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드 피장은 같은 시대사람들이 보여주는 여성 혐오에 반발하고 여성을 위해 변론했다. 미망인이자 학식 있는 여성이었던 크리스틴은 최초의 여성 전업 작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랑의 신에게 보내는 편지>(1399)와 《장미가 말하다>(1402)에서 그녀는 대담하게도 《장미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성 우위론적 발언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학계와 친구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남성이었다. 크리스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들의 도시》(1404~1405)는 당시에 남성이 쓴 것으로 분류되었는데, 크리스틴은 자신의 관점 자체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편견, 특히 "천성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 P236

마리 드 구르네(1565~1645)는 여성 문인이자 몽테뉴의 수양딸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처지에 대해 항의하고 여성혐오도 아니고 여성 찬양도 아닌, 양성 간의 평등을 주장한다. 지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되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 P241

이로부터 40년 뒤, 개신교로 개종한 데카르트 철학자 프랑수아 풀랭 드 라 바르(1647~1723)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공정성과 그녀들이 놓인 상황적 불평등은 사실 편견에 근간을 둔 것이라 확신하고 두 편의 중요한 글을 썼다. 그는 여기에서 여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모든 직업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여성이 "천부적으로" 열등하다는 도그마가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고 많은 학자의 의견이 같다고 해서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라고한다. 그는 사회가 여자들에게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강요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녀들이 자연적으로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추론하고 그녀들을 이러한 상황 속에 묶어두기 위해 이처럼 근거가 없는 추론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는 유명한 ‘영혼은 성이 없다 L‘esprit n‘a pas de sexe라는 격언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 P242

그의 투쟁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동참해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게 되는데,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특히 박식한 귀족 여성들이 운영하는 살롱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이다. 1829년 말에 발행된 《결혼의 생리학》은 ‘성찰Méditations‘로 이루어진 부부의 행복에관한 상황을 정리한 목록이라 할 수 있다. 발자크는 이 글에서 결혼을 전쟁으로 서술하면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양성 간의 평등 원칙을 지지한다. "문명을 돌려놓아라! 생각을 고쳐라! 이것이 당신들의 외침이다! 당신들은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스페인의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어리석은 자들을 통치하기가 박식한 사람들을 통치하기보다 훨씬 쉽다. ‥…무지함. 이것이 전제군주제가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P257

이로부터 14년이 지난 1848년 3월 16일, 작가 제니 데리쿠르(1809~1875)는 이혼의 부활을 주장하는 청원을 보낸다. 여성들은 스탕달이라는 아군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적과 흑》(1830)과 《파르마의 수도원》(1839)에서 여성의 예속적인 처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1842년, 의사이자 시인인 에티엔 드 쉐프빌도 프랑스 여성의 조건을 해학적으로고발하고자 펜을 들었다. "한마디로, 프랑스 여성들은 어찌나 자유로운지 무서울 정도다!" "조금은 덜 빈정거리는 다음 장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젊은이들이 비아냥거리는 회의주의가 부럽지 않다. 이들은 모든 여성을다루기 쉬운 정부 수준으로 만들고, 여성들의 신선한 감각을 한 번도 함께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불쌍히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자아로부터 행복과 지지와 위로를 얻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모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 P259

마침내 프랑스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페르낭 그르니에가 1944년 3월 24일에 알제에서 열린 임시국회에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다. 드골 장군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는데, 특히 그는 1944년 3월18일에 "새로운 정부는 프랑스의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이선출한 대표로 구성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4월 21일, 프랑스 여성들은 드디어 "남성들과 같은 조건에서 선거하고 선출될 수 있게 된다."132 2년 뒤에는모든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원칙이 헌법 서문에 명시된다.‘33 1947년 제르맨 푸앵소-샤퓌가 최초의 여성장관이 된다. 13 하지만 그다음 여성 장관은 1974년이 되어서야 등장하는데, 시몬 베유가 보건부 장관을 맡게 된다. 1991년 5월 15일 에디트 크레송이 수상이 되었지만, 여전히여성이 정치적 고위직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고 느리다. - P271

에필로그
우리는 혁명의 새벽에 있다. 여성으로 밝혀진 바이킹 여전사로부터 스키타이의 아마조네스가 있었고,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는 예술품으로 꾸며진 동굴안에 선사시대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밝혀냈다. 선사시대에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성에 따라 역할이 배분되었다고 하는 선입견 일부는 무너졌다.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가까운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특히나젠더 고고학이 해야 할 작업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제 틈이 벌어졌다. 그 틈은 여성이 역사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되찾기 전에는 닫히지 않을 것이다. - P281

어째서 가부장제는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렇게나 오래 유지될까? 이것이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지배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캐롤 길리건이 심리적 지배라고 불렀던 것에 특히 영향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전형적인 여성적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과의관계를 중시하는 돌봄care의 윤리다(보살피기, 배려, 감정이입). 이는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성에 따라 양식화된 상이한 방식으로 양육되며,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 P287

그렇다. 연약함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기므로, 사내아이들은모든 감정 표현을 감추고 없애야만 한다." 이러한 무관심은예속과 탄압이라는 정치적인 질서를 만든다. 이처럼 정치적인 가부장제는 심리적인 가부장제로 살찌워진다." 남성과여성의 차이는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것이 아니다. 돌봄은 모두가 나눌 수 있는 능력이다. 사내아이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러한 태도를 배워야만 한다. 가부장제를끝내기 위해서는 심리적 가부장제가 사라져야 한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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