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닮은 방들>
오정희 <비어 있는 들> <어둠의 집>
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노동의 새벽>
이소산
4장 가족 관계: 여상의 취업 여부와 계층에 따른 비교적 고찰
파슨즈T. Parsons를 위시한 기능주의자들은 이미 이러한 핵가족을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욕구 충족과 사회의 발달을 가장 잘 이루어가는 기능적 가족으로 논의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생산 활동 영역과 소비와 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정이 엄격하게 분리됨에 따라,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도구적 instrumental 역할과 가족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서적 expressive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성별에 따라담됨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남편만이 직업에종사하는 성별 분업은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결혼 관계 속에서경쟁을 최소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까지 한다는 것이다(1964: 242). - P210
한국의 경우,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사회가 그랬듯이 급격히 근대화가 추진됨에 따라 "무엇이 인간을 위해 좋으냐?"는 물음은 전혀 무시된 채 "무엇이 경제 성장을 위해 좋으냐?"는 물음이 한국 사회의가장 의미있는 물음으로 제기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가정은 산업 역군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산업 역군을 생산해내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서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으나, 한국의 경우는계획적으로 추진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그 정도가 매우 심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의 급속한 전개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재라는 또 다른 차원의 갈등적 상황을 빚었다. 즉, 성취 지향적 개인주의. 평등주의 및 합리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소위 근대적 구조 원리가 사회의 영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실현되었는데, 특히 가족 생활을 포함한 사적영역은 이러한 가치와는 상당히 무관한 전통적인 혈연주의 · 서열주의와 정의)주의가 지배함으로써 과도기적 갈등을 심화시켜온 것이다. - P221
주부는 경제적 면에서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자신은 집에 ‘남아서‘ 가사 노동과 육아, 그리고 ‘인간적‘ 가치들-사랑, 개인적 행복, 가정적 안락—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 즉 여성이 남편의 경제력과 그의 사회적 활동에 따른 사회적 신분의 자원에 의존하는 대신 남편은 아내의 정서적자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자원과 사적 자원 교환의불균형, 특히 매우 불안정한 사적 복지 체제(남편)에 자신의 생을 맡겨야 하는 여성은 이 체제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 P224
여기서 버나드Bernard (1971)가 말하고 있는 자의식이 얕을수록 행복한 아내가 될수 있다는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주부가 바로 ‘행복한 주부‘인 것이며, 끊임없이 집안 소제를 하는 경우라든가, 에어로.빅·계모임. 꽃꽂이 · 박물관 대학 등의 여가 선용 활동이 주부의 삶에 큰 비중을 갖게 되는 연유도 이와 관련된다. - P231
한편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사랑받는 아내‘로서의 주부상은 젊은세대에게 사랑이 있는 한 갈등도 불평등도 없는 행복한 가정만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실제로 낭만적 사랑이란 실체라기보다는 산업화와 더불어 대두된 이데올로기이며 배우자의 경제적의존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샐스비 Salsby (1985)는 밝혀내고 있다. - P232
비취업 주부의 삶의 형태가 갖는 또 다른 사회적 비중은 (1) 그것이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킨다는 것과 (2) 과잉소비와 과시 성향의 증가 그리고 (3)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 P233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의미와 인간 평등에 대한 새로운자각을 내면화시킨 경우, 상황이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노동자시인 박노해의 시에서 그러한 자각이 짙게 표현되어 있다(1984:26~68).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에서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 P247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었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 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의문을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P248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대부분의 취업 주부들은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 사회적 자원을 공평한 권력 분배를 위한 협상에 사용하려는 시도를 하지않고 있다(조혜정, 1981a). 그 직접적인 요인은 그들이 전통적 교환의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치 지향의 차원에서 찾아진다. 로드먼 Roadman (1972)은 부부간의 권력 관계가 그들이 가진 자원의 비중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은 부부 관계를 규정하는 문화적 규범이자유로운 협상을 허용할 만큼 융통성이 있는가의 여부와 직결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가부장적인 규범이 그 사회의 절대적 가치기준일 때 권력 분배는 자원 소유와는 관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협상 시도가 어려워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통적규범과 태도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 P249
1926년 동아일보에 난 이소산의 <현하 조선이 요구하는 여성>에서 이 문제는 매우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다.
현모양처란 이름좋은 도덕은 누가 만든 것이며 사람다운 사람은 기르지 않고 남자에게 형편좋은 현모양처를 만들어내는 현대식 교육 제도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이것이 모두 선조 이래의 남성들이 만든 도덕이며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제도이다. 여자로 남에게 품팔이하는 것은 비천한 일이라고 하다가 자본주의적 상업이 점차 발달됨에 따라 값싼 여공이 필요하게 되매 직업 부인이란 미명하에 그를 장려하는 자도 그들이며 문전 출입도 자유롭게 못하게 하다가 생활이 곤란하게 되면 그 아내를 심상하게 품팔이시키는것도 그들이며 여자가 공부해 무엇해 하다가 현금 와서는 공부한 여자가 아니면 장가 안 가자는 것도 그들이며 여자에게 대하여 정조와 수절을 요구하면서도 기생과 과부를 필요로 하는 자들도 그들이니 이것이 무슨 모순이냐, 요컨대 현대 여자에 대한 도덕과 법률은 모두 남자들의 생활상 형편 좋도록 여자를 사역하자 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에서와 같이 여성의 노동은 나라의 경제, 남편의 편리에 따라 때맞추어 이용되어왔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크게 변함이 없다. - P262
이러한 여성에 대한 문화적 횡포에 의해 많은 현대 여성들은 자아분열을 경험하여야 했다. 문화적 표현을 빌리면 여성은 ‘미치거나mad‘ ‘바보 dull‘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V. Wolf), ‘인형 doll‘ 이거나무작정 남자를 밀어붙여 파괴하는 ‘황소 같은 존재 bully‘가 될 수밖에 없었다(Lawrence, 1932). 여성은 여전히 ‘대화의 상대‘와 ‘잠자기상대로, 또는 어머니와 창녀로 이분화된 채 대상화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정확한 파악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들의 진정한 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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