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 P138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이다. 이럴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 P139

3장

이 책 전체를 통해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바는 융합의 정확한 의미다. 머리말에서 말한 대로 융합의 가장 근접한 번역은 ‘횡단橫斷)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다. 글자 그대로 횡단보도는 필요한 구역마다 길을 가로질러 ‘끊어놓은 것‘이다. 교통량이 적은 지역에는 횡단보도가 많지 않다. 불필요해서다. 횡단의 정치는 사고를 교차하거나 기존 의미의 문지방을 넘어(횡단해) 사회 변화(trans/formation)를 추구한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국가 경계를 넘어서)을 ‘국가적‘이라고 번역한 표기를 보았다. 한자 병기는 없었는데, 아마가로질러 관통(通)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 P147

융합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로지르기이며 앎의 변화다. 여기서 필요한 태도는 아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다른 입장에대한 탐구력이다. 평생 확신해 왔던 자기 인식과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새로운 진실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간혹 지적이고 윤리적인 이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낭인‘이 되기도 하지만(영화 <타인의 삶>을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 P155

그래서 나는 보수의 반대말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진보‘도 공부하지 않으면 보수적, 방어적이 된다. - P163

융합은 환원주의와 반대의 길을 간다. 환원주의가 멈춤이라면 융합은 지속적인 이동, 재해석이다. 재해석은 창의력의 발판이고,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융합 능력, 즉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기존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앎과 만나 혼란을 느끼면서 기존 개념에 의문을 품고, 차이와 경계의 기준을 재설정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환원주의는 이런 과정이 필요 없다. 현실을 자신이 믿는 공식에끼워 맞추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면 끝이다. ‘적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문제는 현실이 언제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 P179

4장

사실 그의 이론을 비롯해 많은 경제학 이론은 남성 지식인들이 스스로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여성주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여성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hands)‘이 아니라 인지, 지식, 돌봄, 감정 노동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invisible heart)‘이라고 주장해 왔다. - P193

대개 기본 소득을 부의 재분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사회적 관계 속 존재 자체에 대한 대가다. 물론 그 액수는 사회마다, 구성원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의 경제 활동을 ‘노동‘보다 ‘기여분‘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기본 소득을 받게 되면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임금 노동자의 ‘억울함‘은 사회 전체의 부를 나눔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자본가의 횡포, 금융 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것이다. - P195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했지만, 그 이론은 지구 밖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는 체현되지않는 지식을 생산해 온 백인 남성 중심 사고의 전형이다. <제2의 성>만큼 남성의 초월성 욕망을 날카롭게 비판한 책도 드물것이다. 보부아르는 노예와 여성은 노동하는 ‘내재적 존재로서열등하고, 지식인 부자 남성은 세상사로부터 벗어난 ‘초월적‘이고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이 인식에 따르면 여성은 평생 일상에 매여 사유와 지식 생산의 주체가될 수 없으며 기껏해야 남성이 상상한 ‘어머니 대지‘가 될 뿐이었다. 문학사에서 거의 모든 비유는 젠더, 몸, 자연, 공간과 관련되는데, 이는 남성의 사유가 투사된 것이다. - P213

객관성은 중립의 대명사다. 그래서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너의 객관‘이 ‘내겐 폭력‘인 경우가 많다. - P222

공부를 잘하는 첫 번째 방법은 기존 지식이 형성된 전제提)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모든 지식에는 전제(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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