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대역부인과 볼모
대역부인, 여성의 ‘대리’ 역할과 남성에 대한 종속성

제4장 여성노예
노예제의 발명
피정복여성들에 대한 강간, 성적 노예화
축첩의 제도화로 연결
낙인과 강화효과
여성의 종속과 노예제의 연결

여성의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친족기반에서 계급기반 사회구조로의 변화이다. 최근 몇몇 페미니스트 저술가들이, 이 장에서 더 탐구될 예정인 도시혁명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인류학자인 레이나 랩(Rayna Rapp)은 친족집단과 지위가 높아가던 엘리트 간의 갈등을 지적하고 "친족구조들은 문명화 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았다"고 결론지었다.

국가형성 이전의 사회들에서, 사회적 총생산은 친족을 통해 조직화되었다. 점차 국가가 등장하면서 친족구조는 해체되고 변형됨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정치화된 영역의 존재와 그 정당성을 승인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친족에 의해 (친족과의 관계에) 종속되었다." - P101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혁명에는 전체적으로 세 단계가 있으며, 그 단계는 사원도시의 출현, 도시국가의 성장 그리고 민족국가의 발달이다. - P101

공공사업 건설을 위한 대규모 노동력의 필요성과 결합된 군사주의의발달은 포로들을 노예로 전환시키게 되었고, 결국에는 노예제의 제도화 및 그와 함께 구조화된 계급의 제도화를 가져왔다. - P104

우르의 왕실무덤들은 지배자인 여왕들이 지위, 권력, 부, 신성귀속을 왕들과 공유했음을 말해 준다. - P109

그러나 매장된 가신들 중에서 여성유골이 남성유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또한 하인으로서 여성들의 더 심한 취약성과 종속성을 말해 준다. - P110

이런 갈등 속에서 군인들인 왕위찬탈자들은 자신들의 가족, 특히 부인을 이용하여 권력을 강화하고 안정시켰다. - P115

이런 측면에서 우루카기나의 ‘칙령‘은 느리고 심하게 요동하는, 여성의 지위와 성별에 대한 규정의 전환과정에서 시작시점에 인접해 있는데, 그 과정은 거의 2500년이 걸렸다. 이 책이 증명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 P116

일단 결혼하면 가족의 이익을 위한정보제공자로서 또 외교적 대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공주를 교육시키는 이같은 추세는, 역사시대 전체를 통틀어 일반적으로 여성은 교육에서 불리하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위한 ‘평등한‘ 교육기회가 있었다는 증거가 간혹 발견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지극히 소규모집단이었던 이 지배계급의 딸들이 결코 같은 시대와 사회에 살았던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18

여성의 ‘대리‘역할이 왕권통치의 초기개념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은 흥미를 끌며, 국가기구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여성의 지위와 역할 또한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나의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 P120

14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여성들에 관한 증거들을 간략하게 살펴본 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경제 · 종교 · 정치적 생활에 대한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가당연시되었던 사회들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보았다. 그와 똑같이 당연시되었던 것은 남성친족들 그리고/혹은 남편에 대한 여성들의 의무와 의존이었다. - P128

‘대역부인’(wife-as-deputy)의 역할은 이렇게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 이후 그런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계속 등장하게 된다. 우리는 여왕 십투가 영토를 지배하고 포로들 중에서 왕의 하렘을 위한 여성들을 선발하는 데서 남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표출되는 그녀의 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보았다. 그녀의 이미지는 여성으로서 상층계급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당시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리고 거의 3000년 동안 무엇을 의미해 왔는지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은유로 쓰일 수 있다. 여왕 십투의 ‘대역부인‘ 역할은 여성들이 열망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다. 그들의 권력은 전적으로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남성에게서 나왔으며, 그들의 권력이 자신소유나 통제하의 하급직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행사되었던 것처럼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영향과 실제 역할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의 측면에서 그들은 완전히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 사실 몇몇 왕가의 부인들의 예에서 보듯이, 경제·정치적 생활에 대한 그들의 권력은 그들이 남성들에게 하는 성적 서비스가 얼마나 충분한가에 달려 있었다. 키룸이나 쿤시마툼의 경우처럼 만일 그들이 남자들을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면, 주인의 변덕으로 인해 권력에서 쫓겨났다. - P129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경제ㆍ정치적 발전이 국가를 충분히 제도화하기 전에, 그리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초기단계에서도 한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이동은 여전히 매우 유동적이었고 최하계급에까지도 상향이동은 분명히 가능하였지만, 점차 특정 계급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세습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사회조직으로 이행해 가는 결정적 전환기는 노예제의 제도하였다.
가족구조, 계급체계로서의 노예제 발달, 국가권력의 제도화 간의 상호연관성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역사적 전개의 이러한 측면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엘리트가 아닌 여성들의 삶의 성격을 복원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 P130

