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현자들의 위대한 독창성은 과거에 대한 사랑에 있지 않다. 그들을 선각자로 만든 것은 잉크와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따라서 망각의 위협에 놓인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메데이아가 수 세기에 걸쳐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손에 이를 때까지. 그리하여 우리의 저항을 일으키고, 때로 어떤 진실은 고통스러울 수있음을 일깨우고, 우리의 가장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우리가 진보의자녀라는 지위에 너무 오만해질 때마다 찬물을 끼얹어줄 수 있도록, 그 이야기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미래의 권리, 즉 우리의 권리를 숙고한 사람들이었다. - P200
그리스 문학 정전에 포함된 여성은 딱 한 명이다. 바로 그리스 시인 사포이다. 이 두드러진 불균형이 고대 그리스 여성이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책을 읽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많은 여성이 시대적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소수 여성 작가들의 시가부분적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남아 있다. 다음과 같은 작가들이다. 코리나, 텔레실라, 미르티스, 프락실라, 클레오불리나로 불리던 에우메티스, 보이오, 에린나, 노시스, 모이로, 아니테, 모스키나, 헤딜레, 필리나, 멜린노, 카아킬리아 트레불라, 율리아 발빌라, 다모, 테오세비아. - P205
페넬로페에게 강요된 침묵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내내 반복된 명령의 시작일 뿐이다. 예컨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이자 전복적 사고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말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고대에는 공식적인 발언이 남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정치, 웅변, 문학의 영역은 남성의 것이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여자와외국인과 노예 등 대부분의 주민을 배제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었다. 마치 1980년대 영국의 예스, 미니스터」라는 시트콤 주인공이 "성별에상관없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한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 P209
여성에게 침묵이 강요되는 시대에 영리하고 기지가 뛰어났던 클레오불리나는 희화화되기도 했다. 아테네의 희극 작품 중에는그녀를 복수형으로 패러디한 클레오불리나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작품의 영향으로 몰리에르의 우스꽝스러운 재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창조되었으리라. 스스로는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말장난뿐인 현학에나 몰두하는 바보같은 젊은 여성들 말이다. 글을 쓰는 여성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들은 비밀을, 질문을, 수수께끼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스페인 작가 카를로스 가르시아 구알(CarlosGarcía Gual)이 언급하듯이 "그리스의 환경에서 수수께끼를 수단 삼아표현하는 건 말을 엮어내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 P211
그런데 아스파시아의 지성이 페리클레스의 정치력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기록되지 않았다. 아스파시아가 미지의 인물이자 저주의대상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남겨진 자료에따르면 그녀는 진정한 웅변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그녀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곤 했다. 심지어 그녀를 ‘선생’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아스파시아가 남편을 위한 연설문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글도 있다. 케네디나 오바마의 연설문을 쓰는 작가들이 아스파시아가 남긴 글에서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문학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들어갔다. - P217
고대 작가들은 글을 쓰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이 균열, 사각지대, 이야기의 파편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 P221
살아남은 비극들에는 폭력과 복잡한 논쟁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 작품들에는 아름다운 말과 피 묻은 무기가 공존한다. 비극은 신비롭게도 잔인하면서도 섬세하다. 일반적으로 비극은 트로이 전쟁, 오이디푸스의 운명 같은, 기원전 5세기에도 그 반향이 지속된 전설적 과거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으니, 실제 사건에 근거한비극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보존된 극작품, 바로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에게 길을 열어주고 부지중에 역사소설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 P225
한 그리스인은 평생동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여행과 증언에 대한 작품을 남기며 ‘Historiae(역사)‘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추적‘, ‘조사‘를 의미했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책에 붙인 ‘역사‘라는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과더불어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분과학문이 태어났다. 『역사』의 저자는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지닌 모험가이자 유목민으로서세계적 차원에서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화의 선구자나 다름없었다. 그는 바로 헤로도토스다. - P228
정말 놀라운 사실은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인의 버전이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의 버전만 기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역사는 타자의 관점, 적의 관점, 미지의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는 25세기가 지난 지금도 매우 혁신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낮선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체성과 대조할 때라야 우리의 정체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사람이다. - P231
사실 에우로파 납치에 대한 전설은 일종의 상징이다. 납치된 공주의 이야기 뒤에는 아주 먼 역사적 기억이 숨 쉬고 있다. 바로 비옥한초승달 지대에서 서양으로 향하는 동양의 아름다움과 지식의 이동이다. 특히 페니키아 알파벳이 그리스에 도착한 것이 그렇다. 유럽은 문자, 책, 기억이 받아들여지며 태어났다. 그 존재 자체가 동양에서 납치된 지혜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야만인이었을 때가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 P234
움베르토 에코가 상상한 살인자는 희극에 대한 저주를 이해하는단서를 제공한다. 고대의 유머는 엄청난 좌절을 겪었다. 웃음에 대한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모두 사라진 반면, 비극과 관련한 글은 절반이 문제없이 살아남았다. 그리스의 수많은 희극작가의 작품이 열광적으로 공연됐지만 오직 단 하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만 남아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카탈로그에 정리된 문학 장르(서사시, 비극, 역사, 설교, 철학)는 진지하고 엄숙한 장르였다. - P243
그리스의 웅변가 이소크라테스(Isocrates)는새로운 개념의 문화 시민권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인인 것은 같은 혈통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P2499
2011년 루이빌 출판사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톰 소여의 모험』을 출판하면서 깜둥이(nigger)라는 말을 조금 더 중립적인 ‘노예‘로 수정했다. 마크 트웨인에 정통한 어느 교수는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의 요청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허클베리 핀이 - P263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이 어린아이에게 가할 수 있는 트라우마를걱정하는 부모들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꿋꿋한 주석 병정』이21세기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그리고 공포를) 불어넣을지 의구심을
미성년자 보호를 주장하는 그들은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가부장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원작보다 디즈니의 각색을 선호한다. 그들 중 상당수가 과거의 전통 문학을 제거하지는 않더라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다. - P264
물론 플라톤의 단언이 강력하고 과격하긴 하지만 그의 말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플라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런 구절을 발견하면 이리저리 재보면서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모든 서양 철학을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일축한 바 있을 정도다. 어쨌든 플라톤은 불같이 글을 썼으며 마치일요일 가족 식사 시간에 벌어지는 정치적 토론을 할 때처럼 극단적으로 굴었다고 한다. - P267
그는 안정을 원했고 어리석은 다수가 아니라 현명한 자의 통치를 원했다. 그 안정이 억압적인 정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철학자 카를 포퍼(Karl Popper)가열린 사회와 덕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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