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범고래 여족장과 완경
인간의 폐경을 둘러싸고 수십 가지 이론과 수십 년의 논쟁이거듭되었다. 한 인기 있는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여성 역시 동물원고릴라처럼 단지 현대 의학의 힘으로 제 난소의 나이보다 오래 살아왔다. 원래는 폐경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며 여성은 50줄이 되어 생식력이 바닥나면 우아하게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암시다. 이도 다행히 현대 의학 이전의 수렵채집인 사회에도 폐경은 존재한다. 크로프트는 "폐경은 늘어난 수명의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진화적 과거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적응의 소산이라는 증거가차고 넘쳐요."라고 내게 말했다. - P353
10장 수컷 없는 삶
이 단성의 ‘잡초 같은‘ 종들은 폭발력 있는 기회주의자로서 공격적인 증식을 통해 번식이 느린 유성생식 경쟁자를 쉽게 몰아낼 수 있다. 그러나 단성생식의 경제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암컷뿐인 좋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자연은 아직 섹스 중독 상태다. 복제를 통한 번식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자손이 유전적으로 어미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근친교배의 궁극적 형태로, 감수분열 중에 가끔 일어나는 복제 실수 말고는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복제된 동물의 가계는 기생충, 질병,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맞서서 대항할 유전 다양성이부족하기 때문이다. 역병이나 환경의 변화가 없으면 실제로 수컷의 존재가 불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컷에게는 다행히도 세계는 늘 변화무쌍하고 유전자 카드를 섞어 다양성을 유지하려면성이 필요하다. - P395
유성생식의 이점은 길고 긴 진화의 시간에서도 살아남는다는 것인데, 그래서 진정으로 성공한 ‘잡초 같은‘ 좋은 두 가지 번식 모드를 모두 사용한다. - P396
채찍꼬리도마뱀은 확실히 수컷 없는 삶을 고집한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이 종의 성공은 자웅 전투의 새로운 차원을 증명한다. 수컷은 알을 수정시키기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 싸워왔다. 암컷뿐인 사회는 수컷이라는 무거운짐이 없이도 두 배의 생산성을 달성하며, 수컷이 제공하는 유전적 다양성은 과거에 가정된 것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한 수학 모델에서는 이로운 변이를 늘리는 유성생식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진화가 유성생식을 더 선호할 이유는 없다고 밝힌다. 따라서 성의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 P404
종이 멸종 직전에 있다는 비극적 티핑포인트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개척적인 단성생식 암컷이 나타났다는사실이 일말의 희망으로도 느껴진다. 적합한 수컷이 나타나면 다시 유성생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단기적인 전략으로서 복제는 고립된 가계의 명맥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학을 신뢰한다면 이런 식의 단성생식이 유전자 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다. 최근 수학 모델에 따르면 단성생식 위주의 개체군에서도 유성생식하는 개체군과 거의 같은속도로 좋은 돌연변이가 퍼졌다. 성이 주는 이점은 10~20세대에 한 번씩만 유성번식을 하더라도 유지될 수 있다. 어느 최신 논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전체의 5~10퍼센트만 유성생식하더라도 매번 유성생식하는 것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이점을 얻는다. 그래서 번식 양식을 자기 복제로 전환하여 개체수를 위험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능력을 갖춘 암컷이야말로 한 종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는 데 필요한 존재다. 톱상어의 경우 환경운동가들이 실제로 일부 개체 수의 회복을 목격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성적으로 혁신적인 이 단성생식 암컷들 덕분일 수 있다. - P409
11장 이분법을 넘어서
따개비에서 보인 한 번식 시스템에서 다른 번식 시스템으로의 빠른 진화는 자연에서 성과 그 표현의 놀라운 유동성을 드러낸다. 이것을 명확히 인지했다는 점에서 다윈은 시대를 훨씬 앞서갔다. 그래서 그가 성의 발현에 대한 사색에서 사랑하는 따개비를 빼버린 것은 유감이다. 따개비를 포함시켰다가는 성을 이분법적이고 결정론적 방식으로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따개비,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생명체는 진화의 최전선에서서 우리에게 성이란 이원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현상으로서 진화의 변덕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모호한 경계를 지닌다고 가르친다. - P420