전쟁에서의 포획, 범죄에 대한 처벌, 가족성원에 의한 매매, 빚 혹은 빚으로 인한 노역때문에 자신을 매매하는 것." 노예제는 인류역사에서 위계적 지배가 최초로 제도화된 형태이며, 시장경제 · 위계 · 국가의 성립과 연결되어 있다. - P137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 - P138

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 P139

노예화의 기술은 세가지 특징적 양상을 가진다. 첫째, 노예제는 보통 폭력적 죽음의 대체물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은 ‘특히 형벌의 조건부 감면‘이었다. 둘째, 노예는 ‘태생적 소외‘ (natal alienation)를 경험하였다. 즉 그/그녀는 ‘출생에 따른 모든 권리로부터‘ 그리고 사회질서 내에서 그/그녀 자신의 권리에 의한 적법한 참여로부터 ‘파문당하였다.‘ 셋째, "노예는 어떤 보편화된 방식으로 불명예를 당했다(dishonored)." 역사적 증거는 이와 같은 노예화과정이 처음에는 여성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발달하고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알려진 관습인 결혼교환과 축첩풍습에 의해 강화되었다. 오랜 기간, 아마 몇 세기 동안 적의 남성들은 자신들을 포획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신체를 심하게 훼손당하거나 혹은 멀리 고립된 지역으로 보내졌지만, 여성들과 아이들은 포로가 되어 이들을 잡은 사람들의 사회와 집안 구성원으로 통합되었다. 무엇 때문에 남성들이 애초에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해 ‘죽음으로부터 조건부 감면‘
을 해주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더 약점이 많고 약하다는 것이 포로상태의 그들을 적의 남성전사들보다 덜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으리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다. - P140

여성들에게 굴욕을 주는 과정은 남성지배의 마지막행위, 즉 포로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함께 행해질 수 있었다. - P140

피정복여성들에 대한 강간은 두 가지 측면에서 피정복민에게 영향을주었다. 강간은 여성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었고, 강간에 내포된 의미는그들의 남성들을 상징적으로 거세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부인과 누이. 자녀들의 성적 순결을 보호할 수 없는 남성들은 실로성불능자이며 불명예를 당한다. 피정복집단의 여성들을 강간하는 관습은 기원전 두번째 천년부터 오늘날까지 전쟁과 정복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죄수들에 대한 고문처럼 ‘진보‘나 휴머니즘적 개혁, 복잡한 도덕적·윤리적 동정에 대항해 온 사회적 관습이다. 나는 피정복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 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며,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상태 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계급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가부장제 체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다. - P143

여성의 명예는 처녀성과 남편에 대한 정숙한 성적 서비스 속에 존재한다는 관념이 기원전 두번째 천년에는 아직 완전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포로여성들의 성적 노예화는 사실상 가부장적 결혼과 순결을 여성의 ‘명예‘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의 유지와 같은 가부장제의 발달과 정교화 과정의 한단계였다는 것이다. - P144

분명한 것은 처음에는 자기 종족의 여성들에게 행사하였던 지배가 남성들에게보다 포로여성들에게 더 쉽게 옮겨갔다는 점이다. - P152

자유민을 노예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신체적 공포와 강압은 여성에게는 강간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강간에 의해 신체적으로 제압되었고, 일단 임신이 되면 아마도 심리적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노예제에서부터 축첩(蓄妾)의 제도화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포로여성들을 포획자의 가구에 통합시켜서 포획자가 그 여성들의 충성스런 서비스와 그 자손들을 확보하는 사회적 도구가 되었다. - P154

