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6년 동안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고 씨앗을 보급하며 씨앗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경이로움 때문이다. 같은 일인 것 같지만매년 다르다. 씨앗 한 알은 항상 자연의 관계에서 매년 새로운 이야기가되어 나온다. 같은 콩을 심었는데 파란콩과밤색콩, 등틔기가 나오고, 키가 작은 것을 심었는데 키가 큰 것이 나오고, 같은 씨앗이 나오더라도 저마다 다르다. 가뭄에도 자라는 것을 보면서 씨앗이 어떻게 땅과 하늘, 수많은 미생물, 나의 노동과 어우러지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재미는보통 농부의 즐거움과 다르다. 재배와 판매에 목적을 두는 농부는 수확량에만 목표를 두지만 나는 씨앗에서 다시 씨앗으로, 씨앗과 내 몸의 작용까지 전 과정을 참여하고 관찰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꿰뚫는 통찰력을 얻는다. 해마다 눈이 있되 다 보지 못했던 것들, 귀가 있되 다 들리지않았던 것들, 코가 있되 냄새를 다 맡지 못하는 것들만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직관력까지 얻는다. 겨자씨만 한 한 알의 씨앗이 해를거듭할수록 거대한 나무로 자라고, 뿌리로부터 수십 미터 멀리로 뻗어가는 가지들에 어떻게 영양분이 전달되는지, 나무를 해부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교한 원리로 수백 수천 년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는 경이롭다. - P188
자급의 아름다움은 마음을 스스로 짓는 일이며 몸을 스스로 짓는 일이며 이것은 곧 하늘의 뜻이다.
- 변현단 - P195
헤시오도스 시대 이래로 웬델 베리만큼 농사(農)의 대의명분을 웅변적으로,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제시해온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글이 특히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과 그의 말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인데, 나는 앞으로 두 세기가 지나도 안목있는 독자들은 웬델 베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를 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P196
두 번째로, 농본주의자들이 묘사하는 상냥한 세계는 사실은 실제로존재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농사와 농촌생활은 지루하고 고단하고 불안정하고 성차별적이었다. 나아가, 농본주의는 실은 토대부터 불의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든 땅은 선주민으로부터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농장생활은 고되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 농본주의의 세계는 남성들이 지배하며 여성과 아이들, 자연에는 극히 불리한 곳이다. 또 농사일은 힘들기 때문에 다른 재능이나 관심이 계발될 여지가 없고, 그래서 인간의 잠재력과진정한 문화가 꽃피지 못하고 좌절된다. 농촌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 폐쇄적이며 적대적이다. 최악의경우에는 폭력적이고, 사람을 구속한다. 농본주의라니, 사라져서 속이시원하다! - P198
예를 들어서, 현재미국에서 농업정책이라고 하는 것들은 한마디로 각종 보조금으로 구성된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인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농산업 및 기업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면서 과잉생산을 부추겨서, 미국을포함한 전 세계 소농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모두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일이다. - P204
그렇다면, 복합영농을 하는 작은 농장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농사와 접촉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 P206
은, 단순히 우리가 식품을 생산하고 농촌지역을 조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둘러싼기본적인 사실들에 관해서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산업농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죽음을 감추어 도살을 ‘효율적‘으로만들어왔고, 그 결과 죽음은 추하고 불경한 것이 되었다. - P207
"농본주의 사회에서 삶(生)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다. 농부에게 죽음을부정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농본적 삶이란 특정 장소의 생태적) 건전성과 장기적인 생산성을 보존하려는 노력 속에서, 생사(生死)의 현실들과 참을성 있게, 힘들게 타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오늘날 가족농과 농본주의가 배척을 받고 있는 까닭에는 그런 점도 일부 기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좋은 농사는, 웬델 베리에 의하면, 견실함, 힘든노동, 친밀한 이웃관계, 실질적인 유능함, 검소함,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자질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도망치고 있다. 죽음, 시간, 노동, 자연 그리고 인간본성과 아예 절연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데이비드 오르 - P208
좋은 도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우리나라 도시사회학계의 원로였던 강대기 교수는 ‘걷고 싶은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단언했다. 문자 그대로 걷기에 편안하고 잘 정비되어 있으며, 환경적으로도쾌적하고, 차량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되며, 제인 제이콥스가 언급한 ‘길 위의 눈‘이 많아서 사회적 위협에서도 안전한 도시, 다양한 서비스기능이 한군데 모여 있어서 도보나 자전거 통행만으로도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도시, 공원이나 공공도서관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시설들)가 충분해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동시에 차이가 인정되고 수용될 수 있는 포용적인 도시라면 좋은 도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214
도시의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물리적 요소이며, 물리적 요소의 변화를 통해 공동체의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존엄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이러한 사회적 도시계획‘에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였는데, 쿠리치바시장 자이메 레르네르가 대중화한 ‘도시침술‘ 전략이다. 도시침술이란 특정 지역에 자극을 주어서 주변 지역을 되살리고 생기가 돌게 만드는 도시재생 전략이다.