러프가든의 인습타파적 사고는 성의 유일한 역할이 생식이라 여기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가해한 이성애 중심의 구속에 도전했다. 그런 렌즈로 보면 동성애는 불편한 ‘오류‘로 폄하되어 무시된다. 캐나다 생물학자 브루스 배게밀Bruce Bagemihl은 300종이 넘는 척추동물에서 동성애적 활동의 목록을 작성했는데, 러프가든은 이 중요한 현대 우화집을 바탕으로 동물 사회에서 협력을 부추기는 동성 활동의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는 보노보에서 이런 사회적 접착제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았다. 보노보의 성적 쾌감은 사회적 긴장을 조절하고 암컷 사이의 연합을 촉진한다. 러프가든은 다양한 분류군에 속한 여러 종을 예로 들면서 동성애적 활동이 ‘사회의 포용 형질‘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 P422
크루스는 예의 훌륭한 과학자처럼 단조로운 그래프 안에서 심오한 영감을 깨우치게 하는 사실을 예시했다. 선형 데이터의 두혹(하나는 수컷, 하나는 암컷)의 중첩은 같은 성 안에서 개체별 변이가 두 성 간의 평균 변이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생물학은 각 성의 전형적인 상태만 수용하면서 개체의 폭넓은 변이를 무시하고 극단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논문 속 두 성은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이는 통계적 현상일 뿐, 진실은 수컷과 암컷이 서로 다르기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다는 데 있다. - P435
이 암컷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성은 수정구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정적이지도 고정되지도 아니하며,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형질로서 유전자와 환경의 특별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고 동물의 발달 과정과 생활사에서형성되며, 여기에 약간의 우연이 더해진다. 자웅을 전혀 별개의 생물학적 실체로 생각하는 대신 동일 종의 일원으로서, 번식과 관련된 특정한 생물학적 생리적 과정에서만 유동적이고 상보적으로차이가 날 뿐, 그 외에는 거의 같은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유해하며 공공연하게 우리를 속이는 이원적 기대를 버려야 할 때가되었다. 자연에서 암컷의 경험은 성별 구분이 없는 연속체 안에존재하며, 다양하고 가소성이 높으며 낡은 분류 방식에 순응하길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자연 세계에 대한 이해와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공감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구식의 성차별에 대한 믿음을 고집한다면 여성과 남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부채질하고 남녀 사이를 이간질하고 성 불평등을 조장하기만 할 것이다. - P437
나오며. 편견 없는 자연계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선봉에 선 일부 과학자들을 만났다. 물론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성과 젠더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대찬 논리 덕분에 우리는 성에 대한 융통성 없는 결정론적관점을 넘어 어떻게 발생 과정의 가소성과 행동의 변이가 수컷은물론이고 암컷의 진화를 부추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 진화를 이끈 메커니즘에 자연선택, 성선택, 사회선택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컷 대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 외에도 배우자와 자원을 두고 벌이는 암컷 대 암컷의 경쟁과수컷의 선택, 암컷과 암컷, 암컷과 수컷의 전략적 협력, 적대적 성적 공진화 등이 모두 짝짓기 성공에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 P443
실제로 생물학적 성은 하나의 스펙트럼상에 존재하며 모든 성은 기본적으로 같은 유전자, 같은 호르몬, 같은 뇌의 산물임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크나큰 깨달음이었다. 그로 인해 나 자신의 문화적 편견을 인지하고성, 성정체성, 성적 행동, 섹슈얼리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유지된 이성애 중심의 가정을 떨쳐버리는 관점의 변화를 강요했다. 생각의 자유는 유지하기 어렵지만 여성이 되는 것의 경험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해 나는 힘을 얻었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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