스로 인해 현실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쌍생아다. 그러나 가난한 번역가인 종서가 숙모에게 유산을 강탈당해도 항의조차 없이 물러설 만큼 반세속적인 탓에 가난으로 내몰린다면, 영혜는 자신의 일그러진 귀에 대한 콤플렉스로 남자와 관계를 맺지못한다. 흥미롭게도 영혜는 종서의 콤플렉스는 내적인 것이고 자신의 콤플렉스는 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 P30
박경리
2003년 환경 전문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했다. 산문집 『Q 씨에게』(1981), 『원주통신』(1985),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1995),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 등을 남겼다. - P43
박경리_쌍두아
나는 혼자야. 하지만 나는 대화를 갖고 있단 말이야. 자유스런, 무한히 자유스런, 내가 번역한 작품은 모두 하나하나가 주옥이다. 왜? 나는 혼자서 원작자하고 자유롭게 얘기하고 마음을 나누며외롭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다 알 수 있지. 그 작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가를, 곤두박질을 하며 고통을 받는 모습을, 기뻐서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고, 은밀하고 교활한 미소를 띠우는 얼굴을, 낱낱이 볼 수 있거든. 하나도 기겁하질 않어. 거리에 나가 보아. 그리고 사람을 만나 보아. 그런 진짜 얼굴이 있는가. 깍이고 깍여서 다듬어진 얼굴이, 꼭 같은 얼굴이 꼭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참말을 하면 모두 내 얼굴을 쳐다보고 우습다는 거야. 유치하다는 거야. 저 건물의 평수는 얼마고 도시계획에 헐리지 않는 거구, 외국산 양복지의 종류 이름이 무엇무엇이고, 그것이 참말이라는 거지. 그래도 내가 참말을 하면, 뭔데 너가 그러냐는 거지. 뭔데 말이야. 하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판잣집 셋방살이의 부잣집 외아들의 비참한 말로, 웃음거리의 인간에 불과해. 그들이 그러는 거야. 영혜도 그러고. - P65
박순녀_아이 러브 유
나는 새삼스레 무엇인가 슬펐다. 아까만 해도 적십자간호원을지원할 듯이 흥분했던 내가 아닌가. 나는 내가 아니, 조선이라는 식민지의 한 소녀로 태어난 나의 환경이 운명적으로 너무나도 불순하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처음 멘스가 있던 날의<여자>에 대한 증오라 할까, 경악이라 할까, 아뭏든 무엇엔가 몸부림쳐 억울하다고 항의하고만 싶던 그 심정과도 같다고나 할까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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