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뮈터박물관의 전시품이 되거나 의과대학 교실의 골격표본이 되는 것은, 세상을 떠난 다음 공원벤치 하나를 기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약간의 불멸성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사체들이 해온 일에 대한 것으로, 기괴하고(간혹) 충격적이며(종종) 흥미롭다(언제나).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있기만 하는 게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렇게 썩어가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롭 다. 단지 사체가 된 다음 해볼 만한 일이 그것말고도 많다는 말이다. 과학에 참여하거나 예술적인 전시품이 될 수 있다. 혹은 나무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몇 가지 가능성이 더 있다.
죽음, 꼭 지루해야 할 필요는 없다. - P11

1장 머리를 낭비하다니, 안될 말씀 - 죽은 자를 상대로 하는 수술연습

그녀는 나직이 콧노래를 부르며 탁자마다 안내서를 놓고 있다.
"머리는 누가 잘랐나요?"
테레사의 말로는 복도 바로 건너편 방에서 톱으로 머리를 잘라 냈는데, 담당자는 이본이라는 여자라고 한다. 나는 이본이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을까 궁금해진다. 테레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운반해 들어와 작은 쟁반에 올려놓은 사람은 테레사다. 나는 그녀에게 이에 대해 물어본다.
"저는 이렇게 해요. 밀랍이라 생각하는 거죠."
테레사는 예부터 잘 입증된 방법을 쓰고 있다. 물건화해서 보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인간의 시체를 대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시체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 생각하는 편이 더 쉽다(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더 정확하기도 하다). - P21

세미나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것도 비취지 않고, 외과의사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복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마릴레나는 실습하던 머리 위에 하얀 보자기를 씌운다. 오늘 모인 외과의사의 절반 정도가 이렇게 보자기를 씌웠다. 그녀는 세밀한 부분까지 의식적으로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죽은 여자의 눈에 눈동자가 왜 없는지를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사체의 눈을 감겨준다. 의자를 도로 밀어넣으며 그녀는 보자기를 내려다보 고 말한다.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
내 귀에는 ‘토막으로 in pieces‘로 들리지만, 그렇게 들리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때문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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