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과 삶에 대한 자율성
페미니스트의 노동개념
부담으로서의 노동과 즐김으로서의 노동의 결합
몸의 정치
7장 새로운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전망에 대하여
이런 사실을 비롯해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 중산층 여성 혹은 가정주부가 된다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결론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2 - P422
2. 이는 맑스가 생산적 노동자, 고전적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쓴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자본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는 것은, 따라서, 나쁜 일이아니라 좋은 일이다‘(Das Kapital, vol. I:532, 영어번역은 저자). - P423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행복한 여성‘의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만행을 가리는 커다란 허세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비주의는 남녀 모두가 비인간적이고, 점점 파괴되는 생활조건을 수용하게 만드는 마약이라는 점을 많은이들이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모델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산업계가 창출한 새로운 수요‘는 모두 중독의 형태를 갖고 있다. 이런 중독을 만족시키는 것은 인류의 행복이나 충족에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간성의 파멸을 앞당길 뿐이다. - P425
남성-사냥꾼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패러다임이 우리 현실을구성하고 있다. 이 패러다임은 모든 수준에서 이중적이고 서열로 구조화된 구분을 제시한다. 이 구분은 전체의 부분들을 착취적으로 양극화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다양한 계급들, 다양한 국민들 사이에서 만이 아니라, ‘머리‘와 ‘그 나머지‘와 같은 인체의 다양한 부분 사이에서도 이런 구분이 나타난다. 사고의 수준에서보면, 이런 이분법적 구분은 자연과 문화, 마음과 물질, 진보와 퇴보, 여가와 노동 등 개념에 대한 서열적인 평가와 양극화에서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식민주의적 구분이라고 부른다. 이 패러다임에 따르면, - P429
총체성은 이런 방식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양자사이에서 세워지는 관계는 역동적이고 서열이 있으며 착취적이다. 여기서 한 쪽은 다른 쪽의 희생을 밟고 전진한다. - P430
이런 어느 정도 추상적인 원리들을 역사적이고 일상적인 실천으로옮겨보려고 하면, 일상을 조직하는 중심에 있는 기초 개념이 이런 원칙을 실현하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다른 무엇보다 삶을 구성해 온 개념은 노동개념이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에서만연한 노동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개념 변화에서부터, 노동, 노동조직, 성별노동분업, 생산품, 노동과 비노동 사이의 관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우리 몸들 사이의 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 통상적인 노동개념을 놓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들과 사회주의 사회들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 양쪽 모두에서, 노동은 필수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며, 생산력 혹은 기술 발전을 통해 가능한 한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 인간의 행복, 창조적 능력의 실현, 다른 인류와의 친근하고 소외되지 않는 관계, 자연의 만끽, 어린이와 즐기는 놀이 등은 모두 노동의 영역에서 배제되며, 비노동, 즉 여가시간의 영역으로만 분류될 뿐이다. - P433
2. 부담으로서의 노동과 인간적 본성의 표현이자 즐김으로서의 노동을 결합시키는 것과 동떨어져서, 페미니스트의 노동 개념이 맑스주의의(혹은 자본가의) 시간의 경제학에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일 노동시간, 혹은 인생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방식일 수는 없다. 여성은 상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줄이는 것이 좀 더 많은 여성의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깨닫게 되었다. 이는 더 많은 가사노동, 더 많은 비임금노동형태의 가내생산, 더 많은 관계와 감정노동, 더 많은 소비 노동으로 이어졌다. 거의 모든 시간이 여가시간이 되고 노동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어든 사회에대한 비전은 여성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포의 비전이다. 이는 기계를 통해 축소되는 노동에는 가사노동이나 비임금 노동이 포함된 적이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게으른 남성에게 현실과 의미와 삶의감각을 되찾게 해줘야 하는 사람도 여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 P443
이러한 노동개념은 금전 소득의 계속되는 성장에 기초한 경제, 고도의 기술발전과 관련된 생산력의 팽창이라는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런 패러다임은 일부 국가의 개발과 여성, 자연, 식민지의 저개발로 이어져왔다. 삶의 생산을 향한 노동 개념은 이틀을 뒤바꾸고 뛰어넘어야 한다. - P447
대안 경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별노동분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동안 저개발과 과개발 사회의 페미니스트는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계속 견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들은 자연과 다른 국민에 대한 착취를 끝내지 않는다면 여성에 대한 해방도 없을 것이라는점을 계속 주장해야 한다. 또한, 여성의 해방과 자연파괴를 중지하지않고는 진정한 민족해방도 없을 것이며,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에서의 변화 없이는 진정한 생태사회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주장해야 한다. - P455
페미니스트 소비자해방운동은 프랑스 조직에서 만든 슬로건, ‘여기서 더 잘 살면, 저기서 더 배고픔과 싸우게 된다‘에 확실히 찬성할 것이다.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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