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당시에도 강력한 역할을 가진 강력한 여성들이 종교 예배, 종교적 재현(representation), 그리고 상징들 속에 계속 살아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과 여신의 계급격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지체가 있었다. 천년 이상의 기간 동안 신들의 신전에서 남신과 여신들의 지위변화를 추적해 볼 때, 심지어 최고의 여신들이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을 때조차 일상적 생활과 대중적 종교 속에서 여신들과 그들을 섬기는 여사제들의 권력은 계속 위력을 발휘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여성들을 종교적으로, 교육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종속시켰던 사회들에서 여신들의 영적 ·형이상학적 권력이 여전히 활동적이고 강했다는 것은 놀랄 만하다. - P254
누구든 여신의 힘과, 고대메소포타미아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제약의 증대 사이의 모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없을 것이다. - P257
방법론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질문은, 사회의 변화와 종교적 신념과 신화에서의 변화 간의 관계이다. - P258
나의 주장은 증대하는 군사주의와 쟁기농경의 발달이 친족관계와 성별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고대적 형태의 국가발달과 강력한 왕권이 종교적 신념과 상징들에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변화의 유형은, 먼저 어머니-여신상의 격하 그리고 그녀의 남성 배우자/아들의 우위와 그들의 지배, 그후 그가 폭풍-신(storm-god)과 합쳐져서 남신들과 여신들의 신전에 우두머리이자 유일한 남성적인 창조자 하느님(Creator-God)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곳이 어디이든 창조의 권력과 다산성의 권력은 대여신으로부터 하느님(God)에게로 이전된다. - P259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역사의 어느 시기에 창조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창조는 여성의 다산성이 가진 신비한 힘의 단순한 발휘라는 의미에서, 종종 양성의 신적 존재들이 개입하는 의식적 행위로변화하였다. - P268
가부장적 성별 상징들의 발달과 제도화에 초점을 맞춘 본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름짓기라는 개념 속에서처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상징화는 창조력의 유일한 원리인 어머니-여신으로부터의 이탈을 단순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P269
왕권과 군사적 리더십을 강조한 사회에서의 역사적 변화가성들로 하여금, 새로이 실현된 상징적 창조성이라는 원리를 하나의 남성신 상징이 구현하도록 만든 것 같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 과정은 천년 이상 계속되며, 성서의 창세기에서 정점에 이른다. 이집트 신앙에서 기원전 세번째 천년에 이미 생식력 (generativity)이 남성신 오시리스속에 체화되었다는 사실은 종교적 신념이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파라오들이 환생한 신으로서 국가를 통치하는 강력한왕권이 일찌감치 확립됨으로써 창조신화들 속에 있는 남성신들이 권력과 우위를 차지하였다. - P270
그는 "이와 같은 사제들의 해적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백한 시도 속에서" 어머니-여신의 권력이 그녀의 아들 엔키에게 옮겨졌다고 생각한다. - P271
어머니 여신의 변화하는 지위, 즉 그녀의 폐위(位)는 여러 문화 속에서 각기 다른 시점에 일어나지만, 대체로 동일한 역사적 과정들과 연계되어 있다. - P273
어머니-여신으로부터 천둥-남신으로의 이동은 설명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다. 그것은실제로 평민들이 무엇을 믿었는가보다는, 왕실 신하, 관료들, 그리고 전사들로 이루어진 상류층이 평민들이 믿기를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많이 말해 주고 있을 수 있다. - P279
다른 예들에서는 대여신이 스스로 변형되었다. 이전 시기에 그녀의 속성들은 모든 것을 포용하였다. 탄생, 죽음, 재탄생과 연결된 그녀의 섹슈얼리티. 선과 악,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그녀의 권력. 어머니, 전사, 보호자 그리고 지배자 남신에 대한 중재자인 그녀의 여러 모습들. 그러나후기에는 이러한 그녀의 여러 자질들이 쪼개져 나가고 별개의 여신들 속에 체화되었다. 남성적 신에게 이관시켜 버렸을 그녀의 전사적 면모는 축소되었으며, 치유자로서 그녀의 자질은 더욱더 강조되었다. 이것은 그녀를 숭배했던 사회들에서의 성별 개념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 P280
