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산문과 시.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워즈워스
랄프 왈도 에머슨
너대니얼 호손 <주홍 글씨> <일곱 박공의 집> [젊은 굿맨 브라운]
헤밍웨이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
프로빈스타운
김연수 소설가
서문
나는 언제 어디서나 산문보다는 시를 쓰게 된다. 하지만 산문은 산문 나름의, 시는 시 나름의 힘을 갖고 있다. 산문은 용감하게, 그리고 대개는 차분히 흐르며 서서히 감정을 드러낸다. 모든 인물, 모든 생각이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여 결국복잡성이 자산이 되고 우리는 그 저변과 이면의 전체적인 문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시는 그보다 덜 조심스럽고, 시의 목소리는 홀로 남는다. 그것은 살과 뼈를 지닌 목소리로 스르르 미끄러져 둑을 뛰어넘어 아무 강으로나 들어가 예리한 날로 작디작은 얼음 조각에 착지한다. 산문 작업과 시 작업은 심장박동 속도가 다르다. 둘 중 하나가 나머지 것보다 느낌이 더 좋다. 어떤 걸까? 나는 장시간 산문을 쓰면 작업의 무게를 느낀다. 하지만 시 작업은 그 말 자체가 오류다. 다른 노동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는 성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창조된 느낌만큼 전달된느낌도 강하다. - P13
흐름
이날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내내, 다른 많은 날들에도 그랬듯이 작은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흐른다. 음악적이라 노 - P26
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말들이다. 이상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나의 생각이다. 사실 그런 오후에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머리와 몸에 그런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일인가. 그 말들은 이렇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 P27
완벽한 날들
셸리(Percy Bysshe Shelley,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와 함께 영국의 낭만주의3대 시인으로 불린다)가 몽블랑에 대해, 그 무시무시한 풍경과 끊임없이 재배열하고 다듬는 바람들에 대해 많은 작품들을 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거기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펜은 잉크가 마르지 않고 종이는 젖지 않고 정신은 사색에 몰두할 수 있었다. 흥분의 옹호자들도 있지만, 나는 2년 전인가 3년 전 여름에 베닝턴의 토네이도를 놓친 걸 애석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때 (보도에 의하면) 하늘은 섬뜩한 초록으로 변하고 숲과 길가 나무들이 전장의 병사들처럼 쓰러졌다고 한다.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 P61
호손의 <낡은 목사관의 이끼>
호손은 악과 그 부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력, 의심, 절망, 지독한 야심 등 양심이 성취한 것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나약함과 허영에 관한 최고의 상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주요 주제는 악의 다양한 얼굴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호손은 세일럼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집만 - P92
거기 있었던 게 아니라 그의 고조부 윌리엄 해손은 세일럼의거리에서 앤 콜먼과 네 명의 퀘이커 교도들에게 매질을 하도록명령했고, 증조부 존 해손은 세일럼의 치안판사로서 마녀들을재판했다. 이러한 역사의 검은 그림자는 19세기에까지 닿아 너새니얼 호손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선조들이 삶 속에서 실천했던 청교도적 전통은 그에게 숙고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서 나온 소설이 『주홍글씨』와 『일곱 박공의 집』이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단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격동적인 「젊은 굿맨 브라운」 역시 그 역사의 무시무시한 장막에서 나왔다. 이 작품에서는 영혼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왜 함락되는지 밝혀내기 위해 그 역사의 그림자를 집어넣는다. 젊은 굿맨 브라운은 모종의 볼일을 보러 숲으로 떠난다. 우리는 그게 어떤여행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그동안 믿었던 사람들과 사물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비참한 불안감에 시달리는걸 느낀다. 존재를 뒤흔드는 불안감. - P93
호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가볍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 그의 이야기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아 있을 수 있는 건 그런 감미로운 글로 가상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능력 덕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글에서는 이야기의 진전이 약하거나 뻔할 때가 많고 인물들의 묘사도 충분치 못하다. 하지만 배경은 세세한 내용까지 깊고 풍부하게 묘사된다. 헨리제임스는 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어느 것도 함축적이기엔 너무 하찮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양식은 호손이나 19세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포의 일부 작품들도 이렇게 그늘지고 경치와 배경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러한 묘사가 이야기전개 못지않은 비중을 지닌다. 고자질하는 심장」과 「검은 고양이」그리고 저승과 진자가 거기 속한다. 헤밍웨이의 「두 개의 - P96
심장을 가진 큰 강」도 그런 예다. 한 남자가 낚시를 가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배경을 이루는 잎사귀 하나, 잔물결 하나가 작품의 의미, 무게, 사실성에 보탬이 된다. 우리 시대엔 더 복잡한 플롯(혹은 플롯들)이 전개되고 배경은 대부분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더 활기찬·형태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런 다름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며 독자들이 고전이라는 매력적인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 수용해야 할 차이점 중 하나일 뿐이다. - P97
시 아침 산책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연필과 공책을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 P128
위안
그런 때 나는 그 물의 몸체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방랑을 떠난다. 나는 기쁨과 생산적인 찬미로 나를 가득 채웠던 사건, 시간, 생물체 들을 100가지쯤 댈 수 있다. 체험! 체험! 비, 나무들, 그런 모든 것들과의 체험은 내게 위안과 겸허함, 세상의 모든산에 묻힌 모든 금과도 바꿀 수 없는 일체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처음엔 단순한 기쁨만을 느끼다가 생각을 하고 신념을 갖게 되었다. 세상이 제공하는 그런 아름다움에는 위대한 의미가있으리란 신념. 그리하여 나는 세상이 사실적일 뿐 아니라 상징적이기도 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과 백합이 자라는 것처럼 확실하게, 세상은 우리에게 고결한 꿈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참을성 있는 초록 얼굴을 가진 거북을 만날때마다. 매가 날아가며 내는 금속성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연못에서 노는 수달들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피와 뼈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특별한 체험과 생각에 의한 신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신념들을 빚어내는 건 세상에서의 시간(거칠든 온화하든 충분히 친밀하고, 시적이고, 꿈같고, 단호하고, 사납고, 애정 깊고, 삶을 빚어내는)이다. 아침이 가까워지면서 빗줄기가 약해졌다. 나는 옷을 입고 서둘러 세상으로 나갔다. - P133
옮긴이의 말_민승남 존재의 온전한 기쁨
메리 올리버는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시 「기러기 Wild Geese」가 실려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작품집이 정식으로 번역, 소개되긴 이 책이 처음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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