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서

미국 정신과 의사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의 현실 요법(Reality Therapy)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삼아 내담자의 요구를 고찰했다. 하지만 그 기법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오지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모르거나 혼란스러워한다.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원하는 것(want)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인간 행동을 설명할 때, "내가 원해서 한 행동"은 극히 일부분이다. 더 논쟁적인 지점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는 것은 실상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유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체성(동일시)과 욕망의 산물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선택이라고 해서 모두 수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와 충돌할 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일베‘ 같은 여성혐오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라는뜻이다. 내가 내 몸의 ‘쓸모‘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와 협상하는 삶을 의미한다. - P218

사회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이자 규범인 성 역할은 현행법으로는 불법인 성매매와 성격상 연속선(continuum)에서 작동한다. 성 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곧바로 여성 전체에 대한낙인이 되는 것도 이 구조 때문이다. 1) 성 역할 → 2) 성별화된 자원을 기반으로 한 이성애 → 3) 이성애 관계의 제도화(가족) → 4)성매매(거대한 성 산업→ 5 성폭력 → 6) 인신매매(강제 임신, 장기적출). 이 연속선에서 자유로운 주체, 인생, 사회는 없다. 성 역할이성애-결혼-성매매의 연속선 개념은 "신성한 결혼과 매춘을 동일시하다니!"라는 분란을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연속선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교환 법칙의 공통점 때문이다. 어느 관계에서나 남성의 자원은 돈, 지식, 지위 등 사회적인 것인 데 비해 여성의 자원은 외모와 성, 성역할 행동(애교, ‘여우짓‘, 성애화된 행동)이다. - P228

페미니스트 인류학자 게일 루빈은 이를 ‘여성의 교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선물 경제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개인으로서 서로의 자원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남성 사회에서 증여되고 순환되는 남성들 사이의 교환품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흔한 현상인 ‘성 상납‘에서 남성은 남성에게 여성을 상납하지 자기 몸을 상납하지 않는다. 여성 억압, 성매매의 기원은 생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교환물로 삼는 사회 체계에 있다. 게일루빈은 여성이 처한 억압의 궁극적 위치는 상품의 매매보다 여성인신매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29

수학자들에 의하면 수학에서 성별 능력 차이가 현격하게 발견되는 분야는 기하, 즉 공간지각인데, 이는 여성이 대체로 수동적으로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하이힐이나 전족(纏足) 같은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여성의 움직임에 대한 제재 전략과 관련이 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공간지각력을 상실하는경우가 많다. 고통(트라우마)의 생존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 P239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의지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는 경험을 한다. 남성의 폭력을 기억하는 여성의 몸은주체의 의지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공간 지각 능력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의 능동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 존재한다 혹은 살아 있다는 근거는, 인간의 몸이 공간의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실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이 공간을 인식하는 주체로부터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간이 인식 주체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서만 특정하게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몸이 없다면 공간도 인식되지 않는다. 폭력으로 인해 몸의 주체성을 빼앗긴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자기의 관계, 즉 공간에서 자기몸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공간지각력 상실은 여성에 대한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고문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발견된다). - P240

여성의 몸이 남성에 의해 명명되어 왔기에 여성의 신체 기관에는 대부분 공간 명칭이 있다. 남아가 사는 곳인 ‘자궁(宮)‘, 여성의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vagina)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칼이머문다는 의미에서 ‘칼집‘이라는 뜻이다. 질의 한자 역시 방(室)이라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중세 영주가 농노의 아내에 대해 초야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논리 중의 하나인, 여성의 질이 남성의 성기를 잘라 삼켜버린다는(vagina dentata) 삽입 섹스의 공포도 여성의 질에 대한 공간화에서 비롯되었다. 성교를 의미하는 ‘삽입(intercourse)‘이라는 말 역시 여성을 ‘들어가는‘ 영토로 전제하는논리다. 아내를 일컫는 ‘집‘사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여성 비하적 언어로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하는 ‘아줌마‘라는 말은 여성을 ‘아기 주머니‘로 보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줌마가 ‘아기 주머니‘, ‘아주머니‘를 거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 P246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성폭력이 여성에대한 남성의 폭력이 아니라, 피해 여성이 속하거나 피해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폭력으로 환원되는 것도 여성 몸을 남성의 영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폭력의 발생 원인이자 성폭력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성폭력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문제가 남성과 남성 사이의 정치로 환원된다는점에 있다. 이는 남성은 정치적 주체로 전제하고 여성은 남성 집단간 정치의 희생자로 전제하여, 남성과 남성의 갈등은 정치적 문제로, 남성과 여성의 갈등은 개인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폭력 해결 과정에서 피해 사실 자체보다는 가해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성폭력은 처벌되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성폭력 가해자가 미군이나 경찰이면 정치적인 문제이지만 아는 사람이나 가족일경우는 사적인 문제가 된다. - P249

피해자 중심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객관성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경험이 객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이러한 인식은 객관성이 사회적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마치 여성주의가 가부장제 세계관을 대체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성주의는 기존남성의 입장에서 구성된 객관성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남성의 객관성을 역사화하고 정치화함으로써 부분화하고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객관성은 권력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며, 권력관계에따라 변화하고 유동하고 이동하는 정치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모든 피해 여성이 동일한 경험을 하며 피해자의 경험이 그 자체로 객관적인 것 같은 오해를 준다. - P259

가부장제 사회에서 섹슈얼리티의 의미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차별적인 규범이 적용된다. 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잘하거나 못할 때, 그에게는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남성이 ‘더럽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남성 권력의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로서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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