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단편선 민음북클럽 에디션으로 다시 읽기
10편 중 6편이 실려있다.

드라마

어떤 면에서는 저 자신도 나름대로 문필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물론…… 그렇다고 자신을 작가라고 부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문학이라는 벌통 속에는 제가 짜낸 꿀 한방울도 들어있지요……. 저는 세 편의 동화를 이런저런 기회에 펴냈던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야 물론 못 읽으셨겠지만……… - P11

무라슈키나는 또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파벨바실리치는 난폭하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슴속으로부터 치솟아 나오는 듯한 괴기스런 비명을 지르더니 묵직한 문진을 집어들고 그것으로 무라슈키나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날 잡아가라. 내가 그녀를 죽였다!"
잠시 후 뛰어 들어온 하인에게 그가 말했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P19

관리의 죽음

공연을 보면서 그는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설에서는 이 ‘그런데 갑자기‘와 자주 마주치게 마련인데, 작가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인생이란 그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숨을 멈추었다………. - P24

베짱이

그는 창가에 앉아 우울한 표정으로 볼가강을 바라보았다. 볼가강은 이미 광채를 잃어 희끄무레하고 차가워 보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우울하고 나른한 가을이 다가올 징조를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자연은 강변의 사치스런 초록빛 융단과 금강석 같은 광채와 투명한 푸른 하늘을, 그 밖의 모든 멋지고 화려한 것들을 볼가강으로부터 거두어들여 다음 봄까지 궤짝 속에 챙겨넣은 듯했다. 까마귀들은 볼가강 주변을 날아다니며 강을 놀리는 것 같았다. "골라야! 골라야!" 라보프스키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은 이미 한물 갔고 재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조건이 붙어있고, 상대적이고, 어리석어. 이 여자와 관계를 맺지말았어야 했어.……….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몹시 언짢고 우울했다. - P55

그는 마치 차가운 물건이라도 닿은 것처럼 진저리를 치더니 눈을 떴다.
"무슨 일이오?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랴보프스키는 그녀의 손을 밀치며 비켜났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혐오감과 분노 같았다. 그때 주인여자가 양배춧국이 담긴 접시를 양손에 들고 그에게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올가 이바노브나는 여자의 커다란 손가락이 국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배가 옷밖으로 비어져 나올 듯한 지저분한 여자, 랴보프스키가 걸신들린 듯이 먹고 있는 양배춧국. 처음에는 바로 그소박함과 예술적인 무질서 때문에 사랑했던 이 모든생활이 지금은 그녀에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끼며 차갑게 말했다.
"우린 당분간 헤어져야 되겠어요. 안 그러면 권태에 지쳐서 대판 싸우게 될 것 같아요. 이제 신물이 나요. 난 오늘 가겠어요." - P60

티푸스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빛줄기가 물병 위에서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거리의 눈은 이미 녹은 모양이었다. 햇살과낯익은 가구들과 문을 보고 중위가 맨 처음 한 일은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의 가슴과 배는 달콤하고 행복한, 간지럼 태우는 듯한 웃음으로 떨려 왔다. 아마도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어 처음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느꼈음직한 끝없는 행복감과 생명의 환희가 그의 온존재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채웠다. 클리모프는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애가 탔다. 그의 몸은 꼼짝없이 납작하게 눕혀 있었으며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고는 손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온통 사소한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자신의 호흡과 웃음소리에 기뻐했으며 물병과 천장과 햇살과 커튼에 달린 끈에도 기뻐했다. 신의 세상은 이런 침실 같은 구석진 곳에서도 아름답고 다채롭고 위대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의사가 나타났을 때, 중위는 의학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일이며 의사는 또한 얼마나 친절하고 멋진분인가,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얼마나 착하고 흥미로운 존재들인가 하고 생각했다. - P109

내기

그리고 지금 은행가는 방을 이리저리 오가며 이 모든 것을 돌이켜 보고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내기를 했을까? 변호사가 인생의 십오 년을 잃고 내가 200만 루블을 얻는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 일인가? 그것으로 사형이 종신형보다 낫거나 나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야, - P118

아니야. 정신 나간 짓이야. 나로 말하면 권태에 지친 인간의 변덕이었고 그 변호사로 말하면 순전히 돈에 대한 갈망이었을 뿐이지………." - P119

유폐되고 나서 마지막 이 년 동안 수인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었다. 자연 과학을 공부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바이런과 셰익스피어를 요구했다. 종종 그로부터 화학, 의학 교과서, 장편 소설, 철학이나 신학 논문 따위를 동시에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메모가 오기도 했다. 그의 독서열은, 바다 위에 널린 난파선의 잔해들 속에서 헤엄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매달리는 한 인간을 연상시켰다! - P122

편집자 레터

체호프의 총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은 가차 없이버려야 한다. 1장에서 총이 언급됐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반드시 총을 쏴야 하며, 만약 쏘지 않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없애 버려야 한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작품 속에서 부각된 소재는 반드시 이야기의 진행 속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이론을 보여 주는 문장입니다. 어쩌면 그의 이름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를 개념입니다. 장황한 설정을 늘어놓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선보여야 한다는그의 이론은 훗날 서머싯 몸, 제임스 조이스, 레이먼드 카버등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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