따라서 노예제는 처음 잉태된 시기부터 남성과 여성에게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하였다. 일단 노예가 되면 남성과 여성 모두 다른 사람의 권력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자율성과 명예를 상실하였다. 남녀노예들은 보상없는 노동을 하고, 종종 주인에게 개인적인 서비스를 해야 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노예상태는 주인 혹은 주인의 대리인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물론 고도로 발달된 노예체계에서는 남성노예들이 남자주인이나 여자주인에게 성적으로 사용되거나 학대받은 예도 많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이었다. 그것이 남성에게 해당되지 않았기때문에, 여성에게 성적 착취는 노예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계급발달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하층계급 여성들에 대한 상층계급 남성들의 성적 지배는 여성에 대한 계급억압의 표시 그 자체였다. 분명히 계급억압은 결코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조건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 P156

분명히 가부장적 소유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유재산의 가족 내 관리가 중요해진 것은 축첩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발달시키는 견인차가었다. 부부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은 남성혈통 쪽에서 볼 때 재산상실을의미하였으나, 이는 첩을 들이는 것으로 보완될 수 있었다. - P160

거의 천년 동안 ‘노예제‘에 대한 관념은 ‘여성‘이라는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 반영되는 양식으로 현실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이전 시기의 결혼교환에서 자신들의 성적 · 재생산 서비스가 사물화된 여성은 공적·사적 영역과의 관계가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면서 그 시대의 막바지를 맞이하였다. 남성은 그 계급위치가 강화되고 - P166

재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었다면,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 P167

이것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 속에서 발생한, 장구한 역사발전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다.
그것은 멀리 선사시대, 즉 생물학적 진화의 필요성에 의해 부과된 애초의 성별노동분업이 눈에 보이는 특성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구분할 수있다는 것을 남성과 여성에게 보여주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오로지성에 의해 하나의 집단으로 귀속될 수 있었다. 후대의 지배체제가 기대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회적 · 심리적 잠재력이었다. 상보성(性)의 조건―호혜적 상호의존성 (mutual interdependence)에서 사람들은 성에 근거한 집단이 분리된 활동 · 특권 의무를 가지게 될 것임을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공고히 확립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렸음에 틀림없는, 집단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종속은 각 친족집단 내에서 복종, 즉 연장자에 대한 연소자의 복종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다. 순환적이며, 따라서 공평한 개인이 각각 복종과 지배에서 자기 차례를 도는―이 형태의 복종은 집단적 복종을 위해 수용 가능한 모형으로 만들어진다. 자기들에게 강요된 새로운 종류의 복종이 동일한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여성들이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공고하게 확립되었음에 틀림없다. - P171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는 선례는 노예가 될 수 있는 다른 집단에게 그러한 낙인을 옮기는 것을 허용하게 되며, 여성의 가내종속은 그것으로부터 노예제가 사회제도로 발달하게 된 모형을 제공하였다.
일단 한 집단이 노예상태로 지정되면, 그 집단은 노예였다는 낙인과 더 심하게는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집단에 속한다는 낙인을 자신에게로 그러모은다. 이 낙인은 지배집단과 노예집단의 마음속에 노예화의 관습을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강화요인으로 작용한다. 만일 이 낙인이 노예상태의 사람들에 의해 완전하게 내면화되면 그 과정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며, 노예화된 집단은 지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야 한다―노예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그래서 수용 가능한 것이 된다.
노예제가 널리 퍼졌을 시점이 되었을 때, 여성의 종속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때까지 만일 여성의 종속에 대해 생각해 보기라도 했다면, 노예제의 낙인 중 일부가 여성의 종속에게로 그러모아졌을 것임에틀림없다. 즉 여성과 마찬가지로 노예는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열등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종속시킬 수 있었던 여성은 이제 노예와 비슷하기 때문에 열등한 것처럼 보였다.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과정에 대한 남성 혹은 남성지배적 제도의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사실 속에서 여성의 종속과 노예제는 연결되어 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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