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일기만 읽는다면 오히려 나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두려움. 앞에서 썼던 ‘부분의 진실은 오히려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통하는 얘기다. 그러니 왜곡의천재인 기억에 맞서서 일기를 쓰지만 일기야말로 실체를 왜곡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진실‘의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것은 더욱위험한 왜곡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쓰고, 기억을 못 믿어 일기를 쓴다. 일기로 인해 나의 본질이 더욱 왜곡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나는 일기의 왜곡을 두려워하면서도 기억의 왜곡에 맞서 일기를 쓴다. - P127

11) 모닝 페이지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일기는 ‘모닝 페이지‘다. 이것은 《아티스트 웨이》란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내 식으로 간단히 말하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한 상태 그대로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쓰는 작업이다. 쓰는 동안 멈추거나 생각을 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마구 쏟아 놓는 게 핵심이다.
이것은 사실 일기라기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창조성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온 것인데 나는 이것도 일기의 한 종류라고 본다. 내 경우, 창작을 할 때 이 작업을 함께하면 확실히 무의식이 활성화 되어 - P147

큰 도움을 받는다. 뭐랄까,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복도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버리는 작업 같다고나 할까? 깨끗해진 복도로 무의식이 더 쉽게 의식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고, 글을 쓰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가 많이 솟는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창작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모닝 페이지는 상당히 괜찮은 작업으로 여겨진다. 일상생활에서도 모닝 페이지를 써 보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잡생각을 글로 쏟아 내서 머릿속이 정돈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48

물론 흔적 남기는 것을 질색하는 깔끔한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나는 흔적을 질질 남기며 살아왔고, 그 흔적을 다시 더듬으며 복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의 인류라 이런 글을 적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일은, 그 일기를 오래오래 써 온 일은 태어나서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일기 쓰는 인류로 태어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인류가 늘어나기를 바라며 일기에 대한 길고 긴 ‘자랑‘을 마친다. - P149

겁내지 말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걸까. 행복하다면 기쁨을 얻을 거고, 고통을 얻는다면 성장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쁜 쪽은 없다.
2007. 9. 13. 목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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