- 이상헌 - P217
스위스의 세계적인 조력존엄사단체 디그니타스의 대표도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려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공의료시스템과 통증완화 의료제도도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유영규 외,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P225
내가 나이 듦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이 듦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계급이나 성별, 가족관계에 따라 각자 다른 의미상 속에서 경험된다는 사실이었다. 죽음 역시 그러한 게 아닐까?
- 이희경 - P227
최근 들어 동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동학의 제2대 지도자이자 한살림운동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해월 최시형이다. - P228
손병희는 거동이 불편한 최시형을 가마로 메고 다니느라 어깨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였다고 한다(238쪽).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속성을 말해준다. 실제로 최시형이 이끌었던 동학농민혁명은이후에 손병희가 기획한 삼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손병희에게 있어 삼일만세운동은 동학농민운동의 재봉기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국사 시간에 양자를 마치 별개의 사건인 양 공부했다. 두사건 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역사적, 사상적 연속성을 놓친 것이다.」그러나 사상적으로 보아도 <삼일독립선언서>는 개화파보다는 개벽파의 작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에 한살림운동을 전개한 무위당 장일순은 삼일만세운동에 나타난 비폭력은 동학의 정신이라고 하였다(김익록 엮음,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113쪽). 그런 점에서 최시형은 이후의 삼일운동, 한살림운동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P235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최시형은 관군의 추격으로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도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이에대해 제자가 "직접 드시지도 못할 채소는 심어서 무엇하시렵니까"라고묻자, "이 집에 오는 누구라도 먹고 이것을 쓴다면 안될 일이 뭐가 있겠느냐"라고 답했다(246쪽). 이 대화는 최시형이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행동했음을 말해준다. 그 정신과 실천을 동학에서는 ‘개벽‘이라고 하였다.
- 조성환 - P236
이 이야기는 실화다. 2023년 봄에 일어났던 유전자변형(LMO) 주키니호박 사태의 발단이다. 검역기관과 식약처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아무도모르게 우리 식탁에 유전자변형작물이 올라왔다. 소비자들과 생협은엄청난 충격과 함께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무고한 농부는 생계도 잃었지만 정부는 책임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나이 든 서러운 농부, 기후재난, 거짓말하는 장관, 농민에게 유독가혹한 정부, 음흉한 종자회사, 재앙적 과학기술의 침투, 아무 일도 안한 검역기관, 국경을 넘어 어디든 가는 택배, 위태로운 한국 유기농업의 현실 한 조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 P238
옛날 농부들은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버리지 않았다. 땅속에 살아있을 벌레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 P241
작은 미생물과 서러운 농사꾼과 오늘 저녁 밥상, 그리고 10년 후 살아갈 세상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밥 한 그릇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은 선문답 같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 한 끼 먹을 때마다 세계 먹거리체계의 그물망을 압축시켜 끌고 오는 우리 식탁에도 적용되는 것같다. 그 밥 한 끼니를 식탁에 올리느라 인간들과 비인간 생물들의생명과 삶터를 파괴해도 그 과정은 숨겨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 참혹함이 눈에 보인다면 우리는 도저히 밥을 먹지 못할 것이다.
- 조미성 - P243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나 SF소설가 테드 창 같은 인물들이나서서 챗GPT가 정말 ‘지능‘이라 할 만큼 정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따져 물었다. - P244
존스는 이런 새로운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것을 전제로, 미세노동이 오히려 자본주의에서 해방된 생활양식을 탄생시키는 배양실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 장석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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