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까대기> 이종철 작가의 2번째 만화다.
몇 년 전에 <까대기>를 읽을 때 작가 소개에 나온 포항 출신이라는 걸 보고 ‘아 동향 사람!’하면서 엄청 반가워했는데, 포항제철 공단 지역에서 자란 어린시절과 제철동에서 식당을 하시는 부모님과 이웃들, 어린시절 친구들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에 읽지 않을 수 없지. 그동안 ‘포항 하면 MB 고향’하며 부끄러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지금도.......
나는 포항에서 19년을 살았지만, 포항제철(이제는 POSCO)이 위치한 남구가 아닌 조금 떨어진 북구에 살았고, 그 당시 가족 중에 포항제철이나 그 협력회사에 다닌 어른도 없어서(동네 어른 중에는 있었겠지만 어른들 직업에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포항제철이나 제철동과 얽힌 사연은 없지만, 포항 사람이라면 누구나 포항제철(지금도 어르신들에겐 포스코가 아닌 포철, 종철)에 남다른 애정과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포스코 설립의 일화를 알게 되면, 부끄러움도 포함해야 하겠지만). 그래서 MB가 자원외교 한답시고 포스코 망가뜨릴 때 포스코 망할까 엄청 걱정도 했고.
올 1월말 설 연휴에 포항에 갔을 때 한창 포스코 지주사 전환을 결사 반대하는 엄청난 수의 길거리 플래카드 도배에 놀란 기억이 있다.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역시 이미 표심이 확정된 동네 답게). 아주 예전에 포스코가 본사를 서울로 이전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도 난리였었다. 어느 중소 도시든 산업화로 규모가 커진 도시는 그 산업화의 핵심 기업의 부침이나 M&A 등에 따른 경영권 변화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 도시 사람들은 그 기업에 목 맬 수밖에 없다. 거제가 조선소의 경기에 따라 부침을 겪듯, 평택이나 군산이 자동차 회사로 위기를 맞았듯, 포항은 더욱더 절대적으로 포스코에 대한 의존 비중이 높으니, 포스코의 실적이나 계획 한마디 한마디에 휘청 거릴 수밖에 없는 도시다.
이런 포항에서도 특히, 이종철 작가는 소위 제철동이라고 불리는 공단지역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공단지역 근로자를 대상으로 식당을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니 포항의 그 특수성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쇳가루 냄새
하루 종일 공단에서 일하면 온몸에 달라붙은 쇳가루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중학교를 남구에 있는 곳으로 배정받았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여중이 2곳이나 있었음에도, 소위 뺑뺑이로 집에서 제일 먼 남구에 있는 여중을 배정받았다. 그때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날에 교실 창문을 열어 두면 수업 중에 시커먼 쇳가루가 날아와서 펼쳐 놓은 교과서 페이지에 검은 점들이 흩어져 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날은 옥상에 빨래를 널어 두면 빨래에 검댕이 묻고. 그 당시 바닷물도 엄청 지저분했던 것 같다(그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지만). 제대로 된 집진시설이나 폐수처리시설도 없었겠지.
좁은 길
포항에는 포스코의 ‘서울’ 인재들이 포스코를 떠나지 않도록 포스코에서 만든 그들만의 동네와 학교가 있다. 그들만의 주택 및 아파트 단지와 그들만의 초중교가 있다. 포철초등학교를 거쳐 포철중학교를 다니며 대부분 포철고등학교를 간다. 어릴 때 상상의 나라처럼, 그런 동네가 있다더라. 서울말 쓰는 얘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다더라. 우리는 거기를 별천지라고 불렀다. 포항에 있지만 없는 동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 그 당시 포항은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는데, 포항 시내 일반 중학교에서는 전교 몇 등 이내면 포철고등학교에 원서를 낼 수 있다더라 그런 얘기... 이종철 작가는 그런 별천지와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던 동네에 살았다. 그 간극을 직접 체험하는 동네.
이모야
작가의 그림 그리기를 응원해주고 엄마의 잔소리를 막아주는 식당 이모들. 그녀들의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종철 작가는 언젠가 이모들, 제철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실현하였다. 작가의 학창시절 방황을 잡아준 큰 공을 ‘이모야’들에게 돌릴 만하다.
주먹감자
<까대기>의 노동에 대한 생각의 출발선도 제철공단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대학 입학 전 제철공단에서의 잠깐의 임시 노동을 통해,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하는 사람의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작업반장에게 몰래 주먹감자를 날리는 작가의 이모 이야기는 무척 통쾌하다.
분홍재킷
자영업을 하는 우리네 여성들의 생활력을 어느 곳에서나 어느 책에서나 볼 수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작가나 친구들의 엄마들,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들은 ‘남편노무스키’들의 실패를, 게으름을, 무책임함을 덮는 강한 생활력을 보여준다(물론 성실하신 아버지들도 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없이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그 분들을 생각하며,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를 다소 ‘촌스러운’ 분홍재킷을 입었지만 당당하게 자기 삶에 우뚝 서있는 작가의 어머니로 마무리한 마음을 알 것 같다. 반항적인 아들에서 성장한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에겐 추억이 방울방울한 책이고, 사람과의 관계와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종철 작가님의 ‘짠내나는 이야기’, ‘땀내나는 이야기’를 계속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