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공포의 쌍둥이
메리 셸리의 괴물 이브
<미들 마치> <프랑켄슈타인>

마지막 요점을 먼저 말하자면, 밀턴이 딸들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쓰게 하는 장면은 18세기 말과 19세기에 걸쳐 매우 인기있는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거처로 이사 간 키츠가 처음 한 일은 책 짐을 풀고 ‘헤이든이 그린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딸들과 함께 있는 밀턴을 나란히‘ 핀으로 꽂은 것이었다. 강력한 아버지에게 천사처럼 봉사하는 착하고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이 그림은 서구 문화가 가장 애호하는 환상의 본질을 거울로 비추어주는 것 같다. 동시에 (『미들마치』의 문단이 암시하고 있듯)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봉사를 받는 아버지라는 밀턴의이미지는 절대적인 권력을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그가 여자 자손들에게 의존하는 상태라는 점을 암시할 뿐이다. 눈이 먼 신과같은 시인은 비서의 도움뿐만 아니라 차와 동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적어도 약간의 신성을 상실하고 인간화된다. 그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자면) 삼손화되었다. 그리하여 눈이 먼 로체스터를 시골의 영지로 이끌고 다니는 제인 에어가 자신을 유용하고도 동등한 존재로 만드는 델릴라적인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샬럿 브론테가 암시하듯, 조지 엘리엇도 똑같은 도상적 전통속에서 낭만주의적으로 허약해진 캐저반과 동등해지고 싶은 도러시아의 은밀한 욕망을 암시한다. ‘그녀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알고 싶어한 것은 전적으로 미래의 남편에게 헌신하고 싶어 - P404

서만은 아니었다.[……] 도러시아는 아직까지 현명한 남편을 둔것에만 만족할 정도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련한 아이 같은 그녀는 현명해지고 싶었다. - P405

만일 도러시아의 열정적인 본성이 밀턴의 딸들이 처한 부정적인 역사를 논평하고 있다면, 캐저반의 둔감한 본성은 밀턴의역사적 이미지를 더 강력하게 말한다. 모든 신화를 여는 열쇠의주조자인 캐저반은 숭고함을 장엄하게 정당화하는 밀턴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독선적이며 현학적이고 재미없는 그는 『미들마치』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천상의 학자에서 성가시고 지루한 학자로, 무덤에서도 도러시아를억압하는 외고집의 시체로 쪼그라든다. 신중하게 표현한 그의소멸을 보건대, 그는 밀턴이라기보다 바이런적으로 매력이 없는 밀턴의 사탄과 더 유사해 보인다. 죄 많은 육체에 대한 거부, 도러시아의 여성성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포악함, 독단주의로인해 캐저반은 밀턴적인 여성 혐오주의자를 풍자하는 그림자처럼 보이며, (동시에)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기념비적인 책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육체적 열등성』을 쓴 붉은 얼굴의 격노한X 교수‘의 초판본이 되고 만다. 그런 남자와 쉽지 않은 결혼을한 야심적인 도러시아는 불가피하게 비참한 여성의 원형으로(블레이크는 이를 가리켜 밀턴의 세 아내와 세 딸들이 합해져슬퍼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밀턴의 울부짖는 ‘여섯 겹의 에머네 - P409

이션‘이라 불렀다) 변해간다. 그녀 자신이 밀턴 딸들의 전형을좀 더 희망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이 엘리엇이완벽하게 의도했던 아이러니다. - P410

하나의 선택은 남성의 신화에 표면적으로 온순하게 순종하며, ‘아버지에게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또 다른 선택은 동등성을 획득하기 위해 몰래 공부하는 것이다. - P411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쓰기를 선택한 여성 작가는 비록 자신의 분노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남성이 만든 장르나 인습 안에서 여성의 비밀을 은폐하며 양피지에 덧쓰거나 암호화된 예술 작품을 생산했다. 『폭풍의 언덕』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 실비아 플라스의 『에어리얼』같은 좀 더 최근의여성 (페미니즘적이기까지 한) 신화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선택한 여자들의 작품이다. 물론 『실낙원』에 대한 다시 쓰기와 다시 쓰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가부장적 시학의 관계는 20세기 들어 (20세기의 여성들은 밀턴의 언어를 몰래 공부해 그들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여성의 전통을 유례 없이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점점 상징적이 된다. 『실낙원』에 대한 불안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여성적 상상력을 볼 수 있는 곳은 초기의 좀더 고립된 『프랑켄슈타인』이나 『폭풍의 언덕』같은 소설이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은 여성에게 「실낙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 P413

