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개관

그에 비해 오정희 작품의 여성들은 비체가 되어 버려지는 여성성 자체를 끌어안는다. 육체적 취약성과 동물적 부패성 그 자체로존재하기 때문에 오정희 작품의 여성 인물들은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비체와 타자는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비체가 부정되고 버려지는 주체의 일부분이라면, 타자는 주체가 정립되기 위한 젠더 이분법의 대립쌍을 구성한다.3) 예를 들어 1970년대 여성성 구성에서 취약한 여성 신체는 처벌되는 여성 섹슈얼리티로 재현되어 사라지지만 현모양처형 여성성은 헤게모니 여성성으로 구성된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의 소녀 주인공 ‘노랑눈이‘는 부정적인 비체로서의 여성 신체를 인지하고 여성적 성장을 거부하는 반성장을 보여 준다. 다른 여성 주인공들 역시 불임, 낙태 등 불구적 신체성을 드러낸다. 오정희의 작품은 여성의 취약한 신체를 끌어안음으로써 가부장제에 저항한다.

3)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옮김, 『공포의 권력』(동문선, 2001), 21쪽. - P19

1970년대 여성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여성문학이라는 범주와 육체가 구성된 시기이다. 일종의 지도 그리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 성격적 특성이나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이지만 여성전업 작가가 등장하고,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 경험의 문학화가 가능해졌으며, 여성적 장르와 매체가 형성되었다. 또한 새 - P30

로운 글쓰기 주체로 등장한 여성 노동자와 민중적 글쓰기의 도전도앞으로 여성문학의 범주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의적 개발독재기는 노동의 도구로 국민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계몽의 시대였다. 히스테리적 글쓰기와 육체의 언어로 쓰인 시, 일하는 몸의 경험을 다룬 여성 노동자의 글쓰기로 당대 여성문학이 정립된 것은 국가주의적 가부장제의 급속한 강화에 저항하는 인간성의 호소와 관련이 있다. 취약한 신체와 인간적 경험을 배제하는 체제에 저항하고 이를 문학화하는 글쓰기 전략이 여성문학의 특성이 된 것이다. - P31

김자림

「돌개바람」과 「화돈」의 여성 인물들은 근본적으로 전통적인남녀 역할과 가부장적 결혼 제도를 제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지만, 여성의 성욕 문제를 드러내고 정조 이데올로기와가부장제 결혼 제도에 도전하는 ‘반항하는 여성들‘을 담아냈다는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다루는 넓은 스펙트럼이 김자림의 희곡적 특징이기도 하나, 그보다 당대 여성이 당면한 문제들을 무대 위에 올린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 희곡 작가로서 김자림을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 P33

오정희_중국인 거리

어둠이 완전히 걷히자 밤의 섬세한 발 틈으로 세류(細流)가 되어 흐르던 냄새는 억지로 참았던 긴 숨처럼 거리 곳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제야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냄새는 낮선 감정을 대번에 지우고 거리는 친숙하고 구체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나른한 행복감이었고 전날 떠나온 피난지의 마을에 깔먹여진 색채였으며 유년의 기억이었다. - P175

나는 따스한 핏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荀)을,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으로 감지했다.
"인생이란......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다만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거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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