여성들의 재생산 및 성적 권력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가치가 절하되고 상품화되었든지간에 그들의 본질적 평등성은 여신들이 살아 있고 인간의 생활을 관장한다고 믿어지는 한 생각과 감정에서 사라질 수 없었다.여성들은 남성들이 남신들 속에서 찾았던 것처럼 여신들 속에서 그들과닮은 점을 찾아냈음이 틀림없다. 여사제들의 권력과 신비로움은 사제들의 것만큼이나 막강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남성들과 다른 기능 및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여성들이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 사이를 여전히 중재하는 한 인간존재로서 이들의 본질적 평등함은 침범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 P281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서적 역사 중 가부장적 시대를 기원전 두번째천년 전반부까지로 추정한다. 기원전 약 1800년경 마리(Mari)의 왕실 기록보존소에서 나온 문서들에 서부 셈족 부족들 간에 퍼져 있던 상황들에대한 유용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고향인 하란의실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밖에도 도시 누치 (Nuzi)에서 나온 문서들은 가족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창세기에 묘사된 관습들을 더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 P288
황소숭배는 불법이었으며 다산성 개념은 호세아의 은유에 의해 야훼에게훨씬 더 굳건히 고착되었는데, 이는 언약이라는 관념을 신부 이스라엘과야훼 사이의 결혼이라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영감을 받은 설교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죄지음을 ‘매춘행위‘와 등치시켰다. 따라서 가부장적인 성격을 띤 성적 은유들은 종교사상 속에 굳건히 각인되게 되었다. - P293
우리는 구약성서 내용이 유대 부족들이 연합체에서 국가형성기로 넘어가면서 여성들의 공적 · 경제적 역할의 점진적 제한, 종교적 기능의 축소,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 증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앞에서 논의했던 법률들은 대체로 국가형태를 갖고 있던 시기의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신명기의 법이 레위기 법보다 여성들에게 더 호의적이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 사회는 군주제 시기와 그 이후까지 지속되었으며,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크고 가장 끈질기게 강세를 유지했던 바알과 아셰라에 대한 숭배와의 싸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 P308
나는 다음 장에서 언약의 시초부터 그 공동체는 남성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공동체의 남성적 성격은 제례기능에 있어서 극히 적은 기회만을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그 이유는메소포타미아의 전통에서 여사제들은 여성신들을, 남사제들은 남성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훼의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는데, 특히 초기 원문에서 그러하였다. 서구문명의 성별 정의들에서 중요한 것은, 창세기의 저자들이 자신들이 입수할 수 있었던 많은 자료에서 은유들, 상징들, 그리고 설명을 선별해 냈다는 점이다. 이와 비슷하게 현시점에 중요한 것은, 그저자들이 자신들이 제시한모든 상징적 재현들로써 나타내려고 했던 바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후대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해 냈는가이다. 예를 들어 야훼가 성별화된 하느님 (gendered God)이라기보다 남성적 · 여성적 측면을 모두 체화한 하나의 원리로 인식되고 생각되었는지 여부는, 몇몇 신학자들이 주장해 왔듯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해석에 대해 다른 대안들이 있었지만 이 대안들이 선택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만 중요하다. 그가 체화하고 있었을 다른 측면이 무엇이었든간에, 2500년이상 히브리의 하느님이 남성적인 아버지 하느님으로 언급되고, 재현되고, 해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상징에 부여된 의미였으며, 따라서 권위와 힘을 가진 의미였다. 이 의미는 남녀 모두가 여성들을 개념화하고, 사물에 대한 신적인 질서 안에서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여성들을 위치지우는 방식에서 최고로 중요하게 되었다. - P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