메리 셸리의 유명한 일기가 주로 자신과 퍼시 셸리의 독서 목록 일람표라는 사실이 그녀의 이례적인 과묵함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일화는 메리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대다수 작가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적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빈번하게 감정적인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 P417

『프랑켄슈타인』 서문에서 고백하듯, 메 리셸리도 어린 시절 문학의 ‘백일몽‘ 속에서 살았다. 나중에 메리셸리와 시인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스스로 ‘[그녀의] 부모의 이름에 어울리는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그녀 스스로] 명성의 목록에 오르기를‘[서문] 바랐다. 어떤 의미에서 월턴의 시적 실패가 밀턴적 맥락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메리 셸리는 월턴의 서사를 통해 불안한 환상을 은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판타지 중 하나는 예술, 말, 자율성이 가득한 잃어버린 낙원에서 섹슈얼리티, 침묵, 더러운 육체성이 (‘죽음의 우주, 그것은 신이 저주로 창조한 악, 다만 악을 위한 선, / 거기에서 모든 생은 죽고, 죽음은 살며, 자연은 만들어낸다, / 심술궂고 모든 괴물 같은 것, 모든 기괴한 것들을‘ [2622~625행]) 상징하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여성의 공포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다. - P423

동시에 이 모든 인물들 사이의 유사성(소외감, 죄의식, 고아와 거지 신세 등)은 교묘하게 놓인 거울들 사이의 유아론적 관계처럼 그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관계를 암시한다. 이 소설에서묘사되는 다수의 결혼과 로맨스의 핵심에 들어 있는 거의 숨김없는 근친상간은 이 지옥 같은 유아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강화시켜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여동생 이상인’ 엘리자베스 라벤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빅토르는 엘리자베스를 항상 ‘자신의 소유‘로[1장] 간주했다고 고백 - P425

한다. 월턴이 쓰는 편지의 수신자로서 베일에 싸여 있는 사빌부인도 겉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월턴의 ‘누나 이상‘이다. 그것은마치 카롤린 보포르가 아버지의 친구인 알퐁소 프랑켄슈타인에게 분명 아내 ‘이상‘이고, 사실상 딸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무 관계 없는 저스틴조차 은유적으로는 프랑켄슈타인 집안과근친상간적 관계를 맺은 것처럼 나타난다. 그들의 하녀로서 저스틴은 그들의 소유물이자 여동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빅토르가 스코틀랜드에서 반쯤 만든 여자 괴물은 그 괴물의 짝이면서 여동생 이상의 상대가 될 것이다. 둘 다 똑같은 부모/창조자를 두었기 때문이다. - P426

따라서 밀턴과 밀턴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메리 셸리에게 근친상간은 매슈 아널드가 훗날 ‘자신과의 마음의 대화‘라고 불렀던 자기 인식에 대한 유아론적 열광 때문에 나타난, 피할 수 없는 은유였다. - P427

이처럼 자신이 여자이고, 따라서 타락했고 부적절하다는 여자아이의 무서운 발견은 프로이트의 개념, 즉 잔인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정확한 남근 선망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리라. 분명 빅토르프랑켄슈타인이 (그리고 메리 셸리가) 이브, 아담, ‘죄‘, 사탄과맺는 다양한 관계에 거의 기이할 만큼 불안한 자아 분석이 함축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남근 선망을 암시할 것이다. - P435

프랑켄슈타인을 미친 과학자의 원형으로만 강조하는 비평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괴물의 쓰라린 자기 현시가 메리 셸리의 가장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성취인 것처럼, 이름 없는 괴물의 독백이 드러내는 과감한 시점의 이동은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인 묘기일 것이다. - P437

여성의 나르시시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괴물성은 많은 여성이 자기 육체의 특징이라고 배워온 글자 그대로의 괴물성과 비교해보면 포착하기 힘든 ‘기형성‘이다. ‘괴물의 모습을 한 여자/여자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20세기식 묘사는 단지 여자들이 자신을 괴물로 정의하는 긴 역사의 도정 중 가장 최근에 속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주나 반스의 『혐오스러운 여자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무서운 이미지들이나, ‘땀 흘리는 하얀 황소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나니 / 우리의 성기는 추하다’는 데니즈 레버토프의 말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석고상 안에서」의 ‘늙고 노란‘ 자아는 전부 유구한 역사의 한자락이다. - P445

메리 셸리가 괴물의 육체적 ‘기형’으로 이브의 도덕적 ‘기형’을 상징하듯, 괴물의 육체적 추함은 사회적 위법성, 잡종성, 무명성을 나타낸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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