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가 말했다. "당연한 이치야. 안 그래? 모든 게 비정상적이야.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아마 불가능하다고 했을 거야. 부자연스러운 조건은 부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야. 곧 이들의 끔찍한 성격을 알게 될걸. 예를 들어 우리는 이들이 범죄자나 장애인, 노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너희도 알겠지만 우린 아직 이런사람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어. 뭔가 있는 게 분명해!" - P139
소멜이 내게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좋아한 이유는 우리와 가장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여자같다고!‘ 나는 그 생각을 하자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이내 그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경멸적인 의미에서의 ‘여자들‘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는 점이 떠올랐다. 소멜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나를 향해 미소를지었다. "여러분에게 우리가 여자 같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어요. 당연히 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각 성의 특징이 뚜렷하게 구분되겠지요. 하 - P153
지만 사람들이 성별을 초월해 갖는 특징도 많지 않나요? 당신이 우리와비슷하다는 건 바로 당신이 사람답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있을 때 편안해요." - P154
"물론 영영 주일학교나 다니고 싶다면 이 모든 게 만족스러울 테지. 하지만 난 뭔가를 하고 싶다고. 그런데 이곳은 할 게 없어." 테리의 비난에는 일리가 있었다. 개척의 세월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그들의 문명사에서 초창기의 고난은 오래전에 극복되었다. 굳건한 평화,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움, 꾸준한 건강, 커다란 호의, 모든 사항을빠짐없이 관리하는 매끄러운 운영 체제 등, 이제는 극복할 문제가 전혀남아 있지 않았다. 이들은 마치 오래전에 만들어진 후 완벽하게 돌아가는 시골집에 사는 유쾌한 가족 같았다. - P172
나는 기독교 세계의 신은 고대 히브리족의 신을 의미하며,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에 가부장적인 지도자의 특성인 늙은남자의 모습을 입혔고, 우리는 그 가부장적인 신의 개념을 이어받았을뿐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우리의 종교적 이상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설명하자 엘라도어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히브리인들은 남자 가장을 중심으로 소규모 무리를 이루고 살았군요. 남자 가장들은 무리를 거느리고 다스렸겠죠?" "두말할 여지가 없죠." 내가 동의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가장‘ 없이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가 있을 뿐이죠. 이게 바로 차이점이에요." 내가 장담했다.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답니다. 그 차이는 여러분이 공유하는 모성애에 있어요. 여러분의 자녀들은 모든 이들의 사랑을받으며 성장해요. 아이들이 사는 세계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과 지혜로 이루어진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이에요. 여러분이 신을 어느곳에나 존재하는 사랑으로 여기는 건 당연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개념보다 훨씬 더 올바른 것 같군요." 엘라도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고대 시대의 아이디어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가부장적인 생각은 수천 년 전에 형성된 것 아닌가요?" - P196
허랜드의 여자들은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그렇겠는가? 그녀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소심하거나 나약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강하게 단련된 탄탄한 몸의 소유자들이었다. 알리마라면 한 마리 쥐처럼 오셀로의 베개에 짓눌려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P227
『허랜드』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과 『어둠의왼손』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이지만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한 계층 간 갈등과 빈곤 문제, 이기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회 비판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길먼이 창조한 허랜드는 모성애와 자매애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친 구성원들의 희생과 봉사의 결과물로, 나라 전체는 거대한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고, 빈곤도, 계급갈등도, 질병도, 사고도 없는 곳이다. 물론 그런 낙원은 말 그대로 천국에나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낙원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공동체 의식‘이라는 점은 귀 기울일 만하다. 영토분쟁, 민족과 인종 간 갈등, 기아, 질병으로 신음하고 무분별한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는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해마다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하는 혹서와 한파, 홍수와 가뭄 등 기후변화라는 최악의 문제에 직면했음에도 자국이기주의에 막혀 온 인류가 함께파멸의 길로 향하는 지금,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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